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꽃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 글쓰기도 마찬가지겠지요. 까마득히 아주 먼 옛날, 어느 한 남자가 사냥터에서 만난 들소를 동굴 벽에 그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그는 아마도 사냥감 생김새와 성질, 습성뿐만 아니라 생존 전략까지 그림에 넣고 싶었을 겁니다. 다음 세대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림과 글은 자기 나름의 삶과 사연, 경험의 기록입니다.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나와 우리의 역사에서 비롯된 드라마지요. 거창한가요? 아니, 오히려 간결합니다.
자연의 일상은 매 순간이 드라마입니다. 밋밋하게(?)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갓 태어난 매미가 거미줄에 걸리고, 돌 틈에서 사랑을 나누던 꺽지가 물총새에게 잡히는 건 계획된 사건이 아닙니다. 비 내리는 아침, 사력을 다해 몇십㎝를 기어간 달팽이가 행인에게 밟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 또한 그 자체가 드라마입니다. 이런 찰나의 순간들을 모두 기록하는 기억의 저장소가 있을까요? 자연을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눈은 어린아이의 눈, ‘호기심’이라 했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이런 의문이 조금은 풀릴지 모르겠습니다. 상상 속에서라도.
붓꽃! 자연계의 화가이자 사관(史官)입니다. 곧추선 줄기와 꽃봉오리에선 범상치 않은 기품이 엿보이지요. 마치 모든 일상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하려는 듯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까지, 그 꼿꼿한 자태가 변하지 않습니다. 모습이 이러하니 상상력이 풍부해집니다. 뿌리와 줄기 씨앗 곳곳에 수많은 비밀이 녹아들어 무궁무진한 얘깃거리가 만들어지고, 세상만사 모든 궁금증을 단숨에 해결할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합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 단 한번의 붓 놀림으로 세상만사를 명료하게 그려낼 것 같은 마법의 식물!
쓰임새는 어떨까요. 약용과 향료, 식재료 등 그 쓰임이 다양합니다. 향기가 특별해 제비꽃 등 다른 식물과 섞어 향수를 만들거나 음식 보조재료로 활용합니다. 한방에서는 두시초(豆시草)라 하여 폐렴과 인후염 치료에 사용한 기록이 보입니다. 민간에서는 피부질환과 통증, 소화불량 치료제로 쓰였습니다. 장미와 튤립, 국화와 함께 세계 4대 원예식물 중 하나로 꼽히며 프랑스의 나라꽃이기도 합니다. 고흐는 이 꽃을 소재로 다수의 작품을 그리며 아픔을 달랬습니다. 세계적으로 각시붓꽃, 타래붓꽃, 꽃창포, 금붓꽃 등 그 종류가 수십 종에 이릅니다.
강병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