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플: 이번 4집은 발매와 동시 모든 오프라인/온라인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한 달 만에 10만장을 넘어서는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모든 장르를 통틀어 현 가요계에서 최고의 성과입니다. 뿐만 아니라 음악성에 대한 호평이 엄청납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타블로: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공백도 길었고,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뿐인데, 과분한 축복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힙플: 한창 바쁘실 텐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타블로: 음악을 듣고 들려주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고. 보기와는 달리 고요하게 지냅니다.
힙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타블로: 제 음악 인생은 사실 클래식으로 시작됐어요. 여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다 일곱 살 때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바꿨고, 10년을 가까이 연주했죠. 제 선생 팡교수는 중국사람 이었고, Isaac Stern의 제자였어요. 늘 저에게 꾸짖듯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Music is communism, but you're playing democracy (음악은 공산주의야, 근데 너의 연주는 민주주의야)!' 특이하죠?
그러다 고등학교 때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어의없는 이유로 짤렸어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No. 3를 공연하는 도중에 친구와 저는 '쥬라기 공원'의 메인테마를 느닷없이 연주했거든요. 공연을 망쳤죠.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 후 반항심에 흥분해 기타를 치겠다고 활을 놓았어요. (솔직히 크게 후회합니다, 결국 기타도 치다 말았거든요). 어쨌든 결국은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음악은 저란 사람의 중력인 것 같아요.
힙플: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지금과 1,2집 시절을 비교해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타블로: 지금은 예전보다 조금 더 큰 거울을 바라보는 느낌이에요.
힙플: Supreme T?
타블로: 그냥 심심해서 지은 이름. 투컷은 Street T. 멋있어서 따라했어요[웃음].
힙플: 저 또한 힙플 게시판을 통해 접한 소식인데요, Blac Bakery의 앨범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타블로: 저도 처음 듣는 소식인데요? [웃음]
힙플: 한 음악 사이트에서 진행한 ‘독립투사를 자청했을 것 같은 가수는?’ 이라는 설문조사에서 5위를 하셨습니다. 기존의 방송프로그램들에서 보여 주었던, 밝고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미지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되는데, 이처럼 방송활동에서의 모습과 음악인으로서의 타블로 혹은 에픽하이는 갭(GAP)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되는데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결론을 내셨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 나갈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타블로: 수많은 나, 모두 나. 누구나 그렇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제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에 낭비 할 시간은 없습니다.
힙플: 지인들에 따르면 대중 매체에 보여 지는 모습들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아이덴티티를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방송에서의 모습도 물론, ‘타블로’ 이겠지만, ‘어쩌면’, 국내 가요시장의 특성상 해야 되는 이런 활동들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타블로: 요즘은 대중 매체에서 보여 지는 제 모습도 그다지 밝진 않아요. [웃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게 얼마나 어두운거지? 어쨌든. 때론 슬퍼도 미소 짓고, 기뻐도 웃음을 감춰야 하는 건, 국내 가요시장의 특성상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특성상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예절'의 문제인 것 같아요.
방송을 아예 안하면 몰라도, 할 땐 열심히 임하고 가능하다면positive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공간과 그림을 보여주는 공간은 다릅니다. 세상을 저만의 공간으로 초대 할 수 있는 날이 올 때 까진, 조용히 이 공간을 넓히고 있을게요.
힙플: 음악이라는 ‘기본’ 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면, 여러 아티스트들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간에 자주 노출되어 많은 인지도를 통해 그 ‘기본’을 알렸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타블로씨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타블로: 동감합니다. 에픽하이는 그'기본'을 잘 알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힙플: 상당히 어두워진 이번 4집 앨범, Remapping the Human Soul. 이유가 정말 궁금한데요..
타블로: 대학교 1학년 때 소중한 친구를 갑작스러운 병으로 잃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작년 여름의 끝에 또 한 명의 친구를 돌연사로 잃었어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친군데, 머리가 아프다면서 일찍 잠들더니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데요. 어린 시절부터 가장 친했던 네 명의 친구들 중 두 명이 벌써 이렇게 절 떠났어요.
모든 게 공허했고,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처음 하는 얘긴데, 이번 앨범... 오랫동안 못나올 뻔 했어요. 작년 가을, 완성된 앨범을 두고 사장님과 멤버들에게 "나 앨범 못 낼 것 같다. 앨범을 내도 정상적으로 활동을 못할 것 같다, 미안하다." 라고 고백했어요. 그래서 일단 딜레이가 됐었고, 한 달간의 휴식 끝에 앨범의 반을 버리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죠. 대학교 때 친구를 잃고 글을 미친 듯이 쓰면서 제 자신을 되찾았듯이, 작년 가을과 겨울 곡과 가사를 미친 듯이 썼어요. 멈출 수 가 없었죠. 두 달 동안 100곡이 넘게 썼어요.
미쓰라와 투컷, 우리 회사 식구들, 친구들... 저 때문에 많이 고생했어요. 그들이 있었기에 결국 초점을 되찾았고, 그 당시 썼던 곡들과 가사들이 앨범의 대부분이 된 겁니다. 멤버들이 곁에 없었다면 아마 아직도 소식 없이 작업실에서 무수한 방향 없는 노래들을 만들고 있었을 거 에요. 공식적으론 결과물이 맘에 안 들어서 발매를 미뤘었다고 했지만, 이게 사실입니다. '컨셉'에 환장한 바닥이라 "이번엔 어두운 컨셉인가요?"라는 의미 없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아뇨 아닙니다. 그때의 우리에게서 나왔던 음악을 솔직하게 담은 것뿐입니다.
힙플: 지금은 좀 어떤가요?
타블로: 괜찮아요. 저 강한 사람입니다.
힙플: 모든 컨셉과 스토리를 제공한 장본인으로써, 이번 앨범의 곳곳에 숨어 있다는 그 코드와 의도들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상당합니다. 서로 ‘해석’을 해보기도 하고.. 미니홈피를 통해 조금씩 밝혀주시고는 계시지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타블로: 물론 그 어느 작품이든 더 넓고 깊은 의미의 바탕은 있겠지만,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모두 음악 그 자체에 담겨있어요. 제 홈피에 있는 'remap notes'는 영어가사 해석이나 제작과정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작은 생각들뿐입니다.
힙플: 비트는 물론이고, 100마디의 랩을 선보인 ‘백야’, 'FAQ', ‘행복 합니다’ 등, 방대한 스펙트럼을 쏟아내셨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데로 작업의 모티브들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타블로: 창작을 할 때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즐거워요.
힙플: 앞서 말씀드린, ‘랩’.. 가사 작업의 경우에 타블로만의 방식에 대해서 소개를 부탁 드려도 될까요?
타블로: 소설처럼 상상하고, 시처럼 구상한 생각들이 공책에서 낙서가 되고, 결국 입에서 랩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가사는 늘 쓰고 있습니다. 일기장이 없거든요 [웃음].
힙플: ‘전형적인’ 힙합 비트를 벗어나, 현재의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타블로: 저만의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Hiphop의 그루브, rock의 폭발적인 감정, trance와 trip-hop의 몽환 함, classical의 극적인 구성, pop의 멜로디... 이 모든 걸 한 곡에 담을 수 는 없어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어느 매력도 놓치기 싫었고, 거부하고 싶지 않았죠. 샘플링 작곡법을 버린 게 제 음악의 전환점 이였던 것 같아요. LP sampling/sequencing은 훌륭한 작곡법이고,
아직도 가끔은 사용하지만(예: 'Broken Toys'), 샘플의 의해 시작되는 작업은 결국 샘플의 중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이미 남의 물감이 묻어있는 느낌 있죠? 고민 끝에 텅 빈 캔버스로 다시 시작했어요. '평화의 날'은 연습, 'Fly'는 실습, 그리고 이번 4집은 저의 포트폴리오. 멜로디를 머릿속에서 그리고, 입으로 흥얼거리다 키보드를 쳐서 작곡하고, 리얼 악기 연주와 단음 음원들을 조합해서 컴퓨터로sequencing을 하는 작곡법이 저에겐 이제 당연하고 편해요. 코드 진행, bpm, 박자, 구성, 악기 모두 제가 원하는 데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장르나 스타일의 구애도 어느새 사라졌고, 그러다보니 현재 저만의 사운드가 생긴 것 같아요.
음악을 넓고 깊게 듣는 분들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거에요. 아무튼, 힙합에 있어서 '전형적'이라는 개념이 생겼다는 건 매우 안타깝네요.
힙플: ‘The Heart’에서 들려주고 계신 ‘곡 작업’들로 한정하여, 작업에 양향을 미친 음악 스타일이나, 뮤지션이 있다면요?
타블로: Hip hop, pop, rock, jazz, trance, garage. Philip Glass, Billy Corgan, Timbaland.
힙플: 샘플링을 통한 곡 작업과 현재의 스타일의 곡 작업에 차이점이 있다면?
타블로: 물론 하기 나름이겠지만, sample-free 작업이 훨씬 자유로워요. 'Flow'와 'Fan'의 bpm 체인지, '거미줄'과 'FAQ'의 가사 내용과 걸 맞는 style-shifting, 'Girl Rock'의 4/4 -> 3/4 박자 shift... 이런 자유로운 작곡/편곡이 가능하죠. 작곡가가 모든 걸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반면에, 하고 싶은 이야기와 운명처럼 잘 맞는 샘플을 발견 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Nocturne'과 'Broken Toys'는 트랙을 만들기 전에 스토리와 가사를 완성했고, 그 후 투컷이 수백 장의 LP를 digging해서 sample riff를 찾았는데, 궁합이 딱 맞아 떨어졌죠. 원하는 샘플을 발견하지 못해 riff를 작곡하는 경우도 있어요. '희생양'을 만들 땐, LP에서 샘플링한 느낌을 원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가사에 딱 맞는 샘플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냥 키보드로 riff를 작곡 한 후 샘플링한 곡처럼 들리게 편곡했죠. [웃음].
힙플: 아직도 논쟁 아닌 논쟁을 불러오는 ‘샘플링’에 대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일부에서는 샘플링 자체를 wack music 으로 보는 경향도 생겨 버렸거든요.
힙플: 멜로디라인을 직접 만드시고, 노래도 하셨지만, 앞으로도 음악을 함에 있어 타블로의 목소리는 주로 ‘랩’이 되는 건가요? 그 ‘랩’이 자꾸만 리스너들로 하여금, 힙합을 기대하게끔 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타블로: 랩은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아니, 아마 하다가 죽을 겁니다.
힙플: 같은 질문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앞서도 살짝 말씀 드렸지만, 정말 아쉬운 것이 힙합뮤지션들을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랩’을 정말 잘 하고, 비트 또한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데, 본인들이 ‘힙합’이 아니라고 부인을 하시니까 더욱더 아쉬움이 큰 것 같아요. 그러실 분들도 아니지만, 여기에 등 떠밀려 힙합음악을 해주세요! 하는 말은 아닙니다. 충분히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데도, 힙합도 잘하는 다른 장르의 그룹으로 방향성을 잡은 이유가 있다면요?
타블로: 우리가 스스로 "에픽하이는 힙합 그룹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에픽하이는 힙합 그룹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분들 손들어보세요 [웃음]. 우린 우리만의 음악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우리만의 음악을 할 겁니다. 우리에게 어떤 이름을 갖다 붙이든 상관없어요.
힙플: 에미히노우치가 참여한, ‘Flow’ 로 일본에 진출한다는 기사를 다른 매체를 통해 접했는데, 해외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면요?
타블로: 'Fly'는 유명 게임 OST로 채택되고 'Flow'는 M-Flo 측에서 컴필 앨범에 담고 싶다고 하니, 해외 활동을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막상 우린 조금도 다급하지 않아요. 좋은 일이 생길 땐 그저 즐거울 뿐입니다. 앞으로 즐거운 일들은 많을 듯해요.
힙플: Public Execution 의 마지막 부분 (‘에픽하이는 이제.. Bang!!’)은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나요?
타블로: 생각해보니 현실이 될까 두렵네요. 제발 저 죽이지 마세요.
힙플: 투컷과 미쓰라 두 분께도 드렸던 질문입니다.‘직업’이 뮤지션이신데, 뮤지션 친구들 외에, 다른(?) 친구들은 자주 보시나요?
타블로: 생각보다 폐쇄적이라 사람들을 별로 안 만나요. 시간의 여유가 생길 땐 가족을 만납니다.
힙플: 현재의 꿈은 어떤 것인가요? 예전의 꿈과 많은 차이점이 있나요?
타블로: 소박해졌어요, 꿈이. 꼭 결혼은 아니더라도, 좋은 여자 만나서 평생 그 한 여자에 미쳐 살고 싶어요. 평생 그 한 여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예전엔 퓰리처상이나 노벨 평화상을 꿈꿨었는데 [웃음]. 생각해보니 지금의 꿈이 어쩌면 더 비현실적이겠군요.
힙플: 저희 고정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현재의 힙합씬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타블로: 미쓰라와 동감하는 투컷과 동감합니다.
힙플: 힙합씬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타블로: 유머감각. 웃고 싶으면서 억지로 인상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요?
힙플: 음악을 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타블로: 정말 음악을 하고 싶나요, 아님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요? 둘 중 하나라도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다면, 포기하세요.
힙플: 투컷과 미쓰라의 인터뷰에서 질문의 의도가 좀 빗나가긴 했는데, 계속 어려워지고 있는 시장과 고통의 연속이라는 ‘창작’을 해야 하는, 이 ‘음악’을 계속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타블로: 저에겐 창작을 안 하는 고통이 창작을 하는 고통보다 커요.
힙플: 앞으로의 계획과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이야기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타블로: 늘 감사합니다! 꾸준히 좋은 음악 들려 드릴게요.
힙플: 지금! 행복하신가요?
타블로: 음... 죽을 만큼 행복합니다[웃음].
인터뷰 | 김대형 (HIPHOPPLAYA.COM) 사진 | 울림 엔터테인먼트 (http://www.woolliment.com)
첫댓글 헉.. 이런 기사에서도 '어의'를 보게 될줄이야ㅠㅠ
왜 머리아프지..윽...
'Flow'는 M-Flo 측에서 컴필 앨범에 담고 싶다고 하니 <- 오호 이노래 완소
얼른 아픔을 이겨내라규.
미쓰라와 동감하는 투컷과 동감합니다
타블로화이팅 정말 좋아합니다 ㅠㅠ 음악도 타블로도
사진도 좋고 인터뷰 내용도 좋고~ㅠㅠ
신해철씨 인터뷰, 타블로 인터뷰..좋은 인터뷰 2개나 보고 갑니다, 오늘. 그런데 이 기자분 맞춤법 꽤 틀리시네요; 띄어쓰기도.
멋지다 오빠-_ㅠ..
오...말잘한다.
타블로는 인터뷰볼때마다 새삼 감탄하고 투컷은 웃기고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