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cm,이휼민 단편 에세이
먼저 내 단편 에세이에 앞서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 를 소개해 보자면 첫사랑과,포기,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영화이다.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3가지 파트로 나뉜다.1파트는 벚꽃 이야기,2파트는 코스모너트 3파트는 초속 5센티미터 이렇게 말이다.그리고 그에 따라 각 파트의 주인공도 조금 씩 바뀐다.첫 번째 파트는 타카키 라는 남자 아이가 2번째 파트는 카나 라는 타카키를 짝사랑 하는 소녀가 마지막은 다시 어른이 된 타카키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얼핏 보면 굉장히 뻔한 일본 3류 소설이 되기 쉬운 그런 스토리였다.하지만 항상 그렇 듯 신카이 마코토는 인물들에게 위기를 던졌고 그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을 우리가 100% 아니 300% 느낄 수 있도록 풀어냈다.또,흔히 말하는 클리셰 부수기 등 다양한 작법을 사용해 우리가 상영 중 흥미를 잃지 않도록 노력했다.특히 마지막 기차 장면은 영화계 최고의의 충격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또,눈과 벚꽃을 조화하는 능력과 다양한 복선을 넣어두는게 신카이가 상업 감독이라는 사람들에게 반박거리를 주는 영화였다.
꼭,추천하니 한번 보면 좋겠고 이젠 내가 이 영화에서 얻은 것들을 나누고자 한다.
이휼민 단편 에세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들 중 하나이다.그리고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나는 어느날 문득 떠오른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그런데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그렇지 않는가? 우리는 다른 인간들에 의해 미친 듯이 울고 화내고 속상해하고 심지어 목숨 까지 끝낸다.인간은 도저히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았다.이기적이고 자기 합리화 적이면 남이 잘되는 꼴도 못본다.내가 이런 말은 한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당신이 너무 비관적인거 아니야? 너무 인간의 안 좋은 점만 보는게 아니야?” 그래,그럴 수도 있다.그리고 그 말도 어느정도 맞는 사실이다.나는 솔직히 인간을 부정적으로 본다.세상에 이렇게 미련 많고 악랄하면 영악한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그럼 또,누군가는 물을 것이다.”너무 일차원적 사고 아니야?” 이렇게 말한다면 난 그들의 말에 인정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나도 내 사고가 편견에 찌든 자기 합리적인 주장임을 알기 때문에 말이다.나도 앞서 말한 이들과 같은 인간이고 그들과 같은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그래,그럼 이렇게 하는거 어떤가 내가 한발짝 물러서 내게 행복을 주는 인간,관계가 있다고 하자.설령 나의 부모님,가족 친구와 같은.그들이 내 삶에서 많은 기쁨을 행복을 준다.그런데 그끝을 어짜피 정해지 이별 아닌가? 인간은 유한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지 않는가 결국 그들과는 비극적인 이별을 하게 되지 않는가? 결국 인간은 인간을 만날 수록 불행해지지 않는가.이 어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불릴 수 있는가.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초등 학교 졸업 날이었을 거다.그날 나는 친구들의 연락처,단톡방,디스코드 등을 모두 지웠다.일종의 회의감 때문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6년간의 관계가 끝났다는 절망감이 나를 덮쳤고 우울감 때문에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어찌보면 타카키와도 비슷했다.영화 속 타카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이와 멀어지며 매일을 허덕인다.나도 그랬던것 같다.영혼이 내 몸을 따라오지 않는 기분이었다.매일매일이 고통 이었고 사춘기인가 싶을 정도로 좀 많이 슬펐다.그러던 방황 중 나는 이 영화를 한번 보게되었다.타카키는 이제껏 그리워 하던 이가 돌으보지 않고 떠나자 마지막에선 살며시 웃음을 지은다.모든게 편안하다는 듯이.그이와 헤어졌고 완전히 멀어졌는데도 말이다.카나도 눈물을 흘렸지만 나아갔다.저 높은 곳으로 파도 위로 말이다.
어쩌면 신카이 마코토가 내게 속삭인 걸 수도 있다.이별은 슬프지만 나를 해치는 게 아니라고 이별을 통해 우리는 나아가고 이때까지의 미련을 버릴 수 있다고.영화를 본 나는 울 고 있지 않았다.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교복을 정리했다.중학교 생활을 고대했으며 초등학교 생활은 그리워만 했다.친구들과도 연락을 유지 하고 말이다.
인간을 혐오했다.인간의 유한성을 원망했고 한정된 관계를 원망했다.하지만 말이다.가끔 이별이,내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 나와 그사람과의 열매를 알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유한이 있기에 우린 사랑했고 좋아했으며 아꼈던 것 같고 앞으로 다른 이들을 유한을 말미암아 사랑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며 깨닳았다.우리의 인생은 유한적이고 짧기 그지 없다.하지만 이 짧은 시간을 누군가를 아니면 무언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데 쓰기엔 너무 아깝다는 것을.누군가를 사랑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라는 것을.
나는 또,이별을 할것이다.인생에서 수십,수백번 관계를 만들고 없앨 것이며 그들과 울고,웃을 것이다.이관계 속 누군가를 싫어 할 수도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며 결국엔 싫던지간에 좋던지안에 이별 할 것것이다.나는 이들과의 관계가 시간 낭비만이 아니길 빌며 이들이 나를 시간 낭비라고 여기지 않기만을 빌것이다.나는 그저 내가 이별의 순행자가 될것을 빌며 인류를 혐오 하지만큼은 좋아하진 않아도 싫어하지는 않음을 빌것이다.
내가 이별의 순행자가 되길 빌며
내 단편 에세이를 마치겠다.
솔직히 지금 다시보면 이글이 에세인지는 모르겠다.처음 써 본 형식의 문장이라서 딱히 지을 제목이 없어서 이렇게 지엇겄만 그냥 잠꼬대 한것만 같다.그래도 내 잠꼬대 와 같은 이말이 이 글을 읽는 적어도 한 사람에겐 도움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