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민기철이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왔다. "영지야, 이젠 돌아가자." 장례식이 끝났으므로 사람들이 제각기 흩어지고 있었다. 김영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인부들이 흙을 덮고 있는묘지를 바라보았다. 김강남 의 묘지 바로 옆에 호세 김의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네가 마음을 단단히 먹 어야 한다. "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민기철이 말했다. 김영지가 걸음을 옮기자 한쪽에 몰려 있던 사람들 중에서 키가 큰 사내가 다가왔다. "김영지씨, 저는 한국 대사관에 있는 전태섭이라고 합니다. " 그녀의 앞에 선 사내가 머리를 숙였다. 사십대 초반으로 보였고 이 맛살을 찌푸리고 눈을 내리판 그의 표정은 정증했다. 근의 뒤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의 한국인은 그의 수행원인 것 같았다. "워라고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삼가조의를표합니다. " "됐습니다, 그만하면 됐어요." 민기철이 그의 앞쪽으로 한걸음 다가딘다. "대사관에서 그만큼 했으면 됐어요. 얘는 즘 쉬어야 해요.1 "고영무는 미국에서 잡힐겁니다. 이곳에서는 사정이 여의치 못했지 만 미국에 있는 저희 직원들한테 연락을해놓았습니다. " 민기철을 무시한 채 사내가 김영지를 향해 말했다. "저희들도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 ‥‥‥‥ 사내가 몸을 돌리고는 일행들과 함께 잔니밭을 가로질러 갔다. 김영지는 아직도 묘지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는 교민과 친지들의 시 선을 받으며 민기철과 함께 차에 올랐다. "네 어머니가 걱정이다. 너야 젊으니까 견뎌내겠지만‥‥‥‥ 차가 출발하자 민기철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도 핼쑥하게 야위어 있었다 호세 김의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던 그는 다음날 신문을 보고는 곧장 산타마르타로 달려갔었다. 신문에는 전날 밤 선창의 하역장에서 두 명 의 피살체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은 한국 교민이라는 것이다. 호세 김의 시체를 확인한 민기철은 넋을 잃었다. 경찰은 두 명이 서 로 싸우다가 죽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고영무의 이야 기를 꺼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밀항조직과 연결된 그들은 사건 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교민들은 물론 대사관마저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고영무는 이제 김강남은 물론 호세 김까지 죽였다. 호세 김은 고영 무의 밀항을 막으려다 살해된 것이다. 그리고 고영무는 밀항선을 탓다. 그의 목적지는 틀림 없이 미국일 것이었다. "아저씨, 어머니를 한국으로 보내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김영지가 민기철을 바라보았다. "한국에? 외삼촌한테 말이냐?" 민기철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외삼촌이 세 분 있다고 했지?" "네." "형제간 우애는 좋고?" "그런 편이에요." "어머 니가 그러시더냐?" 김영지는 머 리를 저 었다. 어머니는 지금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편과 아들 옆에 묻히려고만 했다. "면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들이 낫다던데,오히려 이곳에 어머니 친 구들이 많지 않니?" "그건 그렇지만 이 곳이 어머 니에 게‥‥‥‥ "제 생각에는 어머니가 나아지실 것 같지가 않아요." "어머니가 어떻게든 견뎌내야 할텐데. 내가 보아도 너무 충격이 큰 것 같다. " "나이 드셔서 견디기가 더 힘이 들지도 모르겠고." 민기철이 길게 한숨을 쉬더니 김영지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를 한국으로 보내면 그럼 너 혼자 보고타에 남을거냐?" 김영지가 머리를 저었다. "공장 정리하고 미국으로 가겠어요." 눈셉을 치켜뜬 민기철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국에는 왜?" 메마른 소리로 그가 물었다. "너, 설마‥‥‥‥ "보고타는 싫어요." "여기가 바로 네가 태어난 곳이야. 네가 아기였을 때부터 친자식처 럼 여겨온 교민들이 있다. 도대체 미국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김영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어머니하고 같이 있어야 돼, 여기건 한국이건 간에. 너 혼자 다른 곳은 못 간다. " 민기철이 늘어진 어깨를 세우고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윽 고 어깨에 힘을 풀었다. "너 혼자는 어림도 없다. 영지야, 제발 고집부리지 말고." 창밖에는 벗발이 뿌리기 시작했다. 장례식을 마철 때까지 참고 있었 던 듯 넷발은 굵고 세었다. "그놈은 잔인무도한 살인자야.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마침 한국 정 부에서도 그놈을 잡는 데 신경을 써주겠다고 하잖니." "남의 일이에요. 인사차 해준 말이에요. 미국에서는 그놈이 이곳에 서 저지른 죄를 추궁할 사람도 없다구요." "네 어머니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화난 듯 소리치는 민기철에게 대뜸 김영지가 말을 받았다. "저는요? 저는 어떡하구요?" 그녀를 하라본 민기철이 입맛을 다시면서 머리를 돌렸다. 김영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현관으로 들어섰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교 민들과 어머니의 친구들, 아버지와 오빠의 친구들로 집안은 흔잡했 "잠깐, 아가씨 ." 부르는 소리에 김영지가 몸을 돌렸다. 사십대 증반쯤으로 보이는 농부 같은 생김새의 신부였다. 검정색의 신부복은 밝았고 얼굴도 투박했다. "고인의 따님 되시지요?"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신부가 물었다. "네, 신부님. " "난 산타밀라의 성당 주임신부로 있는 마르틴이라고 합니다. " 산타밀라는 김영지로서도 처음 듣는 도시였다.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새벽에 출발했는데 그 빌어먹을 버스가 고장 이 나서 그만‥‥‥‥ 김영지가 민기철을 돌아보았다. "신부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안하셨으면 저기 안으로 가시지요." 민기철이 나서자 그는 손을 저었다. "그보다도 아가씨에게 말씀드릴 이야기가‥‥‥ 어디 조용한 곳이 없 을까요?" "그럼, 서재로 들어가시지요." 민기철이 앞장을 셨고 그의 뒤를 마르틴과 김영지가 따랐다. 서재에서 김영지와 민기철은 마르틴을 마주 보고 않았다. 이곳은 서 재라기보다도 호세 김이 장부를 정리하고 중요한 엔진 부속을 보관하 는 곳이다. 책꽃이에는 책 대신 기계부속이 놓여 있었다. "말씀하시겠다는 것이 뭡니까?" 민기철이 궁금한 듯 상체를 숙이고 물었다. 머리를 끄덕인 마르틴이 김영지를 바라보았다. "고영무는 당신 오빠를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가씨. 그리고 나 는 그 말을 믿습니다. " "잠깐만, 신부님 ." 이맛살을 찌푸린 민기철이 나쳤다. "그것을 신부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그 사람하고 같이 며칠 동안을 보냈지요. 산타마르타에도 같 이 갔습니다. " "산타마르타에?" "그렇소, 호세 김이 방파제에서 추락하는 것도 보았소." 마르틴은 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밖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유감이오, 아가씨. 아버지는 총을 쏘셨고 고영무는 총에 맞았소. 넘어진 고영무를 쏘려다가 아버지가 방파제로 떨어지셨소." 말을 그친 마르틴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영무는 아버지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소. 방어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오." "어했든 죽였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민기철이 다그치듯 물었다. "그놈은 부자를 모두 살해한 놈이오." "이것 보시오,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고영무는 아가씨 오빠가 마약조직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해요. 그는 그 사람들을 찾으려고 떠났 습니다. " "믿을 수가 없어요, 신부님." "나는 내가 그의 말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소,비록 당신들이 비웃더라도." "그는 미국으로 갔지요?" 김영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신부님, 말씀해 주세요." "그는 당신 오빠를 죽이지 않았소, 아가씨." 김영지가 잠자코 자리에서 일어셨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자 방안 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당신은 나잇값도 못하는군요." 마르틴이 덕을 들고 민기철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는 잠시 눈을 깜박 이며 입을 열지 않았다. 갈매기가 뱃전 위를 돌다가 로프 뭉치 위에 내려앉았다. 바다는 잔 잔했으므로 밝은 화물선은 제법 속력을 내었다. 항해를 시작한 지 나 흘째 되는 날의 아침이었다. 갑판 위에 선 고영무는 아득히 바라보이는 수평선에 시선을 주었다. 푸른 바다의 왼쪽 끝 수평선 쪽에는 한국이 있다. 오른족은 이제 북미 대륙이다. 배는 태평 앙을 북진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뒤쪽에서 사람 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상갑판의 계단 아래에 대여섯 명의 밀항자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밤에는 LA 근해로 접근하게 되므로 배 안의 분위기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고영무의 시선을 알아천 그들이 몸을 돌려 구명 보트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밀항자들은 고영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두들 그가 저질렀던 사 건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리고 야적장에서 아수라 같은 모습을 보 기도 했던 것이다. 고영무는 사흘 밤낮을 배 안에서 지내면서 먹고 자고, 때로는 바다 구경을 하다가 지치면 화물선의 갑판 위에서 운동을 했다. 그에게 말 을 거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고영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산체스는 한번도 그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조타실이나선장실에 틀 어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바다 위로 날치 떼들이 날아오르는 것이 보 였다. 그들은 배와 함께 날아오르다가 이내 동쪽으로 사라져 갔다. 바 다 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 그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이제 여및 시간이면 미국 영해로 들어가게 됩니다. " 산체스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고영무와 나란히 서서 배의 난간을 잡고 그를 바라보았다. "상처는 어떻습니까?" "괜찮소." 총알이 귀의 바로 윗부분을 스치고 지나갔으므로 5센티쯤 피부가 첫 어져 있었다. 배에는 소독약밖에 없었으므로 소독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툴았다. 미국에 도착하면 치료부터 해야 할 것이다. "신부넘도 이야기를 하셨지만, 미국에 도착하시면 신분증을 만들어 야 하지 않습니까?" 주름진 얼굴을 더욱 찌푸리며 그가 물었다. 걱정하는 얼굴인지 경계 하는 표정인지 주름에 가려서 알 수가 없다. "내가 지난번에 전화번호를 적어 드렀지요? 그걸 가지고 있습니까?" "가지고 있어요." "그 사람이 만들어 줄겁니다. 연락을 하세요, 잊지 마시고." "산체스." 고영무가 몸을 비스듬히 돌려 난간에 허리를 기대면서 그를 바라보 았다. "그 사람한테 얼마를 받고 나를 팔았소?" "아직 돈은 받지 않았어요. 당신을 잡고 나면 백만 페소와 당신이 가 지고 있는 돈을 받긴로 했지요." 산체스가 거리낌없이 대답했다. "신부님을 속인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만, 워낙 큰돈이어서‥‥‥ "그리고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사람을 돕는 것이었소. 나중에는 신부님도 이해하시리라고 믿었소." "배에는 보트가 두 척이 있어요. 한 척은 50인승이고 안전하지요. 15노트인데 세 시간후에 샌디에이고 근처의 해변에 닿아요.사람들은 기다리는 컨테이너 트럭에 타고 밀입국자 합숙소로 갑니다. 물론 돈을 내야겠지만." "다른 한 척은 10인승인데 40노트요. 빠르지. 이놈은 LA의 산페드 로 만으로 들어갑니다. 아예 놈들의 코앞으로 들어가는거지요." 산채스가 눈꼬리를 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입술 끝이 치켜을라간 것을 보면 웃는 얼굴이었다. "이건 돈많은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특별항로지요. 놈들의 코앞이 실은 더 안전합니다. 배에서 내리면 기다리는 리무진을 타고 호텔로 직행합니다. " "호텔에서 의사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미스터 고." "난 컨테이너 트럭을 타고 가겠소, 산체스씨, " 고영무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돈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돈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특별대접은 받고 싶진 않아." "신문에는 2천만 페소를 가지고 있다던데, 미스터 고." "난 돈이 없어." "저쪽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니까, 미스터 고. 이민국과 마약반이 눈 에 불을켜고 있어,내 배는 이미 추적당하고 있고.샌프란시스코에 도 착하면 석탄 속까지 샅샅이 조사를 할거요." "우리 사이니까 말해 주겠는데 샌디에이고 코스는 이미 놈들에게 알 려져 있』구." "저쪽은 미끼란 이야기야, 미스터 고. 이쪽의 7, 8명을 살리기 위한 미끼 " 고영무의 시선이 그와 마주쳤다. "얼마요?" "백만 페소." 기다렸다는 듯이 산체스가 잇몸을 보이며 웃었다. "3천 달러군."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 산체스가 커다랑게 머리를 끄덕였다. 3천 달러라고 말한 것은 미화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뜻이다. 공정환 을이 달러당 350페소였으므로 백만 페소면 2850달러가 조금 넘었고, 암시장에서 3천 달러면 130만 페소까지 받을 수가 있다. "3천 달러만 주시면 당신은 최고급 대우를 받고 안전하게 입국하실 수가 있습니다. " "그렇다면 날 선장실에서 쉬게 해주시오.며칠동안 제대로 잠을 자 지 못했소." "물론입니다. 계산은 내 방에서 하십시다. " 산체스가 그의 팔을 잡았다. "식사도 형편없으셨을텐데, 맛있는 요리라도 드십시다. 술도 있으니 까요. " 스테이크를 별어 입에 넣던 매린이 얼굴을 들었다. "밀리카, 페르난도한테서 여기 남아 있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구."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 나갔다. "당신 전화를 받았다고 페르난도가 말을 꺼냈을 때는 야단맞는 줄 알았어." "오빠는 당연히 우리를 남게 해주셨을거예요. 우리가 밀림 속이나 거리에서 총에 맞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테니까." 밀리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봐, 카를로스나 다른 간부들도 천막생활을 하고 있어.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돼." "난 석 달 되었어요." 매 린이 머리를 들었다. "무슨 소리 o" "임신했다구요." 밀리카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양쪽 볼이 조금 붉어진 것 같았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그 한국인을 만난 것이 석 달 전이에요. 그렇죠? 관계를 갖게 된 것은 두 달 전이구요." "밀리카." 매런이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 "당신의 아이예요." "알아, 밀리카." "난 결코‥‥‥‥ 밀리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숙였으므로 매린이 자리에서 일 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당신을 사랑해, 밀리카." 그녀의 뒤에 선 매린이 몸을 숙여 그녀의 상반신을 안았다.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섬세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그놈에 대해서 는 더이상 생각할 펼요도 없어. 그것은 일이었으니까, 일을 마치면 잊 는거야." 밀리카의 머리에 입을 맞춘 매린이 얼굴을 숙여 그녀의 볼에 입술을 대었다. "그래, 그 이야기를 페르난도한테도 했단 말이지?" 밀리카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아, 행복하군." 그들은 앞쪽의 식탁을 바라보았다. 식탁 위에 가득 놓인 맞있는 음식과 술병은 보고타의 일류 호델 요 리보다 품성했고 먹음직스러줬다 "일이 끝나면 바로 스페인으로 가자구. 거기서 휴가를 보내는거야." "언제 끝나게 돼요?" "내일 크링거가 돈을 가지고 오면 그 돈을 날라야 할 일이 남았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마약을 운반하는 것보다는 쉽지. 돈냄새를 맡 는 개를 풀어 툴지는 않으니까." "페르난도가 이번에 콜를비아로 돌아가면 어머니를 이쪽으로 보낸 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시게 돼요." "우리와 같이 사시면 돼, 결혼하고 나서도." 밀리카가 두 팔을 올려 그의 목을 안고는 앞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들의 입술이 마주쳤고,매린이 옆으로 몸을 트는 바람에 식탁 위 에 놓인 술병이 넘어겼다. 지미 굴드는 버릇처럼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서류를 내려다보던 시 선을 들었다. "이건 샌프란시스코로 석탄을 풀러 가는 배구만. 출항지는 산타마르 타이고." "한 달에 두 번씩 우리 앞바다를 지나지.다행히 LA에 기항한 적은 한번도 없어 " 피터의 말에 지미가 어깨를 한번 치켜들며 웃었다. "산호세 호라. 이 배는 단속에 걸린 적이 한번도 없구만 그래.그런 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날 보자고 한 것은? 이 배가 석탄 대신 마약이 라도 실었단 말인가?" "지미, 서두르지 마." 피터 그린피트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를 흘겨보았다. "자넨 마약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자네가 입을 벌릴 때마다 앨버트의 험담이 나오지만 앨버트와 다를 것이 없어. 똑같은 놈들이야. " "피터, 입닥치고 날 불러낸 이유를 대란 말이야,이 산호세 호에 무 슨 문제가 있어?" 책상 위에 종이를 집어던진 지미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연안경비 대의 LA지역 책임자이다. 업무적으로 자주 만나고 있었으므로 이제 는 업무를 끝내고 술친구도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LA 한국 영사관에서 연락이 왔어, 나한테." 피터가 정색을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산호세 호에 한국인 한 명이 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거야. 놈은 콜 름비아 정부에서 살인범으로 현상수배를 받고 있는 놈인데, 교민을 죽 였다는군." "허어, 그런데 콜롬비아 정부로부터는 연락이 없고?" "없어, 그놈들은." "그럼 콜룹비아 경찰더러 잡으라고 해.도대체 한국 정부놈들, 할일 도 없구만." "이봐, 교민을 죽였다장아?" "교민이래도 콜름비아로 이민왔을테니까 그쪽 국민 아닌가?" "부자간 두 명을 죽였다는거야." "두 명이나? 부자간을?" "그래,또 한 명이 있기는 있는데 즐름비아인이야. 그놈은 세 명을 죽였어, 부자간과 를룹비아인 한 명을. "누가 그래?" "LA의 한국 영사관이.그들은 보고타의 대사관에서 연락을 받았다는군." "그들 이야기로는 놈은 마약관계로 인한 모함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는거야.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면서. 자, 자네가 좋아하는 이야기로 연 결되었지 않나?" "그놈이 배낭 가득 마약을 젊어지고 산호세 호에 타고 있을지도 모 른단 말이야. 어때? 구미가 당기지?" "샌프란시스코의 요한슨 담당이야." 머리를 쓸어올리며 지미가 말했다. "그리고 그쪽 해안경비대장이 누구야?그 친구 담당 바다에서 일어 나는 일이니까 자네하고도 일이 없고," "지미, LA의 한국 영사관은 그쪽을 알고 있지 못해." "알아보라고 해. 난 그런 일에 신경쓸 시간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선 지미는 피터에게 다가가 어깨를 쳤다. "피터, 어때?오늘밤에 내가 한 시간쯤 시간이 있어. 캠블네 바에서 위스키를 곱때기로 다섯 잔씩만 마시는 게?" "네 오줌하고 섞어서 칵테일로 해 마셔라." 부아가 난 피터가 몸을 돌렸다. "당장 내 방에서 꺼져!" 병긋 웃음을 띄운 지미는 서둘러서 방을 나왔다. 바닷가에 세워진 해안경비대 건물에서는 앞쪽 바다가 철히 내려다 보였다. 바람이 바다 쪽에서 불어와 그의 머리칼과 옷자락을 날렸다. 밝은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화창한날씨였다. 지금은 크링거가 시카고로 달아나 버렸으므로 앨버트를 비롯하여 마약부의 부원들이 김이 빠져 있는 형편이다. 게임도 상대가 있어야 신이 나는 법이지, 벽에다 공을 두드리는 스 춰시도 혼자 치면 신이 나지 않는다. 지미는 경비대를 나와 차에 올랐 다. 그렇다고 한국인 한 놈을 잡으려고 소동을 벌일 마음은 없었다. 시 카고에 있는 크링거에게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크링거는 희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앨버트의 얼굴을 보고 싶구만. 놈은 지금 실망하고 있을 것이 틀림 없어 " 그는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금제 담배 케이스를 집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크라우스가 재딸리 라이터를 켜 그의 담배에 불 을 붙여 주었다. "크라우스, 준비는 되어 있겠지?" 크링거가 묻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모두 끝났습니다. 내일 저녁에 출발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 크링거의 시선이 탁자 옆쪽에 놓여 있는 전화기에 머물렀다. 자신의 방에 있는전화기는도청장치가되어 있었다. 그가 잠판 방을 비운 사이에 앨버트의 일당이 방에 있는 세 개의 전 화기에 모조리 도청장치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크링거가 벽에 붙은 선반으로 다가가 위스키 병을 꺼내어 들었다. 이 방은 아래층에 있는 그의 방 중의 하나였다. 시카고 에 거주하는 선량한 시민의 이름으로 빌린 방이어서 앨버트의 패거리 들은 눈치도 채지 못했을 것이다. 크라우스는 크링거가 시카고에 도착 하기 전에 찰스들 호텔의 특별실 다섯 개를 이런 방법으로 별려 놓았 다. 앨버트가 크링거의 방에 모든 첨단장비를 가져다 댄다고 해도 난데 없이 다른 방에 들어가 회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잔에 자주색 위스키를 따라 한모금 마신 크링거가 머리를.끄덕였다. 머리는 완전한 백발이었는데 손질이 잘 되어 있어서 윤기가 났다. 피부는 건강한 툴은색으로 짙은 초록색 눈과 조금 큰 듯한 콧날이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보였으나 아무도 그를 나이가 예순이 넘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십대 후반쯤으로 생각 할 것이다. "크라우스, 이번 건은 커. 한꺼번에 움직이면 안돼." 낮은 목소리로 크링거가 말했다. "저쪽이 서두르고 있지만 물량을 한꺼번에 풀지는 않겠다. 가격을 올리면서 조금씩 푼다. " 그래야 올린 가격을 오랫동안 굳힐 수 있고,중요한 것은 한꺼번에 마약을 풀어 놓으면 금방 앨버트가 역추적을 해을 것이다. "페르난도는 일이 끝나면 곧장 돌아가겠지?" 손에 든 잔을 조금씩 흔들면서 그가 물었다. "네,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배로 돌아갈 것 같슴니다. " "배 로?" 크링 거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한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시간이 째 걸릴텐데. 바쁘다고 하더니. " "사흘이면 도착하니까요." "그거야 그쪽 사정이지만." 크링거가 술잔을 들어 한모금을 삼켰다. "놈에게 무순 일이 있으면 우리가 난처해져. 크라우스, 네가 자세히 알아봐라 " "알았습니다, 사장님 ." 크라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딘다. 삼십대 후반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크링 거도 1미터 80이 넘는 신장이었지만 크라우스는 그보다도 큰 키에 금발의 단정한 용모였다. 한눈에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으나 성격이 잔 혹하고 컴퓨터같이 정확한 두뇌를 가진 사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 물었다. 크링거는 크라우스가 방을 나가자 탁자 위에 잔을 내려놓고는 소파 에 앉았다. 호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도 작은 휴대폰을 꺼낸 그는 다이 얼을 눌렀다. 휴대폰을 도청하려면 이쪽의 전화번흐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 가 들고 있는 휴대폰은 번호도 없는 것이었다 고영무는 잠이 깨었다 침대가 기분좋게 흔들렀고 환품장치가 잘되 어 있는 방안에서는 밝은 정화액 냄새가 났다. 바다를 향한 둥근 유리 창이 어두웠다. 벌써 밤이 된 모양이었다. 방의 바깥쪽에서 수선거리는 말소리들이 다시 들려왔다. 그는 산체스가 사용하고 있는 선장실에 누 워 있었는데 복도 건너편의 조타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벽에 걸린 시 계가 밤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첫댓글 마르틴 신부가 고영무의 혐의를 벗겨줄수 있으려나?
산체스 저도둑넘을 믿을수는 있을까? 가는길이 태산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