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여 영원하라,
역사적 남산기행이 그곳에 있었다
그날, 회현역 5번 출구에서 출발한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 최근 1등으로 급제한 해설사 선생님의 박람박식에 다소곳하게 귀를 쫑긋 갖다 댄다. 물론 먼산을 쳐다보고 딴생각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나 끝날 때까지 강고한 권위에 대한 도전은 용납되지 않았다.
예전의 조선신궁 가기 위해 만든 길에 들어선다. 한국 최초의 육교를 건너면서 환이형은 연신 신기해한다. 성곽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기억의 공간으로 찾아든다. 남산은 크게 백범과 안중근의 강역으로 구분한다. 우리와 일본 사이의 기억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현장이다.
백범강역에 김유신 이시영 백범의 동상이 있다. 김유신동상은 원래 시청 앞에 있었는데 지하철공사로 옮겼다 한다. 경주의 김유신 동상은 원래 칼 끝이 일본을 향했는데 북쪽으로 바꾸었고, 이 곳 남산의 동상은 원래 시청때부터 북쪽을 유지하더니 그 북쪽이 청와대를 가리켰는지 자기부하 김재규의 손에 죽었다는 이설 있다.
이시영 동상 앞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회영 6형제 얘기를 길게 듣고서 백범동상에 이른다. 웅장하다. 이승만, 살아서 동상을 세우더니 끝내 그 동상, 민중의 손에 끌려 내려오고 그 자리에 백범 동상이 1969년 들어섰다.
특히 이곳 백범광장이 조선신궁 자리였다는 해설사의 설명에 다들 놀라는 듯하다. 특히 해설사의 줄줄이 튀어나오는 방대한 지식에 환이형은 감탄을 멈추질 못한다. 남산의 의미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일제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다들 남산으로 달려왔다. 권력이든, 역사든 그 중심에 있었다.
다들 강건한 어르신들이라 눈이 오고 길은 얼었지만 이 정도 걸음은 예사인 듯 날아 다닌다. 등산화 아닌 운동화 신은 순기님 등 2명만이 노심초사한다. 어린이회관을 멀리서 보며 지나가려는데 해설사 선생님이 정윤희와 삼순이를 소환해 낸다. 내 사랑 삼순이의 엔딩 신 '삼순이 계단'은 꽤나 유명한가 보다. 반대쪽 계단이 정윤희계단이라 한다.
드디어 민족의 영웅 안중근 강역에 들어선다. 오벨리스크를 닮은 거대한 돌에 안중근 의사의 "견리사의 견위수명"이 새겨져 있다. 1979년, 죽기 한 달 전에 박정희가 썼다는 글자가 바로 그 옆에 남아있다. 왜 이곳에 있는지,
살짝 오르니 조선신궁 배전터가 있다. 요놈들, 용서하지 않을 테다. 발굴공사 중이다. 식물원과 동물원이 있었다는 이곳에, 왕눈이님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리 없건만 사람이 제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까마득한 높이의 언덕이 수도 없이 나타난다. 그래도 다들 기세 등등이다. 하기사 여기도 산이 아니든가, 270 높이에 타워 210을 더한 480미터의 산이면 엄청 높은 거지,
침묵의 중간중간 북한산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가 이어진다. 해설사 선생님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울지 않는 새는 목숨을 다하듯, 역사공부에 나선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침 주려는 듯,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리라와 숭의국민학교가 라이벌이었고, 리라는 노란색 옷을 입고 다녔으며, 대스타 박찬숙이 숭의출신이라고 한다. 우리 시골 출신들이야 언감생심 한 얘기들이다. 이 모두가 남산과 관련된 얘기다.
통감부 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광화문의 조선 총독부가 들어서기까지 이곳이 통치의 중심이었고, 일본인들의 거류단지가 이곳 남산에 있었다니 일제 강점기 때는 남산이 중심지역이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팔각정이 눈에 들어온다. 이승만을 추앙하려 우남정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팔각정은 지금은 고유 이름이 없다.
그 높은 남산타워를 실컷 지어 놓고 전망대에서 청와대가 보인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검은 천막 속에 살았다는 비운의 타워 건물, 지금은 YTN이 소유하고 CJ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춥고 쌀쌀하지만 하늘은 유난히 맑다. 타워가 너무나 선명하게 찍힌다.
사랑과 이별과 행운의 열쇠구역에 들어서니 건너편 캠프 모르스가 보인다. AFKN 송신탑으로 쓰기 위해 세운 송신탑과 그 운영 부대인데, 의당 미군 부대 이동 협정에 의거 우리 측으로 넘겨주어야 함에도 미국 측이 점유하고 있단다. 일부 회원이 타워 전망대 관람을 일부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타워서 내려오는 길에 회장님이자 해설사 선생님이 성곽사이의 세 그루 느티나무를 지목한다. 왜 그럴까, 마지막 나무에 이르자 앙코르와트의 나무에 빗대어 설명을 잇는다. 유적보호냐, 나무의 생명이냐, 성곽중간에 나무가 엄청 크기로 자라고 있으니, 그래서 나무뿌리에 주사를 놓아 더 이상의 성장을 막자는 게 그 묘책, 그것이 상생하는 길이라면,
점심을 먹고서 트래킹 나서기로 한다. 그런데 굳이 좋은 길 놔두고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로 애국가의 소나무 힐링숲을 찾는다. 전면 개방된 지 얼마 안 되는 곳이다. 좋은 곳임에 틀림없는데 음지다. 찬바람 쌩쌩에 한기까지 느껴져 장소를 옮겨서 식사를 한다. 이게 다 캠프 모르스 때문이다. 길이 단절되었기에 그렇다.
회장님의 15년 산 위스키 한잔을 시작으로 떡이며 귤이며 라면이며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준비한 전임 멍총무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다시 굳이 좋은 길 놔두고 오지도 않은 오솔길 찾아들며 긴 행군이 시작되었다.
저기 저기 국립극장 보인다.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 일본은 왕립이라고, 1974년, 8월 15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가, 당시 합창단원이었던 성동여실고 장봉화 학생이 경호원의 오발탄으로 목숨을 잃았다. 당시 해설사 선생님은 중학생이었다
저기 멀리로 기와집 한옥들이 보인다. 남산 한옥마을인가, 저 자리에 12.12의 수경시가 있었다고 한다. 보안사와 한판 붙어 그놈의 국방장관 때문에 맥없이 물러났던, 실제는 어땠는지, 바로 비운의 자리다. 지금도 청와대가 용산 국방부로, 국방부는 합참으로, 합참은 남태령 수방사로 간다는데, 어이할꼬,
길은 중간에 큰 도로로 한번 끊어지고 마지막 코스 장충체육관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다. 남산타운 대단지 아파트 보이는데 이곳 다산동은 개발이 묶여 있다.
장충고등학교,박영서 졸업학교, 야구로 운명한데 응원가도 유명하다.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장충여고의 장미희도 소환된다. 장충여고는 없을 뿐 아니라 실제 협성여상 출신이라고 한다. 그것이 무에 그리 중요했나 보다. 학력 중시 사회이다 보니,
장충체육관 보이고 이병철 집도 보인다. 저 집은 장남을 거쳐 그 손자에게로 넘어가 있단다. 사람 아니 살고, 그러거나 말거나,
노선투쟁이 벌어진다. 더 걸어서 동묘까지 갈 것인가, 아니다, 약수역 지하철로 동묘까지 가자, 엄청난 싸움 끝에 회장이자 해설사 선생님께서 양보하고 만다. 화무십일홍이라했던가, 권력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들 급한지 동묘역 화장실로 가는데 만석이 형과 종원이 형이 기억력 저하와 치매에 대한 세부 정립을 논하고 있었다. 깜박깜박하는 것이 치매 아니라고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다.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생활에 불편한 있냐, 없냐로 구분하면 될 것 같습니다.
동묘 한 바퀴 둘러 보는데 장렬공이 회장님께 전화를 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훈훈함을 만끽하며,벼룩시장을 헤치고 드디어 오늘의 송년회식장인 목포낙지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30분,
장선배님, 알대장님 은경님 와 계셨고 뒤이어 총무님 용진형 홍주형 혜진님의 오심으로 성원이 되었다. 일진과 이진으로 나뉘어 송년만찬이 진행되었다. 회장님의 15년과 용진이 형의 21년을 음미하고 찬미하면서 장장 세 시간의 막을 올렸다. 삼치회는 일품을 넘어 해와 달이었다.
회장님의 개회사와 알대장님의 산행완결보고, 총무님의 결산보고에 이어 우리 회원님 각각의 송년사(2편에 게재)가 길게 이어졌다. 이 집의 특미인 연포탕을 즐기면서 다시 못올 난장이 오후 다섯 시 반까지 이어지고서야 노래방으로 이동한다. 환이형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노래하면 빠지지 않는 분인데,
남 회장님의 갈무리와 만석이 형의 부르지마는 절창이었다. 더 이상 무슨 노래가 필요하랴, 순기님의 맑은 목소리는 참, 노래 잘하는구나, 느끼고, 회장님과 혜진님의 듀엣, 용진이 형과 만석이 형의 듀엣은 시공을 뛰어넘은 감성 드라마였다. 녹음해 둔 것, 발매해야겠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홍주형 리드하의 아름다운 강산 합창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 우리도 더 젊어질 수 있구나, 질펀한 한판의 놀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영원히,
그렇게 그렇게 저물어갔다. 2023년 성대 신방과 산악회는, 그리고 2024년을 부지런히 부르고 있었다.
출연자
현회장님 알대장님 총무님 남회장님 덕수선배님 만석이형 홍주형 종원이형 환이형 용진이형 은경 멍총무 혜진 왕눈이님 순기님 그리고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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