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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강은교 시인과 내연산을 오르다
월포 조경대
청하현의 양대 명승지는 내연산과 조경대이다.
조경대 누각터를 어서 복원하여
관광자원은 물론이고 인문학의 유산을 우리시대에 살려야 한다.
내연산 선열대
선열대가 선일대로 와전되어 등산 안내판에도 안내 기와에도 정자에도 모조리 엉뚱하게 선일대라고 해 놓았다
어서 선열대로 이름을 바로잡아야 한다
선열대 위의 백운암과 운주암은 무문관 같은 참선 수행 공간이었다.
색계, 무색계 선정에 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열락이 몰려온다.
유마경의 표현대로 수행자는 선정의 이 열락을 음식으로 삼아 수행의 동력으로 삼는다.
'선정의 열락'을 가져오는 참선 수행 공간이었던
백운암과 운주암을 합칭해 선열암이라고 하였다.
선열암의 수행자를 뒷바라지 하던 암자는 대비암이었다.
그래서 그 곳의 암대를 선열대禪悅臺라고 하였다.
선열대가 20세기 후반에 들어 엉뚱하게 선일대仙逸臺로 와전되고
다시 엉뚱하게 신선이 숨어 산다, 어쩐다 하는 해괴망칙한 이야기가 창작되어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안내되고 있다.
선열대라고 하는 본래 이름을 회복하여야
역사적 철학적 종교적 문화적 지리적 모든 의미체계를 회복할 수 있다.
본래의 의미체계를 회복해야
우리시대 사람들에게 진정한 인문학적인 의미가 살아나고
이 공간은 사람들에게 관조와 성찰과 치유의 효용이 가능할 것이다.
상생폭도 물론 20세기 후반에 쌍폭이 와전된 족보없는 엉뚱한 이름이다.
사자폭, 사자담, 사자항이라는 본래 이름을 어서 회복해야
부처님의 사자후를 토하는 무정설법을 들을 수 있는 인식이 생길 것이다.
동양의 대문호 소동파의 오도송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이 실종된 천민자본주의 시대의 천박함을
이젠 극복할 수 있는 지성과 감성이 우리에겐 있다.
선열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와 호미곶 영일만
해월 황여일 선생 일행은 여기서 해와 달이 뜨는 우주를 관하며
호연지기를 노래하였다.
삼년 숙성된 김치가 맛있는 진주식당에서 비빔밥으로 배를 채우고, 금강산도식후경
산놀이遊山하고 내려오며 전통찻집 양지방에서 주인이 귀한 손님들 오셨다며
매화송이를 찻잔에 띄워 주었다.
새큼한 매화 향기
화제가
三龍湫瀑下 내연산 삼용추 폭포(잠룡, 관음, 연산 3폭포) 아래서
悠然見南山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그림 속 인물은 도연명과 같은 산림에 은거하는 덕 높은 선비)
이라고 하였다.
이 그림의 이름은 고사의송견남산도高士倚松見南山圖라야 명실상부하다.
명명 권한은 소장처가 가지고 있는데 엉뚱하게 고사의송관란도觀瀾圖라고 붙여놓아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겸재 정선의 미완성 그림 청하내연산폭포도 선비들이 앉은 곳은 연산폭 아래 용담 가의 관어대
그림 왼쪽 솔숲 사이에 선열대의 백운암과 운주암雲住庵이다.
선열대는 선열봉, 백운대, 운주봉, 기화봉妓花峰이라는 별칭이 있다.
넋두리
오암당 의민 스님
운주봉을 붓으로 삼고
삼용추폭포를 벼루로 삼아서
일만폭 바위 병풍에
뜻가는 대로 나의 시를 쓰리라
설산당 담호 스님의 공덕비 비문은
서울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 당한
미당 서정주를 중앙불교전문학교 제자로 받아준
근대의 대학승 석전 영호 박한영 스님이 지은 것이다.
이 비의 맨끝에
<내연산에 삼용추 폭포가 있는데 금강산 구룡연과 철원 용화리 삼부연 폭포와 백중을 다툰다고 하는데
뒷날 내연산에 와서 보고 싶다>고 하였다.
금강산 구룡연, 철원 삼부연, 내연산 삼용추 이 3폭포는 모두 겸재 정선의 화폭에 담겼다.
18세기 안동의 유학자 유휘문은 내연산 삼용추폭포를 개성 박연, 금강산 구룡연 폭포와 비교했다.
겸재의 스승이던 율곡학파 백악사단白岳詞壇 김창흡이 용화리에 살았기에 그의 호가 삼연이다.
문곡 김수항의 삼연과 농암 김창협 노가재 김창업 등 창자 돌림의 6형제 등 백악사단은
겸재를 내연산이 있는 청하에, 사천 이병연을 죽서루가 있는 삼척에,
순암 이병성을 금강산이 있는 간성에 보내 동해안의 진경을 시와 그림에 담도록 하였다.
그러나 겸재의 모친상으로 젊은날 금강산을 시와 그림으로 담은 <해악전신첩>을 재현하려는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고려 원진국사비 설명
무신정권기에 활약한 원진국사는 이자연거사가 지은 춘천 청평사 문수원기를 읽고
능엄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반에 드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에게 보경사에서 능엄경을 가르쳐
한국불교사에 능엄경을 천명하였다. 지금도 강원에서 능엄경을 가르친다.
원진국사 승형 스님이 입적하고
그 문도들을 위하여 진각국사 혜심 스님이
보경사 적광전 법상에 올라
설법을 하고 그날의 가르침과 감회를 시로 읊었다.
혜심 선사는 선문염송의 편찬하였는데
영천 팔공산 거조암에서 정혜결사를 주창하고
송광사(수선사)에서 정혜결사를 이어갔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수제자이다.
혜심 선사는 오어사에서도 상당 설법을 하고 게송을 읊었다.
원진국사가 팔공산 동화사 염불암에서 입적하고 제자들이 다비 뒤에 사리를 거두어
신귀산(내연산)에 탑과 탑비를 세웠다.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릴 때 시장은 백운거사 이규보가 썼다.
글씨는 김방경 장군의 아버지 김효인이 썼고, 비명은 국자감 대사성 이공로가 지었다.
고려중기에 유행한 귀접이 형식의 점판암 탑비는
테두리에 섬세하고 화려한 연화당초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고려 불교 문화의 국제적이고 화려한 미감을 잘 보여준다.
귀부는 협소하지만 귀갑에 왕자를 새겨 국사의 품격을 보여주고
여의주를 문 용머리에 오른쪽 앞발이 여의주를 움켜쥐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의주를 가진 거북이가 원진국사의 법력과 신통력이
배인 비석이 신령스러움이 있다고 여기고 동전을 던지며
소망이 여의하기를 빌며 기복하는가보다.
지금 보경사 대웅전 뒤에 놓여있는 커다란 통나무 구유는 밥통도, 물통도 아니다.
제지도구인 지통(紙桶)일 뿐이다.
한지 제조와 인쇄술의 중심지는 본래 사찰이었다.
송광사와 보경사 안내판에는 지통이 ‘비사리 구시’인데,
사찰의 큰 행사 때 공양간에서 수천 명 분의 밥을 지어 퍼 담는 용도로 썼다고 하는
황당무계한 설명을 하고 있다.
징광사(澄光寺), 송광사, 통도사, 범어사, 옥천사, 석남사, 간월사 등 다른 사찰들처럼
보경사도 백성들을 대신하여 얼마나 국가 관청의 가혹한 닥종이 공납 강요로
수탈되고 고통을 당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조선 중기의 기록에는 보경사 주변에는 온통 닥나무 밭이었다고 한다.
<보경사사적기>(1792)에는
‘보경사는 산이 좋아, 양반 관료들의 산놀이에 스님들이 가마꾼이 되고,
절은 숙식을 제공하는 여관이 되고, 물이 좋아 종이 제조 노역에 시달리는 어려움이 있다’
고 하였다.
아직도 사찰 문화재 해설사나 안내판에는
지통을 밥통이나 물통이라고 하고
심지어 이 거대한 지통의 재료가
관목인 싸리나무라고 하는 황당무계한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보경사의 이 지통을 밥통으로 인식하고
멋진 시를 지은 시인도 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나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부산에서 오신 시인 일행도
수천 명 분량의 밥을 퍼 담던 밥통으로 알고 계셨다.
보현폭 앞에서
보현폭은 병풍처럼 암벽이 둘러쳐서 소리만 울려나오고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늑함을 느끼며 제일 사랑스러이 여기는 폭포.
연산폭, 겸재 정선이 갑인년(1734) 가을에 석공을 시켜 암벽에 작고 희미하게 이름을 새긴 것이
남아 있다.
관음폭, 관음굴, 관음담
선열대
멀리 내원암터가 보인다.
해방둥이 이신 일흔이 넘은 연세의 시인께서
가파른 계단을 거침없이 올라 선열대까지
오르셨다. 그 열정과 체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시대 시인 중엔 선생이 이 선열대에 오른 최초의 분이 아닐까.
내연산 역사에서 기념할 만한 일이다.
1587년 8월에 울진에서 온 해월 황여일, 대해 황응청 선생이
여기 선열대에 올라 해와 달을 희롱하며 우주를 관조하며
휘파람을 불며 시를 창수하였다.
영남 퇴계학의 정맥을 잇는 대산 이상정 선생이
보경사의 시승 오암당 의민 스님, 흥해의 천재시인 농수 최천익 진사와
내연산을 유산하며
계조암에서 논어 몇 장을 강의하고
대비암으로 가다가 비하대에 올라
본래 이름 월영대를 잊어버리고 기하대妓賀臺라고 하는
속칭만 전해오던 것을
주자의 시, 취하축융봉醉下祝融峰의
제4구 낙음비하축융봉朗吟飛下祝融峰에 나오는
'비하'의 와전이 '기하'라며라며 대이름을 비하라 명명하였다.
'기하'가 주자의 시에 나오는 '비하'의 와전이라고 한 것은
주자학자다운 대산의 견강부회.
내연산 무풍계舞風溪 사자폭의 사자담을 기화담, 사자항 맞은 편의 암대를 기화대,
비하대를 기하대, 선열대를 기화봉이라고 하는 것은
관음담 바위에 경주부의 기생 달섬이 관찰사 이광정 이름 옆에 새겨져 있지만
경주부의 기생을 데리고 경주부와 경주부 관할의 영일현, 흥해군, 청하현 등의
지방관과 중앙관료들이 내연산 사자폭과 삼용추에 자주 왔기 때문에 생겨난
속칭들이다.
겸재가 모친상을 입어 5년 임기를 못다 채우고 상경하여 1733-1735년까지 청하현감으로 머물렀다.
청하현감 시절 그린 내연삼용추도 3점, 부채그림인 삼용추폭하유연견남산도 그리고 청하성읍도가 전한다.
청하성읍도를 보면 일제가 들어오면서 성벽을 허물고
청하면사무소와 청하초등학교가 된 자리가
청하읍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동쪽 울타리에 해월루가 있던 것도 그림에 나타난다.
신재 주세붕과 회재 이언적의 해월루 기문으로 영남70고을 중에
궁벽하고 작은 청하현이 이름났다.
해월루의 기문은 회재 이언적이 지었는데
바다와 달이라는 자연을 가지고 인문학적인 의미를 부여한
대단한 문장이다. 관아의 누정은 고을을 다스리는 관료의 지성과 감성을 개발시키는
치세의 인격을 도야하는 공간이었다.
회재의 해월루기를 읽고 해월루에 올라 바다와 달을 접하며 고을을 다스리는 관료의
국량을 키웠다. 동아시아 한문 문화권에서는 서양 근대 계몽주의와 달리 이성과 감성을 분리시키고
감성을 이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이기이원론이나 이기일원론에서처럼
성과 정을 한 덩어리로 보았다. 성품과 감정을 순화하고 개발시키는 문학, 특히 시는
사대부의 필수 교양이었다.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조선을 대표하는 문장가로 통신사에 참가한 청천 신유한은
일본의 지식인들과 시문을 주고 받으며 교유하였다.
열하일기가 중국여행록을 대표한다면 신유한의 해유록은 일본여행기를 대표할 만치
아름답고 빼어난 글이다.
무장현감으로 있던 청천 신유한도 해월루 중건기를 짓고
직접 해월루에 올라 거문고를 타면서 한바탕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다.
회재선생의 명문 해월루기와 함께 당대의 명필로 한국미술사에도 등장하는
판서 성세창의 묘필의 대자 해월루 편액은 누각의 흥폐와 더불어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경주의 어느 농가에서 밥상으로 쓰고 있던 것을 찾아내어
청하현 관아에 보관하고 있다가 해월루가 중건되면서 해월루기와 함께 다시 걸었다.
해월루가 일제말기나 해방 전후에 헐린 것 같은데
회재 선생의 해월루기와 성세창의 신필 편액과 함께 걸렸던
시판들이 지금은 자취도 없다.
이 보배로운 현판들이 어느 집 밥상이나 마루짝으로도 남아 있으면 좋겠다.
쪼개져 땔감이 되어 어느 집 아궁이의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안타깝다.
이 책의 편집주간이고 발행인인 배재경 시인과 부인이신 송진 시인이 이효림 시인과 함께
강은교 선생님을 모시고 포항에 오셔서
이종암 시인, 나, 심관 화백이 맞이하고 안내하며 내연산을 유산하셨다.
금정산 아래 범어사가 있는 부산의 명소에서 사시는 시인이 범어梵魚를 범어梵語로 표현하며
후학들과 시의 꽃을 피우고 계신다.
가을엔 범어사에서 오어사吾魚寺로 오시도록 초청하였다.
18일 영천 호연정에서 임고서원 포은선생 효자비 거쳐서 입암28경 답사가며
다시 가보기로 한 곳이 시총의 억수무덤이다.
강은교 시인을 마중하고 안내하고 만나기 위해 18일 영천 답사 선약을 취소하였다.
그런데, 부산에서 강은교 시인을 모시고 온 배재경 시인이 점심을 먹으며 건네는
시 전문지 <사이펀>에 내 고향 영천의 이중기 시인의 억수무덤 시가
수상작으로 첫 페이지에 나와서 반갑고도 놀라웠다.
19일 오후에 영천으로 가서 자양댐 호수가 굽어보이는
하천 호수공묘 시총 억수무덤을 보고 왔다.
본래 대구 사과는 주산지가 영천이었다. 지구온난화와 수출주도형 산업화, 신자유주의 시대의
농촌 포기 농정으로
영천의 사과나무는 모두 늙어지고 캐내지고 황폐화되고 사과농사 짓는 농부도 소멸되고 말았다.
창비에서 시집이 나올 만큼 농부시인으로서 한국 시단의 중량감이 있는 이중기 시인의 시는 민중과 역사의식이 농부의
오기와 버무려진 선이 굵고 훈훈한 정서가 묻어나는 미학을 보여준다.
어린날 그 컸던 두곳의 사과밭을 이젠 볼 수가 없다.
사과밭의 사과꽃 향기 능금 냄새가 묻어있는 유년의 바람이
시에서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함께 불어온다.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한 중국 종남산에서 종남산으로 했다가
견훤의 습격을 피하여 피란 온
신라왕과 신하들을 산 안으로 맞아들여 내영산으로
내영산의 영과 내연산의 연 2자가
음과 훈이 비슷하여 내영산, 내연산이 혼용되다가
결국 내연산이 되었다.
보경사의 보경은 청동거울인데 보름달, 해의 메타포.
월인천강지곡처럼 달은 부처님 진리의 메타포.
거울이 만물을 비추듯이
해가 만상을 두루 비추듯이
달이 어두운 밤하늘에 떠서 대지를 비추고
일만 강물과 바다에 투영되듯이
불성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밝게 비춘다.
붓다의 진리가 중생의 어리석음을 비추고 밝힌다.
창건연기설화의 팔면보경도 불성이고
불타의 8정도 진리를 상징한다.
한국 최고의 불화 명품인 적광전 비로자나불후불도를 배견하고
범이 떨어져 죽은 바위인 낙호암을 거쳐서
문수대, 사자암으로 오르시는 강은교 시인과 이종암 시인
문수대에서 쉬었다가
신선계로 오르는 승선교(태평교, 낙하교)를 지나서
사자폭으로 가는 절벽 위의 잔도에서 쉬어가며
강은교 시인과 배재경 시인
이 부근 산에 400년 전엔 계수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서왕모가 사는 월세계에 계수나무가 있다는 신화
옛 사람들은 사다리 타고 올랐던 삼용추(잠룡폭, 관음폭, 연산폭) 중 상용추(연산폭)
검은 베레모 쓴 분은 영덕이 고향이고 포항에 거주하는
겸재 정선의 후예 심관 이형수 한국화가
심관 화백은 선인 문집의 글귀와
현대시를
그림과 융합하여 인문학적인 의미가 담긴 문인화가로
역사의 인물을 천명하고
우리시대와 자연을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경북(3.22-28),
포항 아트빛갤러리(3.20-30.),
전주한옥마을 붓길 아그베,
전남 고흥 중당미술관(3.20.-4.20.),
청송 야송미술관(3.20.-4.20.)에서
동시에 지난 3년 동안 창작한 약 1천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그 열정과 근면함과 큰 국량에 탄복한다.
관음폭, 관음굴, 관음담(감로담)
하산하며 보경사 경내 솔숲에 세워진 흑구선생 문학비
고당 조만식 선생을 모시기도 했던 평양의 갑부집 아들이고 미국에 유학가서 영문학을 공부한 인텔리로
미군정에서 통역관으로도 근무했다. 검은 갈매기 흑구 한세광 선생은 포항에 정착하여
고독한 생애를 보내고 척박한 포항 땅에 문학의 씨앗을 뿌렸다.
보리수필문학회도 선생의 대표작으로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보리에서 이름을 취했다.
선생은 시, 소설, 수필 등의 작품들을 남겼다.
흑구선생의 수필 중 보경사 목련꽃을 두부장수가 흔드는 종처럼 생겼다고 하는 비유법이 나온다.
기차
강은교
봄이 오면 기차를 탈 것이다
꽃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나무의자에 앉을 것이다
워워워, 바람을 몰 것이다
매화나무 연분홍 꽃이 핀 마을에 닿으면
기차에서 내려
산수유 노란 꽃잎 하늘을 받쳐들고 있는 마을에 닿으면
또 기차에서 내려
진달래꽃 바람이 불면
또또 기차에서 내려
봄이 오면 오랜 당신과 함께 기차를 탈 것이다
들불 비치는 책 한 권 들고
내가 화안히 비치는 연못 한 페이지 열어 젖히며
봄이 오면 여기여기 봄이 오면
당신의 온기도 따뜻한 무릎에 나를 맞대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은난초 흰 꽃커튼이 나풀대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광야로 광야로
떠날 것이다, 푸른 목덜미 극락조처럼 빛내며
-<<현대시학>>(2017.1.)
*강은교 시인:
1945년 함남 흥원 생, 1968년 '사상계'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저서로 시집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벽 속의 편지', '어느 별에서의 하루',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등이 있다.
시산문집으로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에세이집 '추억제', '그물사이로', '잠들면서 잠들지 않으면서' 외 다수가 있다.
촛불시민명예혁명을 기록한
시집, <천만촛불바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학·출판 분야 명단은 놀라움을 안긴다.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한국 작가로 꼽히는 시인 고은과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 작가 최초로 영국의 세계적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비에스가 공개한 블랙리스트를 보면, 고은 시인에 대해서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지지’ 선언에 참여했다는 점을 리스트에 올린 이유로 기재했다. 또 문체부가 2013년 고 시인이 이탈리아 카포스카리대학 초청 국제 문인 교류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비용 2500만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함께 명기했다. 당시 고 시인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대학 명예 펠로로 선정된 바 있다. 정부 지원 사항을 블랙리스트에 함께 담은 것은 결국 명단에 오른 인사에 대해서는 이후 지원을 제한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시인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전야 추모문화제 추모시 낭송’과 ‘동아대 교수 이명박 정부 규탄 시국선언’ 참여라고 기재했다. 역시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등 그동안 받았던 정부 지원 사례들을 열거하고 있어, 이후 정부 지원 제한 의도를 드러냈다. <장밋빛 인생> 등을 쓴 소설가 정미경, <그녀의 눈물 사용법>의 소설가 천운영, <홍합> 등을 쓴 소설가 한창훈, 동화작가 송미경 등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2014년 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신청한 예술인 959명 가운데 118명이 정치적 성향 등의 이유로 떨어졌다고 에스비에스는 전했다. 특검이 확보한 1만명에 이르는 전체 블랙리스트가 통째로 공개될 경우 문학·출판계의 피해 규모 또한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76969.html#csidxf96fbd890970639bf060c485d29ecc2
나 오늘, 광장에서 너의 춤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_강은교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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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셈법 _ 김명수 030
돌파 _ 김명철 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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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이여, 분연히 궐기하라 _ 김선태 037
뿔 _ 김성규 040
빛의 어머니 _ 김수복 041
알 수 없는 마음이 자라고 있었어_ 김연필 042
서울 촛불 _ 김용락 045
촛불의 겨레 _ 김윤환 047
다시 새 생명으로 피어나라 232만 송이_ 김종원 049
촛불이 가장 황홀할 때 _ 김종인 052
촛불혁명시집-본문.indd 4 2017-01-13 오후 11:17:
금남로 사랑 _ 김준태 054
촛불은 보석을 낳는다 _ 김지희 056
촛불 집회 _ 김창규 058
흔들리는 시간 _ 나문석 061
들불 _ 나종영 063
촛불 비손 _ 나해철 065
이천십육년 십이월 대설 _ 남효선 069
깃발론 _ 맹문재 074
광화문 촛불 _ 문창길 076
대한민국 피의자 박근혜 _ 박노정 078
증거하는 별 _ 박남준 080
이게 나라다 _ 박노해 081
빙등을 덥히며 _ 박몽구 083
촛불의 주파수 _ 박서영 086
그 모든 것이 한 개 촛불 앞이었다 _ 박설희 090
광화문 2 _ 박완호 092
불-꽃 _ 배창환 093
촛불혁명시집-본문.indd 5 2017-01-13 오후 11:17:
광장은 비어 있다 _ 백무산 095
사월의 질문법 _ 서안나 099
들림 _ 서정춘 101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 _ 손현숙 103
원무(圓舞) _ 신경림 104
영동 촛불 _ 양문규 107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_ 오인태 109
촛불을 쓰다 _ 오춘옥 112
올 것은 오는구나 _ 유승도 114
그날, 촛불을 들었다 _ 윤석홍 115
촛불이 타올랐다 _ 윤임수 117
신(新) 우리의 소원 _ 윤중목 119
이 붉은 빛의 강 속에서 우리 부활했다 _ 이승하 120
몰라요, 정말 모릅니다 _ 이원규 123
광장으로 _ 이은봉 129
바람을 삼키는 촛불이여! _ 이재무 130
촛불 _ 이정록 132
눈싸움 _ 전영관 134
가시리 같이 가시리 _ 정수자 137
장수풍뎅이도 성난 뿔 앞세워 _ 정원도 138
촛불, 실록을 쓰다 _ 정철훈 141
국화를 던지다 _ 정희성 143
광장은 즐겁다 _ 조원 144
대한민국 2016년 12월 촛불혁명 _ 채상근 146
오직 한 송이 촛불로 _ 천수호 149
어린이의 촛불 _ 최종천 150
촛불, 대한민국 2016 _ 홍사성 152
수록 시인 소개 _154
촛불 집회 일지 _160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명단_164
위의 시인들 중엔 나와 친분이 있는 분도 몇 분 있다.
겨레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이 없는
문예 창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춘원 이광수나 육당 최남선의 산더미 같은 작품들이
만해 스님이나 육사 선생의
시 한 줄보다도 가치가 없다.
선비 매천 황현 선생의 결기가 그립다.
첫댓글 보람 가득한 내연산 탐방이었군요.
강은교시인 아직도 정정하시네요. ^^*
건강하시고 좋은글 많이 창작하시길 빕니다 ^^
겨울 끝자락에 보는 꽃과 시인. 멋지네요^^
봄이 왔네요. 경사가 겹치시길 빕니다. 기쁨이도 잘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