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는 그 검은 색 핸드폰이 짙은 어둠속에서 유유히 빛나며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처음에 발견할 때처럼. 이봐 여기있어라고 하면서....
마찬가지다. 오늘도 역시 똑같은 꿈을 꿨다. 하지만 매번 꿀 때마다 그 놈들은 더욱 더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또한 꿈을 깨고나도 웬지 미묘한 현실을 부정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핸드폰을 들었다. 푸른 빛... 액정의 초록색화면은 익숙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선 느낌이 든다. 이걸 버리면 어떨까? 버린다고 해서 매일같은 악몽에서 헤어날 수가 있을까? 아니지 부셔버릴까? 혹시 이것에 악령이 깃들어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바닥으로 힘껏 던졌다.
“ 타악!!”
멀쩡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지... 이 기계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도 누구에게 얘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거다. 사실, 전화를 걸어서 상대방에게 죽는 다는 한마디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과연 죽을까? 예전에 어떤 심령학 사이트에서 읽은 언령*이라도 깃든단 말이야?
차근차근 다시 핸드폰을 보던 나는 어떤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핸드폰을 얻게 된 이후로 약 3개월정도가 지났다. 그런데 그 사이 나는 한번도 밧데리를 충전시키지 않았다. 액정화면에 보이는 밧데리 충전지수는 언제나 풀이었다. 그것을 한번도 의아해 하지는 않았지만 웬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물건임을 어느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핸드폰의 번호도 모른다. 물론 상대방에게 전화를 할 때는 발신자번호표시제한으로 전화를 하지만, 이 핸드폰으로 누군가의 전화를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이다. 내 전에 누군가가 사용했다면 혹시나 이 번호로 그 전 주인의 주위사람들이 전화를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본 결과 보통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핸드폰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기지국은? 011인지 016인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 핸드폰의 번호를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든게 모아졌다. 핸드폰의 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자세히 보니 이 핸드폰에는 모든 핸드폰에 달려있는 메뉴라는 버튼은 달려있지 않았다. 마치 그런건 필요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발신자번호표시제한으로 하지 않고 전화를 하게 되면 알게 될 것 같다. 받는 번호가 있으면 반드시 거는 쪽 번호가 있어야 하니까....
다음날 아침 나는 집 근처 전파상에서 발신자번호가 표시되는 전화기를 한 대 구입했다. 어떻게든 알아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비현실적인 물건을 어떻게든 현실적인 물건으로 바꾸어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전화국에 들려 발신자번호를 표시하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창구에서는 오후부터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시내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모토로라 대리점을 발견했다.
“ 스타택이랑 비슷한 디자인인데요.... 그런데 저희 제품은 아닌 것 같은데요?”
“ 네....”
첫 번째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어떻게든 서비스가 가능할 때까지 기다려야 될 것같다. 급하다고 해서 이 위험한 물건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번호를 물어 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이 전화를 받았던 사람들은 현재 모두 세상에 없다.
침대에 누운 채로 기다리다가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벌써 밖은 어둠이 짙게 내려왔다. 잠깐 거실로 나가 주방으로 향했다. 집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부모님은 오늘도 밤늦게 들어오실 모양이었다. 식탁 위의 물잔에 물을 따르다가 각 종 청구서, 고시서 사이의 틈에 끼인 이상한 봉투를 발견했다. 검은색 봉투였다.
‘ 뭐야 이건?’
무심코 봉투를 집은 나는 방으로 돌아와 원래 꼽혀있던 전화기의 코드를 빼고 새로 사온 전화기의 전화선을 꼽았다. 새 전화기의 액정이 반짝거렸다. 이제 알 수 있겠지...
도대체 무슨 번호가 뜰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어떻게든 번호가 뜬다면 나는 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볼 것이다. 그리고 없는 국번이든 무엇이든 간에 이 핸드폰은 비로소 현실적인 물건이 되는 것이다. 바로 내 눈앞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핸드폰의 플립을 열어 우리 집 전화번호를 눌렸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는 심호흡을 하고 절대 전화는 받지 말고 확인만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받았다가는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액정에서는 전송을 하는 문양이 나왔다. 이 그림도 참 이상하게 생겼다고 문뜩 생각했다.
웬일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핸드폰에서는 계속 신호를 보내는 메시지만 뜰 뿐 정작 들려야할 통화연결음이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는 터지지 않는 지역인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지금까지 언제 어디서건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집 전화번호를 누르고 SEND버튼을 눌렸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무릎위에 올려진 검은색 봉투를 발견했다. 마치 이 일의 이유는 이 안에 적혀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핸드폰의 신호를 걸어둔 채로 봉투를 찢었다. 검은색 봉투니까 검은색 편지지가 나올거라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흰색 종이가 접혀있었다. 종이를 펼치니 마치 신상명세서처럼 쓰여진 글씨가 보였다.
지금까지 사용하신 휴대폰의 이용료를 아래와 같이 청구합니다.
고객 성명: ㅁ ㅁ ㅁ
기본요금: 50000원
통화료: 832700원
서비스요금: 145342100원(서비스 내용: 위시 마스터)
......
뭐지? 이 핸드폰 사용료인가?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전화를 쓰면 통화료가 있는게 당연한 일인 것이다. 왜 이때까지는 몰랐을까?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 내 눈으로 서비스요금의 숫자를 거꾸로 세어가다가 깜짝 놀랐다.
1억이 넘잖아! 무슨 핸드폰 요금이.... 아니다, 이 핸드폰은 현실적인 물건이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아래 부분을 읽었다. 아래에는 마치 첨부라는 것처럼 작은 글씨들이 찍혀있었다.
부가서비스로 사용하신 597명의 살인 이용료는
7345267563400원입니다.
따라서 부가세 2000원포함 납입금액은 7345413790200원입니다.
납입금액을 현금으로 처음 핸드폰이 놓여있던 장소에 7월 25일 오후 4시까지 지불하시기 바랍니다.
‘ 일, 십, 백..... 천억, 조?!!’
이런 미친! 잘 못 세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분명 ‘조’단위였다. 어느순간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도 아니고 조라니! 장난일거야...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깐 분명히 이 핸드폰은 현실의 물건이었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가 이 핸드폰을 쓰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모른다. 그럼 어떻게 나에게 이런 미친 청구서가 날라왔겠는가? 나는 긴장되는 손을 떨며 제일 아래에 적힌 글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미납시에는 1원당 고객의 수명 1분을 연체금으로 받습니다. 연체금이 없을 경우에는 부가서비스 내용을 돌려받습니다.==
1분? 지금 시각은? 책상위의 탁상시계는 막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오후 세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10시간이 지났다. 마감시간의 날짜는 분명히 오늘이었다. 아니 정확히 어제였다. 아무리 분으로 환산해도 7조가 넘는 분(分)은 남은 내 수명으로 보다 더 많을 듯 했다.
“ 뭐야! 그럼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야?!!”
“ ..... 소리야? ”
분명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였다. 그리고 내 방의 정적은 갑자기 이상한 기운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내 옆의 침대위에 놓여진 핸드폰의 액정이 기분나쁜 빛을 띄고 있었다.
“통화중”
어느 순간부터인가 핸드폰은 방금 설치했던 내 방의 전화기와 연결되어있었던 것이다.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방금 들었던 소리는 내가 놀라 뱉었던 말이 이 핸드폰으로 들어가 어딘가의 신호를 타고 다시 내 방 전화기로 들어와 미묘한 시간차이로 전화기의 스피커로 울려 퍼진 것이었다. 왜 전화가 연결이 되었는지, 왜 전화기가 스피커폰으로 설정되어있었는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거실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무엇인가 아주 불길한 기운이 서서히 내 방쪽으로 오고 있었다.
내 방문의 손잡이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바로 판단이 섰다.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인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반대편 창문으로 향했다.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서둘러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뒤들 돌아보고 싶지만 그랬다간 어떤 무시무시한 것이 바로 내 코앞에 서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를 내려다 봤다. 꽤 높은 거리다. 하지만 주저할 수 없었다. 창틀에 발을 올렸을 때 등 뒤에 차가운 것이 몸으로 들어오는 걸 느꼈다.
등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왔다. 무언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 것은 다시 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약간의 위치만 바뀐채 다시 들어왔다. 그건 길다란 횟칼이었다.
나는 숨이 막힐 듯한 고통속에서 뒤를 돌아봤다. 복면을 쓴 남자가 기분나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등에서 다시 한 번 빠진 칼은 이번에는 나의 배를 파고들었다.
“ 커....헉.....어..억....”
숨이 막혔다. 아니 쉴 수가 없다. 내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기분나쁜 미소를 보인 남자는 다시 한 번 배에서 칼을 빼고 이 번엔 나의 목을 겨냥했다.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들었다. 죽지는 않은 것인가? 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통이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몸 아래에서는 여기저기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정도로 찔리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다. 단지 고통만 느끼고 있을 뿐이다. 죽고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것이다. 핸드폰을 발견한 순간부터!!
그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불길이 내 방문을 뚫고 나를 덮쳤다. 나는 그 화염속에서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의식을 잃었다.
또 다시 정신이 들었다.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아주 낮은 천장이었다.
“ 어떻게 된거야? 아직 살아있잖아!”
“ 설마... 이렇게 상처가 큰데?”
“ 엄청 큰 폭발이었는데.... 그런 가스폭발은 처음이야... 거기서 살아났다니...”
그곳은 구급차 안이었다. 내 옆의 구조대원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다니... 아냐 나는 죽고싶다구!!! 그러나 그런 생각도 역시 잠깐 또다시 고통이 엄습했다. 이번에는 불에 달궈진 쇠가 온 몸을 지지고 있는 듯한 고통이었다.
“ 쾅!!!”
구급차 옆이 뚫렸다. 어떤 차가 들이 받은 듯했다. 본넷이 없는 걸로 봐서 트럭이다. 트럭은 구조대원을 덮치고 나를 덮쳤다. 그 순간 반대쪽이 뚫리고 강한 충격이 왔다. 구급차 양쪽으로 다른 차들이 들이받은 것이었다. 이 번에는 온 몸의 뼈가 부스러지는 고통이다.
제발.... 제발.... 나를 죽여줘....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는 역시 눈을 떴다. 이 번엔 병원 응급실이다. 처음부터 당했던 고통들이 다시 한 번 찾아왔다. 고통스러워도 몸부림 칠 수는 없다. 내 몸의 뼈는 모두 산산조각 났기 때문에...
두 명의 의사가 다가온다. 한 쪽은 무언가를 양손에 들고 있다.
“ cardiopulmonary arrest*상태다. cardiac defibrillator*는 준비됐어?”
“ 예. lubricant*도 충분히 발랐습니다.”
무슨 소리지? 한 의사가 양손에 든 무언가를 문지른다.
그래... 똑 같다. 강도, 가스폭발, 교통사고...나에게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죽은 방법과... 그것도 순서대로... 그렇다면 저것은 똑같이 내 몸과 붙어버릴 것이다. 주영이가 플러그랑 손이 달라붙었던과 같이...
다리미처럼 생긴 기계가 내 몸에 닿는 것을 느낀다. 차갑다....
....앞으로 593번 남았다는 건가...?
살이 타는 냄새가 난다. 그건 바로 내 심장이 타는 냄새 일거다.
<끝>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흡하지만 주석도 좀 달아봤습니다.
내용이 좀 잔인해 진 것 같은데여... 그래도 인과응보니까...^^;;
다음 글은 또 시간이 나면 올릴께여..
좋은 평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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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령(言靈): 말에 붙어 있는 유령. 흔히 “말이 씨가 된다“라는 것도 언령의 무서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는 말에는 이 영이 잘 붙는다. 따라서 고대의 사람들이 말을 아꼈다고 한다.
* cardiopulmonary arrest(의학용어): 심폐정지
* cardiac defibrillator(의학용어): 심장제세동기
* lubricant(의학용어): 윤활제, 전기전도를 높이고 피부마찰을 줄이는 전도체 겔.
첫댓글 오호~~! 지금까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처음 소설 도입부의 내용에 저런 뜻이 있었군요. 대단하네요~~!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건필하세요~~~
그럼.... 593번의 죽음을 더 당해야 된다는??? 헉. .무섭다... 넘 재밌었구요.. 다른 이야기도 기대해볼께요.. .^^ 수고하셧어요~
아...정말 재밌게 봤습니다..감사합니다..건필하세요~~~
good~!
정말 섬뜻하네요...기발하기도하구요...남을 헤하는 비술이 있는데 이것을 쓰면 나중에 자신에게 배가되어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비술을 행할시 주의하라는 그런 문구가 붙었던데...아마 이 남주도 그런것 같네요...잘읽었어요.
잼있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마니 마니 쓰세요..
우와 너무 재밌어요! 어떻게 이런 재밌는 글을 쓰실 수가 있죠!!!!!!!!!!
너무너무 잼있어요 ㅠ0ㅠ 우와; 진짜 1편부터 짱이였는데/
잼이써여!!!
감사합니다!!예전에 스타택 핸펀을 잃어버렸는데 아무리해도 연락이 안되서 줏은 놈 확 저주나 받아라라고 생각한데서 출발한....글입니다..쿨럭~~^^;;차차 되는데로 다음 글들도 올릴게여... 많은 평가 부탁드릴게여~~~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