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의 뉴스 셰프] 공주님이 떴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마구 터집니다. 공주님은 우아하게 포즈를 취해줍니다. 다음 날 언론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상에 전합니다. 관심은 주로 그녀의 명품 의상과 외모입니다. “TPO를 아는 이서현 패션, 역시 패셔니스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입술반지 눈길” 공주님 두 분이 같이 뜨면 관심은 더 뜨거워집니다. 무슨 브랜드의 얼마짜리 옷을 어떤 컨셉으로 소화했는지가 주 관심대상입니다.
“이부진·이서현 자매, 상류층 패션 아이콘으로”
“이부진 vs 이서현 삼성가 패션은? 명품중에 명품 ‘입이 떡’”
“삼성家 이부진 vs 이서현…패션코드로 한판 붙나?”
“삼성家 이부진 손지갑·이서현 코트 인기 부쩍… ‘나도 그들처럼’ 재벌 패션 따라하기” 무릇 여자는 예쁘고 볼 일입니다. 특히 공주님은 아름답고 볼 일입니다. 한국에 다이애나비가 생긴 듯합니다. 기사내용의 일부를 소개해 드립니다. “삼성그룹 패션사업을 주도하며 평소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이서현 부사장은 금색 단추가 포인트 된 밀리터리풍 코트를 입었다. 이 제품은 프랑스 명품 발망제품으로 가격이 천만 원대로 알려졌다. 이어 구두는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의 슈즈를 신었다. 알라이아는 삼성 제일모직에서 운영하는 멀티샵 ‘10 꼬르소 꼬모’에서 들여온 브랜드다. 이 부사장은 평소 공식석상에서 아제딘 알라이아의 의상과 구두 등 제품을 자주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삼성가 3세라는 후광에, 미모를 갖춘 데다 초고속 승진으로 능력까지 인정받았다. 여러 가지 매력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한국 상류층을 대변하는 패션 아이콘으로 부상 중이다. 백합과 장미.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 이미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우수 어린 얼굴과 학처럼 가늘고 긴 다리를 지닌 이부진 사장은 ‘백합’처럼 우아한 기품이 있고, 강하고 세련된 전형적인 도시여성 스타일의 이서현 부사장은 ‘장미’처럼 화려해 보인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을 가장 많이 닳은 이부진 사장은 큰 눈에 여성미가 매력적인 스타일이다. 네 아이의 엄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늘씬한 몸매를 뽐내는 이서현 부사장도 세련미가 넘치는 도시형 미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스타일링을 자랑하는 이들 자매가 럭셔리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최근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들 자매는 ‘블랙&화이트’ 패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기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김태희 공주도 시샘을 느낄 만한 찬사 중의 찬사를 두 분 공주님은 받고 있습니다. 두 공주님은, 다름 아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두 딸 이부진-이서현 자매입니다. 삼성그룹 관련 보도는 최근 중심을 잃고 있습니다. 보도라기보다 홍보에 가깝습니다. 홍보도 그냥 홍보가 아니라 낯부끄러운 찬사 일색입니다. 이런 경우를 기자들 말로 ‘쪼찡’이라고 합니다. 삼성가를 향한 언론의 찬사는 금도를 넘어선 심각한 수준입니다. 삼성이 단순한 재벌이 아니라 이 나라 ‘왕국’임을 실감케 합니다. 삼성과 관련해 쓸 내용이 고작 그것 밖에 없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공식석상에 나타나도 관련 보도는 역시 비슷한 틀입니다. “이건희 회장 칠순잔치 참석한 삼성家 패밀리 패션코드는 ‘노블’”
“이건희 회장 전용기가 하와이로 가는 까닭은?”
“일본 출장 이건희 회장 '하와이행' 소동” 이런 보도는 엄밀히 보면 경제 기사가 아닙니다. 연예 기사입니다. 인기절정의 연예인이 등장하면 뭘 입고, 무슨 표정을 지었고, 어떻게 움직였다는 동정을 상세하게 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언론의 삼성가에 대한 관심이 잘못됐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초일류 기업임에 틀림 없으니까요. 우호 일변도의 보도도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삼성이 잘하는 일이 많으니까요. 문제는 우리 언론이 짚을 건 제대로 짚으면서 그런 연예 뉴스류의 관심을 갖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삼성가의 두 딸이 일약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 3세 경영의 전면에 나선 이후일 겁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3일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인 이재용(43), 이부진(41·여), 이서현(38·여)을 각각 삼성전자 사장,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 겸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으로 나란히 승진시키면서 3세 경영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명품 아이콘으로 주목받는 삼성가의 두 딸(사진:머니투데이)
그 때 경향,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언론들은 경영승계의 문제점을 충분히 짚지 않았습니다. 직무유기를 한 겁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젊은 경영’을 얘기하자 “요즘 재계의 화두는 ‘젊은 경영’이다.”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자식들로의 경영승계를 지칭하는 ‘젊은 경영’이 어떻게 화두가 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삼성그룹 인사가 발표되자 “삼성그룹 신임사장 평균 연령이 지난해 53.7세에서 올해 51.3세로 낮아졌다”며 세대교체 혹은 젊은 경영이 구체화 된 것처럼 맞장구를 쳤습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신임 사장(42)과 이부진 호텔신라 신임 사장(39)을 제외하면 신임사장 평균 연령은 54.4세로 0.7세 높아졌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주창한 ‘젊은 조직’은 오너 일가에만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국민들에게 이런 내용을 짚어줘야 했을 겁니다. “시장에서 인정할 수 있는 뚜렷한 경영실적 없이 이건희 회장의 아들과 딸이라는 점 때문에 세 자녀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는 것은 삼성 후진성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재계 총수의 자녀가 손쉽게 고위 임원직에 오른다면 이는 방만 경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벌 총수 일가의 초고속 승진과 조급한 경영승계는 경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만큼 충분한 경영수업과 경영능력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세습경영이 아닌 전문경영인의 기업 경영이 우선돼야 한다.” 또 인사와 함께 슬그머니 부활한 그룹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의 부활에 대해서도 짚어줬어야 했습니다. “과거 편법상속과 차명계좌 운용 등 불법행위를 주도했던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뒤집는 행위다.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소유지배구조의 선진적인 발전 과정 없이 과거로 원점 회귀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건희 회장이 맡은 삼성전자 회장직 역시 주총에서 선임된 것도 아니고 이사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직책이며, 미래전략실 역시 권한은 있되 책임은 없는 조직이다. 삼성의 구조는 계열사 사장들을 무력화시키면서 회장과 미래전략실의 잘못된 경영행위에 대해 계열사 사장들이 법적 책임을 지게 하는 아주 모순된 지배구조다.” 이런 지적을 국민들에게 해 준 언론사는 불과 몇 군데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언론들은 그저 삼성이 주는 보도자료만 베껴 전하거나, 일가의 움직임을 연예인 동정처럼 미화시켜 전하는 일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런 보도 패턴은 하나의 유행처럼 돼버렸습니다. 왕위는 승계해도 초일류 기업이 승계로 이어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공주는 사치스러워도 재벌가 딸들의 호사를 유행 아이콘처럼 흥밋거리로 홍보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젊은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삼성전자 한 사원의 자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오너 일가의 동정을 연예인처럼 따라다니며 홍보하는 건 언론의 사명이 아닙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