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혁명의 다음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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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넨셜 타임스>의 논평이 아니더라도, 오직 촛불의 힘으로 이루어낸 이 명예로운 혁명은 민주주의 실천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임이 틀림없다. 민주주의, 곧 데모크라시가 ‘시민(데모스)의 통치(크라티아)’를 뜻하는 말임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조금 더 들어가면 ‘크라티아’는 어원상 ‘크라토스’(힘, 군력)와 통한다. 데모크라시는 그러므로 시민의 총치이기 이전에 시민의 힘, 시민의 권력이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진 빚 1억원을 갚아주자는 운동이 벌어지자 단숨에 12억원이 모인 것은 시민의 권력의지와 참여의식이 얼마나 강렬한 지 증언하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후원금을 낸 무명의 시민이 남긴 “민주주의 및 시민권력 확인료”라는 메시지는 데모크라시의 본뜻을 명료하게 알려준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력이며 시민의 통치다. 촛불혁명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계속된 민주주의 후퇴를 일거에 만회한 데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본질을 집합적 힘으로 드러내는 차원으로까지 다가간 것이다.
지난 역사가 보여주듯이 혁명은 두 번째 혁명을 잉태하고 출산한다. 프랑스혁명이 그랬고 러시아혁명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혁명이 태아 상태에서 또는 출산 직후에 사멸하고 만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 현대사만 봐도 4·19혁명은 좌절로 끝났고 6월 항쟁은 미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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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촛불이 밝힌, 우리 앞에 놓인 목표와 이상을 향해 침착하고도 집요하게 나아가야 한다. 어둠 속에서 올라온 세월호가 육지를 향해 항진하듯이
고명섭(논설위원) 2017.03.29.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