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개떡
어제의 일이다.
대구로 내려가 예비사돈 내외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정갈하게 보이는 나물 요리에는 바닷가 '톳(海草)' 무침이 들어 있었다.
서울로 되돌아왔다.
무척이나 피곤하고, 힘들어도 pc를 열고 사이버 카페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다.
대구에서 선물을 받았던 보따리를 끄르던 아내가 '어머, 망개떡이네' 하면서 반가운 듯이 소리를 냈다.
망개떡? 무슨 떡인지 모르겠다.
컴퓨터 모니터에만 정신 팔린 나한테 내미는 떡 하나. 찹쌀떡처럼 생긴 떡을 또르르 말고는 나뭇잎으로 살짝 감쌌다. 찰기 있는 떡쌀이 서로 엉켜붙지 않도록 나뭇잎새로 감싸은 뒤에 뜨거운 물에 데쳐서, 쪄냈다는 듯이 나뭇잎이 누리끼리한 빛깔이었다.
내가 얊은 전(煎)처럼 또르르 말아서 빚은 떡을 우악스럽게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어떻게 생긴 떡인지는 모르겠다. 또 무슨 맛이 나고, 어떤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컴퓨터 모니터와 자판기에만 정신 집중하였으나 귓가에는 망개떡이라는 말이 또렷이 남았다.
망개잎은 청미래* 넝쿨나무의 잎사귀이다.
입새로 감싸서 망개떡으로 부르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앞산에서 흔히 보는 가시 많은 넝쿨(줄기) 식물이다.
대전 사는 누나는 친정에 올 때 이따금 송편을 가져왔고, 이파리로 송편을 쌌다.
이런 청래미넝쿨의 잎이 무척 귀하다며, 뜯었으면 한다고 말하곤 했다.
누나의 말을 듣고는 삽 한 자루를 들고 내 소유의 산(곶뿌래 상장산)올라서 멩감뿌리를 캐다가 위밭 몇 군데 이식했다.
긴 줄기에는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많고, 손가락 굵기의 뿌리가 길게 뻗었으나 실뿌리는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줄기뿌리를 돌돌 말아서 텃밭에 이식했으나 기대치 이하로 잎이 금세 말라서 죽었다.
올봄, 해동하면 다시 산에 올라서 몇 뿌리 캐다가 이식해야겠다.
산야초, 산나물에 관한 책에는 이 넝쿨나무의 잎, 줄기, 열매, 뿌리를 식용 약용하는 방법이 수록되었다.
나는 이를 가공하여 먹고 마시는 것보다는 두꺼운 잎을 뜯어서 송편 등 진기가 있는 떡을 싸서 가마솥에 찔 때 떡가루, 떡들이 서로 엉켜붙지 않도록 조리하는 측면으로 실용하고 싶다.
퇴직한 뒤 홀로서기를 시도해서 어느 정도껏 음식 조리는 해도 떡까지 만들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제의 친환경적인 텃밭에다가 작물, 과일나무, 야생화, 풀(푸성귀)들을 마구잡이로 섞어서 키우는 재미로 소일하고 싶다. 자연산 식물을 조금씩 활용하겠다는 소박하고 조심스러운 포부이며, 대량생산하거나 상품화할 의도는 없고, 그저 키우는 재미와 취미, 소일거리 정도로만 관심을 갖고 싶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인 1960년 봄에 대전으로 떠났고,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았기에 산골마을이 지닌 전통족인 경험, 지식, 지혜는 거의 없다.
퇴직한 뒤에서야 시골로 내려가 몇 해 살다가 지난해에서야 며칠간 보령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교육을 받았다.
농산품 판매에서는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가 있으면 정감이 생겨서 농산물이 더 잘 팔리고, 농촌(어촌, 산촌 등) 관광이 활성화되어서 농장과 전원생활의 정취를 잠깐이라도 맛보려는 도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농산물(임산물 등)을 잘 가꾸고 포장하는 재래식 방식만으로는 미흡하다. 또 단순한 정보, 설명 없는 사진보다는 무엇인가를 주저리 옹알거리거나 재미나는 일화(逸話)를 곁들이면 효과적인 마케팅이 된다고 강조했다.
나도 딱딱한 전문지식의 전달보다는 조금은 야들야들한 이야기거리가 든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대 위처럼 무심코 들은 한마디의 단어, 문구로도 글감(글쓰기 소재)으로 전환시키는 재능을 조금씩 키우고 싶다.
서울에 올라올 적마다 농사에 관한 책, 산야초에 관한 책을 한두 권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산약초, 산나물에 관한 초보지식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고향 바다와 고향 뒷산에 더 자주 찾아가면서 자연생태계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귀농인들과의 교류를 넓혀야겠다. 귀향귀촌하여 제2의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 농촌마을의 생태와 아직껏 벗어내지 못한 도회지의 생활습관과의 괴리를 좁혀서 새로운 문화창달에 근접해야겠다. 몸을 놀리지 않고 채찍질하듯 더 꼼지락거리면서 산약초, 들나물, 약성을 지닌 나무에 관심을 갖고 활용하는 방법까지도 조금씩 터득해야겠다.
마을 역사, 문화, 생활사에 등한시했던 생활을 반성하면서 지혜의 폭을 조금씩 더 넓혀야겠다. 곁들여서 나날이 건강이 부실해지기에 자연에서 흔히 보는 나무와 풀이라도 건강식품을 만들어서 먹어야겠다. 또 당뇨치료에도 도움을 받을까 하는 욕심도 내고, 농사 지으면서 나를 더 내려놓고, 낮추고 싶다.
이런 욕구의 밑바탕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연습'이 들어 있다고 살짝 고백한다.
바깥사돈이 될 분이 등산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신단다.
대구 한정식 레스토랑의 창가 아래의 화단에서 재잘거리는 작은 새를 보고는 '빕새*'라고 말씀하셨다. 토종 새와 해초(海草)의 이름까지도 명확히 아는 자연생물 지식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공계열 학자인데도 자연과학에 해박하셨다.
지금껏 어설픈 농촌지식과 농촌경험에 아는 체했던 나를 반성하며, 앞으로도 생태연구에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욕구가 살며시 일어났다.
작은딸의 시댁은 충남 태안군 태안읍이니 서해 바닷가의 풍광과 짭쪼름한 소금기를 느껴야 할 것 같다.
큰아들의 처가가 될 곳은 대구이니 내륙지방의 산 높고 물 깊은 풍경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또 내가 사는 충남 보령 산골마을은 서해 바닷가, 야산에 가까우니 나는 이들 지역의 살아 있는 지식과 선험(先驗)을 조심스럽게 접목해야겠다.
큰아들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의 상견례는 끝났다.
귀경길에 아내의 손에 보자기 하나를 건네 준 대학 교수네의 정성이 어린 선물.
서울에 안착한 뒤에 손공이 많이 들어간 떡(망개떡) 두 개를 입에 넣고 맛을 보았다.
* 청미래 : 표준어
방언 및 한자어 등 : 청래미, 멩감, 맹감, 망개, 토복령(土茯苓), 퉁갈나무, 벨레기낭 등.
충남 보령지방 바닷가 산골마을에서는 '멩감나무, 청래미'가 더 친숙하다.
뿌리를 삶아 차(茶)로 우려 마시고, 한약재로 활용. 빨갛게 익는 열매는 아이들의 먹이감.
* 빕새 : 뱁새가 표준어. 참새보다 훨씬 작다.
2013. 2. 17.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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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춤법 검사기.. 때로는 이해불능이다.
1) 이야기 +거리 = '이야기거리'인데도 '이야깃거리'로 나타난다.
나는 고집을 피워서 '이야기거리'로 쓴다.
2) 엉기다 : 고약이 엉겨붙다. 동생이 엉겨서 싸운다
엉키다 : 엉클어지다의 센말
인터넷 어학사전에는 '엉겨붙다'이다. 내 입말에는 '엉켜붙다'이다. 뜻의 차이가 있다.
나는 '엉켜붙다' 로 쓴다.
첫댓글 아홉째줄
청래미넝쿨잎 - 청미래넝쿨잎
<어제의 일기>
어제는 발길이 가는대로 갔더니
오산 옆의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 *리.
동네 어귀에서는 자주색 붓꽃이 활짝 피어서 반겨주는
아는 분 최 * * 여사(시골 동네 부녀회장을 지내신 71세의 할머니)댁이었습니다.
마침 할머니와 아들, 손주 셋(총 5명)이서 저녁 식사를
막 시작할려는 참이었는데
"저, 저녁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난(감자탕 식당에서 뼈찜 중으로 포장한 것 손에 들고) 저를
"작년 늦가을 다녀가고 왜 그리 오래만에 왔느냐?"
언제나처럼 반겨주시며 내 밥 한 공기를 밥상에 올리시는 할머니.
댓글 고맙습니다.
일기에 불과한 글이기에 다듬고 있지요.
충남 보령지방에서는 '청래미넝쿨, 멩감나무'이라고 하지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청미래'가 표준어인 것 같습니다.
방언 : 청래미, 망개, 멩감, 퉁갈나무, 벨레기낭 등으로 나오는군요.
멩감나무가 더 뚜렷하군요. 제 입말에는...
'망개'라는 단어보다는 '멩감'이 저한테는 익숙합니다.
제가 사는 마을 앞산은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다른 산(제 소유)에서 청미래를 캐다가 텃밭에 다시 심어야겠습니다.
조금만... 식물의 다양성 보존차원에서...
댓글 고맙습니다.
박 선생님은 서민적인 마음씨를 지녔기에 만나면 반가운 분들이 많군요.
부럽습니다.
올봄 마지막(2번까지만 새순을 따 먹고 3번째부터는 나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새순을 따지 않는다고함)으로
밭둑에서 딴 두릅순과 개두릅순(엄나무)과 오가피순 등 나물이 밥상에 올라
봄나물의 왕이라는 두릅순과 머위나물까지
보약밥상으로 저녁을 먹고 왔습니다.
* 참고로 위 할머니댁은 함께 사는 아들(직장인)이 이혼하여
71세의 할머니가 손주 셋(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을
보살피며 농사(논과 밭) 짓고 살고 있습니다.
두릅, 엄나무, 오가피, 머위...
제 텃밭에 있는 봄나물들인데? 서해안 보령지방까지 다녀가셨어요?
두릅나무, 엄나무 새순을 4월 말까지 꺾어야 하는데...그 시기가 지나면 나무가지가 웃자라지요.
올 4월 23일에 첫물만 조금 꺾었고, 나머지는 읍내에 사는 사촌동생보고 꺾어 가라고 했는데...
이런 나무는 키가 낮아서 다음 해에 새순을 뜯기가 좋은데...
나무를 보호하려고 새순은 두 차례만 꺾는다는 배려에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아니 71살이면 내 또래의 할머니인데 대학생, 고교생, 초등학교생?
저는 고작 6살 난 손녀, 5살인 손자, 10개월째인 외손자 뿐인데...
할머니가 든든하게 사시는군요. 장성한 손자와 함께...
@최윤환 아들이 스물 한 살에 결혼(연애)을
했다지요.
@박민순 일찍 결혼했는데...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군요.
할머니 손에서 크는 아들, 딸... 그리고 그 부부는 왜 이혼했는지...
@최윤환 손주들은 미용사였던 어머니라서 할머니손에서
주로 자라서인지
엄마가 없어도 밝게 잘 자라더군요.
이혼한 사연까지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러네요.
@박민순 예.
맞습니다. 때로는 감춰주는 게 미덕이지요.
글 여러 차례 다듬는데도 어색한 부분은 자꾸만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