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7 – 4. 8 인영갤러리 (T.02-722-8877, 인사동)
봄, 북한미술을 다시 봄
글 : 문웅(文熊, 인영아트센터, 예술학박사)
희망찬 봄에, 북한 미술을 다시 본다
오래전(1986년 경) K선생께서 ‘인사동에 후배가 하는 화랑이 있는데, 자네가 몇 점의 작품을 구입해 주면 좋겠다’ 하셔서 찾아갔다. 많은 작품 중에 그 분이 권해주는 작품들 중에 유달리 내게 끌리는 작품이 있었는데, 고암 이응노 선생 작품이었다. 작품이 너무 좋아서 3점을 흥정 하던 중에 그 분이 ‘지금은 비밀이다시피 거래해야 돼. 정부에서 규제 대상의 작가라서 소장하고 있는 사람까지 사상을 의심받 게 되니까…….’
나는 좌우사상과는 전혀 상관없이 미술품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사람이기에 소장하고 싶었는데, 잠시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결국 다른 작품 한 점만을 들고 씁쓸한 마음으로 나와 버렸다. 그 후 늘 그 작품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이 남아 있었는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월북한 작가들을 포함해서 모두 해금(解禁)되었다 하여 반가웠다. 그 뒤로 고암 작품을 연속 5~6점을 내 손에 넣을 때는 그 때의 가격보다 몇 배의 작품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이제 그 분들의 작품을 눈이 시리도록 함께 보고 싶다. 지금 우리는 분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분단은 국토와 민족의 분단일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분단이 더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이 분단은 영원한 분단일 수 없고, 언젠가는 하나로 융합되어야 할 분단이라고 믿는다. 특정 사상을 주입하듯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 향유하여야 할 소중한 작품들이다.
동시대를 호흡했던 작가들의 체취가 묻어나는 미술품들이 남과 북으로 나뉘었을 뿐 우리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겨온 작품들이다. 예를들면 1916년 동우 김관호가 그의 고향 근처 능라도의 대동강가에서 목욕하는 두 여인을 그린 <해질녘(夕暮)>이라는 작품이, 문부성 미술전람회 특선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지만, 정작 우리나라 신문은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사진을 게재치 못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다른 도판으로 처리되어 버리는, 작가의 <누드>를 비롯하여, 1938년 오지호와 함께 <오지호 · 김주경 이인화집>이라는 최초의 원색 호화판 화집을 출간한 김주경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리쾌대, 정종여, 김만형, 리석호, 길진섭, 문학수, 최재덕, 김기만, 정창모, 정영만, 선우영, 변월룡, 림군홍 등의 100여 점의 작품을 엄선하여 선보이고자 한다. 특히 대동강변의 부벽루(浮碧樓)의 현판을 쓴 옥람 한일동의 현판을 탁본한 힘찬 서예작품도 볼만한 작품이다.
이런 고귀한 작품들을 색깔로, 이념 사상의 잣대로만 터부시 해오던 안타까운 시절이었다. 모름지기 미술은 문자와 기록으로는 담아 낼 수 없는 시각적 자료이기에, 지난 분단의 시대를 여실히 보여주고 싶다. 그동안 문화예술마저도 동토가 되고 사상의 편 가르기로 금기시 되어 왔지만, 통일의 융합을 위한 역사의 물줄기에 물꼬를 터주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봄, 북한미술을 다시 봄> 전시를 기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