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에 대하여
고승화 제주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를 잘 생각해보자. 진정한 의미의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물론 그 집안 가계의 족보에, 가족이 기억해 주어 한동안 남아 있거나 호적,
주민등록상에 고(故)자를 붙여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기억되거나 남아 있는 이름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한편, 호랑이가 남긴 가죽을 생각해보자. 이 가죽은 호랑이 스스로가 남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벗겨낸 것일 게다. 사람들이 필요해서 벗겨내어 쓰다가 남겨놓은 것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살펴보면,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 수해와 재해, 교통사고 등과
같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 세상을 하직하거나 잘못된 결단으로 인해 주변을 놀라게
하고 떠나기도 한다. 또한, 일평생을 열심히 살고 제 수명을 다하여 떠나기도 하고
병마와 힘겹게 싸우다가 가기도 한다.
이승과 저승, 천국과 지옥, 사후세계, 이런 것들을 사는 동안에는 직접 경험은 못 해
보지만 대부분 사람은 다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 그래서 종교가 생겨나고 임종을 맞이
하는 순간 가장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어 죄를 반성하며 떠나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몇 해 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지만
몇 달 전 장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새삼 이 질문이 더욱 마음에 새겨졌다. 아파서 누워
계실 때는 회복을 생각하며 조심하느라 정리하지 못했고, 돌아가시고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벌써 치우는 것은 안타깝다고, 그래서 얼마간 쓰던 물건들을 두기로 하고
조금씩 치워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일상생활에 쓰던 살림 용구들, 계절 따라 필요했던 옷 등 생필품, 평생 동안 기록해온
가계부와 삶에 대한 일기장, 평생 하던 일에 대한 흔적,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흔적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기간을 길든 짧든 한평생이라고
한다면 누구에게나 이 한평생을 살다 간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아무리 죽음을 잘
준비하고 떠나간 사람이라도 말이다.
곧 죽어도 폼 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소, 지위, 품격에 맞게 옷도, 구도도, 가방도,
집도 구색을 맞추어야 함을 강조하고, 신상이라고, 한정판이라고, 명품이라고, 쉽게
쓰지도 못하는 물건에 욕심을 내어 빚을 내어서라도 마련하는 사람도 있다하니 요즘
시쳇말로 참 웃픈 일이다.
나는 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은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남이 하는 것을 따라하고,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가지고 있어야 소속감이 생기고,
동등한 입장의 위치라고 생각되는가 보다. 내가 쓸 용도에 맞는 물건을 잘 찾아 고르면
그것이 나에게는 진정 명품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용하고 버리고, 마지막에 놓고 가는 물건들은
다 어디로 갈까? 다름 아닌 이 지구를 파괴하는 쓰레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물건은
탄생하는 순간 쓰레기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는데, 자연으로 돌아가는 쓰레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연을 파괴하는 쓰레기들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나는 오늘 어떤 쓰레기를
생산하고 배출했으며, 어떤 쓰레기들을 쌓아 두고 보관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요즘, 세계 곳곳의 자연재해가 심상치 않다. 모두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로 인해 생겨나는
현상이다. 우리 주변에는 살아가는 동안 최소한의 용품과 물건들만 구비하여 깔끔하고
간단한 생활을 하는 미니멀라이프(minimal life)족들이 많아지고 있다. 정말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여 사용하고 그때그때 정리하며 살아간다면 생산도 순환이 잘되고, 쓰레기 문제와
자연파괴 문제, 욕심으로 인한 재산싸움과 사기범죄, 인터넷 관련 경제 범죄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복잡하고 답답한 세상에 삶의 흔적에 대해 읊어본다.
출처 : 제민일보(http://www.j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