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의 향기♣ No4067
12월9일[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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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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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youtu.be/5UmKHM9zKHw
[서울대교구 조승현 베드로(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보도주간)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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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우리 모두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가을, 청소년들 여름 신앙학교를 끝내고, 형제들과 섬으로 휴식 겸 친교를 위한 소풍을 갔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젊은 형제들은 멋진 풍광 속을 걸어 다니고 사진도 찍고, 뷰가 좋은 카페에 앉아 담소도 나누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희 영감팀은 오로지 눈만 뜨면 낚시를 갔습니다.
첫날 처음 보는 물고기가 몇 마리 잡혀서 신기했습니다. 비늘도 없는데다, 자태가 멋졌습니다. 온몸이 짙은 고동색에, 싸이즈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엄청 힘이 세더군요. 회를 떴는데, 살이 얼마나 찰지고 탄탄한지 다들 감탄을 했습니다.
형제들이 너무 맛있다 맛있다 하니 그 다음 날 또 그 자리를 갔습니다. 그 자리가 제대로 된 포인트였던지, 어제 잡힌 정체불명의 물고기들이 또 다시 몇 마리 잡혔습니다.
플라스틱 통에 바닷물을 담아 잡힌 고기들을 던져놓았는데,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그 고기들을 보고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 귀한 고기를 어떻게 잡았대요?”
알고 봤더니 제가 잡은 그 고기들은 횟감으로 가장 비싸다는 다금바리였습니다. 검색해 봤더니 kg당 30만 원이랍니다. 우럭은 kg당 3만 원인데, 열 배나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뒤로 즉시 고동색 물고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킬로당 30만 원이라는데 하는 생각에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 다루듯이 소중히 다루었습니다.
비싼 고기니만큼 제일 깨끗한 쿨러를 씻고 또 씻어 옮겨 담았습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얼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숙소로 가져와서 회를 뜨는데, 어제와는 달리 손실율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조심조심 회를 떴습니다. 먹을 때도 산삼 먹듯이 음미하면서 그렇게 회를 먹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횟감 중의 횟감으로 귀한 취급을 받는 다금바리를 제가 극진히 모셨습니다. 가지고 있던 고기 보관통 중에서 가장 깨끗한 통에 모셨습니다. 고기가 상하지 않도록 얼음도 담고 그야말로 지극정성을 다해 애지중지한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성모님을 원죄없이 잉태되신 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성모님은 다금바리와는 비교도 안 될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 만왕의 왕인 예수님을 열 달 동안 자신의 몸에 모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거처로 가장 깨끗하고 무죄하신 나자렛의 소녀 마리아의 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환영했습니다. 하느님의 거처가 된 자신의 몸을 매일 깨끗하게 청소하고 단 한점의 흠이나 티도 없이 유지했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노력입니다. 이번 성탄 아기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내면 안에, 영혼 안에 탄생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머무시기에 합당한 거처가 되도록,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우선 판공성사를 잘 봐야겠습니다. 내면을 잘 정리정돈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도 성모님처럼 아기 예수님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이번 성탄,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에게서 탄생하셨듯이 우리 각자 안에서도 탄생하시기 위해 우리 각자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성사를 통해 영혼을 말끔히 정화시키고, 매일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도 계속 정화시킨다면,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거룩하고 흠 없는 지성소,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적당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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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wpNmcp5Dk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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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 없음: 사흘만 있으면 가죽옷이 준비될 것이란 믿음>
길가에 살면서 핫도그를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게에 라디오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눈도 좋지 않아 신문도 읽지 않았습니다. 다만 좋은 핫도그를 팔면 많은 사람이 사 먹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핫도그에 들어가는 고기와 빵도 남들보다 크게 했습니다. 고속도로변에 광고판도 세웠고 길가에 나와 “핫도그 사세요.”라고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집에 와서 아버지를 돕게 되었습니다. 경제를 공부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라디오 듣지 못하셨어요? 신문도 읽지 못하셨죠? 지금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유럽의 상황은 처참해요. 외국은 유럽보다 훨씬 나쁘고요.” 이 말에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우리 아들은 대학생이고 신문도 읽고 라디오도 들으니까 아는 게 많은 게 당연하지.’
그리고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고기도 줄이고 핫도그 크기도 줄였습니다. 더 이상 길가에 서서 핫도그를 팔지도 않았습니다. 아들의 말대로 장사가 점점 안되었습니다. 급기야 고속도로변의 간판도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 말이 옳았다.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게 분명하구나.”
사람은 왜 부정적으로 될까요? 긍정을 잃고 부정에 귀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없음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지 않았기에 죄에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죄가 빼앗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우리를 사랑하시니 모든 것을 해 주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기 위해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시고,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하며 정말로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듯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이것이 겸손일까요? 겸손의 탈을 쓴 교만입니다. 베드로의 이 부족한 면은 예수님께서 그의 발을 씻어주려 하실 때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발을 씻으려고 하시자, “주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믿지 못하는 게 죄입니다. 믿지 못하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고 능력자이심을 믿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이 듭니까? 바로 ‘긍정’입니다. 다시, 사랑하는 부모와 함께 있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성모님은 시골의 한 처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은총이 가득하신 분’은 온 세상에 성모님밖에 없으셨습니다. 천사가, “은총이 가득하신 분,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라고 인사하였습니다. 죄인에게는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그분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라고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하느님이 자신들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힘으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자기 능력을 믿게 됩니다. 이것이 원죄이고 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만은 자기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한 꽃집 할머니는 항상 행복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매일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맨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노부인도 그렇게 대답합니다. 비밀을 이렇게 말해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흘만이 부활했잖아요? 나도 ‘사흘만 있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해요. 정말 사흘만 지나면 다 좋아져요. 그래서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이분이라면 거의 원죄를 벗어났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전능하신 분이 당신과 함께 머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원죄에서 벗어난 이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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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 우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신비를 기념하며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축일은 하느님께서 구세사의 시작부터 구원의 계획 안에서 성모 마리아를 특별한 방식으로 선택하시고 준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성모님의 축일을 지내면서 23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제가 있던 본당은 서울 대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이었습니다. 23년 전 봄에 저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대림 특강을 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쭈어보는 거였고, 가능하시면 특강을 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여름이 지나도 추기경님께서는 답장이 없었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추기경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로마에 회의 갔었고, 며칠 전에야 편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에 대림 특강도 하고, 미사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본당 식구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림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현수막을 걸었고, 문산과 법원리 성당에도 알렸습니다. 군부대에도 협조공문을 보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오시는 날에는 성당이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강의와 미사를 하셨고, 저녁까지 잘 드시고 가셨습니다. 서울 대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이었기에 추기경님께서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오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라고 말한 구절은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특별히 선택하셨음을 드러냅니다. 이 표현은 마리아가 단순히 선택받은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온전히 보호되고 인도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것은 마리아께서 죄의 흔적이 전혀 없는 상태로 태어나셨음을 뜻합니다. 이는 마리아의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셨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계획의 위대함을 증언합니다.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심으로써 구원 계획의 중심에 서게 되셨지만, 그분의 위대함은 단순히 선택받은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께서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응답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께 봉헌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들 또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마리아의 순수함은 단지 죄가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상징합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본받아 하느님 앞에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사와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자리한 죄와 잘못을 씻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신비는 단순히 그분 한 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느님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가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 받았음을 이 신비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마리아의 모범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 각자도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계획 안에 있음을 깨닫길 바랍니다. 성모님을 본받아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신뢰하며, 우리의 일상에서도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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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루카 1,26-38: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구원 은총을 미리 입게 하시어 마리아를 원죄에서 보호하셨음을 기리는 날이다. 교황 비오 9세는 이미 1854년 12월 8일에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것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고, 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는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시다. 성모님께 관한 이 믿을 교리는 루르드의 벨라뎃다 성녀에게 나타나신 성모님께서 확인해 주셨다. 마리아께서 처음으로 구원의 은총을 입으셨듯이 우리도 그 신비에 동참하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 준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아무리 크고 좋아도 인간의 협력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마치 처음의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어겼기 때문에 세상에 은총과 구원이 오지 못하고 죄와 죽음이 왔던 것처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구원이 오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리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구세주는 태어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순명이 아니었더라면 또한 구원의 업적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아버지께 피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그 잔을 치워주시도록 기도하면서도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셨던 아드님과 같이 오늘 복음의 마리아께서도 당신의 신앙을 용감히 하느님 앞에 고백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루카 1,38) 이 고백은 주님의 탄생 신비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마리아의 고백이다. 우리도 이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이 필요하다. 삶과 유리된 신앙은 무의미하다. 마리아의 고백이 자신의 전 존재를 건 고백이었다면, 우리도 구체적인 삶을 통해 신비를 체험하고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우리의 생을 모두 바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마리아의 구체적인 신앙고백이다. 예수님의 탄생, 삶, 죽음, 부활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이면서 신앙으로 그 신비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신앙은 역시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리아와 같이 자신이 죽어야 한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그분께 맡겨드렸다는 것과 그리고 이웃 앞에 자신을 봉사하기 위하여 내어놓는 자세가 주님을 이 세상에 낳아주실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그것을 이루려 해야 한다. 가정 안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형제들 사이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도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하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자.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탄생 신비를 살 수 있으며, 체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마리아의 고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이 고백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지 않으면 안 되며, 그만한 아픔이 있게 마련이기에 고통의 신비를 더 깊이 알고, 더 깊은 사랑을 우리 이웃에 전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을 성화시켜 나갈 수 있다. 그 고통을 통해 우리는 즉시 부활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으니, 바로 이것이 성탄의 신비가 12월 25일 성탄에만 갖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삶은 휴가가 없다. 연중무휴이다. 큰 것을 찾기보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기쁘게 그것을 실천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신앙은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야 하고, 또 살아가며 확실히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마리아와 같이 우리의 모든 순간이 주님 앞에 그대로 고백 되는 삶으로 이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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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대전교구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
가브리엘 천사는 처음부터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루카 1,28)라고 부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표현에는 완료형 시제가 쓰였습니다. 성모님께서 이미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그 은총을 충만히 누리고 계심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28)라는 표현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1,30)라는 표현은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계시다는 뜻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성모님께서 이미 예전부터 하느님의 은총 안에 계셨던 것으로 묘사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1,31-32)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시고자 먼저 성모님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성모님을 원죄에서 보호하시고 당신의 특별한 은총 안에 머무르시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까닭은 예수님의 강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질 ‘구원’ 때문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신비의 중심에는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를 모두 구원하시기 바라시는 하느님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기념하는 오늘, 성모님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죄와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자녀가 되도록,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특별한 전구를 청합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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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성모님처럼 우리도>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28-38)
1)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라고 믿는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성모님을 선택하셨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한처음’은 창조 이전의 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성모님을 선택하셨다고 믿는 것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일은 ‘한처음’부터 하느님의 계획이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 사업은 하느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우발적으로 하신 일이 아니라 ‘한처음’부터 계획하신 일이고, 그 계획대로 실행하신 일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만일에 인간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셔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일이 ‘메시아 강생’이라면,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일은, 즉 ‘메시아 강생’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 사업’을 미리 준비하신 일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를 위한 일’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경축하는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우리를 구원하려고 작정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2)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인간 구원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일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에페 1,3-5.11)
바오로 사도는 ‘우리도’ 성모님처럼 ‘한처음부터’ 선택된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만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선택을 각 개인이 체험하거나 실감하기는 어렵지만, ‘나’ 라는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가지고 계셨던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우리는 믿고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부 다 하느님의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만일에 ‘나’ 라는 존재가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면, ‘나’는 참으로 아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 우주의 모든 생명체 가운데에서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생명체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3)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성모님의 의지나 응답이나 순종과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하신 일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 우리는 그냥 그렇다고 믿으면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렇게 태어나신 성모님께서 한평생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응답하는 삶’을 사셨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순종’과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나’를 선택하셨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내가’ 정말로 하느님의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다면,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협력 없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창조 사업의 완성’을 인간의 협력 없이 하기를 바라시지 않는다.”라는 교회 격언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면서, 동시에 ‘내가’,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구원사업의 협력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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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정천 사도 요한 신부님]
오늘 복음은 네 복음서에 나오는 성모님 관련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어린 시절의 성모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먼저 평범하여 보이는 그의 신상을 소개합니다.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에 사는 여인으로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였던 마리아,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등장으로 그의 특별한 신원이 밝혀집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그리스 말로 ‘케카리토메네’)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이미 그것을 충만히 누리는 상태임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표현도, “너는 하느님의 총애(그리스 말로 ‘카리스’)를 받았다.”라는 표현도 모두 그가 주님의 특별한 보호와 도움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그러한 마리아에게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 곧 성자 강생의 놀라운 신비가 이루어지리라고 천사는 예고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우리는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를 대면하고서야 비로소 특별한 은총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그것을 누리던 여인으로 묘사된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이는 오늘 대축일로 기념하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사건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성자의 강생을 합당하게 준비하도록 하는 첫 번째 사건으로, 그분의 어머니가 될 여인을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성모님께서 받으신 이 특은은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드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시고 그 구원의 첫 열매가 되신 분께서는, 같은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의 원형이시요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받으신 특별한 은총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도 하느님께 나아가기에 합당한 사람, 곧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통하여,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시고, 성자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시어,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으니, 동정녀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소서.”(대축일 미사 ‘본기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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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정진만 안젤로 신부님]
오늘 복음의 중심 내용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요셉의 약혼녀인 마리아와 그녀를 찾아온 가브리엘 천사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두 인물의 대화에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에 관하여는 직접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대축일에 선포되는 복음은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와 어떻게 연결 지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루카 복음사가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여인으로 소개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를 찾아가 그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또는 ‘은총을 받은 이’)는 마리아를 부르는 칭호입니다. 여기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그가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 주셨으며, 이러한 하느님의 보호로 마리아께서는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시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본기도, 예물 기도, 감사송 ‘마리아와 교회의 신비’ 참조)
하느님께서는 죄 없이 깨끗한 마리아를 선택하셨고 성령을 파견하시어 아들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그 은총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마리아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이로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께 은총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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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것은, 마리아께서 세상에 존재하시는 순간부터 죄에 물들지 않는 특전을 지니셨다는 뜻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이시며 임금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열 달 동안 품고 계실 분이시기 때문에, 탄생은 물론이고 잉태되실 때에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깨끗한 몸이셨다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이를 깨우쳐 줍니다. 제1독서는 사람이 뱀의 유혹에 빠져 원죄를 지었다고 알려 주며, 복음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구세주 잉태 소식을 전함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의 자비가 주어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구원 계획을 펼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미리 우리를 뽑으셨다는 말씀으로 이 모든 것을 찬미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자비’와 ‘모태’를 뜻하는 단어는 어원이 같습니다. 곧 구약 성경에서는 배 속의 아이를 품듯이 하느님께서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행위를 ‘자비’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오늘 제1독서 마지막에 ‘하와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게 하였다.’라는 것과,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께서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되신다고 한 것은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우리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강론 마지막에 남기신 기도를 바치고 싶습니다.
“우리의 온 삶이 하느님께 ‘예.’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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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영국의 정부 부처 중에서 낯선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로 The minister of Loneliness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외로움 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장관은 무엇을 할까요? 말 그대로 외로운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장관입니다. 외로움을 국가 문제로 보고 이렇게 정부 부처를 하나 만든 것입니다. 우리 옆 나라 일본 역시 외로운 사람을 위해 ‘고독’ 담당 장관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는 외로움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10명 중에서 5명 이상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외로운 사람이 많은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연을 당해 외로워하는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보다 더 최근에 실연으로 외로워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같은 마음으로 마음을 나눌 때 위로를 얻고 치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힘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먼저 맞춰야 합니다. ‘뭐가 힘든데? 겨우 그 정도로 힘들어하는 거야?’라면서 자기 잣대로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경험만 주야장천 말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보다 상대의 마음에 집중하면서 그 마음과 맞출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즉, 이해, 지지, 공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보면, 늘 마음을 맞추신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한다는 엄청난 소식을 듣습니다. 무조건 부정하고, 그 소식을 철회해 달라고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과 마음을 맞추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실 때도, 예수님과의 마음을 맞춰서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제 지금 외로움에서 어쩌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우리들과도 마음을 맞추십니다. 그래서 성모님과 함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과 마음을 맞출 때, 하느님과도 마음을 맞출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커다란 위로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마음을 맞추고 있나요? 그리고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과도 마음을 맞추고 있나요? 성모님의 모범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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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느님의 사람아, 다만 하라>
루카 1,26-38 (예수님의 탄생 예고)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하느님의 사람아, 다만 하라>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믿을 수 없는
때와 곳에서조차
믿을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하느님의 사람아
굳게 믿어라
희망할 수 없는
때와 곳에서조차
희망할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하느님의 사람아
오롯이 희망하라
사랑할 수 없는
때와 곳에서조차
사랑할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하느님의 사람아
뜨겁게 사랑하라
함께할 수 없는
때와 곳에서조차
함께할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하느님의 사람아
끝까지 함께하라
일어날 수 없는
때와 곳에서조차
일어날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하느님의 사람아
힘차게 일어나라
나아갈 수 없는
때와 곳에서조차
나아갈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하느님의 사람아
박차고 나아가라
이길 수 없는
때와 곳에서조차
이길 수 있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니
하느님의 사람아
마침내 이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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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세상은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또 돈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정작 돈을 가지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돈으로 하느님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돈이 하느님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돈이 하느님을 만나는 데 결정적으로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 재물을 따르기보다 “불가능한 일이 없는” 하느님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에 대한 대답은 감당하는 책임과 희생이 들어있습니다. 그 바탕에 다시 ‘아기를 잉태’ 하게 되리라는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더군다나 천사는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하며 명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늙은 나이에 임신한 엘리사벳의 잉태 소식을 전하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한 후’ 자유의지로 응답하였습니다.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처녀가 임신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몰아냈습니다. 결국, 구세주의 잉태는 하느님의 은총과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잉태되고 또 태어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응답을 통하여 세상에 구세주를 낳아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의 응답과 협력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훌륭한 연장입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습니다. 우리의 몫이 그만큼 소중합니다.
마리아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를 굴려 계산하고 앞으로 닥칠 일을 고민했더라면 아마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약혼한 처녀가 부모도 모르고 약혼자도 모르게 배가 불러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아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믿어주기나 할까요?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쫓겨나든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에게 이루어 주소서’ 한 것은 곧 자신의 모두를 바친 것을 의미합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주님의 뜻을 겸손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봉헌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겸손과 순명으로 하느님을 잉태 하셨습니다”(성 베르나르도).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으니 역시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시며, 또한 마리아를 통하여 다시 오실 것이므로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의 구원이 성취될 것입니다.”(성 루도비꼬) 어머니를 통하여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 먼저 겸손과 순명의 어머니 마리아께 다가가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를 통하여 예수님께로, 예수님을 위하여 어머니께로!
어떤 사업가가 신부님께 와서 물었답니다. “신부님, 제가 1억 원을 봉헌하면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신부님께서 대답하셨답니다. “그거 한번 시험해 봅시다!”
봉헌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나의 이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봉헌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기대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재물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예물이 아니라 뇌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결코, 뇌물을 즐기지 않으십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위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을 희망하였고 우리 모두를 위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 참된 봉헌을 통해 우리에게 구세주를 낳아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주님의 뜻을 이루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봉헌의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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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오늘 전례의 의미는 <본기도>에서 잘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동정녀를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시어,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셨으며, 성자의 죽음을 미리 보시고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다’
1854년 12월 8일, 교종 비오 9세께서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
이 “교의”는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보편적인 구원으로부터 예외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원을 미리 입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해, 성 안셀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받으신 축복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로부터 축복을 받고, 창조주께서는 그들로부터 찬미를 받으신다.”
이는 성모님께서는 원죄조차 없는, 티 없이 아름답고 거룩한 대성전이셨음을 말해줍니다. 바로 여기에, 구세주 하느님의 아들을 품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성모님을 원죄로부터 보호받는 축복을 가득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를 이렇게 찬양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충만함의 흘러넘침을 입어 새싹이 트듯 되살아났다”
그렇습니다. 성모님으로 하여, 우리도 축복에 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처럼, ‘사랑의 감실이요, 거룩한 대성전’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모님뿐만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비록 우리가 원죄에 물들어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못하지만, 저희 안에 주님을 모심으로써 저희 죄가 씻기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또한 당신을 건네줄 수 있는 ‘복을 주는 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한없는 기쁨으로 성모님과 함께 <입당송>에서 부른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나의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정녕, 마리아는 구원받은 인간의 전형이십니다. 그러니,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는 우리 안에도 때 묻지 않은 깨끗한 마음이 있음을 보게 합니다. 아니 그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마음의 울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큰 허물이 있다하더라도 가장 깊은 내면의 영역에는 죄로 물들지 않는 거룩하고 흠 없고 순수한 하느님의 모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그곳에는 죄가 발을 들여 놓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숨결이요, 사랑의 보급자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요, 우리 안에 거처하는 거룩한 영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 안에는 “빈자리”가 있고, 그 자리는 하느님만이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에스트로 에크카르트가 말한 “영혼의 정수”인 “심연”이요, 요한 카시아누스가 말한 “마음의 순수”(puritas cordis)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결코 죄에 물들 수 없는 그분의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자리로 돌아가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세계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에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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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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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믿음의 마리아 성모님>
-“정주, 찬양, 순종”-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시편 98,1ㄱㄴ)
세상이 존속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베풀어주시는 사랑의 기적들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작금의 위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에게 오늘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한국교회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호자 마리아 성모님이기 때문입니다.
기상하자마자 바치는 만세칠창중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는 더욱 각별하고 간절해졌습니다. 한국교회는 물론 미국, 스페인, 포르투칼, 브라질, 필리핀, 니카라과 등의 여러나라 및 성당에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모십니다.
오늘 대축일의 기원은 5세기 동방교회에 속한 시리아에서 시작되어, 7세기에 들어서면서 동방교회에서 널리 확산되면서 보편화됩니다. 서방교회에서는 8세기부터 이 축일을 12월8일 기념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남부, 노르망디,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을 거쳐 최종적으로 로마로 전파됩니다.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이 축일을 로마 전례력에 삽입하였고, 1708년 12월6일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대축일로 격상시킵니다.
마침내 17세기 마리아가 원죄없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리로 규정해 달라는 신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1854년 12월8일 교황 비오 9세는 교황 무류성에 따라 회칙 <형언할수 없는 하느님>에 의해 성모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를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리로 선포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자기의 잉태 첫 순간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 은총과 특권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도록 보호되셨다.”
새삼 가톨릭교회의 뿌리깊은 전통이 자랑스럽고 신뢰가 갑니다. 한국교회는 대희년이었던 2000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다시 한번 성모님께 한국교회를 봉헌했고, 교황청 경신성사부의 권고에 따라 2015년부터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만 한국교회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오늘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오늘 복음과 두개의 독서가 답을 줍니다. 교황님은 어제 대축일 강론중 오늘 복음을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의 하나라고 강조하셨고 공감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약간 시간만 내어 루카 복음을 들여다 보고, 이 장면을 읽는다면, 나는 여러분들 역시, ‘좋다’, ‘참 좋다’할 것이라 확신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사제서품 후 35년 동안 수없이 이 복음을 접하고 강론했지만 늘 신선한 충격에 새로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카 1,28)라는 대목은 고백성사시 말씀처방전의 보속으로 참 많이 써드렸고, 어느 수녀로부터는 “보속補贖이 아니라 보석寶石입니다.”라는 감사의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믿음의 어머니 성모님으로부터 셋을 배웁니다.
첫째, 정주입니다.
정주의 믿음, 정주의 어머니 성모님입니다. 언제나 제자리의 정주에 깨어 충실했던 마리아였습니다. 유혹에 빠져 정주의 제자리에서 벗어날 때 줄줄이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오늘 창세기의 하와와 아담 부부가 그 좋은 증거가 됩니다.
“너 어디 있느냐?”
우리 모두가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할 화두같은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아담을 찾았을 때 아담은 두려움에 숨어서 나타나지 못합니다. 정주의 제자리에 충실했다면 “예, 여기 있습니다.”대답하고 곧장 주님앞에 나섰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할 화두같은 말씀입니다.
정주의 제자리에서 벗어나자 불순종의 죄를 짓자마자 하느님의 책임 추궁에 서로가 책임전가에 급급합니다. 급기야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저 여자가..”라며 하느님과 아내에게 탓을 돌리는 아담입니다. 서로간 관계의 완전 파탄입니다. 죄의 폐해가 너무 큽니다.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믿음의 마리아, 정주의 마리아입니다. 눈밝은 하느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늘 제자리의 정주에 충실하며 책임을 다하는 마리아를 친히 방문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축복을 확인하신후 속내를 다 밝히시니 주님이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하여 눈여겨 보아둔 마리아인지 깨닫습니다.
둘째, 찬양입니다.
찬양의 믿음, 찬양의 어머니 성모님입니다. 찬양과 감사의 고백이 믿음을 날로 깊게 합니다. 성서의 사람들은 모두가 찬양과 감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 찬양감사노래는 우리 가톨릭교회가 저녁기도 끝무렵에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성모님과 함께 바칩니다.
오늘 제2독서 에페소서(1,3-14)의 찬가는 가톨릭교회가 매주 월요일 저녁기도 성무일도때 바치는 찬양감사가입니다. 그리스말 본문에는 3절에서 14절까지가 한문장으로 숨을 멈추지 않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을 노래합니다.
마리아 성모님 마음에도 쏙들었을 내용에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성모님과 성인들과 함께 끊임없이 하느님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는 우리들입니다.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주옥같은 은혜 충만한 내용들입니다. 그 일부만 인용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셋째, 순종입니다.
순종의 믿음, 순종의 어머니 성모님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 성모님의 믿음은 정주에서 침묵의 관상과 경청에서 그리고 겸손한 순종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침묵, 경청, 겸손, 순종 모든 영적덕목을 갖춘 믿음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성모님입니다.
얼마나 하느님의 전폭적 사랑과 신뢰를 받은 마리아 성모님인지 깨닫습니다. 말그대로 우리 가톨릭교회의 어머니들의 영원한 롤모델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내에는 예나 이제나 성모님을 닮은 성녀급의 어머님들이 참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역사가 차질없이 이뤄지게 한 다음 마리아의 겸손한 믿음의 순종이 얼마나 고맙고 감격하셨겠는지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역시 이런 순종의 고백을 하며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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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정결과 사랑의>
오늘 무염시태 축일에 관해 묵상하다가 느닷없이 옛날 신학교 때 들은 원로 신부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는 가서 그런 강론하지 말라는 것으로서 당신 본당에 새 사제가 보좌신부로 왔는데 오늘 무염시태 축일 강론을 이렇게 했답니다.
곧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예수님을 잉태하신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축일은 그런 것이 아니지요.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것을 기념하는 거지요.
그리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것이기에 마리아의 공로가 아니고 그렇다고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공로도 아니지요.
하느님에 의해 그리고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었던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잉태되신 것이며. 그렇기에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것은 순전히 은총이지요.
그래서 엘리사벳이 말하듯 은총을 가득히 받은 마리아인 겁니다. 그러니 마리아를 너무 추켜세울 것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이번에 저는 하와와의 비교 관점에서 마리아의 위대함을 보고자 합니다.
매우 조심스럽게 주장하는 바이고 그래서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면, 겸손하게 생각을 바꾸겠습니다만 하와도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이 아닐까요?
우리 교리에 의하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원죄이고, 그 후손들도 원죄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하지요.
아무튼 하와도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이 맞다면 원죄 없이 잉태되었는데도 하와는 죄를 지는 것이고,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이 말은 은총을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은총을 유지한 여인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는 은총을 받은 여인일 뿐 아니라 받은 은총을 잘 유지한 여인인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선 은총을 잘 받기는 합니까?
은총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서 아예 못 받는 경우가 있고, 받으려는 자세는 되어 있지만 은총이 은총인 줄 몰라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은총을 받으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는 교만하기에 다른 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다른 이의 도움은 필요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필요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은총을 받으려고는 하지만 받은 은총이 은총인 줄 모르는 경우는 자기의 입맛에 맞는 은총만 은총인 줄 알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햇빛은 은총이고 비는 은총이 아니라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음으로 마리아처럼 받은 은총을 잘 유지하는 것에 대해 보겠습니다. 세례로 이전의 죄를 씻는 은총을 받았다고 우리는 믿는 사람들인데 받은 다음에는 그 은총을 잘 유지하느냐 그 말입니다.
다시 죄에 떨어지는 일이 많고, 그것이 다 자유의지를 자기 욕구 만족을 위해 쓰기 때문이지요. 사랑을 위해 자유를 쓰지 않고 자기만족을 위해 쓴다는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마리아를 정결한 동정녀라고만 하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의 어머니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그 정결함은 은총이지만 그 정결을 계속 잘 유지하여 주님을 잉태한 것은 그녀의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를 다 기념하고 본받아야 할 우리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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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하느님의 태!>
오늘 복음(루카 1,26-38)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나자렛 처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총애를 받습니다.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엄청난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0-32ㄱ)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엄청난 소식,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마리아는 고민하지만,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주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오늘은 마리아가 원죄에도 물들지 않았다는 것을 기념하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본 축일은 어제였지만, 어제가 대림 제2주일이어서 오늘 기념합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이신 예수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품을 모태로 간택되었습니다.
'무염시태', 곧 '마리아가 원죄에도 물들지 않은 깨끗한 태라는 교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을 품을 태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을 품을 태가 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태이어야 한다는 교리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성체성사(미사)를 통해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모시기에 합당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이 내 안에 기쁘게 탄생하실 수 있도록, 나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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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 1, 28)
아무리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푸른 잎들이
있습니다.
은총을
입고 사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에
은총이
있습니다.
고맙고 고마운
일입니다.
하느님이
아니시면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도
복되신
동정의
은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은총의 행진이
구원의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은총을
지나서만
갈 수 있는
따뜻한
성탄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있기에
사라지지 않을
예수님의
성탄이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귀한 존재인지를
뜨겁게
깨닫습니다.
은총과
축복의
순간순간들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은총으로
가야 할 길을
깨닫습니다.
모든 사랑의
역사는
은총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은총이
새로운 역사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이 땅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은총의 시작
구원의 역사를
진실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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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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