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낚다 외 1편
이병연
낚싯대 하나 들고
제주 바다를 여러 날 거닐었다
수시로 입질이 왔다
질펀히 내려앉은 바위
이름 없이 산 것들 줄지어 낚는다
널뛰는 파도를 품었다 놓느라 울퉁불퉁한데
움푹 팬 가슴엔
햇살과 바람과 눈물이 머물러 있다
허공에 힘껏 줄을 던져
깎아지른 절벽을 낚는다
정을 쪼듯 내리치는 물살에 새겨진 문신
상처가 깊을수록
지느러미의 골이 빛난다
덜컥 입질이 왔다 이번엔 정말 크고 센 놈이다
머리를 하늘로 치켜올리고 기둥처럼 떼로 서 있는 놈
하늘이 같이 끌려온다
낚싯대가 휘청인다
함께 쉽게 사는 법은 없어서
세로로 그어놓은 금이 햇살에 도드라진다
몸에 새겨진 저마다의 사연
바다에서 낚은 것을 바다로 돌려보내고
당신의 마음이 닿지 못하는 날
바위 낚시를 떠나야겠다
고산 가는 길
이병연
곧은 길 놓고
할머니 등처럼 굽은 길
느릿느릿 간다
구룡천 따라
빼곡히 박혀 있는 감나무 길
덧대고 기운 길 간다
휘어진 등으로 하루를 더듬으며
시래깃국으로 삭은 몸 달래던 할머니
주렁주렁 빠진 이 사이로 흘러나오던
얼룩진 이야기 싣고
아픔도 슬픔도 달착지근하여
가을 햇살 아래 누워 있는
고산 가는 길
한 구비 지나면
또 한 구비
멀리 불그스레 앉아 있는 산들
무심히 지나가고
오랜 얼굴 같은 잎들 단풍이 들어
삐걱대는 문에서도 단내가 나던
아득한 그 시절 꽁무니에 달고 간다
----박용숙 외, 애지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이병연 : 공주 출생, 공주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공주대 문학석사, 2016년 계간지 『시세계』로 등단, 제16회 한국창작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꽃이 보이는 날』, 『적막은 새로운 길을 낸다』, 『바위를 낚다』, 한국시인협회, 충남시인협회, 풀꽃시문학회, 애지문학회 회원 등,
이메일 yeon091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