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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1장
윌리엄 제임스, 김재영 옮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한길사, 2022. <1장. 종교와 신경학> (~83p)
#종교 #종교적경험 #의학적유물론 #감정
20세기 종교 연구에 관한 서적 중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오늘날까지도 종교학, 종교철학 연구의 필독서로 꼽히는 제임스의 주저는 물론 종교적 경험에 대한 심리적 분석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번역본에 언급되지 않은 부제,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에 다름 아니다. 즉, 그는 종교적 경험의 사례들이 특수하거나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를 이해하는 유의미한 특징들을 제시해준다고 보았다. 2024년 오늘날에도 여전히 언급되는 종교에 대한 다양한 환원의 시도는 거의 같은 형태로 이미 100년 전에도 있었고, 제임스는 그것들에 답하면서 환원되지 않는 인간 본성의 영역이 종교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 가지 특징을 수반하는 ‘감정’으로 보아 종교 연구에 길이 남을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런 점에서 그의 고전을 이 시대에 다시 읽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종교에 대한 의혹과 환원들이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젯거리가 되고 있는지, 또 제임스의 시대와는 다른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되짚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종교와 신경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1장은 이전에 읽었던, 신비체험의 신경생리학적 분석에 관한 논문에 대한 100년 전의 대답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을 일종의 병적인 상태로 보는 의학적 유물론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사도 바오로의 회심 사건을 후두골피질의 장애현상으로, 성 프란치스코를 유전성 퇴행성 환자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정신상태가 육체상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당대 심리학의 전제에서 출발하는 분석인데, 제임스는 이러한 사실적 설명이 당사자들의 ‘영적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든 결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영적’이라는 표현은 논쟁적인 것이지만, 어쨌든 의학적 유물론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장애가 유발하는 독특한 ‘심적인 내용’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고 본 것이다.
특정한 마음의 상태는 단순히 육체적 상태로 환원되는 차원에 더해 일종의 ‘우월한’상태에 놓이면서, 다른 상태보다 우리들에게 더 많은 진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마음상태가 결과적으로 ‘직접적인 기쁨’과 ‘삶에 유익하고 중대한 열매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환원불가능한 특징을 가진다고 보았다. 우리가 학문을 배우는 과정을 예로 들어본다면, 보다 ‘참된 것’, ‘믿음직한 것’에 대한 판단이 없이 배움의 과정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판단은,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찰했듯이, 단순히 주입되는 것만은 아니다. 즉, 스승에 의해 주입된 진리에 대한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일종의 ‘진리 자체’에 근거한 판단을 내린다. 바오로의 회심 사건이 일종의 장애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그 순간에 가졌던 진리에 대한 직감, 그의 삶을 그 즉시 송두리째 바꾸었던 바로 그 판단의 농도와 근거까지는 장애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는 제임스가 제시한 종교적 경험의 특징 중 ‘기쁨’개념에 대한 심화된 이해가 들어있는데, 단순히 기쁨과 행복이 수반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진리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어떤 구분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판단한다. 요컨대, 종교적 경험은 보다 확실한 앎에 대한 인식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앎이 행동과 판단으로 이어져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독특함을 가진다. 아마도 전자의 특징, 직관적인 진리 인식은 오늘날 종교를 불문하고, 심지어 비종교인들까지도 포괄하는 어떤 ‘종교적 심성’의 특징으로 보아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는 이렇듯 진리가 작용하는 방법이 그 진리에 대한 경험의 특징이라고 여겼고, 그 이전까지 주로 그 기원(신으로부터의 계시 등)을 따지던 접근에서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정초했다. 우리는 종교적 삶을 오직 그것의 결과들을 가지고 판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환원적 입장을 완전히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종교적 경험이 수반하는 다양한 감정과 그 결과에 대해서, 그것들이 자류적인(sui generis)것으로서 분석되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 핵심이 행복, 기쁨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 아니라, 비슷한 다른 종류의 행복, 기쁨과의 비교와 유사성 안에서만이 그 온전한 의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고차적 영역의 영감과 같은 것이 있다면, 신경증적 기질은 필수불가결한 수용성의 주된 조건을 제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