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구리의 눈으로 본 환경파괴와 인간의 조건
‘뉴타운 프로젝트’로 도쿄 근교가 개발되기 시작하던 폼포코 31년. 숲이 점점 줄어들면서 살 곳이 없어지자 너구리들이 대책회의를 시작한다. 긴 회의 끝에 너구리들은 인간을 알기 위한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을 시작하고, 한동안 금지되었던 변신학을 되살리기로 한다. 한편 시고쿠와 사도의 너구리 장로들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너구리들은 변신술을 이용하여 각종 사고를 일으키고, 귀신 소동을 일으켜 잠시 차질을 빚는 것은 성공하지만 인간의 개발 전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너구리는 그대로 멸망해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 세계의 틈바구니 어딘가에서 숨어지낼 것인가.
다카하다 이사오는 현실주의자를 자처한다. 이상주의자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근원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반대로, 다카하다 이사오는 초현실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여 풍자하며 한바탕 굿잔치를 벌인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을 그대로 그려내고 풍자한다.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개발은, 필연적으로 자연을 위협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노노케 히메>에서 말하듯이 인간과 자연의 생존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 모순된 상황에서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들은 삶의 길을 택한다. 너구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멸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변신술로 인간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안 너구리들은 인간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햄버거는 레몬티는 어쩌지? 라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리고 동의한다. 인간을 조금은 살려두자고. 그 풍자가 바로 다카하다 이사오가 추구하는 것이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비극적인 환경파괴의 연대기이자, 거기에 맞서 싸운 너구리들의 투쟁사다. 다카하다 이사오는 전통적인 만화 기법과 유희정신으로 이 고난의 연대기를 장쾌하게 써내려간다. 능글맞은 내레이션이 흐르면서, 너구리들의 낙천전인 생활들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너구리들은 두발로 서서 다니고,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모습이 변하기도 한다. 변신 여우들은 긴자에서 고급 술집을 열어 인간을 홀리는가 하면, 아직 자연의 힘이 강한 시고쿠에서 너구리들은 신사의 신으로 존경받고 있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상주의로는 포섭하기 힘든 현실의 추레함들마저 다카하다 이사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는 푸근한 서민적인 정서로 되살아난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화사하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서민적이고 정겨운 서정이 가득 담긴 애니메이션이다.
생존을 위해 개발을 하지만, 우리는 자연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적당히 살려둔다. 다만 인간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는 정도에서. 그러나 인간의 자비라는 것은, 너구리에게는 결국 패배다. 너구리는 맞서 싸우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변신술뿐이다. 아무리 겁을 주고 소동을 일으켜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너구리들도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각자의 삶을 택해야만 한다. 변신 너구리는 변신술로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고, 변신하지 못하는 너구리들은 또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너구리의 낙천성을 잃지 않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흥겨운 풍자와 익살이 가득하다. 너구리들이 연애를 하는 장면이나 인간으로 둔갑한 너구리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 너구리들의 회의를 묘사하는 장면 등에서는 재기가 빛난다. 시고쿠의 세 장로가 초빙되어 타마 숲의 너구리들과 합동으로 펼치는 요괴대작전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클라이맥스다. 여우 결혼식에서 전통적인 요괴까지 일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괴담과 잔살들이 총동원되어 판타스틱한 퍼레이드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구리들의 요괴대작전은 그저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이다. 너구리들의 둔갑술은 괴담이 아니라 진기한 구경거리일 뿐이다. 너구리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현실의 법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 다카하다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통하는 것도 바로 그 최소한의 믿음이다.
1994년에 만들어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10여년 전의 작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발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잔뜩 보아온 관객으로서는, 조금 서툴고 촌스러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전언(轉言)만은 지금도 변치 않는다. 인간과 맞서 싸우는 너구리들은, 상황이 점점 불리해지면서 몇개의 집단으로 나뉜다. 곤타를 대장으로 한 강경파들은 일종의 테러를 시도한다. 변신을 할 수 없는 보통 너구리들은, 노승을 따라 춤추고 노래하는 종교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현실적인 너구리들도 두 부류가 있다. 변신술에 가장 능했던 쇼우키치는 인간의 모습으로 가족을 이루어 살아간다. 폰키치는 너구리 그대로의 삶을 원한다. 크게 원하는 것 없이, 자연의 원형을 살린 공원의 한구석에서 여전히 과거와 같은 잔치를 벌이면서 흥겹게 살아간다. 어느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의 방식일까? 정답은 없지만, 다카하다 이사오는 결말에서 분명하게 방점을 찍어준다. 쇼우키치와 폰키치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전의 앞뒤 같은 존재이다. 자신의 즐거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인간보다 인간적인 너구리의 길인 것이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세계
명작동화에서 사실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추억은 방울방울>
<반딧불의 묘>
도에이동화에서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다카하다 이사오는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간머리 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등을 만들며 명성을 날린다. 하지만 단지 명작동화에 만족할 수 없었던 다카하다 이사오는 후배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1985년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든다. 또한 다카하다 이사오의 작품도 점점 사실적인 이야기로 변해간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각색한 <첼로를 켜는 고슈>는 동화에서 사실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변화하는 다카하다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1988년에 만든 <반딧불의 묘>는 폭격으로 엄마와 집을 잃은 남매가 방황하다가 결국 죽어간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희생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그렸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반딧불의 묘>는 반전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딧불의 묘>의 남매는 분명 희생자다. 그러나 핵폭탄의 희생자를 추모하며 그 참상을 선전하는 이면에 분명한 음모가 있는 것과 달리 <반딧불의 묘>는 미군의 폭격 자체를 적이라고 설정하지 않는다. 군국주의와 거기에 동조한 어른들의 사악함과 무관심이 남매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모든 것은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남매의 적은 미국이 아니라, 일본사회 자체다.
<추억은 방울방울>(1991)은 도시생활에 지친 OL이 시골에 가서 겪는 일과 과거의 회상을 유려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애니메이션보다는 영화나 드라마가 더 적당할 것 같은 소재이지만, 다카하다 이사오는 소소한 일상의 정겨움과 과거의 그리움을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안에 훌륭하게 포획해냈다. 도시보다는 농촌, 서양보다는 동양, 혁신보다는 전통에 천착했던 다카하다 이사오의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99년에는 전통적인 셀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네컷만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만들어진 <이웃의 야마다군>을 만들었다. 서민적이고, 풍자와 익살이 다카하다 이사오의 주무기임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2005-04-26
리뷰:
맘고생 심한 너구리들의 인간연구 프로젝트!
맘 고생 심한 너구리들의 인간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너구리들의 유쾌, 상쾌, 통쾌한 내 땅 지키기 대작전!!
도쿄 근방의 타마(多摩) 구릉지.
다카 숲과 스즈가 숲, 두 무리로 나뉘어 살던 너구리들은 도쿄의 개발 계획인 뉴타운 프로젝트로 인해 그들의 숲이 파괴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중지되어 있던 변신술의 부흥과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로 합의한다. 또한 시코쿠(四國)와 사도(佐渡) 지방에 살고 있는 전설의 장로 등에게도 지원군을 청하기로 하고 가위, 바위, 보 시합을 통해 특사를 보낸다.
너구리들은 외부의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며, 변신술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으로 인간들의 개발 계획과 공사를 방해하지만 결국 뉴타운 개발 계획 저지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때, 그토록 기다리던 전설의 장로 너구리 셋이 시코쿠 지방에서 온다. 시코쿠의 세 장로는 너구리 변신학을 집대성한 [요괴대작전]을 실행할 것을 선언한다. 이 작전은 인간들로 하여금 다시 너구리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품도록 함으로써, 뉴타운 개발 계획을 백지화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자! 과연!!
이후, 이들의 작전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제작 노트와 이런저런 이야기
Pre-Production Note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말하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렇게 탄생했다!
1989년 정월
“스즈키 씨.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독자적인 동물인 너구리의 영화가 없다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약 만든다고 한다면 시코쿠(四國)가 무대인 너구리 이야기 [아와 너구리 전쟁(阿波狸合戦)]을 이야기화 시키면 좋을 것 같은데.”
어느 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야심적인 기획이라고 생각은 했으나, 솔직히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프로듀서 업종의 슬픈 특성상 수익성과 기타 세속적인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됨으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말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마치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스즈키 씨. 우리 너구리를 하자고. [팔백팔 너구리(八百八狸)]를 하자고.” 라고 말했습니다. [팔백팔 너구리]를 듣고 나는, 나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팬인 만화가 스기우라 시게루 씨가 그린, [팔백팔 너구리(八百八だぬき)]가 떠올랐다.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좋군요.” 라고 대답하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다음 작품은 [토토로 대 팔백팔 너구리]로 결정이다.” 라고 만족한 듯이 이야기하였다. 일주일 정도 이야기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림까지 그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정확히 [마녀 배달부 키키]로 가장 바쁠 때 였었습니다. 바빠지면 눈 앞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특징이지요. (웃음)
1992년 3월
너구리를 하자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진지하게 말을 한 것은 그 뒤로 2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좋겠지요.” 라고 나도 주저하지 없이 맞장구를 칠 수 있었던 것도 2년 전의 일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다그쳐 묻듯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좋겠습니까? 그럴 경우에는 [팔백팔 너구리(八百八狸)]가 아니라, [아와 너구리 전쟁(阿波狸合戦)]이 되는데 괜찮겠습니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일순 망설이는 듯 보였으나, 그는 사리 판단이 무척 빠른 사람입니다. 무언가 생각한 뒤, 곧 조건 두개를 첨부하였습니다. “너구리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렸으면 한다. 그리고 박장대소를 원한다.” 였습니다.
이번에는 [붉은 돼지]에 쫓기고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로서는 기획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었기에, “알겠습니다.” 라고 답을 하고, 곧바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도 한 고집 하는 사람이지요.(웃음) 예상대로 탐탁치 않은 답이 돌아 왔습니다. “내가 너구리가 주인공인 영화를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내가 만들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런 기획이 있으면 응원 하겠지만요.”
“그런 말씀 마시고 부탁 드립니다.” 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에게 스기우라 시게루 씨가 그린 [팔백팔 너구리]를 보여 주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모아 너구리 연구를 추진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음~ 그가 간단히 승낙하지는 않았지만.(웃음) 그렇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될 거라는, 될 대로 되라는 심경이었습니다.
1992년 5월
시간이 흐른 뒤, 다카하타 감독이 이노우에 히사시 씨의 소설 [복고기(腹鼓記)]를 들고 왔습니다. 이것은 직접 영화의 원작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만, 이렇게 된 이상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이노우에 히사시 씨라면 지혜를 빌려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연락을 취해 보았습니다.
몇 번 연락을 취한 후, 이노우에 씨는 우리에게 시간을 내 주었습니다. 이노우에 씨는 나와 다카하타 감독에게 수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복고기]를 집필할 당시 모아 두었던 자료를 한번 보겠느냐고 말해 주었습니다. “일본에서 너구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다섯 명 정도일 걸요. 너구리의 일이라면 꼭 협력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어 다카하타 감독과 나는 이 자료가 있다는 야마가타 현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보면 볼수록 현대에 있어서의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시기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 같습니다.
이노우에 씨의 자료를 가지고 도쿄로 돌아 오는 도중, 다카하타 감독과 나는 너구리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헤이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다카하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쿄에 도착하여, 이 일을 미야자키 감독에게 보고하자, 감독은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헤이케 이야기]에 나오는 무수한 갑옷을 손으로 그리고, 움직이고, 색을 칠하는 어려움이란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카하타 감독도 지당한 말이라고 납득하였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의 영화화 이야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붉은 돼지]가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1992년 6월
“너구리가 주인공인 『헤이케 이야기』는 어떻겠습니까?”
어느날, 다카하타 감독이 이렇게 말을 했을 때, 드디어 이 기획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의 격렬했던 사람들의 생과 장렬한 죽음을, 너구리로 바꾸어 집단극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너구리의 변신 이야기와 시대를 현대로 옮겨서, 너구리가 개발에 의해 주거지를 빼앗기는 모습을 연결해 보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렇게 하여 지금 작품의 근본이 되는 이야기가 탄생하였습니다.
1992년 7월
[붉은 돼지] 개봉!
기획은 구체화 되었다. 무대도 타마(多摩)로 결정. 타마 구릉지에 있던 너구리들이 개발에 의해 주거지에서 쫓겨날 지경에 놓이게 되고, 변신술을 부활시켜서, 저항한다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공상적 다큐멘터리로서 현대의 너구리들을 패러디로 그려 보고 싶다. 이것은 현재의 도시에 살고 있는 너구리들의 운명을 그대로 그려 내는 것이 된다.” 라고 하는 다카하타 감독의 생각에 의해, 즉시 타마(多摩) 베드타운의 너구리에 대한 취재를 개시, 9월에는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해
미야자기 감독의 역할 말입니까?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역할상 기획자로 되어있습니다만, 본인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듯이 “나는 기획자가 아닙니다.” 라고 적혀 있지요.(웃음) 위의 그림과 같이 이번에 미야자키 감독의 역할은 독촉 부대입니다. 이것은 전쟁터에서 아군의 가장 후방에 서서 진격이라고 외치고, 우리 편을 격려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 역을 해 주시지 않았다면 과연 개봉 시기를 맞출 수 있었을까요?(웃음) 정말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너구리라고 하는 한마디에서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말하는 쪽도 말을 듣는 쪽도, 주는 쪽도 받아들이는 쪽도, 다시 한번 느끼지만 영화 제작이라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입니다.(웃음)
* 헤이케 이야기 :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우리나라의 고려 시대와 비슷한 시기)를 열게 된 전쟁으로, 교토의 귀족인 헤이안 집안과 신흥 무사 집안인 미나코토 가문의 전쟁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 중반부에도 삽입되는데, 999살을 맞은 하케타누키가 무사로 변해 화살을 날리는 인물이 바로 이 전쟁에서 공명을 떨쳤지만 형의 명령으로 자결을 하게되는 미나모토 요시츠네란 영웅이다. 이 요시츠네에게 자결을 명한 형,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일본 최초의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를 연다.
Production Note
사실보다 더 리얼한 너구리 사회 구축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기획하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난관은 너구리라는 동물에 대한 전문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너구리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해 제작진은 도쿄 마치다시의 시민 단체 ‘타마 구릉지 야외 박물관’의 도움을 얻어 본격적으로 너구리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1992년 8월부터 6개월간 17개 곳에 이르는 곳을 현장 취재했다. 이 때 찍은 스틸 사진이 729점, 비디오 테이프는 130분에 이른다. 그 외에 너구리와 지역에 대한 자료만도 민화 32권, 너구리 생태 9권, 도감 18권, 지역 역사 7권 등 총 66권의 자료를 검토했으며, 무려 267점의 스토리 보드가 작성되었다.
이는 “공상적 다큐멘터리로서 현대의 너구리들을 패러디로 그려보고 싶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의지로, 이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
사상 최다의 성우진 출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공상적 다큐멘터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보통 극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구릉지에 사는 너구리 전체를 둘러싼 군중극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라인으로 특정한 주인공이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캐릭터만 해도 25마리에, 등장 씬이 있는 너구리 30마리, 게다가 군중 장면에는 몇 백 마리의 너구리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등장 너구리의 숫자를 세는 것은 불가능한 일. 따라서 이 너구리들을 담당하는 성우들만도 셀 수가 없을 정도여서 결국 출연자들도 사전 녹음과 사후 녹음을 나누어서 진행했다. 70명이 넘는 성우진들을 본 녹음 감독은 “50명이 출연하는 작품은 해봤지만, 이렇게 많은 성우가 등장하는 작품은 처음이다.” 라며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이 많은 성우들 중 일부는 이 작품의 공동 제작사인 니혼 TV 네트워크의 실제 아나운서들이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고.
스튜디오 지브리, 최초의 실사 장면 삽입!!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 주는 또 다른 특이 사항은,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 역사상 최초로 실사 장면이 삽입되었다는 것. 이 부분은 너구리들이 침을 흘리면서 뚫어져라 바라보는 TV 요리 방송의 새우 튀김 장면이다. 이 장면에 실사를 사용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애니메이션에서 튀김 장면을 실제처럼 맛있게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사실. 둘째, TV화면이기 때문에 실사를 삽입해도 위화감이 없고 오히려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장면을 위해 튀김 요리는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단골 요리집에서 맡았으며, 실사 영화의 조감독이 투입되어 작업 팀 구성에서 화로 설치까지 대활약을 했다. 이 장면을 촬영하는 내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좀 더 기포가 많게.”, “훨씬 색이 진하게 보이게요. 어차피 먹을 것도 아니니까요, 더 튀겨주세요!”, “한 두개만 넣으면 외로워 보이니까 한꺼번에 다 넣어주세요.” 등 세세한 주문을 했으며, 특별 주문된 20cm짜리 새우가 계속해서 튀김 냄비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OK 싸인이 났다고. 이 날 스탭들 사이에서는 새우 튀김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스튜디오 지브리 역사상, 최초로 사용된 CG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 역사상 최초로 CG가 사용되었다. CG로 처리한 부분은 도서관에서 오로쿠 할멈이 젊은 너구리들에게 자료를 보여주며 강의하는 장면이다. 책들이 들어서 있는 서고를 카메라가 부드럽게 들어가는 장면이다. 실사 영화라면 비교적 간단히 촬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배경 동화의 각도가 변해가는 책꽂이를 하나하나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마어마한 일손이 드는 부분이다. 이는 완성된 것을 보는 일반 관객에게는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어, 애니메이터에게 있어서는 보답 받지 못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카하타 감독은 이러한 것이야 말로 기계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용한 컴퓨터는 ILM(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특수효과 회사)이 [쥬라기 공원]에서 사용한 인디고라는 기계로 니혼 TV 네트워크의 CG부와 함께 작업했다. 하지만 컴퓨터에 관해서는 완전히 초등학교 학생 수준이었던 스튜디오 지브리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C로는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주십시오.” 라는 단순하지만 지극히 어려운 주문을 실행해 내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니 쉽게 만들어 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작업은 1993년 7월에 시작하여, 영화 완성의 며칠 전이라고 하는 아슬아슬한 시점에 종료 되었다. 미국은 제쳐두고 일본에서는 CG의 화상을 35mm 필름의 해상도를 만족시킬 퀄리티로 제작하고, 필름에 직접 출력하는 것 자체가 이제까지 거의 행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시행착오와 피땀어린 결과로 태어난 CG장면!
제발 “CG라니... 도대체 어디서 사용한 거야?” 라고 생각해 주시길...
바로 이 장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주인공들 까메오로 깜짝 등장!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이 장면!
시코쿠의 세 장로를 주축으로 너구리들은 인간과의 최후의 결전으로 요괴대작전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너구리 대집회를 개최한다. 시코쿠의 장로들과 너구리들이 펼치는 화려한 요괴대작전의 초반 부분을 주목해주시길!!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사하는 깜짝 선물이 등장한다. 희한하고 독특한 각종 요괴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틈에 살짝 보이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주인공 캐릭터들이 그 것. 빗자루를 타고 날으는 마녀 키키, 붉은 돼지, 우산을 쓴 토토로, [추억은 방울방울]의 주인공 등 우리에게 낯익은 애니 캐릭터들이 너구리, 요괴들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대표하는 각종 주인공 캐릭터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 것!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은 어떻게 깨지는가?
인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만복사(萬福寺)에 너구리들이 설치 한 텔레비전을 곤타가 주먹으로 부수는 장면을 그리기 위한 제작진의 고심은 실로 대단했다. 브라운관이 깨지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그려내는 것에 대한 의견은 굉장히 분분했고, 결국 제작진은 직접 브라운관을 깨보기로 결정했다.
곤타가 부수는 것과 같은 조건을 위해, 주차장으로 텔레비전을 들고 나가 전원을 연결해서 켜고, 그 앞에 비디오 카메라 두 대와 스틸 카메라를 준비한 후 마지막에 등장한 것이 머리에는 헬맷을 쓰고, 오토바이 선수가 입는 복장에, 가죽 장갑을 끼고 금속 배트를 든 제작부의 모씨. 그 주위를 열명이 넘는 애니메이터가 숨을 죽이고 둘러 앉았다. 침묵의 순간, 그리고 펑하며 울리는 소리. 홈런~
그러나 텔레비전은 전혀 깨지지 않았고, 계속된 시도 끝에 쇠방망이를 들고 도전함으로써 간신히 브라운관은 깨졌지만 대부분이 기대했던 폭발도 없었고, 섬광이 튀지도 않았다고.
이에 이 이벤트는 없었던 일이 되고, 여기에 쓰였던 부서진 텔레비전은 제작 기간 중 불단(佛壇) 대신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너구리의 네 가지 모습
기획 단계에서 언급되었던 많은 작품 중에 스기우라 시게루의 만화 [팔백팔 너구리]가 있었다. 기획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꼬마였을 때 가장 좋아했던 만화로 이 작품이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게 아쉽다고 생각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작품 안에 스기우라 씨의 너구리 캐릭터를 등장 시킨다. 그것이 패배했을 때의 너구리 모습. 감독은 이 캐릭터를 단순한 게스트 캐릭터가 아닌 “주인공 너구리들이 정신적으로 졌다는 기분일 때 자연스럽게 이 모습이 되어 버린다.” 라는 독특한 설정을 하였다. 결국, 마음 속의 모습이 외견으로 보인다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아이디어인 것.
이 발상은 한층 더 확장되어 패배했을 때의 너구리, 기분이 좋을 때의 모습, 일상적인 직립 상태의 모습, 인간들이 흔히 보는 생물학적인 너구리의 모습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