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나이에 찾아온 제자들>/구연식
스승의 날 아침에 메시지가 왔다. 올해 환갑인 여고 3학년 담임교사 시절 학생들이다. 나의 거주지로 오겠다는 내용이다. 졸업 4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이름을 들어 보니 기억에 있는 제자들이다. 반갑기도 하고 그 옛날 30대 청년 시절의 나와 낭랑(琅琅) 18세의 여고생들의 그림이 떠오른다.
모두 다 사회활동이 왕성한 제자들이다. 서울과 전남에서 살고 있다. 한 학생은 섬에서 살면서 군산으로 유학 온 학생으로 가정방문을 했을 때 바로 언덕 위에는 시립 수영장과 도서관이 있어 운동과 공부를 잘할 수 있겠다고 기억하고 있었으며, 다른 학생은 교내 체육대회를 마치고 뒤풀이 행사로 교실에서 책걸상을 모두 뒤로 몰려 놓고 장기 자랑을 할 때 권투 선수 폼으로 춤을 추어 박장대소를 자아내게 했던 제자이다. 아마도 나는 진즉 은퇴하여 한가한 여유를 전주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고 스승의 날 당일에 소식이 온 것 같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이유를 밝힐 수 없어 다음날 익산에서 평소 들렀던 식당 중에서 외지인도 쉽게 찾고 주차할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제자들은 전주에서 뵐 줄 알았는데 익산이라고 하니 의아한 느낌을 받는 듯했다.
예나 지금이나 생활신조는 남이 나를 따르도록 하는 것보다는 내가 스스로 남을 따르는 습관이 있어 20분 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주차할 곳과 점심 메뉴 그리고 나머지 일정을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40여 년 전 아침 일찍 출근하여 교실 창문을 활짝 열어 제키고 환기를 시켜 교실에서 학생들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제자들은 얼마나 변했을까 등등 생각하는데 약속 시간 5분 정도 늦게 제자들이 도착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산가족 상봉처럼 손을 잡고 손등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너무 오랜 세월 만에 만난 느낌의 표정이 잠시 침묵으로 흘렀다.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 전 스승의 날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무슨 덕담을 해야 할지, 멀리 경향(京鄕)에서 오는 제자들에게 줄 나의 징표라고 할 물건도 챙겼다. 10여 년이 넘게 수학(修學)하며 여러 군데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서예(書藝) 작품을 골랐다. 그리고 틈틈이 쓰고 있는 수필등단 작품과 수필집이며 기타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팸플릿 등을 챙겨갔다. 다른 제자들을 만날 때는 나의 수필집을 주었어도 이번엔 60세가 넘은 제자들이 너무 고마워서 처음으로 서예 작품을 추가했다. 혹시 점심 식사 후에 바로 헤어질 것을 예상하여 챙겨 온 것을 모두 식당으로 가져가서 주기로 했다. 식사 주문 후 기다리는 여유 시간에 제자들에게 자랑(?) 보다는 초라한 담임교사의 모습을 안심시키려는 속셈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넘겨주었다. 모두 다 담임선생님의 마음과 손 떼가 묻은 작품에 감사하고 있었다.
산업사회의 메커니즘 속에 삭막해지는 인간애(人間愛)는 공장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오직 생존 경쟁의 아우성처럼 기계적 마찰음만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 전제정치(專制政治) 시대에도 군주는 스승에 대한 신뢰와 가르침을 통치이념에 부각 시켰다.
유럽을 지배하고 세계정복을 꿈꿨던 알렉산더(Alexander)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한 사람은 부모님이지만, 대왕으로 길러주신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 하면서 그리스의 대석학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를 추앙하고 모셨다.
조선왕조 태종 이방원의 스승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의 치악산 은둔 생활 일화는 유명하다. 어린 이방원을 사람 됨됨이 반듯하고 또 학문에 조예가 깊음을 인식하여 제자로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나 고려 말기의 역성혁명과 왕자의 난을 보고 원천석은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리고 치악산 자락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학문에 몰두하였다. 태종 이방원은 그간 여러 번 운곡 선생을 모시려 하나 거절을 당하였다. 훗날 상왕 자리로 물러난 태종은 다시 한 번 스승인 운곡을 청했다. 원천석은 태종을 알현하기 위해 입궐했는데 의관이 아닌 하얀 상복(喪服) 차림으로 입조(入朝)하여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전제정치 철옹성 북한 김정은 역시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후계자 수업 때 지도자였던 현철해 사망 1주기 때 묘소에 직접 찾아가 꽃을 진정(眞情)하고 추모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나는 위대한 정치가를 길러낸 스승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동량(棟梁)들을 길러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작은 밀알이 싹 틔우고 자라서 꽃 피우고 열매 맺기까지는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도움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회화(社會化) 과정에는 학습, 모방 그리고 경험의 영역 중에서 학습이 제일 큰 영역이다.
제자들의 눈치로는 저녁 식사까지 생각하고 온 것 같다. 그러나 매주 화요일 오후에는 모 학교에 특강 수업이 있는 날이다. 그렇다고 저녁 수업을 말하면 찬물을 껴 얻는 것 같아서 얼버무리하면서 뜻만 전했다. 인근 카페로 옮겨서 학창 시절과 그간 살아온 이야기로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이어져 카페 주인이 눈치 할 정도의 긴 시간을 한곳에서 보냈다. 다음에는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이야깃거리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모처럼 초임 시절의 풋풋한 청춘 교실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 하루해가 저물었다. 늦은 시간 귀가하면서 자동차의 룸미러에 내 얼굴을 비춰봤다. 잔 골짜기 산 위에는 때 이른 억새꽃이 희끗희끗하여 작은 흔들림에도 물결친다. 청춘은 일장춘몽 마음먹기 달렸는가 싶다.
그래도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나를 위로해 준다. (2023.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