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진입금지 푯말이 있다는 것은 차가 갈 수 있다는 말의 반증이다.
권세있는 자가 말을 타고 다녔던 그 옛날 너보다 더 한 권위가 여기 있으니 예의를 갖춰라 말한 것은 다름 아니라 하마비였다.
더 큰 퀀위에 예를 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몸소 걸어 들어가 배알해야 했음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대상에 대해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품을 때 마다 자신은 낮아지고 비워져 가는 것이니
걸어가는 행위 그 자체가 이미 종교요 도의 길이다. 그래서 참도는 바로 차에서 내려 걷는 순간 시작된다.
금년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에 바람도 대단한데 길은 초입부터 경사가 매우 급하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그 유명하다는 소나무는 하나도 보이질 않고 활엽수에
간간히 자작나무 비슷한 것들만 보인다.
경사가 급할수록 숨소리는 커지고 걷다 쉬는 시간도 짧아지지만 우리도 꽃다운 신혼이 있었다는 것을 추억하는 여행의 동반자
마눌에 대한 고마움은그럴수록 더 커진다.
둘이였기에 힘이들어도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가지 혼자였으면 가려구나 했겠는가
급경사에 구비진 길을 헉헉대며 오르니 한겨울 삭풍에도 얼굴엔 땀방울이 맺힌다.
지나온 길의 끝이 휘돌아 이미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온 그 길이 있기에 지금 여기 서서 앞으로 걸어간다.
앞의 길도 끝이 보이질 않긴 마찬가지다.
정상을 앞두고 마지막 통과의례처럼 길은 더더욱 가파라지고 휘어진다.
한겨울 추위도 무색하게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 옷을 벗으려는 순간 탁 트인 하늘이 보인다.
마루에 부는 바람이 매서워 풀어 헤치려든 옷깃을 다시 여민다. 머리가 시리고 얼얼하다.
포장도로의 끝이자 흙길의 시작인 이곳이 입구에서부터 절반 정도의 거리다.
차량진입금지 표지가 마음을 내려놓는 일차관문이라면 흙길은 다시 한번 세속의 욕심을 부려놓으라고 말한다.
이곳부터는 산의 풍경도 바뀐다.
포장도로 주변을 뒤덮었던 활엽수는 홀연 사라지고 흙길 옆으로는 황장목이 늠름하게 서있다.
산허리를 가로지른 흙길 한쪽은 절벽이라 내려다 보니 아찔하다.
다 올라왔으니 이제 내리막만 있겠다는 바램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한 구비 언덕을 만나 오르는데 안내판이 멀리서 보인다.
이곳 소나무의 또다른 이름이 미인송이다. 그 미인송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뽑혀 저멀리 속리산 정이품송과 혼인을 했다는 나무다.
흠잡을 데 없이 쭉 뻗어올라간 소나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터진다.
한아름이 넘는 나무인데도 늘씬한 키 때문에 전혀 아름드리 나무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찬양하면 미인송이 되고, 단단한 재질로 말하자면 금강송이요,천하의 중심을 나타내는 황금색을 그 속에 품고 있어 황장목이며,
자라면서 껍질을 벗고 그 갖고 있던 오롯한 마음 붉게 드러내니 적송이라 불리는 소나무.
한국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나무다.
준경묘 이성계의 5대조가 묻힌 곳이니 세종에게는 7대조가 된다.
세종이 제창한 용비어천가가 조선왕조의 창건역사를 읊은 것이니 불행히도 이곳에 묻힌 사람의 이야기는 빠져 있고
이사람을 이곳에 묻은 사람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해동육룡이 나라샤~로 시작되는 그 해동육룡중 첫번째 분인 목조의 아버지 이양무장군이 묻힌 묘다.
전주에서 살던 세족이 이곳 먼 땅까지 오게된 이유는 그곳에 부임한 고려왕족과의 다툼때문이라는데
이 지역으로 이사한 후 이양무가 죽자 이 곳에 묻었는데 백우금관의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날 안사가 산에 나무를 하러 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지나는 도승 자기 제자에게 이곳에 백마리의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금관을 묻어 묘를 쓰면 그 후세가 임금이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아버지 이안무의 묘를 썼다. 그런데 백마리의 소를 잡을 형편이 안되어 일백백자에서 한획을 뺀 흰백자 백우를 잡고 금관의 색이 노란 것에 착안해 볏집으로 관을 만들어 묻었다"
순간의 투자가 십년을 좌우한다는 어느 가전회사의 씨에프가 생각난다.
한순간의 투자로 영원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상의 묘 한자리 잘 써서 영원의 부를 꿈꾸는 자들의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인간이 사는 순간 순간이 모두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늘 영원을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곁에 있는 영원은 놓치고 납을 금으로 바꾸고자 하는 연금술사의 헛된 욕망처럼 내안의 것이 아닌 열망으로 늘 영원을 꿈군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묻을 땅 한자리로 자기와 후대가 영원히 누릴 복록이 보장된다면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 땅에 묻어서 왕이 나왔는지 아님 왕이 나와서 그 땅이 명당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에 묻었는지도 모르고
오백년을 지나왔어도 왕이 나왔으니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는데 신화요 전설이다.
헛된 욕망을 이용해 득세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틈새로 파고들어 부채질한다.
그래서 명당은 거저 얻을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 내야한다. 백마리의 소를 잡아라 금관을 준비해라. 그 값을 할 땅을 점지해주마.
로또 대박의 땅을 알려주려 홀연히 나타난 노승은 풍수꾼들이요 그들의 수고료가 소백마리와 금덩어리였다.
그러나 용비어천가에서 거론하신 해동육룡의 우두머리 이안사가 보통 인간이면 안되니 소백마리와 금관을 거저 줄 수는 없는 것
기지를 발휘하여 풍수꾼과 협상을 하는데 너가 말한게 일백백자는 아니겠지 내 흰백자로 알아 듣겠네.......
소 끌고 가는데 새끼줄이면 되지 어떻게 금으로 치장하겠나 새끼줄은 내 꽈주겠네
거저 얻는 명당도 없고 조선개국 시조 이성계가 제사지내는 4대조인 이안사의 공도 추켜세우는 일거양득의 신화는
만들어졌으니 이 땅은 전국최고의 명당이 되어 풍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찾는 사람이 있으면 말도 많게 마련 좌청룡 우백호 배산 임수 안산이 어쩌구 저쩌구
한쪽이 꺼져 기가 약하니 장남계승이 적었네 수명을 다 누리질 못했네 침략을 많이 당했네
사방이 산으로 막힌 곳에 운동장 만큼 넓은 곳이 나오니 갑자기 숨통이 탁 트이는 것 같다. 시간이 꽤 지나 주변이 해넘어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준경묘엔 햇볕이 밝다.
하루종일 해가 드니 명당 묘자리보다는 사람이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앞도 가꾸어 밭과 논으로 꾸미면 산에서 나는
것들과 함께 한 식구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듯 하다.
묫자리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소나무를 보러 왔기에 참배는 생략하고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본다.
해가 지면서 바람도 거세지니 돌아갈 생각과 차에 홀로 남겨둔 둘째도 걱정이 된다.
불과 육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한개의 길이 두갈래 길이 되는 세상에 오백년전에 묻힌 사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들이 남긴 소나무와 보호한 자연이 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공자가 말한 효의 끝이 올바른도로싸 몸을 세워 후세에 이름을 떨치는 것이라 했는데 아마도 공자가 말한 영생은 그 이름에 남아있었나보다.
육신이 썩어 없어져도 남는 것은 이름이니 이름을 날리면 그 속에서 그는 영원히 살 것이요 그 삶을 이야기하는데
어찌 뿌리를 빼 놓겠는가?
자식들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지켜보다 끝내 서울을 떠난 이성계는 이양무나 이안사에게 어떤 아들로 자리했을까?
묘자리의 형태로 풍수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곳을 명당이라 할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 바람은 더더욱 거세졌다.
해넘이에 쫒긴 발걸음은 빨라지고 이미 익숙해진 길은 더이상 발길을 붙들지 못한다.
숲에 가득찬 바람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맴돌다 빠져나가며 슬픔을 억누르는 상주의 신음같은 소리를 낸다.
첫댓글 주위에 해가 져도 오래토록 그 빛이 남아 환하게 비추던 준경묘를 뒤돌아 바라보며 그야말로 명당자리 임을 확인하고 돌아나오던 한여름 답사지였습니다. 답사 때엔 묘자리 주위에 무슨 공사가 한창이던데 무엇이 새로와졌는지 사진에는 나와있지 않군요. 청한 님 덕분에 겨울 준경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네요. 묘 위는 안 오르셨나봐요? 묘 맨 끝에서 어우러보는 광경도 참 좋던데요.
묘 위에는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주위가 다 어둑해도 그곳만은 빛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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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시니 다시 걸을 날이 오겠지요
한적하다고 표현하기엔 참으로 쓸쓸한 길...미인송을 보면서..갑자기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슬픔을 억누르는 상주의 울음소리라는표현에 그 바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ㅎㅎ 잘 보고 갑니다. 청한님.^^*
오가는 내내 마주친 분이 입구에서 부부 한쌍밖에 없었으니 한적하다기 보단 쓸쓸했던 길입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도 생각나지 않는 숲이었습니다. 쭉쭉빵빵한 나무들만 보이니 말입니다...........9월에 아버님 상을 당한 입장이라 그렇게 들렸나 봅니다.
그랬구먼요. 연락을 주시지...
늦은 시간에 날씨도 심상치 않은데 그래도 계획하신일 포기치 않으시고 잘 갔다오셨습니다. 산속 깊숙이 숨어 있는 준경묘 자리가 바람도 쉬었다 갈 것 같습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
모든 친구분들이 다 꽃자 돌림이신 님.....바람이 쉬다가 제가 가니까 떠나는지 세차게 불더군요
청한님의 글을 오랫만에 대하니 반갑기 그지 없네요. 준경묘를 못 가봤기에 더욱 반가웠어요 ^^*
늘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활기찬 삶 많이 나눠주세요
준경묘를 다녀오셨군요. 금강송 숲길은 아주 아주 느리게 걸어보고 싶더라구요. 이 겨울 차거운 바람속을 거닐면 더 산뜻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