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 “수입 10년째 제자리”… 전문 영역 뚫고 기업 취업
[위클리 리포트]변호사 3만명 시대 풍속도
로스쿨 도입후 변호사수 급증세… 경쟁 치열해져 평균매출 그대로
“물가 감안땐 수입 되레 줄어”, 로펌은 합병 통한 몸집 키우기
“대기업 사건 등 수임에 유리”… 강점 시너지 효과로 성장동력
“홍보나 마케팅 없이 앉아만 있어도 의뢰인이 찾아오고, 억대 연봉을 벌던 시절은 예전에 지나갔습니다.”
최근 동아일보 취재진과 만난 한 40대 변호사는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은 ‘변호사 연봉’이란 말이 법조계에서 유행”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30일 97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에 당선된 김정욱 변호사(43·변호사시험 2회)의 취임 일성도 “변호사 업계가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다. 김 회장은 “3만 명 가까운 변호사 중 2만 명이 청년 변호사”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만큼 변호사 업계가 위태롭다”고 했다.
대표적인 고수익 전문직으로 여겨지던 변호사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변호사 3만 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법률시장이 포화에 달했고, 실질적 성장도 멈췄다는 것이다. 로펌은 로펌대로, 개인 변호사는 개인 변호사대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변호사 매출 10년째 제자리걸음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변호사 1명당 연평균 매출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국세청 자료와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변호사 수 등을 종합하면 2012년 약 2억4886만 원 수준이던 변호사 1인당 연간 매출은 지난해 2억4632만 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물가가 오른 점 등을 감안하면 실질 수입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는 2009년 로스쿨 도입 이후 빠르게 늘어난 변호사 수와 관련이 있다. 법률시장의 전체 규모는 2012년 3조6096억 원에서 2021년 7조7051억 원 수준으로 2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변호사 수 역시 1만4534명에서 3만1281명으로 역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변호사 수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는 3만3000명을 넘었다.
그동안 성장세를 이어오던 로펌업계에 한파가 찾아올 수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최근 금리 상승에 따라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증시마저 지지부진한 가운데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이나 신규 투자 등을 통한 신사업 진출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주식 및 회사채 공모발행액 실적은 전년 대비 26조9046억 원(11.6%) 감소한 204조5747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 대형 로펌의 M&A 담당 변호사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들이 자문 등 지출을 최소화한다”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M&A 딜이나 투자 유치 등에 대한 법률자문 수요가 많이 줄었고, 당분간 이런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뭉쳐야 산다” 합병 나서는 로펌들
로펌업계에선 활로를 찾기 위해 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신규 전문 분야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연초 중견 로펌인 법무법인 클라스와 한결, 강소 로펌인 LKB파트너스와 린이 합병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분야를 합병을 통해 보완하고, 회사 규모를 키워 규모가 큰 대기업 사건 등을 수임하겠다는 취지다. 판검사 출신 전관들이 많아 송무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던 법무법인 클라스로서는 건설·부동산, M&A, 노동 등 자문 업무에서 두각을 보여온 한결과의 합병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자문을 맡긴 로펌에 송무까지 위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LKB파트너스와 린도 합병 협의를 진행 중이다. 엘리트 판검사 출신이 대거 포진해 ‘서초동의 김앤장’이라고 불리며 송무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LKB와 기업자문 및 금융 분야에서 다수의 자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급성장한 린 역시 합병을 통해 굵직한 대기업 사건을 수임할 계획이다. 이들 로펌 4곳이 2곳으로 합병되면 변호사 수가 각각 150명을 넘으며 기존의 대형 로펌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갖추게 된다.
과거에도 로펌 간 합병을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한 사례가 적지 않다. 2001년 법무법인 세종이 열린합동법률사무소를 흡수하고, 광장이 한미합동법률사무소와 합병한 것이 대표적이다. 2008년에는 중형 로펌이던 지평과 지성이 지평지성으로 합병한 후 2014년 지평으로 개편했다. 2009년에는 대륙과 아주가 통합하며 지금의 대륙아주가 출범했다. 이들 로펌은 모두 현재 10위권 대형 로펌으로 성장했다.
로펌업계 순위를 보면 김앤장이 지난해 추정매출 약 1조3000억 원을 올리며 로펌업계에서 독보적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광장(3762억 원)과 태평양(3683억 원)의 2위 싸움이 10여 년간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율촌(3040억 원)은 사상 처음으로 ‘3000억 원’ 로펌에 자리매김했고, 이 뒤를 세종(2985억 원)이 바짝 뒤쫓고 있다.
10위권 진입을 둘러싼 각축전도 치열하다. 변호사 수를 기준으로 하면 일부 변동이 생기기도 하지만 동인(575억 원)이 매출 기준 10위에 자리잡았고 YK, 로엘, 충정 등도 10위에 바짝 다가섰다는 평가다. 이 로펌들은 모두 변호사 수가 100명이 넘는다. 중견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10위권 진입을 둘러싼 각축전도 치열하다”며 “합병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로펌들은 국내 10위권 자리를 두고 동인, YK, 로엘 등과 본격적으로 경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영역 발 빠르게 선점, 사내변호사도 인기
시장 및 제도 변화에 따라 새로 각광받는 ‘전문 법률시장’을 발 빠르게 선점하기 위한 로펌 간 경쟁도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발맞춰 김앤장은 중대재해법 태스크포스(TF)를 100여 명 규모의 ‘중대재해 대응그룹’으로 확대 개편해 운영하고 있다. 광장도 ‘산업안전·중대재해팀’을 꾸렸다.
화우는 디지털금융팀을 출범시켜 금융규제, 개인정보 및 정보보안, 마이데이터, 가상화폐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 외에도 로펌마다 공정거래, 인공지능(AI), 부동산 등에 대한 전담팀 구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들 전문 분야에 대한 로펌 간 팀 단위 영입전도 벌어진다. 태평양 관계자는 “로펌은 회사 대 회사가 아니라 팀 단위, 업무 단위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에선 3, 4년 전부터 팀 단위 스카우트가 활발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전문 분야를 등록하고 ‘○○ 전문변호사’로 활동하는 사례도 최근 늘었다. 과거에는 이혼, 형사, 금융 등 분야를 특정하지 않고 모두 다루는 ‘전천후’ 변호사가 더 많은 수임 계약을 할 수 있었지만, 경쟁이 심화되고 온라인 검색이 간편해지며 자신만의 ‘특화 분야’를 가진 변호사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디지털 자산 관련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는 5년 차 변호사는 “변호사가 되면 공부를 그만해도 되나 싶었는데 한정된 시장에서 몸값을 높이려면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사내변호사 채용을 늘리면서 기업에 자리를 잡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기업에 속해 안정성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챙길 수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적었던 사내변호사 보수가 최근 공격적 채용 과정에서 다소 늘면서 네트워크와 경험이 부족한 젊은 변호사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내변호사회에 따르면 2018년 말 1974명이던 이 단체의 회원 수는 2020년 2219명, 2021년 2235명에 이어 올해 2500명을 넘어서며 5년 동안 27%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자현 기자, 장하얀 기자, 유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