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산골 농부의 풍경이 있는 시 ●지은이_기복진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4. 5. 22
●전체페이지_144쪽 ●ISBN 979-11-91914-58-0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5,000원
느티나무처럼 고향을 지키는 산골 농부의 시편
기복진 시인의 첫 시집 『산골 농부의 풍경이 있는 시』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삶의 터전인 곡성의 산천과 마을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산골 농부로 사는 시인의 시와 직접 찍은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그것은 고향을 지키며 농사짓고 사는 강인한 생명력과 진실한 삶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독자들에게 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자—알, 살았지
극심한 기온 차가 만든
안개는 날마다 용오름이었어
바람통에 살았지만 결코
휘어지진 않았지
비록 바람에 밀려
잎들 모두 잃었어도
이젠 바람에 걸리지 않아
자유를 안 거야
비로소 나는 사랑을 얻었지
내게 다가온 그대를
품을 수 있는 사랑을
내게 둥지 트는 그대를
차—암, 잘 살았어
―「반송마을 느티나무 고백」 전문
마을의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 지킴이’ 역할을 한다. 이 나무는 속이 잘 썩는 나무다. 어느 정도 온전함을 남기고 마침내 속이 텅 비어 버리지만 육중한 무게를 견뎌낸다. 이 마을 속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나무에게 시인은 위로를 보낸다. “바람통에 살았지만 결코/휘어지진 않았”다며 “차—암 잘 살았어”라고 다독여준다. 시인은 산골 마을에서 시를 쓰고 세월을 읽었다.
돌을 보면 쌓고 싶다
큰 돌 작은 돌
잘생긴 돌 못생긴 돌
가릴 것 없이 한 데
어울리게 쌓고 싶다
돌만 보면 쌓고 싶다
지구를 떠받칠 대들보처럼
튼튼하게 큰 돌 놓고
외줄 타는 광대의 발놀림처럼
절묘하게 하늘 가는 징검다리 놓고 싶다
돌을 보면
탑이라도 쌓고 싶다
패잔병처럼 널브러진 돌들
하나씩 하나씩
여기저기 끼워 맞춰
잊혀지지 않게 쌓고 싶다
―「돌을 보면 쌓고 싶다」 전문
섬진강 상류인 보성강에 나가 “패잔병처럼 널브러진 돌들”을 모아 시인은 시인의 꿈이라는 돌탑을 세웠다. 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듯이 창작의 고통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렸을 것이다. 시와 사진을 잘 갈무리하며 사는 일 또한 “하나씩”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각자도생 승자독식의 삭막한 시절에 “때로 고라니가 놀다 가”는 “풀밭이 되고 싶“(「여름풀」)다고 한다.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을 이어 가는 기복진 시인의 산골 마을에는 시가 “징검다리”가 되어 독자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잊혀지지 않”는 시로 남고 싶어하는 산골 농부의 밭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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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차례―
제1부 생의 사중주(四重奏)
혼자만의 밤길·11
곶감·12
대빗자루·14
엄마 아부지를 불러봅니다·16
눈물 흘리는 법·18
반월도(半月刀)·20
화장(火葬)·22
고상함은 그냥 오지 않는다·24
비로소 보이는 것·26
생의 사중주(四重奏)·28
달빛 바다·30
서산이 붉어질 때쯤·32
그리움도 익으면·33
돌 하나·34
꼬부랑 할매·35
다슬기 잡기·36
우물 터·38
제2부 압록에 와 보라
고목(古木)의 몸부림·43
1월의 개나리꽃·44
압록에 와 보라·46
비상(飛上)·48
등대·50
가장굴·52
꽃 진 뒤·53
가시 없는 자 누구랴·54
달님이시여·56
반송마을 느티나무 고백·58
지리산 거북이·60
천장(天葬)·62
이끼 꽃·64
친구여 부디·66
봉정저수지에서·68
꽃이라고 다 꽃이랴·70
한 번은 꼭 겨울이 온다 해도·72
제3부 보성강 돌탑
이방인(異邦人)·75
촛불·76
빈 의자·78
매실을 사랑한 매화의 고백·80
홍시·81
눈물 주먹·82
여름풀·84
보성강 돌탑·86
폭설의 시간·88
독섬·90
7시 49분·92
히어리꽃·94
배롱꽃 피는 길·95
쉼·96
돌을 보면 쌓고 싶다·98
억새 춤·100
제4부 곁
단풍잎 하나·103
까치밥·104
낙엽끼리·106
강아지풀·107
기어이 사라지고·108
봄눈 사라지듯·109
반송마을·110
어쩌다 죽었다냐·112
곁·114
오백 원어치 안부·116
청미래덩굴·118
그렇고 그런 사이·119
너른 들판 꽃 한 송이·120
시집·121
피(藣)의 기도·122
우체통·124
봉황섬터에서·126
무심한 밤·128
시시포스도 아닌데·130
해설│이기철·133
시인의 말·142
■ 시집 속의 시 한 편
탁자로 쓸 나무 전선 바퀴
마당에 놓았더니
햇살과 바람과 비가 거기서 놀았지요
마당 탁자의 틈새 골짝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던 해바라기 씨앗 몇 개
햇살이 웃어주고
빗방울이 울어주고
바람이 위로해 주고
하늘이 안아주어
풀 죽던 씨앗 봄을 얻듯 싹 틔웠지요
비록 한 생애
혹 꽃을 피우지 못한다 하여도
또는 열매 맺지 못한다 하여도
그대, 이미 이룬 생(生)
그대는 생의 사중주(四重奏)
오늘도 나는 그대에게 갑니다
―「생의 사중주(四重奏)」 전문
■ 시인의 말
시가 내게로 왔다는 고백은 파블로 네루다 시인만의 고백은 아닌가 봅니다. 산골에서 살아가는 제게도 시가 왔으니까요.
도시에서의 삶이 지쳐갈 무렵, 고향이자 산골마을로 들어온 지 십이 년이 지났습니다. 농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언제나 농사는 어렵기만 했습니다. 답답할 때면 산골의 풍경을 보았고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제 일상을 쓰듯 카카오스토리에 단상을 남겼습니다. 제가 본 풍경들과 함께.
귀농이라는 거창한 말 뒤에 생활고라는 현실이 있었기에 농사일 외에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여름철이면 물놀이안전관리요원, 봄철이면 산불감시원 등을 했습니다. 덕분에 제 고향의 산하를 참 많이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때때로 제겐 위로가 되었으며 시가 되어 제 가슴을 적셨습니다.
그렇게 끄적였던 글들을 보고서 많은 분들께서 제게 덕담을 주셨습니다. 시인이시냐고 묻기도 했고 시집 언제 내냐고도 하셨습니다. 제게는 당치도 않는 덕담이지만 이번에 감히 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산골에서 살고 있는 농부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산과 강을 보고 꽃을 사진에 담고 달과 별을 노래할 것입니다. 이 시집은 여러분들의 덕분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째 같이 하고 있는 독서모임인 ‘책바구니’ 회원들의 무한 다그침의 힘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는 울산에 계시는 이기철 시인님의 격려가 아주 컸습니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는 이원규 시인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산골에서 사느라 마음고생 많았던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4년 5월 산골마을 골짝에서
산골 농부 기복진
■ 표4(약평)
시적 인간이 곧 생태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기복진 시인. 그는 400년 느티나무처럼 고향을 지키는 막내아들이자 전남 곡성의 산골 농부다. 동네 경운기만 보아도 ‘엄마 아부지 생각’에 목이 멘다. 갈수록 “비가 와도 채워지지 않는 우물” 같은 마을, 그래도 “나를 닮은 꾸지뽕밭”이 있고, “차—암, 잘 살았어” 고백하는 반송마을 느티나무 신목이 있으니, 섬진강 상류인 보성강에 나가 ‘패잔병처럼 널브러진 돌들’을 모아 꿈의 돌탑을 세운다. 귀신을 쫓아낸다는 엄나무 가시를 보며 “가시 돋친 그대,/개선장군처럼 당당하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추수가 어디 농사뿐이랴. 시와 사진을 잘 갈무리하며 사는 일 또한 날마다 풍년일 것이다. 각자도생 승자독식의 삭막한 시절에 ‘때로 고라니가 놀다 가는 풀밭’이 되고픈 시인이라니!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을 이어 가는 기복진 시인에게 응원의 갈채를 보낸다._이원규(시인)
기복진 시인의 시는 비 온 다음 날 새벽 밭을 닮았다. 깨끗하게 젖은 몸과 맘으로 지난날을 되짚는다. 차오른 눈물로 쌓은 탑이기에 미풍에도 흔들리지만, 매일 그 앞에서 기도하듯 쓴 시 덕분에 무너진 적은 없다. 또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곡성의 산천과 마을로부터 자란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 사귄 생명들이 자연스럽게 시 속으로 거처를 옮긴다. 새와 나무와 강과 산과 농작물들이 더 높고 더 넓고 더 깊게 시인의 꿈을 감싼다. 작지만 풍성한 수확을 이루는 호미 같은 시집이다.
_김탁환(소설가)
■ 기복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2023년 『순천문단』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현재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