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단상
어언 꽉 찬 6개월이 되어간다. 아들이랑 남편두고 혼자 노트북 한대와 여행가방 한개 달랑 들고 시카고에 들어선지. 아래 포닥 와이프 모임을 만들자는 글을 읽으며 와이프를 둔 포닥들은 참 행복하겠구나 생각했다. 포닥이자 와이프인 사람은 누가 돌봐 줄까 ^-^;
그럭저럭 혼자 살면서 느꼈던 몇가지 사소한 일들을 적어보자 한다.
TV 시리즈 중에 "everybody loves Laymond" 라는 드라마가 있다. 가족간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시트콤으로 무겁지 않고 경쾌해 자주 본다. 어느 날 에피소드에 레이몬드의 아내(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와 레이몬드의 어머니,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신경전을 지켜보던 시아버지가 옆에서 툭 던지는 말 "korea thing!" 이란다. 난 무척이나 놀랐다.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가 날 혼자 이곳에 오게 만들었지만 굳이 외로움을 선택한 데는 시부모님에 대한 어려운 감정이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을 나 자신이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들과 남편이 무척 보고 싶지만 다른 한편 시댁에 대한 의무로 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와진 것에 대해 난 현재 무척 안도하고 있다. 그 드라마들 보면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 당당히 하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할 말 당당히 하고, 아들 또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부인에 대한 사랑을 합리적으로 잘 구분할 줄 알고, 때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 구조가 있긴 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권리를 인정한다.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위한 봉사자로서가 아닌 독립된 가정의 주체로서...
7th heaven이란 드라마가 있다. 나의 미국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이미지와 다른 타입의 가정이 등장한다. 7명의 자녀를 둔 목사님의 가정.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러가지 바람들 중 내 관심을 끓었던 것은 장성한 아들의 사랑 이야기다. 미국에서 인종적 이유 외에 부모가 나서서 결혼을 반대할만한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었다. 이 드라마에서 부모가 자녀의 결혼을 반대하는 적극적인 이유는 종교 때문이다. 유태인 랍비의 딸과 미국 개신교 목사의 아들. 시간적 이유로 자주 보지 못해 현재 드라마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로 결론이 나지 않을 까 생각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는 보편성을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프렌즈" 라는 드라마. 한국에 있을 때 부터 소문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티비를 구하자 마자 프렌즈 부터 찾았다. 퇴근한 후에야 티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또 퇴근해서 저녁해서 먹고 기타 등등의 잡다한 일을 하다보면 티비 자체에 집중 하기 힘들기 때문에 프렌즈를 만나게 된건 한참 지난 후였다. 알고 보니 티비 이채널 저채널 에서 프렌즈를 볼 수가 있었다. 다른 시리즈를 다른 시간대에서. 게다가 시즌이 지나 새 시즌을 시작하기 전 까지는 재방송의 연속이므로... 이건, 각 채널이 각자의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을 방송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어쨌는, 프렌즈의 때론 얼토 당토 않은 때론 유치한 때론 한국적인 정서와는 다른 드라마를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있다. 친구들 끼리 친한 친구이기도 함과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애인이 되었다가 헤어졌다가 가지 가지 헤프닝이 만발이다. 아주 어렵고 슬픈 얘기 조차 아주 희화한 된다. 뭐 사랑해서 결혼 했는데 알고 봤더니 레즈비언이라는 둥, 엄마 아빠가 자살했다는둥. 미국 사람에게 물었다. 프렌즈의 프렌쉽이 정말이냐고. 그 사람은 대답했다 "No!". 그 사람이 말하길 일종의 판타지란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 미국인과 결혼해서 사는 분이 말한다. 미국은 인종 국적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워낙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미국은 이래" 혹은 "미국 사람은 이래" 라는 보편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고. 아주 보수적인 사람부터 아주 개혁적, 진보적 사람까지 다들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간다고 한다. 주위 미국 여학생들에게 물었다. 보통 언제 결혼을 생각하느냐고. 그랬더니 한참을 생각하더니 잘 모르겠단다. 어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10대 일때 결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결혼을 미뤘다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을 때 하는 친구도 있다 한다. 우리 나라는 일정한 나이에 들어서면 결혼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결혼 자체가 의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다.
아주 자유 분방한 모습을 티비에서는 보여주기도 하지만, 실제 만나서 얘기해 보면 또 다르다. 대부분 보편적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얼마전 부터 미국인 교회에 나간다. 영화에서 보는 흑인들 중심의 흥겨운 예배가 아닌 우리 나라 일반적 장로교 예배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 교회다. 금발의 백인이 영어로 기도하고 찬양 하는 모습이 처음엔 낯설게 다가 왔었다. 세 분 목사님이 계신데, 두 분은 자녀가 다섯명씩이다. 가장 어린 한분은 2명,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의 상당 수가 자녀가 셋 이상이다. 이 또한 미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이미지와는 다른 부분이다.
한국의 실험실을 떠올려 본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힘겨운 대학원 시절을 보낸다. 교수님께 철저히 복종하는 대학원생들. 공경 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두려워 때론, 학문적 토론 자체가 방해 받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미국 실험실은 참 합리적이다. 서로 이름을 부르기 때문일까. 수평적 관계에서 "내가 지금 바보스러운 말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걱정 없이 서로 얘길 나눌 수 있다. 얼마전, 실험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언어 폭력에 관한 비디오를 상영해서 온 실험실 사람들이 봤다. 그 비디오는 말하고 있었다 "you are stupid!" 라고 교수가 당신에게 얘기 했다면 바로 그것이 폭력이라고.
미국은 잘 사는 나라다. 경기가 많이 나빠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국은 참 잘 사는 나라다. 여유로운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왠만해서는 좀처럼 화를 내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와도 독촉하는 사람이 없다. 주간에 공사를 하느라 근 두달 간을 소음을 만드는 데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 귀를 틀어막고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소음이 심했지만, 거기에 대해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주말에는 다 같이 놀고, 다들 일할때 같이 일한다.
electronics에 크게 목메지 않는다. 현재 랩에 보스 조차도 아직 휴대폰이 없다. 학생들을 비롯한 젋은 층을 중심으로 휴대폰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턱도 없는 속도다. 관공서나 부동산 회사를 가보면 머리 희끗하신 분들이 여전히 일을 많이 하신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이고 온라인이고 개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집값을 내려면 수표를 써서 우편으로 발송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분명 집값을 제 날짜 전에 보냈음에도 회사가 독촉장을 발생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때는 은행에서 수표의 복사본을 받아야 되는 데 한장 서비스 받는 데 5불을 내야 한다. 그것도 4-5일 걸려서 팩스 한장 받는데. 참 잘사는 나라의 아이러니다.
둘러보면 이리도 착하고 순박한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메스컴에서는 연일 유괴, 강간, 살인등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 학교를 부모가 데려다 주고 데려 와야 한다. 위험하기 때문에. 놀이터엘 가도 부모가 옆에서 지켜있어야 한다. 아이들 끼리 노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방과후 아이들이 친구랑 놀기위해서는 먼저 엄마들끼리 사전 약속을 정하고 어느 집에서 놀릴 것인지를 결정한다음 어느 한쪽 엄마의 보호 아래 놀아야 한다. 이 얼마나 불편한 시스템인가. 그래도 미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한다. 참 아이러니다.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다. 6개월간 살아본 나라에 대해 내가 뭘 알겠는가. 아마도 살면서 느낌이 달라지겠지. 어서 어서 시간이 지나 아이랑 남편이 함께할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