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0일 불날
날씨: 하늘이 맑다. 뉴스를 보니 곳곳에 황사가 왔다는데. 하늘은 맑은데 말이다.
겪은 일: 일어나기, 씻기, 집 나서기, 부엌 정리하기, 5분수학 검사하기, 커피 내리기, 선생님들 아침열기, 5학년 영어, 4학년 수학 이끌기, 점심, 청소, 4학년 우리나라 알기, 마침회, 선생님들 마침회, 수학과학 공부모임
제목: 콩순이와 콩식이
하늘이 맑다. 미세먼지는 여전히 좋지 않다. 불날과 나무날은 선생이 이끄는 수업이 가장 많은 날이다. 시간표를 쪼개 아침열기 시간에 5학년 영어수업을 이끌고 다른 수업들도 꽉꽉 들어차있다. 어제 연구모임이 늦게 끝난 탓인지 조금 피로가 있다. ‘커피는 늘 진하고 차갑게’를 신념으로 가지고 산다. 학교 모카포트로 내릴 수 있는 가장 진하게 커피를 내리지만 입이 점점 무뎌지는 탓인지 늘 더 진한 커피를 원한다. 입도, 몸도 카페인에 무뎌지는 것이라.
오늘은 한 달 동안 배운 분수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저마다 분수띠를 바탕으로 분수 크기를 견주었으니 이젠 진분수, 가분수, 대분수 공부를 하며 한 차례 분수 공부를 마무리 한다. 동그라미를 그려 3등분, 4등분을 하게 하고 가분수로 나타낼 땐 왜 분모가 바뀌지 않는지, 가분수는 어떻게 대분수로 나타낼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는지 공부한다. 그 가운데 왜 분모가 바뀌지 않는 것인지 떠올리고 까닭을 말로 설명하도록 한다.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다니는 이야기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주 큰 공부다. 느낌을 찾지 못했는지 이것저것 막 찍기 시작한다. 한 어린이가 얻어걸렸지만 선생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까닭을 말하면 좋을텐데. 5학년 도훈이가 모둠방에 들어와 조금 도움말을 줬지만 4학년 어린이들에겐 어려운 모양. 선생이 이야기를 하니 그제서야 알아들은 것 같다. 가분수 이야기, 대분수 이야기를 들려주고 쉽게 가분수를 대분수로 바꾸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많은 어린이들이 헷갈려 한다. 하하. 그래. 언제든 설명해주마. 하지만 선생 몸은 하나고 날 찾는 어린이는 여럿이라 언제 어떤 어린이가 나를 불렀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너네 차례는 너네가 기억하면 안 되냐? 설명하다보면 까먹을 때가 있는데 그럼 다른 차례로 설명해주면 너네가 또 서운하잖아”라고 하지만 쉽지 않다.
낮공부로는 석기시대 이야기와 4.3 항쟁 공부를 시작한다. 미세먼지가 좋으면 밖으로 나가 돌도 깎아보고 옛사람들이 썼던 창, 칼 따위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이런. 미세먼지가 좋지 않다. 책과 선생의 이야기, 연기로 수업을 이끌었는데 지난시간만큼 어린이들 반응이 좋다. 다른 때 질문이 그리 많지 않던 어린이도 질문을 수도 없이 쏟아낸다. 우오~ 대단한데? 다음엔 꼭 미세먼지가 좋아서 돌칼도 갈고 움막도 만들어야지.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가 줄곧 4.3 항쟁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지난주부터 그랬는데 오늘 우리나라알기 시간에 들려주기로 했으니 약속을 지켜야지. 현대사 공부, 이야기를 풀어줄 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늘 고민이다. 물고 물려있는 이야기들이라 시작하는 점을 짚기가 참 쉽지 않다. 선생들이 가진 직업병 같은 것인데, 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전부터 알아야해. 그땐 말이지....”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는데 어린이들이 원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선생은 좋은 선생이라지만 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다보면 어린이들도 힘든데 말이다. 오늘 4.3 항쟁 이야기가 딱 그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들려줄까 고민하다가 결국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했다. 후.... 뒤에 몇 어린이들이 찾아와서 “더 들려주세요!”하는데 “난 4학년 어린이, 5학년 어린이, 6학년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다 다르게 채비되어 있어. 언제든 찾아와. 그런데 결국 비슷할 수도 있어...”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똑같은 이야기일까. 4.3 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참 할 것이 많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가려 숨겨진 사실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가.
마침회를 하는데 새참으로 고구마가 나왔다. 먹고 싶지 않다는 어린이들이 있어 집에있는 가족이나 반려동물에게 주라고 했더니 문득 나와 함께 살았던 강아지 (덩치를 보면 누구나 개라고 하지만 나에겐 언제까지나 강아지 같다.) 콩순이 콩식이가 떠올라 콩순이, 콩식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콩순이는 10년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콩식이는 지금 4학년이 1학년 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지난해 민주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여러차례 보였는데 하루생활글도 썼길래 길게 답글로 써준 적이 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보는 것은 참 귀한 공부라고. 다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인데 헤어짐이 다가올 때 어린이들은 어떤 마음일지 한 번 떠올려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해줬던 기억이 있다. 콩순이의 죽음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수업을 마치고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다가 어머니가 전화로 알려주셨다. 콩식이의 죽음은 2018년 과천축제 때 피자화덕을 한창 만들다가 또 어머니의 전화로 알게 되었다. 콩순이 소식을 들었을 땐 동무들 앞에서 펑펑 울면서 짬뽕을 먹었던 것 같은데 콩식이 소식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아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두녀석 다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살았던 녀석들인데 고등학교를 다른 곳에서 다녔던 나는 고향집에 자주 내려갈 수 없었다. 그럼 오랜만에 보는 나를 얼마나 반가워하던지. 어찌할줄 모를 정도로 나를 반기던 녀석들이었다. 특히 콩식이는. 그런 녀석을 담배 한 대 태운다고, 어머니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다고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는데. 오늘 두녀석 이야기를 하는데 보고싶어져서 기분이 참 묘했다. 어린이들은 “한쌤 우는 거 아니야?” 수군댔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그녀석들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 가슴 한 켠이 뜨거워졌다. 녀석들 사진이나 많이 찍어둘걸. 그래도 콩식이는 사진을 갖고 있는데 콩순이는 전화기에 사진이 없다. 여전히 콩식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집에가면 언제나 어쩔줄 몰라하며 반기는 녀석이 있을 것 같은데. 어머니 아버지와 사진을 많이 찍어둬야겠다 싶었다. 남사스러워서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있는 모습만 봐도 떨어트려 놓으려고 하는데 요즘은 부쩍 어머니 아버지가 자주 보고 싶어진다. 이제 떨어져 산지 10년이 넘어서 그런가. 날마다 전화를 하는데 자나깨나 자식 걱정이다.
무지개다리 건넌 콩순이 콩식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마음이 아팠는지 눈물 흘리는 어린이가 있다. 슬픈 일에 잘 마음을 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진 어린이구나 싶다. 눈물이 많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하는 것이라 알려주었더니 옆에 있는 어린이들이 달래주고 선생도 뒤로가서 안아주며 마침회를 이끈다. 오늘은 콩식이랑 찍은 동영상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야지.
첫댓글 아...저에게도 콩순이 콩식이와 비슷한 동무가 있었는데...오늘밤은 옛 동무 생각하며 잠을 청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