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 운전석은 좀 더 간결하고 차분하다.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실내 디자인의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한 느낌이다. 화려하지 않고 진지한 스포츠카 느낌이다. 하지만 아우디보다 더 많이 사용된 하이글로시 블랙, 비스듬히 누운 센터페시아 하단의 공조 제어 디스플레이의 햇빛 반사가 거슬린다. 그리고 송풍구 방향을 터치스크린으로 조절하는 방식은 제발 포기하길 바란다.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짱짱하다. 운전석 도어의 닫히는 소리, 손에 잡히는 스티어링 휠 감촉, 그리고 돌리는 무게감까지 훨씬 묵직하고 단단하게 느껴진다. 감각적으로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는 이름과 달리 더 스포티하다. 게다가 퀼팅이 없고 스포티하게 생긴 시트 역시 단단하다. 역시 스포츠카의 감촉과 정공법이다.
나윤석
실내와 주요 기능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포르쉐 엠블럼에 걸맞은 고성능과 압도적 밸런스에 공간까지 욕심낸 버전이다. 20년 전 포르쉐가 두 눈 질끈 감고 SUV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전기차 크로스오버의 등장은 어려웠을 것이다.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의 실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공간이다. 2열 공간은 이 차가 포르쉐 전기차임을 잊게 한다. 대시보드와 1열 구성은 타이칸과 다를 바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버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을 갖춰 풍요롭고 근사한 음향을 들려준다.
아우디 RS e-트론 GT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좋은 사운드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시트는 올리브잎으로 무두질해 가공 과정의 환경 저해 요인을 줄이고 더욱 부드러운 촉감을 지닌 OLEA 가죽으로 감쌌다. 1열 센터페시아 아래에는 여분의 수납공간이 있다. 1열 시트는 스포츠 버킷 형태로 운전석과 조수석 모두 3명까지 시트 포지션을 저장할 수 있다.
운전석의 디지털 클러스터와 센터페시아의 대형 모니터, 그리고 그 아래 센터터널로 이어지는 모니터 등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의 실내는 그야말로 디스플레이 천국이다. 미래지향적 분위기 연출에는 그만이지만 모든 기능, 심지어 꼭 그러지 않아도 될 기능 제어까지 모두 디스플레이 안에 심다 보니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포르쉐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
2열 공간은 훌륭하다. 머리 공간과 무릎 공간은 넉넉한데, 1열 시트 아래로 발을 집어넣을 수 없는 게 다소 아쉽다. 2열에서도 공조장치를 모두 조작할 수 있다. 투리스모라는 명칭에 걸맞은 최대 1212ℓ의 트렁크 용량에서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하는 포르쉐의 욕심을 읽을 수 있다.
아우디 RS e-트론 GT의 이름 안에는 아우디가 가장 공들이는 요소가 잔뜩 들어 있다. e-트론이라는 전기차 명칭이 그렇고, GT라는 성격이 그러하며, 그 앞에 붙인 RS의 뉘앙스가 또 그렇다. 이들을 조합하면 이 차의 성격이 어떨지, 이 차의 지향점이 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우디 RS e-트론 GT
RS e-트론 GT의 인테리어에는 미래 분위기와 아우디 감각이 적절히 스며들어 있다. 1열을 지배하는 요소는 역시 대형 디스플레이지만, 타이칸처럼 ‘디스플레이 대향연’까지는 아니다. 공조장치와 주행모드 선택, 열선 및 통풍시트 제어 등 사용 빈도가 높은 기능은 모두 물리 버튼으로 빼놓아 운전자가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그 버튼 주변을 온통 감싸고 있는 블랙 하이글로스 소재는 마이너스다. 과도한 유광 표면은 고급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스쳤다 하면 묻어나는 지문과 내려앉는 먼지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도어트림을 둘러싼 스웨이드 느낌의 소재나 대시보드의 탄소섬유 타입 마감재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포르쉐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
RS e-트론 GT의 사운드 시스템은 아우디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뱅앤올룹슨 제품. 특히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음향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빨간색 스티칭과 RS 로고로 장식한 스포츠 버킷 시트는 강렬하다. 등받이와 쿠션 부분에 현란한 박음질 솜씨로 장식을 넣었는데, 그 덕분인지 시트의 쿠션감은 경쟁자보다 앞선다.
처음 앉았을 때 그만큼 편하다는 얘기다. 빨간색 안전벨트 스트립도 ‘이 시장에서 어떤 시각효과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는 아우디의 인테리어 감각을 보여준다. 쭉 빠진 쿠페 타입 루프라인을 감안하면 2열 시트 공간은 괜찮은 수준이다. 배터리로 인해 2열 탑승자의 발 공간을 손해 본 건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와 같고, 2열을 위한 공조 등 세세한 제어 기능은 경쟁자보다 조금 떨어진다.
고급스러운 연출에 대한 아우디의 경험과 감각, 미래를 향해 성큼 내딛는 포르쉐의 자신감이 각각의 실내에서 빛을 발한다. 퍼포먼스를 선호하는 운전자에게는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 동승자와 함께 다양한 주행 경험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RS e-트론 GT의 실내가 조금 더 편할 듯하다. 물론, 그 차이는 지극히 작다.
김우성
최종 결론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고 전기차 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지금. 예전부터 차 좋아하던 마니아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제아무리 잘 만들고 빠른 전기차여도 달리는 전자제품이 내연기관차의 감성과 자극, 흥분을 주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다가올 미래와 전기차를 두고 더 이상 낙담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오늘 만난 두 모델을 보면 고성능 전기차가 만들 유쾌하고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전기차의 태생적 한계인 육중한 무게와 1회 충전 주행거리 등 당면한 해결 과제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둘은 이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풀고 각자 추구하는 콘셉트와 방향성을 전기차로 어떻게 보여주고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두 모델은고급 전기차의 현재와 미래를 훌륭하게 대변했다.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완성도와 상품성을 기본에 두고 각자의 색을 명확히 보여준다.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뒷공간 실용성을 강조한 모델 답게 편안하고 안락하다. 물론 든든하고 단단하고 묵직한 스포츠카 질감 안에서 그렇다.
주행 모드에 따라 전투력을 급상승하며 지극히 포르쉐다운 스포츠카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RS e-트론 GT는 고성능 GT 성격이 짙다. 우월한 출력 성능 안에서 우아하고 묵직하고 든든하게 달리는 GT 감각을 강조했다. 굳이 둘의 차이를 정의한다면 스포티함과 편안함. 하지만 이 차이는 종이 한 장처럼 미미하다. 최종 선택은 각자의 취향과 성향에 달렸을 뿐, 무엇이든 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