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세워진 가옥으로,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며 정치, 언론,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우리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촌 김성수 생가이자 인촌의 동생이자 민족자본 육성의 대표자인 수당 김연수가 태어난 곳이다 (수당 김연수는 삼양사, 경성방직을 설립하였으며, 대한민국 16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상협이 그의 둘째 아들이다)
살~짝 들여다 본 김성수 고택 내부 - 자료 사진
수당 김연수는 삼양사, 경성방직을 설립하였으며, 대한민국 16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상협이 그의 둘째 아들이다
김성수(왼쪽)와 동생 김연수(오른쪽)
♤ 김성수(金性洙) 생몰 : 1891.10.11 ~ 1955. 2.18 대한제국의 교육인 겸 언론인·기업인·근대주의 운동가 였으며, 대한민국 초기 정치인, 언론인, 교육인, 서예가였다 전라북도 고창출신이며, 전라북도 부안 줄포에서 자랐다 유년기에 아들이 없었던 백부김기중 (金祺中)의 양자가 되었다 어릴 적 이름은 판석(判錫)이었다 1915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인수하여 학교장을 지내는 등 교육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준비에 참여하여 자신의 집을 회합 장소로 제공하였다 1919년 10월 경성방직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20년에는 양기탁, 유근, 장덕수 등과 동아일보를 설립하였다 1932년 오늘날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였다 1930년대 김성수는 실력양성론에 따라 자치운동을 지지하였다 8.15 광복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조직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대운동 등에 참여한 뒤 김구, 조소앙 등과 함께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주관하였다 1947년 3월부터 정부 수립 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냈다 그 뒤 5.10 단독 총선거에 찬성하였다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이 부산정치파동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재선을 추진하자 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1954년 이승만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여 통합 야당인 민주당의 창립 준비에 관여하였고, 1955년 2월 18일 병으로 사망하였다
2005년 2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광복회가 선정한 천일파 708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 705 인 명단, 친일인명사전에 언론계 친일파로 수록된 이후 대법원은 2017년 4월 김성수가 일제의 징병·징용을 주도적으로 선정·선동 했다며 그의 친일행위를 인정했다 이어 정부는 2018년 2월 김성수의 공적은 허위라며 56년 만에 김성수의 서훈을 박탈했다
정부가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민족 지도자’로 칭송하고, 그들을 기리는 기념물을 공공시설에 버젓이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