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천진암
 
 
 
카페 게시글
나도 사진 작가 스크랩 제주 올레 3코스 하나
하늘바다 추천 0 조회 89 10.10.19 21:41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제주 올레 3코스 (하나)

 

코스 경로(총 22Km, 6~7시간)


온평 포구 → 온평도댓불(옛날등대) → 중산간올레 → 난산리 → 통오름(9km) → 독자봉 → 삼달리 → 김영갑갤러리(14km) → 신풍리 → 신풍,신천 바다목장올레(17km) → 신천리 마을올레 → 하천리 배고픈다리(20km) → 표선1,2백사장 → 당케포구(22km)

 

 

장장 14킬로미터에 걸친 중산간 길의 고즈넉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
오래된 제주 돌담과 제주에 자생하는 수목이 울창하다.
나지막하지만 전망이 툭 트인 ‘통오름’과 ‘독자봉’ 또한 제주의 오름이 지닌 고유의 멋을 느끼게 해줄 것이고,
김영갑 갤러리를 들러보는 것도 좋다. 중산간 길을 지나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바다목장 길이 열린다.
푸른 바다와 푸른 초장이 함께 어우러지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당올레길이다.

 

 

 

 


2010년 9월 9일 오전 10시 40분

하늘이 뚱한 채 조금은 들뜬 내게 말을 건다.

조금씩 불만의 도를 더하며 빗방울을 떨어트린다.

 

 

바다마저 뚱한 하늘을 닮아 점점 거칠어진다.

우의를 입자니 아직은 아닌 듯하고

우산은 준비하지 못했으니 하늘과 바다의 불평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바닷가 작은 가게에서 22km, 오늘의 여정을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마실 물을 챙기고 신발끈을 동여 맨다.

자, 출발!

 

 

숭숭 구멍이 뚫린 현무암 담장은 숨을 쉰다.

살아있는 담은 지나는 사람을 위협하기 보다 담장 안의 사람들이 따뜻한 사람임을 알려준다.

사람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여유가 있다면 좋겠다.

너무 빡빡한, 틈이 없는 마음은 이웃을 있는 그대로 보기 보다는 자신의 자로 재려고만 한다.

 

파란 바탕에 하얀 레이스로 장식한 치마같은 지붕이 정겹다.

 

 

/

어! 이건 뭐야?

제주에는 벼가 없다고 했는데, 논이 없다고 했는데....

이런 중산간에 논이 있다니, 그것도 겸손을 터득한 고개 숙인 벼가 있다니!

 

 

물이 고여야 벼가 자랄 수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도 있지만...

제주의 토양은 쑥쑥 하늘이 준 물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 보내기에 벼를 재배할 수 없다고 했지만

제주에는 극히 드물게 벼를 재배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오늘은 벼 잎사귀마저 물을 머금었다.

 

 

1.4km 왔고 20.6km를 더 걸어야 한다는 친절한 알림이

본격적으로 중산간으로 접어든다.

 

사람의 길에는 선이 없다.

자동차 길에는 선이 있다.

사람의 길에는 정이 있다.

자동차 길에는 법이 있다.

 

 

비를 피해 저 나무 아래로 가기 위해

돌하루방은 얼마나 비오듯 땀을 흘리며 고생을 했을까?

"두고 보라지!" 시큰둥 돌하루방 한마디 말을 흘린다.

 

 

 돌하루방의 시큰둥한 표현대로 비가 굵기를 더하고 간격을 좁힌다.

어정쩡한 모습대신 우의를 펼쳐 입는다.

우의 속으로 불편하지만 내 여정의 가장 가까운 동료 카메라를 꼭꼭 감싸안는다.

 

촉촉히 젖어든다.

무엇이 그리웠을까?

 

 

 

 제주의 귤,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겨울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제주를 다녀오신 뒤 나누어주신 귤

처음으로 먹었던 그 귤의 색깔은 요즘처럼 샛노란 귤은 아니었다.

푸른 기운을 더 많이 지니고 있었다.

저 귤의 속살은 어느 만큼 익어가고 있을까?

누구의 기억 속에 어느 만큼 자리잡을까?

 

 

흔적!

기억 속에 남겨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난 카메라에 그 흔적을 담는다.

내 마음에는 좋은 인연들에 대한 기억들이 차곡차곡 더하여 가기를

그리하여 그들을 위한 내 기도가 더 풍요로워지기를 희망한다.

 

 

비는 수그러들 기세가 전혀 없다.

오히려 더 매몰차게 발길을 힘겹게 한다.

제주의 비가 본 때를 제대로 보여준다.

통오름을 오르는 길, 그 길을 따라 비가 쏟아져 내려온다.

통오름을 오르면 주변의 경관을 보듬어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한 것 같은데...

 

 

그리 높지 않은 통오름에 올랐다.

저기 저 흔적이 내가 지나온 동네인가?

내 삶의 모난 흔적들도 하느님 은총의 비를 맞고 있으리라

그러기에 오늘의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통오름을 내려와 만난 도로는 비에 흠뻑 젖어 있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물보라를 일으킨다.

맨땅에 헤딩했다고 하며 배경 없음에 대해 한탄을 하는데

오늘의 비는 먼저 하늘을 떠나온 친구 덕에 아픔 없이 세상을 만난다.

 

 

 보세요. 비가 얼마나 시원하고 멋있게 내리는지를!

사실 하늘이 비를 엄청 퍼부을 때 저는 첫눈을 만난 강아지처럼 좋아합니다.

바짓가랑이 올리고 마당 한가운데로 가서 우산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즐깁니다.

거기다 우루룽쾅쾅 소리가 더해지면 처마밑에서 벽을 기대고 서서 하얀 담배 연기를 하늘로 보내며 넋을 놓고 한참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합니다.

참 재미 있습니다. 참 시원합니다.

한 번 해 보세요.

 

 

 독자봉, 독자봉 주변 마을에는 독자들이 많이 있다는군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쉬지 못했어요.

출출해진 배도 채울 겸 쉴 곳을 찾았는데

열심히 찾았는데 없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어디냐구요?

찾다가 찾다가 쉴 곳을 찾지 못해 찾아든 올레 화장실

독자봉 입구에 있는 화장실 안입니다.

뭐하냐구요?

그럭저럭 쉴 수도 있고 배울 채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찾아 들었지요.

제 비옷 색깔 마음에 드십니까?

혼자 잘 놀고 있지요!

 

 

고맙다. 화장실아! 네 덕에 잘 놀고 잘 먹고 잘 쉬었다.

비가 조금 멎은 것 같은데 이제 화장실 냄새도 코 속으로 들어오고 하니

이제 길을 떠나자!

 

 

 화살표가 비에 잠겼네요.

화살표도 물속에서 좀 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흐르는 물에 시원하게 몸도 씻구요.

 

 

독자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맑은 날이라면 성산 일출봉도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잦아드는 비와 먹구름 사이로 풍력 발전기가 거대한 몸짓으로 수고했다고 손을 흔들어줍니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신기한 방향 알림이...ㅋㅋㅋ

내 눈에는 보이는데 여러분들은 보이세요?

화살표가 보인다면 여러분들도 착한 사람입니다.

 

 

먹구름 가득한 날 바라보는 원경 또한 아름답지요!

찰리 채플린이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생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고통이지만

인생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면 아름답다."

 

지금 아프세요?

그럼 너무 가까이에서 그 상처만을 바라보지 마시고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넓게 바라보세요

 

 

 

 독자봉에서 제 앞을 먼저 지나갔습니다.

저기 저 멀리 앞서가는 아버지와 아들

바로 앞에서 시원하게 걸어가는 우산든 아가씨

한동안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리바꿈을 했습니다.

 

자리바꿈을 많이 할 수록 서로 인사도 더 많이 합니다.

무조건 남들보다 빨라야 하는 인생은 외롭습니다.

 

 

 

 이번에도 기특한 제 발을 소개합니다.

이미 신발 속까지 양말까지 흠뻑 젖었습니다.

발은 퉁퉁 물에 불어 있겠지요.

두어 시간 무지무지 내린 비는 길 모퉁이 마다 물에 빠지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길들을 많이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요.

 

중간 중간 이제는 더 없겠지 하고서는

양말을 짜고 신발 속 물을 부어내었지만 소용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길은 참 예쁩니다.

방금 깊은 산속 폭포 곁에서 목욕을 하고 나온 선녀처럼...

나무꾼이고 싶어라!!!!! 

 

 

3코스 출발점에서 14km, 전체의 반을 조금 더 지난 곳에

제주를 사랑한 사진작가 김영갑 갤러리가 있습니다.

햇살이 나오기 시작해서 갤러리 한 켠에서

우의, 양말, 신발, 카메라와 렌즈, 배낭을 쫙 펼치고 말리기 작업을 했습니다.

물 한 모금에 김밥 한 입 그렇게 김밥 두 줄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제주 올레 3코스 하나를 마무리 합니다.

둘에는 하늘바다구름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길에서 아름다움이 무었인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개봉박두, 커밍 쑨!

 

 

 

 

 

 
다음검색
댓글
  • 10.10.20 00:19

    첫댓글 화장실 거울 안의 거울, 그 거울 안의 거울... ^^ 신부님 덕분에 가만 앉아서 올레 훤하게 다 꿰뚫습니다. ㅎ

  • 10.10.20 05:01

    너무 멋진 모습들에 감탄사 연발입니다. ^^ 그런데 어느덧 저 사진들이 이젠 추워 보이네요. 계절이 벌써....

  • 10.10.20 07:52

    오늘 우리 동네 모처럼 비다운 비가 내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신부님 사진 속에도 빗길이 보이니..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와 사진이 기가막히게 조화를 이룹니다.. 계속 감탄하고 있답니다.. 정말 제가 사진 속에 있는 느낌이에요.. 감사합니다. 신부님....^^

  • 10.10.20 11:37

    물기 촉촉한 사진과 묵상말씀이 너무 좋네요. 신부님 다음편도 완전 기대되요~♥

  • 10.10.20 16:47

    고맙읍니다. 이래 앉아서 구경을 잘 하고 있읍니다. 언제고 한 번, 걸어야 하겠지만.....

  • 10.10.21 00:31

    감사합니다.

  • 10.10.21 10:16

    맞아요. 신부님 혼자서 잘 노십니다. ㅎㅎㅎㅎ...저도 올레 2길(?)을 가다가 김영갑갤러리에 들린 것 같은데.......근데 신부님 올레길 올려주실 때마다 웃고 울고 합니다. 웃는 것은 이해되는데 눈물은 왜 날까요?

  • 10.10.22 00:47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잖아요...ㅎㅎ 아름다움 때문이겠지요...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 때문에....^^

  • 10.10.30 00:27

    ㅎㅎㅎ 신부님!~커밍쑨!~~ㅎㅎ 김영갑갤러리 저 창문, 생각납니다.ㅎㅎ 신부님 글에 감동하며 3코스 다 걸었습니다. 신부님 우의 예뻐요~ㅎㅎ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