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침
당기소/김양순
2010년 6월 22일, 자정이 다 되어 잠자리에 들면서 TV가 있는 거실 불을 끄지 않았다. 새벽 세 시 반에 벌어질 우리나라 팀과 나이지리아 팀의 월드컵 축구를 보기 위해서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가 16강에 진출하느냐,아니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가 아닌가? 새벽에 깊은 잠을 잘자는 나는 아침잠이 부족하면 하루 종일 피로감에 시달리지만 월드컵 축구는 꼭 보아야만 국민의 도리를 다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며칠 전 아르헨티나 전에서의 참패를 생각하면 너무도 속상했던 터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는 꼭 이겼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태극전사들의 승리를 기원하는 내 마음이 간절했던지, 축구공 크기의 하얀 공이 내 앞으로 굴러오는 것을 두 번 받아내는 꿈을 꾸다 잠을 깼다. 신기하게도 시계는 새벽 3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고 있는 딸아이를 깨웠다. 중학생인 딸아이 역시 벌떡 일어났다. 멀리 순천에 있는 남편도 전화로 깨울까 하다가, ‘나보다 훨씬 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알아서 보겠지’ 생각하고 딸아이와 같이 TV 앞에 앉았다.
TV를 켜자 경기를 막 시작한 선수들이 가뿐가뿐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는 치열해져갔다. 크지도 않은 공(자블라니) 하나를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젊은이들 모습이 전투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을 뺏고 뺏길 때마다 내 가슴이 이렇게 철렁거리는데, 싸우는 태극전사들 어린 가슴들은 얼마나 무겁고 힘들까? 그리고 그 가족들은 또 얼마나 가슴을 조이고 있을까? 생각하니 긴장감이 역력한 태극전사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죽을힘을 다해 공격하고 막아내지만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나는 실수로 상대편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되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저승사자를 만난 기분일 것이다. 후반전,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얻어낸 박주영 선수가 포효하듯 외치는 모습에서, 며칠 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때 자책골 실수를 하고 얼마나 괴로워했었는지, 선수들이 짊어진 마음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골 차이로 역전의 영웅이 되기도 하고, 한골 내주어 역적 취급을 받는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뛰는 90여 분이 아마 90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선제골을 내주고 난 뒤 얻어낸 황금 같은 동점골, 그다음엔 우리팀의 환상적인 역전골, 결국은 2:2 무승부로 끝나는 90여분 동안 나는 심장이 벌렁거려서 몇 번이나 안방과 거실을 들락거렸다. 후반전 경기를 할 때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려고 아예 누워 버렸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환호성이 터지면 다시 거실 TV 앞으로 나가기를 몇 번이나 했다. 결국 경기 결과는 2:2무승부 끝나고,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2:0으로 이겨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도록 부조를 해준 셈이 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그토록 바라던 월드컵 원정사상 최초의16강 진출의 꿈을 이룬 것이다. 16강 진출 확정에 태극전사들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벅찬 감격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지만 월드컵 축구 때마다 우리나라 팀 경기는 빠뜨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왜냐하면 월드컵 축구는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 축제이기는 하지만 현대판 전쟁 같은 성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월드컵 축구에서 많이 이기면 이길수록 국가의 브랜드 가치는 높아지고, 국가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 그만큼 여러 가지 국익이 발생하게 된다. 비록 남의나라 영토에 쳐들어가서 전리품을 빼앗아 오는 전쟁은 아니지만 월드컵 국가대표 팀은 나라를 등에 짊어지고 싸우는 군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자국 팀을 위하여, 분출하는 활화산 같은 응원을 보내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논리로 생각해본다면 아무리 스포츠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월드컵 축구는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땅덩어리가 좁아 세계열강들 틈바구니에 끼어 이런 저런 서러운 역사를 간직한 민족은, 선조들로부터 대대로 물려 내려온 한을 안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만 한을 씻어버리고 세계무대에서 어깨를 편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때문에 월드컵에서의 승리는 겨레의 가슴에 서리 져 있는 한을 씻어줄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어 주리라 여기고 있기에 우리 오천만이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 아니겠는가?
월드컵 16강에 진입했다고 금방 뭐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번 월드컵에서의 소원성취를 통하여, 우리는 여러모로 높아진 우리나라의 위상을 확인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력이 월등히 좋아진 선수들은 물론이고, 오천만이 붉은 티셔츠 물결을 이루고 목청껏 외치는 ‘대~한민국’ 그 기개 높은 함성을 보고, 이제 세계 어느 강대국도 우리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리라. 앞으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월드컵 응원할 때의 그 마음만 잘 간직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에 서럽고 뼈아픈 역사는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 더 나아가 오늘 아침 같이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할 일이 더 자주 생기리라 기대된다.
아득한 옛날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 세우고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 라는 뜻으로 ‘조선’이라 나라 이름을 지었다는데, 2010년 6월 23일 대한민국의 아침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가 되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집집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승리의 함성이 되어 새벽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스포츠에 문외한인 나도 너무 기쁜 마음에 이 감격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시 한 편을 지어 보았다.
환호성
(대한민국 월드컵 16강 확정되던 날)
새벽어둠을 가르며
온 천지에 울려 퍼지는 환호성
오! 필승 코리아,대~한민국
안방에서 길거리에서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도
행복하기만한 얼굴, 얼굴들
그리도 간절히 염원하던
오천만의 꿈 이루어진
이 찬란한 새벽
온 겨레가 이렇듯
한마음으로 행복한 때가
반만년 세월동안 몇 번이나 있었던가
동방의 끝 모퉁이 작은 나라
강자들 힘자랑하는 무대 되어
끊임없이 짓밟히고 시달려 온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 자손들이
마침내 뛰어넘은 드높은 벽
머나먼 낯선 땅에서
자랑스런 태극전사들 피 같은 땀이
이루어 낸 낭보에
온 겨레 가슴 가슴마다
아침노을 빛 붉게 물들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2010년 6월 23일
첫댓글 수필을 한 편 써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월드컵 이야기를 쓰다보니 6월 23일에 올렸던 '환호성'과 내용이 겹치게 되고 말았어요. 할 수 없이 '환호성'을 삭제했습니다. 정성스런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부족한 제글을 성의껏 읽어주시고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으시는 문우님들께 항상 감사하고 있답니다.
월드컵 16강이 확정되는 순간 온 국민의 환호성! 그것은 승리에 대한 기쁨의 분출이였으며, 당당하게 겨루어서 얻어낸 최고의 성과였다. 자신감 넘치는 선수들의 투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선수들을 뜨겁게 응원한 온 국민의 응원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16 강 진출은 우리축구를 폄하했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축구가 더이상 안방 호랑이가 아니였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잠못 이루고 응원한 보람이 있었던 새벽시간, 졸음이 싹 가시고 잠을 확 깨버린 훌륭한 경기였다.우리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다시 한번 보낸다.우리모두의 마음을 대신해서 쓰신글에 감사드립니다.
월드컵 축구 나이지리아 전을 많은 국민들이 잠 못들고 보았습니다. 내가 대한민국이라고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경기 장면과 소감을 한 편의 글로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글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만이 이 일릉 해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월드켭 죽구에 대한 감동과 기억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기소님의 이 글은 오래도록 남아 읽는 이의 눈과 귀를 그 때의 감동이 있던 곳으로 안내해 줄 것입니다. '아름다운 아침'이라는 시적인 제목이 이 글에 대한 애정을 깊게 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