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플레이오프, 가을
박진성
선수들이 모두 퇴장한 그라운드를 보고 싶어요
귀뚜라미 우는 소리는 변화구입니다
가을은 누가 던지는 공일까요 계절의 감정을
나무에 기대어 말하는 방법은 낡았습니다
나의 불면은 나의 독백과 같은 말입니다
낙차 큰 커브를 던져보고 싶습니다
새벽 네 시의 골목은 기다란 식도입니다
푸른 잔디 푸르른 조명탑
아파트는 새벽에 더 높아지고
앙상한 당신이 알약의 개수를 세고 있습니다
날씨로 우리는 안부를 전합니다 고양이가
이 층까지 올라와서 운동화를 뜯어 먹습니다
늙은 개와 다투지 않습니다
놀라운 일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어두운 산책은 벤치에서 멈춥니다
당신은 새벽과 밤의 경계선을 긋습니다
나는 자꾸만 던져집니다
손가락으로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아서
당신은 그냥 당신입니다 스탠드는
빛을 끌어모으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옆집 남자는 알람을 켜놓고
어디로 간 겁니까 하루가 꼬박 지났는데
알람시계는 스스로 멈출 수 없지요
책장에선 책들이 화분에선 화초들이
약통에선 약들이 무럭무럭 자랍니다
롱 릴리프 투수는 마운드의 흙을 스파이크로 뭉갭니다
세 번째 볼넷입니다 주자는 만루입니다
계간 『신생』 2015년 봄호 발표
박진성 시인
1978년 충남 연기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목숨』(천년의 시작, 2005)과 『아라리』(랜덤하우스코리아, 2008)가 있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2004년, 2007년).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