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모습[번외편]
글쓴이 Mr.Goodbye
◆불나방
얇은 검은 커튼을 친 하늘에는 수많은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다. 그 수많은 보석들 중에서 몇 개는 어디론가 떨어지면서 빛을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그 떨어진 보석들을 보면 소원을 빈다. 그 떨어지는 보석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물론 소원을 빌고 있다.
“행복해지고 싶어요….”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다. 거추장스러운 내 긴 생머리가 바람의 의해서 흔들린다. 나는 자꾸 내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편으로 넘기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고요하고, 언제나 조용하고, 변함이 없다. 아니. 있다. 낮에는 푸른색, 밤에는 검은색이라는 것만 빼고는 언제나 똑같다.
“늘 똑같은 하늘을 왜 봐?”
누군가에게 묻는 것일까? 나라는 여자는…. 여기는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에게 묻는 것일까? ‘나도 참 바보 같다.’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쓸쓸하게 웃는다. 옷은 얇게 입고 온 것일까? 몸이 떨렸다. 하지만 아직 들어가기 싫었다. 좀 더 밖에서 바람을 맞고 싶었다.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갑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려고 할 때 무심결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담배를 왜 펴?”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쓸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담배의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 당겼다. 흰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허공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더 옅어지는 담배 연기를 나는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시간은 흘러 흰 연기가 사라지자. 나는 담배를 내 입 쪽으로 가져가서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내뱉으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 담배를 들고 있는 내 손을 쳐서 담배가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한 모금 마시고, 내뱉으려고 한 내 행동이 무산되어버렸다.
“한 연화! 너 환자야!!”
내 손을 친 누군가가 떨어진 담배를 주우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두 손을 합장(가슴 앞에서 손바닥을 합쳐 좌우 열 손가락을 펴서 포개는 것)을 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누군가는 어둠속에서 내가 하는 것을 본 것인지 나에게 다가와서 꿀밤 한 대를 먹였다. 나는 “아야~”라고 호들갑 떨면서 나에게 꿀밤을 때린 그 누군가를 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 붉고 매혹적인 입술. 하얀 가운을 입고, 지적인 뿔테안경을 끼고 있는 이연언니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웃어주었다. 이연언니는 노려보던 눈빛을 풀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아까 주운 담배를 자신이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황당한 눈길로 이연언니를 바라보고 있자. 이연언니도 내 눈빛을 느꼈는지 담배를 한 모금 더 빨고, 땅바닥에다가 떨어뜨리고는 발로 비벼서 꺼버렸다.
“환자 옆에서 피워도 되는 거야?”
나의 항의에 이연언니는 몹시 화가 난 얼굴로 꿀밤을 때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누가 피우던 거지?”
나는 움찔거리면서 두 손을 합장을 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연언니는 내 사과의 부드럽게 웃으면서 걱정스러운 눈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이연언니에게 나는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내 미소를 본 이연언니는 자신의 갸날픈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많이 좀 먹어…안 먹어서 이렇게 살이 빠지잖아….”
애써 싱긋 웃으면서 나는 이연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내 옷소매로 닦아주었다. 이연언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나도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려오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솜 같은 눈들은 지상으로 살랑살랑 겨울바람을 타고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연언니…1년 뒤에 내리는 첫눈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을까?”
내 물음에 이연언니는 애써 밝게 웃으면서 꿀밤을 때렸다.
“당연하지! 최고의 의사인 내가 있잖아!”
나는 이연언니에게 꿀밤을 맞은 자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웃어주었다. 아프지도 않은데 괜히 눈물이 났다. 나는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눈물을 흘린 채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 이연언니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눈물이 나는가보다….
‘진현씨. 이제 1년 남았어….’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분명히 하늘을 보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물어보면 그냥이라고 말하면서 언제나 하늘을 보았던 사람이니까…. 내가 쓸쓸하게 하늘을 보고 있자. 이연언니는 “많이 쌀쌀해졌다. 들어가자.”라고 말한다. 나는 이연언니의 손길에 따라서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바람이 나를 먼저 반기면서 얼어붙은 나의 몸을 녹여준다.
타닥타닥-벽난로에서 장작 타는 소리가 경쾌한 음악소리로 들렸다. 이연언니는 나를 소파의 앉혀놓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준비하는 것 같더니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오르는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와서 내 맞은편에 앉으면서 커피를 내려놓았다. 나는 이연언니가 내려놓은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들었다. 따뜻했다. 마치 그 사람이 내 두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포개면서 잡는 것처럼 그렇게 따뜻했다. 너무나 따뜻했다….
내가 두 손으로 커피 잔을 감싸면서 슬픈 얼굴을 하고 있자. 이연언니는 꿀밤을 때렸다. 내가 눈물을 글썽인 채로 왜 때리냐고 눈빛으로 노려보면서 묻자. 이연언니는 굳은 표정을 한 채 꿀밤 한 대를 더 때렸다.
“커피를 마시라고 줬지. 누가 바라보라고 했냐?”
나는 똑같은데 때리기만 하는 이연언니를 속으로 욕하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도를 타고, 커피가 몸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가 몸 안으로 들어가자. 몸 전체가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한 모금 더 마시고, 커피를 내려놓았다.
“이연언니.”
내가 부르자. 이연언니는 커피를 내려놓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표정으로….
“이연언니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만남과 이별이라는 카페 가봐~내가 저번에도 말했지? 꼭 가봐! 거기 가서 꼭 커피 먹어봐!”
내 말에 이연언니는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다가 갑자기 꿀밤을 또 때렸다. 나는 “아얏”라고 비명을 지르면서 눈물이 맺힌 두 눈으로 이연언니를 바라보았다. 이연언니는 눈물이 맺힌 내 두 눈을 보고도 또 꿀밤을 때렸다.
“그 말은 지금 내 커피가 맛없다는 거야? 이게! 커피 끓여다줘도 욕 듣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나는 이연언니의 말에 괜히 찔려서 커피만 계속 마셨다. 마시면서 이연언니의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커피만 마셨다. 긴 침묵이 우리 사이를 오갔다. 침묵은 흐르는 강물처럼 천천히 다가와서 고요함을 만들고, 그 고요함은 조용함을 만들었다. 내 귓가에는 간간히 장작이 타는 소리만 들렸다. 타닥타닥-이라는 소리만….
장작 타는 소리를 한참동안 벗 삼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에게 이연언니가 입을 열어서 말했다. 이연언니가 입을 여는 동시에 우리 사이에 침묵은 유리창처럼 깨져버렸다.
“같이 가자…”
나는 조금만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연언니에게 재차 물었다.
“뭐라고? 목소리가 작아서 못 들었어!”
이연언니는 내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이미 다 마셔버린 커피 잔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부엌으로 향하는 이연언니를 바라보았다. 이연언니는 싱크대의 커피 잔을 담가 놓고는 나를 향해서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 병 나으면 같이 가자! 그 카페에!!”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두운 표정을 감추면서 애써 웃었다.
“…응!”
이연언니는 내 대답이 흡족했는지 한층 더 밝게 웃으면서 나를 향해서 윙크를 했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커피 금지! 그 카페를 같이 갈려면 말이지! 알았어?”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밝게 웃으면서 잠자러 들어가 버렸다. 물론 나를 향해서 내일 봐. 라고 인사를 하면서…. 나는 소파의 그대로 앉아 있으면서 장작이 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따뜻해주기 위해서 불 속에서 자신을 태우는 장작을 보고 있으니까…죽는 줄 알면서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생각났다. 바보같이 말이다….
- 왜지? 왜냐고!! 우리가 아직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자고 말을 하냐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규를 하듯이 나에게 소리치던 그 사람의 모습이 보지 않았지만 왠지 알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핏줄을 세우면서 흠뻑 비에 맞은 채 나를 향해서 손 내밀던 그 모습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왜지? 왜냐고!! 우리가 아직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자고 말을 하냐고!!!
다시 들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 같은 질문.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울음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막았다. 행여나 내 울음소리를 듣고, 이연언니가 깨서 나올까봐…나는 더욱더 입을 꽉 틀어막았다.
- 왜지? 왜냐고!! 우리가 아직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자고 말을 하냐고!!!
재차 들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 같은 질문. 나는 급기야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입을 틀어막았던 두 손의 힘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울음소리가 내 몸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건…당신이 바보 같은 불나방 같으니까요…흐흑흐흐흑”
울음소리가 증폭이 되었다. 내가 있는 곳은 내 울음소리로 슬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입을 틀어막지도, 눈물을 애써 참지도, 닦지도 않았다.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면 더 크게 울었고, 눈물이 흐르면 더 흘렸다.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보고 싶어서 미칠 수가 없었다. 그리움을 도저히 주체를 하지 못 했다. 바보 같이 말이다….
한참동안 그리움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목이 터져라 울었다. 이렇게 시끄럽게 했는데도 이연언니는 나오지를 않았다. 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안에서 울고 있을 수도 있다. 아마 후자쪽 일 것이다. 안에서 내 울음소리의 맞춰 울고 있을 것이다. 행여나 자신의 울음소리를 내가 듣고, 더 슬퍼할까봐….
◆CLOVER
- 행복을 가르쳐 줘….
내가 그 사람에게 행복해지고 싶어. 라고 말을 하면 그 사람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내 볼을 꼬집으면서 내 귓가에다가 속삭였다. 그 사람의 속삭임이 좋아서 나는 언제나 그 사람에게 행복해지고 싶다. 라고 말을 한 것 같다. 그때는 무지 행복했으니까….
아마 그때 그 사람에게 행복해지고 싶어. 라고 말한 것은 투정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뒤돌아서서 걸어올 때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제 모든지 혼자서 결정해야 된다는 자각이 들면서 짙은 외로움이 밀려왔다. 슬펐지만 눈물이 밀려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고, 그 사람 품에서, 그 사람이라는 새장에서 나와 나는 힘겹게 병이라는 내 숙주와 싸웠다.
- 행복을 가르쳐 줘….
쓸쓸하게 내뱉은 그 사람의 목소리.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고, 슬픈 표정으로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나의 발길을 아주 잠깐이지만 멈추게 했던 그 사람의 애원에 목소리….하지만 나는 매몰차게 걸어 나왔었다. 아랫입술에서 피가 나오는지도 모른 채 깨문 상태로 말이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람 생각을 하기가 싫었다. 사실은 그 사람의 슬픈 표정을 떠올리기가 싫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두 손으로 뺨을 세게 두 번 쳤다. 짝-이라는 소리가 두 번이나 울렸다. 나는 이연언니의 방을 노크를 하려고 했지만 이연언니의 방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이마부분을 방문에다가 밀착 시킨 상태로 가만히 서서 울음소리를 들었다.
‘슬퍼하지마…언니라도 웃어줘야지…나를 위해서 웃어줘야지…웃어줘야지…응? 웃어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들리지도 않는 속마음으로 애원을 했다. 만약 내가 들리게 말했다면 이연언니는 더 크게 울었을 것이다.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오열을 할 것이다. 내가 췌장암이라는 것을 통보할 때 울었던 것처럼 그렇게 나를 꽉 끌어안으면서 울 것이다. 그래서 말하지 못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으로 향했다. 내 귓가에는 여전히 이연언니의 울음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눈물을 글썽인 채로 나는 내 방문을 열었다. 푸른색 시트를 깔아놓은 침대 옆에 작은 서랍 위에는 가습기에서 흰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 살짝 열린 창문에는 하늘을 그려서 옮겨 놓은 커튼이 작은 바람의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또한 벽지도 하늘을 옮겨 놓은 것을 붙여서 마치 내가 하늘 속에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는 말없이 구름 색을 가지고 있는 책상의 앉아서 스탠드 불을 키고, 공책 하나를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공책 표지에는 커다랗게 이별을 한 후-라는 내가 적은 제목이 보였다. 나는 공책을 펼쳐서 적기 시작했다. 그 사람에게….
[To. 진현씨에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렸어요. 일 년이라는 시간이 예전에는 짧게 느꼈는데 이번 일 년은 만 년처럼 느껴졌어요. 내 추억 속에서 내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진현씨가 슬픈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고 있어요. 좀 웃어줘요…제발…웃어줘요…내가 힘낼 수 있도록…내가 힘내서 병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줘요…네? 제발요….
당신은 요즘 하늘을 보고 있나요? 내가 물어보면 또 그냥이라고 말하면서 내 이마에다가 짧은 입맞춤을 해주겠죠? 당신의 부드러운 입술을 내 몸이 기억해요. 당신의 향긋한 숨결을 내 귀가 기억해요. 당신의 얼굴을 내 두 눈이 기억해요. 당신의 체온을 내 두 손이 기억을 해요. 신기하죠?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나는 더욱더 당신에 대해서 뚜렷하게 기억을 해요. 내가 준 책 읽어 보아겠죠? 대충 읽지 말고, 제대로 읽어보아야 할 텐데…. 그래야 당신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 일 년 남았어요. 당신에게 뒷모습을 보여주면 매몰차게 돌아서던 한 여인이 일 년을 버텨서 당신을 만나려고 이렇게 생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어요? 나…잘했죠? 당신은 분명 싱긋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겠죠? 참 잘했어! 라고 말할 것에요? 그렇죠? 아마 그럴 것에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일 년만 참아줘요…꼭…살아서…찾아 갈게요…첫눈 내리는 날…꼭 찾아 갈게요…꼭….]
꼭 살아서라고 적는 곳에 내 눈물이 떨어졌다. 손이 흔들려서 꼭 살아서라는 곳은 희미하게 적어졌다. 그 희미하게 적은 곳에다가 내 눈물이 떨어져 더 옅어져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아예 안 보일 정도였다.
더 쓰려고 다시 펜을 잡으려고 할 때 옆구리 쪽에서 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옆구리 안쪽에서 갈기갈기 찢기는 말 못할 고통이 찾아왔다. 옆구리 쪽을 강하게 부여잡으면서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의자가 쓰러지는 소리는 내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바닥을 짚으면서 기어가서 서랍을 열고, 약통을 꺼내서 뚜껑을 열려고 했지만 손이 떨려서 그만 놓쳐버렸다. 약통 속에 들어있던 약들은 쏟아졌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바닥의 어지럽게 수놓아져 있는 하얀 알약을 몇 개를 주운 상태로 입속으로 그냥 털어 넣었다. 물을 찾을 수 없어서 침을 물로 삼아 억지로 삼켰다. 하지만 고통은 전혀 줄지 않았다.
등 뒤에서 흐르는 식은땀이 지금 이 고통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나는 힘겹게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펜을 다시 집어 들려고 했지만 고통이 더욱더 증폭이 되어서 나는 책상 위에 있었던 물건들을 떨어트리면서 다시 쓰러졌다.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이랑 섞여서 어느 것이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신음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나왔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거울이 보였다. 그 거울에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이 보였다.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한쪽 눈에서 구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고통이 심한 와중에도 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울지 말아요…웃어주세요…크흑…우,웃어줘요…흐흑…웃어줘요…제…발요…”
그 사람의 미소가 보고 싶었다. 그 사람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괜찮을 거야~”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고통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나에게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그래서 웃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우,우,웃어줘요…”
떨리는 입술로, 창백하게 질려버린 얼굴로 그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웃어달라고, 미소를 보여 달라고, 당신의 미소만 보면 이까짓 고통 다 참아낼 수 있다고, 힘을 낼 수 있다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여전히 그 사람은 검은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은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어…줘…요…아아악…우,웃어줘요…”
고통의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입술이 너무나 심하게 떨려서 입술이 떨릴 때 이빨도 같이 떨리면서 부딪쳤다. 나는 옆구리를 더욱더 강하게 붙잡으면서 고통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너무나 아팠다.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물 밑 듯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고통을 참아냈다. 아무거나 입에다가 물고 싶었다. 고통의 신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내가 고통을 참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르도록- 아무거나 입에다가 물어서 고통의 몸부림치는 내 고통의 소리를 막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커튼이 보였다. 나는 커튼을 찢어버릴 기세로 잡은 뒤 내 입에다가 돌돌 말아서 넣었다. 이제 안심하고 비명을 지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입을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옆구리 안쪽에서 무언가 갉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마자. 고통이 더욱더 커졌다. 그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이번에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웃어줘요….’
손이 닿지 않았다. 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될 텐데 조금만 더 다가가면 될 텐데 나는 그 조금을 다가가지 못 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우,웃어줘요….’
그 사람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바라만 보았다.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 그 사람의 두툼한 입술이 열리면서 입모양으로만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통이 심한 와중에도 그 입모양을 따라서 말을 해보았다.
“행…복…을…가…르…쳐…줘…. 흐흐흑 바보 같은 사람…바보…바보…바보! 흐흐흑”
바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그 사람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그 사람은 신기루처럼 사리지고, 내 두 눈에는 공책과 펜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오른손의 손목을 왼손으로 꽉 잡으면서 한자한자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그 와중에도 고통은 나를 더욱더 괴롭혔다.
[성장하고 있어요….]
[내 병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르쳐 줄게요….]
나는 행복을 가르쳐 주겠다고 적고나서 정신을 잃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뒷모습
눈을 떴다. 두 눈에 하늘이 보이자. 밝게 웃으면서 속으로 ‘나는 아직 살아있구나!’라고 소리쳤다. 내가 본 하늘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가 내 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개를 약간 옆쪽으로 돌리자. 이연언니가 내 손을 꼭 잡은 상태로 고개를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싱긋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이연언니가 잡고 있는 내 손목 쪽을 보고는 쓸쓸하게 웃었다. 링거가 꽂혀 있었다.
나는 상반신만 일으켜서 비스듬하게 세워놓은 베개의 기대었다. 내가 기대는 소리의 이연언니는 눈을 비비면서 눈을 떠서 나를 보았다. 나는 이연언니에게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이연언니 안녕?”
내 인사에 이연언니는 화가 난 얼굴로 꿀밤을 때렸다. 나는 “아얏”라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이연언니를 바라보았다. 이연언니는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지 또 꿀밤을 때렸다. 나는 또 맞은 부분을 쓰다듬으면서 “아얏”라고 고통의 신음소리를 냈다.
“나한테 맞을 때는 아프다고 소리를 내면서 정작 심하게 아플 때는 왜 소리를 내지 않는 거야? 왜!!”
이연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연언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냥 쓸쓸하게 웃었다. 이연언니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눈물을 닦고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 그래야 덜 아파…너 자꾸 이러면 입원할 수밖에 없어!”
나는 이연언니의 말을 듣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언니. 병원만은 안 돼. 그 사람이 아마 날 찾기 위해서 다 뒤졌을 거야….”
언니는 내 말을 듣고, “설마?”라고 말했다. 나는 이연언니의 말을 듣고, 창밖에 있는 하늘을 보면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니까…그 사람이니까…충분히 그럴 수 있어…바보거든….”
이연언니는 말없이 내 얼굴을 쓰다듬기만 했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창문 밖을 보고 있으면 분홍색을 머금은 벚꽃들이 살랑살랑 바람의 의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온 세상을 분홍색으로 덮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벚나무에는 이제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다. 봄이 간 것이다.
여름이 찾아왔다. 여름이 찾아오기 전에 내 병이 또 발작을 해서 나는 또 다시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여름에는 수많은 꽃들이 피웠다. 붉은 색, 하얀색, 분홍색 각각의 색깔별로 꽃을 피웠고, 은행나무에는 푸른 잎이 달려있었고, 단풍나무에는 물론 푸른 잎이 달려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맴돌았지만 곧 사라지고, 싸늘한 바람이 찾아왔다. 물론 꽃도 시들었다. 여름이 간 것이다.
가을이 찾아왔다. 내 병은 더욱더 악화 되어서 이제는 침대의 누워만 있어야 했다. 나는 침대의 누워서 때론 이연언니랑 수다를 떨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일기를 썼지만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내 하루 시간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푸르던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이 들어있었고, 단풍나무도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바람이 싸늘해서 이연언니는 언제나 창문을 닫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열려진 창문 사이로 바람의 의해서 날아온 은행잎과 단풍잎이 내 방 안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보았다. 서서히 생명을 잃고, 타인의 의해서 떨어져 내리는 은행잎과 단풍잎을 보니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이연언니는 내 눈물을 닦으면서 물었다.
“창문 닫을까?”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이연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죽게 된다면 내가 죽은 그 날 하루…면사를 써줘….”
이연언니는 말라버린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네가 죽을 리가 없잖아…”
나는 “만약에 말이야”라고 다시 한번 이연언니에게 말했다. 이연언니는 “알았다.”라고 하면서 나에게 “면사는 근데 왜 쓰라고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그냥….”이라고 말했다. 이연언니는 꿀밤을 때리면서 “싱거운 애네. 너는!”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을하늘을 보면서 이연언니가 못 들을 정도로 조금만 하게 속삭였다.
“면사를 쓰면 슬프게 우는 이연언니의 눈물을 볼 수 없으니까….”
가을은 그렇게 쓸쓸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라도 힘들게 버티면서 기다려온 겨울이 찾아왔다. 내 병은 이제 나 스스로 일어나서 5분도 걷지 못 하는 상태가 되었다. 점점 기력이 빠지고, 살이 빠져서 남들이 보면 앙상한 나뭇가지로 착각할 정도였다.
침대의 누워서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었다. 이연언니는 그런 나를 슬픈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창밖에는 어느새 은행나무도, 단풍나무도 옷을 벗은 상태로 추운 바람이 부는 겨울을 힘들게 버티면서 굳건하게 서있었다. 나도 저렇게 나무처럼 굳게 서있어야 해. 라고 결심을 하면서 걷는 연습을 했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걷는 연습을 할 때마다 이연언니는 말렸지만 나는 고집을 부리면서 해야 된다고 소리쳤다. 이연언니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걷는 연습을 하는 나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1분도 안 되어서 숨을 헐떡이면서 자리의 주저앉았지만 차즘차즘 나아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실로 나는 오래만의 밝게 웃을 수 있었다.
드디어 일기예보에서 내일 눈이 온다고 말했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이연언니에게 내일 눈이 온다고 소리치면서 이연언니의 손을 붙잡고, 막 흔들었다. 나는 내일 이연언니에게 내일 나를 화장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연언니는 쓸쓸한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나는 눈을 뜨면서 실로 오래 만에 편안하게 잤다고 이연언니에게 말을 했다. 이연언니는 “그것 잘 됐구나!”라고 말하면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연언니는 나를 화장을 해주면서 “장례식의 간다고 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구나.”라고 대답을 했다.
창백하던 내 얼굴이 화장을 하니까 새하얗게 변했고, 까칠했던 내 입술은 옅은 분홍색을 바르자. 아프기 전 내 입술 같았다. 나는 푸른 원피스를 입고, 하얀색 모자를 쓰면서 긴 생머리를 귀 뒤편으로 넘기면서 이연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나 예쁘게 보여?”
이연언니는 눈물을 머금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면서 대답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뻐!”
나는 싱긋 웃으면서 이연언니에게 말했다.
“그럼 가자!”
고개를 끄덕인 이연언니는 나의 손을 꽉 잡고 나와서 자신의 차에 태우면서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만남과 이별이라는 카페로 향했다. 우리는 카페 문 앞에서 헤어지기로 하고, 좀 있다가 만나기로 약속한 것이었다.
이연언니는 가면서 검은 면사를 썼다. 나는 이연언니에게 궁금해서 물었다.
“검은 면사를 왜 써?”
이연언니는 나의 물음에….
“너와 똑같이 검은 면사를 쓰고, 자신의 장례식에 오라고 했거든….”
나는 “그렇구나.”라고 말하면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창밖의 하늘을 보았다. 눈이 꼭 올 것 같았다. 어느새 우리는 만남과 이별이라는 카페의 도착했다. 나는 내려서 이연언니에게 손을 흔들고, 걸어갔다.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설렜다.
하늘을 보았다. 푸른 바다를 옮겨 놓은 것 같은 하늘 위로 구름이라는 작은 배가 아주 느리게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그 모습을 보다가 내가 오랫동안 서있었다는 것을 알고, 발길을 재촉하면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나는 간간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소가 저절로 피워 올랐다. 나는 바람의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편으로 넘기면서 걸어가려고 할 때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나는 내 팔을 잡은 상대를 보기 위해서 뒤를 돌아섰다.
그 사람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병과 싸운 이유를 준 사람.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게 만들어 준 사람. 나를 향해서 언제나 미소를 짓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사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려는 데도 내 뒷모습을 알아보고, 내 손을 잡아서 나를 돌아보게 해준 사람.
이 진현. 이라는 세 글자.
내가 이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태어난 나.
나는 미소를 머금고, 그 사람에게 말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입 꼬리는 올라가 있는 그 사람에게. 나는 말했다.
“나 한 연화는 이 진현을 사랑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더….
행복을 가르쳐 줬나요?”
내 물음에 그 사람은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사람을 향해서 웃어주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늘 똑같은 하늘을 왜 봐?
- 네가 물어봐주니까….
쓰러지면서 본 하늘은 아름다웠다…첫눈이 내렸으니까….
번외편입니다. 그녀시점이지요.
아무도 번외편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써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애정이 깃든 이야기이니까요.
본편을 읽으시고, 해피로 결말을 내시던 분들이 많으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번외편 끝을 보면 해피일 수도 있지만 이것도 결말은 독자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본편을 읽어주신 분들과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읽어보시고, 댓글을 달아주셨으면 하는 저의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끝으로 저는 더 나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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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Christmas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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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피인줄 알앗는데 세드내요 ㅠㅠ 바로 죽다니 너무 슾퍼요 ㅠ
결말은 독자분에게 맡긴다고 했습니다. 읽어주시고, 또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더 나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남은 크리스마스 행복하게 보내세요 - 미굿
흑흑.새드였나요? 전해핀줄알았어요~ 에구.슬프네요 ㅜ
결말은 독자분이 정하는 것입니다. 읽어주시고, 또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더 나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미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