느리게 사는 아름다움(1) : 아다지오(Adagio) 스케치
시편에는 탄식의 애가와 감사와 찬양의 시가 주류를 이룬다.
이를 증거나 하듯 마지막 150편에는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豎琴)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提琴)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提琴)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로 마무리한다.
여기에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현악기, 타악기, 금관악기 모두 동원된다. 그 악기를 영어 성경(KJV, NIV)에서는 트럼펫, 수금, 하프, 탬버린, 현악기, 플루트, 심벌즈로 일컫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수금이란 '더벅머리 수(豎)', '거문고 금(琴)'의 뜻으로 '작은 거문고'라고 부른다. 수금은 사냥꾼이 활을 가지고 다니면서 활의 줄을 튕겨서 소리를 낸 데서 유래된 현악기로서, 악기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길어 BC 3,000년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윗 당시에 이미 악기의 지위를 단단히 누리고 있었던 것 같다.
느리게 천천히 호소하고 절규하는 탄식의 노래는 어떤 악기로 표현하였을까. 현악기인 비파나 수금이 어울리었을 것이다. 오늘날은 무슨 악기가 그러할까. 아마 첼로일 것이다. 늦가을쯤 비라도 내리는 밤이면 첼로가 들려주는 음색이 빗방울과 어울린다. 침착하면서 묵직하고 깊이 있는 낮은 음역이어서 편안하다. 마치, 잔잔한 감성이 흐르는 듯, 슬픈 여인이 울리어내는 내면의 음성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 연주가 아다지오(Adagio)이면 더욱 좋다.
이럴 땐 그 울림에 몰입하게 된다. 눈을 감으면 지난 그리움을 회상하게 된다. 그 시간의 일들은 고칠 수 없기에 더욱 편하다. 회한도 더는 할 필요가 없다. 느리게 천천히 살지 못했던 그때도 그냥 아름다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언제부터인지 산책할 때 걸음걸이가 그리 빠르지가 않다. 몸의 움직임도 보통 빠르게,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느리게 천천히 산다는 안단테 칸타빌레, 아다지오로 산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과 들과 하천, 숲과 나무, 풀과 꽃이 살아 숨 쉬는 이곳 산동네에서의 삶이 그런 풍경이다. “산다는 것은 환경과 내가 서로에 익숙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피에르 상소(Pierre Sansot)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Du Bon Usage de la Lenteur》에서 나오는 적절한 표현이다.
아다지오의 느림이란 불성실하거나 굼뜨거나 게으름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에르 상소는 ‘느림’을 능력이라고 불렀다. 그 능력이란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며, 그 능력을 찾기 위해서는 필요한 지혜가 있다. 그것은 갑자기 달려드는 순간에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시간에 쫓겨 다니지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알 수 있는 지혜이다”라고 했다. 결국, 느림에는 지혜가 선행되어야 하며, 지혜 또한 느림에서 나온다는 말일 것이다.
어떤 일을 만나 허를 찔리지도 않고 시간에 쫓겨 다니지도 않으려면 느림의 능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는 찾기 힘든 사치스러운 어휘인지도 모른다. 이제 어떻게 안단테 칸타빌레의 느린 걸음으로 아다지오의 세계를 걸어가 볼지를 하나씩 생각해 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