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늘 나라는 주님에 대한 단순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 누리는 축복의 나라이다(복음).
장영희 교수가 쓴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작은 선행이 가져온 기쁨을 담백하게 적어 놓은 글이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많은데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에는 1달러가량의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씩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요금소에서 어떤 기분 좋은 운전자가 2달러를 내면서
“내 뒷사람 것까지요.” 하고 가면 징수원이 뒤차 운전자에게
“앞차가 내고 갔어요.”라고 말합니다.
뒤차 운전자는 자신이 준비했던 1달러를 내면서
“그럼 이건 내 뒷사람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시작한 작은 선행이 때로는
하루 종일 릴레이식으로 다음 사람에게 이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기분 좋은 미소까지 전달되겠지요.
작은 일, 작은 사랑에 충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창하지 않은 사랑이지만 일상의 대수롭지 않은 일도
사랑으로 실천하면 주위에 기쁨을 줍니다.
이는 어린이의 단순하고 천진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태도입니다.
어린이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알기에
하느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깁니다.
하늘 나라는 바로 이런 어린이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도대체 어린이들의 어떤 특성이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어린이들은 어른들처럼 죄를 짓지 않고 순수하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처럼,
하느님께 의탁할 줄 알아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약함’입니다.
오늘날과 달리 예수님 시대에는 유아 사망률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고, 충분한 영양 섭취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린이야말로 그 사회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곧, 하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이들의 차지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