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부상당한 사슴(The Wounded Deer, 1946) - "이보다 더 슬픈 자화상이 있을까?"
비두리 ・ 2024. 12. 16. 17:29
프리다 칼로(Frida Kahlo), The Wounded Deer(부상당한 사슴), 개인 소장
- 화가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 제목 : 부상당한 사슴(The Wounded Deer) (스페인어로는 'El venado herido'(엘베나도 헤리도)
- 제작연도 : 1946년
- 유형 : 유화
- 기법 : 섬유판에 유채(Oil painting on masonite)
- 크기 : 22.4x 30 cm (가로, 세로)
- 소장처 : 개인 소장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부상당한 사슴(The Wounded Deer, 1946) 작품 설명 및 해석
프리다 칼로의 생애
자화상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자아를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모델을 구하기 힘들어 자신을 드러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렘브란트처럼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을 것입니다. 물론, 반 고흐의 자화상에는 단지 모델 반 고흐가 아닌 한 예술가의 초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화가들은 자신을 모델로 한 자화상을 자주 그렸는데요. 이 중에 멕시코의 국민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슬픔을 드러내고 치유한 화가입니다. 프리다 칼로가 남긴 143점의 회화 작품 중에 30%에 달하는 55점이 자화상이라고 하니, 자화상을 참 많이 그렸습니다.
먼저, 프리다 칼로의 생애부터 알아볼까요?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에서 헝가리계 독일인인 아버지(기예르모 칼로)와 멕시코계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사진사였던 기예르모 칼로가 딸에게 지어준 '프리다'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평화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름과는 다르게 프리다 칼로의 삶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는데요. 뜻대로 되지 않는 운명이란 게 참 기구한 것 같습니다. 1913년 프리다 칼로는 6세 때에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불구가 되는 장애를 입습니다. 이 때문에 칼로는 내성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1921년이 되자 그녀는 예비 의학도로 국립예비학교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더 큰 불행이 닥쳐옵니다. 1925년 당시 18살이었던 칼로는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부딪히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척추와 오른쪽 다리, 자궁을 크게 다치게 됩니다. 그로 인해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단 한번의 큰 수술이라도 보통의 사람들에겐 큰 시련일텐데, 30여 차례나 되는 수술이라니 칼로가 받았을 고통이 가히 상상되지 않습니다. 쉽사리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프리다 칼로는 의사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위기 뒤에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할까요? 칼로는 병원에서 자화상을 그리며 그림의 세계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멕시코 문화운동의 주역이자 자신보다 무려 21세 연상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둘은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디에고 리베라의 잦은 외도로 인해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이른바 바람을 흔히 피웠던 건데요. 이 중에는 심지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도 있었다고 하니, 디에고 리베라가 벌인 외도의 심각성과 더불어 프리다 칼로가 받았을 정신적인 고통이 매우 컸을 겁니다.
"일생 동안 나는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이다.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Yo sufrí dos accidentes graves en mi vida, uno en el que un autobús me tumbó al suelo. El otro accidente es Diego;. Diego fue el peor..)
- 프리다 칼로
훗날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18살의 교통사고보다도, 디에고 리베라만의 만남이 더 끔찍했다고 술회하는데요. 결국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1939년 이혼에 합의합니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와 완전히 결별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를 끔찍이 사랑했으니까요. 결국 이듬해인 1940년 8월에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다시 재결합하게 됩니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성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디에고 리베라와 다시 결혼에 합의한 것인데요. 다시 시작된 결혼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시 외도를 하는 디에고 리베라였습니다. 그러한 리베라를 보면서, 프리다 칼로는 여전히 상처 입고 아파합니다.
'부상당한 사슴' 작품 세부 설명
그후 몇년이 지나고, 1946년 프리다 칼로는 뉴욕에서 척추 수술을 받게 됩니다. 프리다 칼로는 이 수술을 통해 극심한 허리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수술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 후에 프리다 칼로는 '부상당한 사슴'이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멕시코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우울증을 동시에 겪은 자신의 모습을 사슴에 빗대어 그린 것인데요. 수술 실패로 인한 신체적인 고통을 표현한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자신을 돌보고 사랑을 해주어야 하는 디에고 리베라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던 프리다 칼로였기 때문에 어쩌면 육체적인 고통만큼 혹은 그보다 더 내면의 고통이 컸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를 사랑했지만 자신 이외에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것에서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먼저, 그림 왼편을 먼저 볼까요? 수사슴의 뿔을 달고 있는 프리다 칼로는 총 9발의 화살을 맞고, 피 흘리고 있는데요. '9'이라는 숫자는 칼로 자신 뒤로 기둥만 나오는 9그루의 나무와 동일합니다. 그녀는 아즈텍 달력에서는 9일째에 태어났습니다. 이는 9개의 단계로 이루어진 지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번엔 그림 오른편과 중앙을 볼까요? 그림 오른편에는 나무들 가운데 유일하게 기둥이 잘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요. 나뭇가지는 모두 부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중앙 하단에서는 이 부러진 가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무덤 위에 부러진 나뭇가지를 놓는 것은 멕시코 전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통해 프리다 칼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고통받는 자신의 담담히 받아드린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칼로는 자신의 몸을 동물인 사슴으로 표현했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멕시코 사상과 전통의 영향에 받았다는 칼로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을 사슴으로 그려내서 오른발은 사슴으로 표현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슴으로 분한 프리다 칼로의 앞발이 땅에서 위로 들어올려져 있는데요. 이는 교통사고로 인한 오른발 장애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슴으로 표현한 오른발을 통해, 자신의 오른발 장애가 치유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희망이 담겨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프리다 칼로는 오른발 무릎까지 잘라내는 수술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는 그림 상단 가운데의 배경을 볼까요? 바다 또는 호수 같은 공간이 뒤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늘에서는 번개가 치고, 먹구름을 드리워서 어둡기만 합니다. 죽은 나무와 부러진 나뭇가지 그리고 절망적인 배경을 통해 희망이 없는 외부적인 상황을 나타낸다고 할까요?
그림의 왼편 하단에는 프리다 칼로의 서명과 제작연도인 46과 더불어 '카르마(CARMA)'라는 단어를 적어놓았는데요. 산스크리트어인 '카르마'는 흔히 '운명'이라는 단어로 이해됩니다. 카르마의 사전적인 의미는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입니다. 학자마다 칼로가 적어놓은 카르마를 보고 다양한 해석을 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의미로 보이나요?
부분적인 요소를 봤으니, 이제 전체적으로 그림을 다시 살펴보도록 할게요. 사슴이 된 작가는 9발의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듯한 나무들과 앞에는 부러진 나뭇가지가 놓여 있습니다. 하늘엔 먹구름이 드리우고, 번개가 치고 있습니다. 주변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절망만이 가득합니다. 헌데 칼로의 얼굴을 보면, 그리 큰 고통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와는 상반되는 다른 작품 하나를 보도록 하죠. 제게는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라오콘 작품이 연상되었는데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트로이 전쟁 때 맹세를 어긴 라오콘을 벌하기 위해 보낸 큰 바다뱀으로 인해 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라오콘의 표정에서는 큰 고통이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너무나 생생해서 보는 이마저도 고통에 감화하게 만드는 데요.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리다 칼로의 표정은 의연하기만 합니다. 왜일까요?
이는 프리다 칼로의 '부상당한 사슴' 작품이 화살을 맞고 순교한 성 세바스티아누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기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위 작품은 1525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시대의 화가인 소모마(Il Sodoma, 1477~1549)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와 성인들이 함께한 성모 마리아나'(Hl. Sebastian und Madonna mit Heiligen)입니다.
목과 다리에 화살을 맞은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을 구원해주는 천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화살은 목을 관통했기에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목숨이 위태위태 합니다. 그럼에도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죽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그린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표정을 절망이 아닌 의연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현실을 맞서는 모습으로 그려낸 것은 아닐까요?
그림에 대해 세부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 더 곁들여봅니다. 프리다는 교통사고 당시 자궁(또는 모궁)을 크게 다쳤고, 이로 인해 3번의 유산을 하기도 했는데요.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프리다 칼로는 대신에 많은 반려동물을 키웠고, 이를 대리 자녀로 삼았다고 합니다.('더 위쳐' 시리즈의 강력한 마법사이자 여자 주인공인 '예니퍼' 또한 마법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생식기를 희생하는데요. 이 설정은 프리다 칼로에게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양한 반려동물 가운데 사슴은 프리다 칼로가 가장 좋아하는 반려동물이라고 하네요. 이 초상화를 그릴 당시에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반려 사슴인 '그라니조'(Granizo)를 모델로 사용했습니다. 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사슴 품종 같습니다.
칼로 자신이 그라니조를 아낀게 반영되었던지 '부상당한 사슴' 작품의 부제로는 '작은 사슴'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1946년 5월 3일, 프리다 칼로는 이 그림을 친구 리나(Lina)와 아르카디 보이틀러(Arcady Boitler)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프리다는 이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당신에게 내 초상화를 남기면,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서 떨어져 있는 낮과 밤을 나와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I leave you my portrait so that you will have my presence all the days and nights that I am away from you.)
- 프리다 칼로
어느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개인 소장인 작품이기에, '부상당한 사슴' 원화는 보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이미지 유통이 가능한 시대에서는 얼마든지 온라인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지요.
프리다 칼로가 겪었을 고통은 머리로는 이해되도, 사실 마음으로는 온전히 와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상당한 사슴' 작품을 보자마자, 마치 물밀듯이 그 고통이 느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지난 2020년 3월 17일에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이별(Separation, 1896)을 소개하면서, 여성 화가가 그린 사랑의 슬픔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고 썼는데요. 프리다 칼로의 '부상당한 사슴'이 바로 여성 화가가 그린 사랑의 슬픔이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이 그림을 처음 마주한 것은 몇해 전인데요. 글을 쓸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작품 감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이 작품이 떠올랐는데요. 그래서 이번엔 무위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감정과 마음이 드나요?
사랑이나 이별의 고통 또는 다른 일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면, 자신의 고통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을 들여보는 게 어떨까요.? 단지, 어떤 연민의 감정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같이 공유하는 있는 인간애를 통해 우리의 고통을 치유해보는 계기가 될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비두리의 '사진가가 반한 회화'에서 프리다 칼로의 작품 한 점만으로는 끝내기 아쉬워서, 곧 이어 프리다 칼로의 다른 자화상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2024.12.16 비두리
[출처]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부상당한 사슴(The Wounded Deer, 1946) - "이보다 더 슬픈 자화상이 있을까?"|작성자 비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