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부서진 기둥(The Broken Column, 1944) - "인생도 사랑도 결국엔 아픔을 딛고 서는 것"
비두리 ・ 2024. 12. 23. 11:30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부서진 기둥(The Broken Column),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Museo Dolores Olmedo Patino)
- 화가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 제목 : 부서진 기둥(The Broken Column)
- 제작연도 : 1944년
- 유형 : 유화
- 기법 : 섬유판에 유채(Oil painting on masonite)
- 크기 : 30.6 x 39.8cm (가로, 세로)
- 소장처 : 돌로레스 올메도 미술관(Museo Dolores Olmedo Patino) 소장
"인생도
사랑도
결국엔
아픔을
딛고
서는 것"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부서진 기둥(The Broken Column, 1944) 작품 설명 및 해석
"내 그림에는 고통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My painting carries with it the message of pain.)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화폭으로 담아낸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또 다른 작품에 이끌렸습니다. 바로,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부서진 기둥(The Broken Column, 1944) 입니다.
1944년 프리다 칼로가 그린 '부서진 기둥'은 화가 자신의 상반신을 드러낸 누드화 입니다. 하지만, 여느 누드화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고통과 슬픔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흔히, 속되게 말하는 19금이나 야하게 느껴지는 가슴 노출인데요. 제게는 성적인 의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온몸에는 못이 박혀 있고, 얼굴에서는 굳은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배경에서는 차분하면서도 황량함이 느껴지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누드화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제목을 볼까요? 제목은 '부서진 기둥(The Broken Column)입니다. 'Column'은 라틴어 'columna'에서 유래했는데요, 이는 "기둥"이나 "기둥 모양의 것"을 뜻합니다. 'Columna'는 다시 "colere"(거주하다, 경작하다)에서 파생되었는데요. 이는 기둥이 집이나 건축물을 지탱하는 구조적 역할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Column'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건축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여러 유럽 언어로 전파되었습니다. 영어인 'Column'은 중세 프랑스어 'colonne'를 거쳐서 만들어졌습니다. 'Column'은 건축이나 구조물에서의 기둥이나 장식적이거나 구조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참고로, 언론사에서 의견을 게재하는 원고란을 일컬어 '칼럼'이라 일컫는데, 이 역시 'Column'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부서진 기둥'이라는 제목처럼 척추뼈를 부서져 있는 기둥으로 표현했습니다. 칼로의 턱 바로 아래에 있는 기둥을 한번 자세히 볼까요? 부서진'이라는 설명처럼 기둥은 조각나 있습니다. 기둥의 끝단은 머리 부분을 위태롭지만, 그래도 꿋꿋이 받치고 있습니다. 파르테논 같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이 연상되는 기둥을 척추뼈로 비유해 그린 것입니다. 정확히는 아테네에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같은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입니다.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도리아인, 이오니아인, 코린트인들의 건축 기법을 각각 도리아(Doric), 이오니아(Ionic), 코린트(Corinthian)라고 부릅니다.
이중에 칼로가 사용한 양식은 이오니아 양식입니다. 이오니아식은 기둥 맨 윗부분인 주두에 볼루트(volute)라고 불리는 나선형 장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둥의 밑부분에 장식된 기초(base)가 있습니다. 이오니아는 무엇보다 도리아식이나 코린트식보다 기둥이 더 가늘고 우아하며, 비율적으로 더 길쭉합니다. 그래서 여성적인 우아함과 세련미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기에 칼로는 이오니아 양식을 고른 걸로 보입니다.
온 몸을 포함해 심지어 얼굴에도 못들이 박혀 있습니다. 못의 크기는 제각각인데요. 사람의 심장이 위치해 있는 왼편 가슴에 박혀 있는 못을 가장 크게 그려놓았습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그림의 오른편인데요.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몸에 그려놓은 못은 애증의 대상인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게 받은 상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못의 크기로 칼로가 겪은 아픔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반신에는 흰색으로 된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데요. 이는 실제로도 척추뼈 부상으로 인해 상반신을 온전히 지탱하지 못해 코르셋(Corset)을 착용해 자신의 몸을 떠받치고 있던 걸 은유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른편 이미지는 칼로가 실제로 착용한 코르셋에 그린 작품입니다.
양손은 흰색으로 된 옷을 붙잡고 있습니다. 옷으로 가려진 하반신에도 목이 박혀 있습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오른발에 장애가 있었고, 18살 때 겪은 교통사고로 인해 오른발의 장애는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프리다 칼로는 폭이 긴 멕시코 전통 치마를 입어서 자신의 하반신 부분을 가리곤 했는데요. 이 작품 역시 하반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화가 자신의 고통 가운데 내면의 고통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인생도 사랑도 결국엔 아픔을 딛고 서는 것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기둥' 작품을 통해 제가 받은 인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인생도 사랑도 결국엔 아픔을 딛고 서는 것'입니다. 실제 그림을 그릴 당시나 생활할 때에는 자주 앉아있었을 그녀가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을 자화상을 그려낸 것은 아픔을 딛고 서겠다는 의지의 소산일 것입니다.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기둥'에 대한 기타 이야기
이 작품은 멕시코에 거대한 벽화로도 그려져 있습니다. 단지 벽화로만 그치는 건 아니고, 기둥 부분과 주변이 조각으로 된 설치 작품입니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자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인 디에고 리베라의 영향 때문인지, 거대한 벽화로 그려진 게 아닐까 합니다. 정확히 어딘지 장소를 알 수 없는 건축물인데요.(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이 건물 주변으로 죽음의 상징하는 해골들이 빽빽이 박혀 있습니다. 어느 축제의 영향인지(이를테면, '죽음의 카니발' 같은) 해골들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네요.
프리다 칼로의 생애와 삶에 대하여
프리다 칼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 교지에 실린 프리다 칼로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미술'의 '미'자는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술'(술 주, 酒)만 알았던 그 시절에 프리다 칼로의 삶과 작품을 알게 되어 크게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녀의 이야기와 작품이 인상에 깊이 남아서 쉽사리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나긴 시간이 흘렀네요. 당시에는 작품을 볼 줄 아는 눈과 머리와 마음이 없었기에, 그저 고통을 묘사한 작품으로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미술을 배우는 중이고, 아직도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그린 프리다 칼로의 의도 또는 마음과 더불어 작품에서 그 어떤 슬픔과 고통이 생생히 느껴집니다. 그저 그 아픔에 공감하는 것만이 제가 프리다 칼로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방식이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나는 결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을 그릴 뿐.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흔히, 프리다 칼로가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프리다 칼로 자신은 초현실주의 화가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초현실이 아닌 현실적으로 맞닿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으니까요. 물론, 초현실주의라고 불릴 만큼, 현실을 벗어난 환상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1950년대 이후로 프리다 칼로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됩니다. 수십 번의 수술을 거치는 동안, 프리다 칼로의 건강은 좋아지기는커녕 더욱 나빠집니다. 그녀의 발가락은 절단되고, 골수 이식 수술을 포함한 수많은 수술로 생명을 연명해야 했습니다. 수술 도중에 세균에 감염되어 실패한 수술도 있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하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갔습니다.
1953년 프리다 칼로의 생애 마지막 전시회가 열립니다. 자신의 사랑이자 증오의 존재인 남자,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애증'의 관계라는 표현이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디에고 리베라가 마련해 준 전시회였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누워서 전시회에 온 이들을 맞이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생애 마지막 전시회를 열면서 마지막 일기를 씁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다시 읽어봐도 마음이 찡해집니다. 1954년 7월 13일에 프리다 칼로는 향년 48살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는 먼 여정을 떠나갔습니다. 하늘나라로 떠나기 8일 전에 ‘비바 라비다(Viva la Vida)’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인생 만세'라는 이 작품은 여러 개의 수박의 단면을 그린 정물화인데요. 이 작품은 추후에 글로 쓸 수도 있으니, 우선은 이 정도까지만 소개하겠습니다.
-2024.12.23 비두리
[출처]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부서진 기둥(The Broken Column, 1944) - "인생도 사랑도 결국엔 아픔을 딛고 서는 것"|작성자 비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