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가락 걸며 영원하자던~”이라며
가수 고(故) 김현식 씨는 노래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하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려고 하면 이 노래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새끼손가락만 걸어서는 약속이 성립이 안 된단다.
새끼손가락 건 채로 엄지손가락을 비비고,
그러고도 모자라 손바닥을 맞대기도 한다.
도장 찍고 인주 찍는 거라나 뭐라나?
그저 장난스럽게 지나치자니 뭔가 거슬린다.
아이들이야 ‘약속~’하며 손가락을 걸던 역사를
알지 못하니 그런가보다 할 수 있다.
하긴 나 자신도 어른들 따라 손가락을 걸면
약속이 이뤄지는 거구나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나이 사십이 넘어
아이들하고 손가락 걸면서 약속하다가
아이들이 새끼손가락만이 아닌 엄지도 내밀고
손바닥도 비비면서 “도장 찍고 인주 찍고”하면서
문화가 바뀌었다고 불평하는 걸까?
‘우리 땐 안 그랬는데...’하면서?
그건 분명 아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안타깝기까지 한 이유는
그 복잡해진 변화가
우리들의 불신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보여서 그런 거다.
새끼손가락만 걸어도 약속이 됐는데,
장난 삼아 재미 삼아 하던 약속이 충분히 이뤄졌는데,
이제는 그 장난스런 약속마저
믿지 못하는 세태를 반영하듯
도장도 찍어야 하고 인주도 발라야 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한 가득 밀려와서 그런 거다.
애초에 약속 자체를 믿지 못하는 행태가
순진한 아이들에게도 퍼진 듯 해서 그런 거다.
“뭐 그런 애들 장난 같은 일에 민감해서 그러냐?”
라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사실 그런 면이 더 크지. 하지만
가볍게만 보이는 장난스런 약속 관습의 변화
그 이면에 자리잡은 시대의 변화는
결코 만만하게 바라볼 수는 없지 않은가?
손가락 하나 안 걸고도
“난 너 믿어!”라고 확고하게 믿을 수 있고,
혹시 깜박 잊어 약속을 이행 못해도
“다음엔 잘 할 거야!”라고 믿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할 수는 없는 걸까?
손가락 내미는 사람들에게,
그러고도 속이려 들고 속지 않으려
두 눈 부릅뜨고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엇이 신뢰를 심어줄 수 있을까?
인간의 끝없는 약속 불이행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아들을 보내사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하다가,
하나님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 문화에
다시 한 번 질겁하며 손가락 쳐다보며 글을 쓴다.
“그래, 난 아이들에게 새끼손가락 하나로만 약속해야겠다.”
쓸 데 없는 다짐까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