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국내 게봉제 : 알라바마에서 생긴 일
원제 : To Kill a Mockingbird
1962년 미국영화
원작 : 하퍼 리
감독 : 로버트 멀리간
음악 : 엘머 번스틴
제작 : 알란 J 파큘라
출연: 그레고리 펙, 메리 배드햄(아역), 필립 앨포드(아역)
제임스 앤더슨, 로즈마리 머피, 프랭크 오버튼
브록 피터스, 로버트 듀발
아카데미 3개부문 수상작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의 20세기 여성작가인 하퍼 리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1960년에 발표되었고, 곧바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발표 2년뒤인 1962년에 영화화 되어 그레고리 펙 주연으로 만들어졌고, 아카데미
8개부문에 후보로 올라 3개부문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습니다. '앵무새 죽이기'가
꾸준히 오랜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세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명작 소설로 인기를
모으는 것은 이 영화의 영향도 컸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1966년에야 우리나라에 개봉되었는데 개봉제목은 '알라바마에서 생긴일'
입니다. 당시는 아직까지 소설에 대한 인지도가 약해서 소설제목과 다른 개봉제로
소개되었지만, 요즘은 '앵무새 죽이기'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출간된 소설이 꽤
인지도가 있어서 개봉제목은 많이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1930년대 알라바마 지역의 작은 시골마을이 배경이며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꼬마
숙녀시절의 과거를 회상하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딱 봐도 하퍼 리의
자전적 이야기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퍼 리의 아버지는 실제로 변호사였고, 하퍼 리는
영화속의 스카웃처럼 남자같은 활달함을 가진 성격이었다고 하고, 소설을 쓰던 당시
어머니를 여읜 상태었던 하퍼 리 였는데 영화에서 스카웃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오빠 세 식구가 사는 설정입니다.
스카웃은 몇살위의 오빠와 함께 남자같이 활달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근처 집에는 부 래들리 라는 인물이 은둔하며 살고 있는데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아주 무서운 괴인같은 존재였습니다. 오빠인 젬과 스카웃은 이웃 친구인 딜과 함께
부 래들리의 집을 몰래 염탐하려고 하지만 겁에 질려서 도망쳐 나오곤 합니다.
아버지인 애티커스 핀치(그레고리 펙)는 변호사인데 흑인차별이 심한 30년대
남부지역에서 흑인의 변호를 맡는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카웃은 가끔
아빠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스카웃이 학교에 입학하고 그 여름,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학교에서
스카웃의 아버지가 흑인을 변호한다고 놀려대는 아이때문에 싸움을 한 스카웃은
그런 말을 들어도 다신 싸우지 말라고 타이르는 핀치 변호사의 말을 듣게 되고,
어느날 오빠와 함께 핀치가 변호하는 흑인 톰의 재판에 구경을 갑니다. 많은 방청객이
온 가운데 열린, 톰의 재판, 누가 봐도 톰은 억울한 누명을 쓴 상황, 하지만 흑인을
심하게 차별하는 이웰 이라는 남자는 톰이 자기 딸을 강간했다는 누명을 씌워
몰아세웁니다. 부당한 편견에 맞서 열심히 변론하는 핀치, 하지만 백인들로 구성된
배심원들과 판사는 이웰의 주장에 동조하는데.....
1930년대 무더운 남부 지역 알라바마에서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소박한 세상의
모습과 그런 것을 보면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꽤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 도 있는 내용을 개구쟁이 같은 꼬마소녀 스카웃과 오빠 젬의
관점에서 눈높이를 맞추어 동심어린 내용과 소박하고 웃음을 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엘머 번스틴의 차분한 음악,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각본, 정의롭고 용감한 남자 역에 딱 어울리는 그레고리 펙의 강직하면서도
자상한 모습,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해도 밉지 않은 천진한 두 남매를 연기한 아역 배우,
그리고 옆집의 괴인으로 소문난 '부'라는 남자의 정체가 드러날 때 그를 연기한 젊은
시절의 로버트 듀발의 깜짝 등장 등 재미난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제목 '앵무새 죽이기'는 죄없는 앵무새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이야기에서 인용한
것인데, '앵무새'는 흑인, 소외되고 힘없는 자를 일컫는 은유입니다. 어린 스카웃의
눈으로 본 세상, 따뜻한 이웃들과 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 어른들의 세상, 그리고 죄없는 흑인에 대한 재판과 억울한 유죄판결 등
천진한 스카웃을 좌절시키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모든 편견은 걷히게 되어 있고,
스카웃 역시 괴담으로만 듣고 오해했던 옆집 아저씨 부에 대한 정체(?)를 알고
그 수줍음 많이 타는 은둔자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미는 장면은 매우 흐뭇합니다.
흑백영화가 주는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영화내내 흐르고, 뭔가 벌어질듯한 긴장감과
차분하게 흐르는 진행은 130분의 상영시간내내 시간가는줄 모르고 빨려들어가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오래전 더빙버전으로 TV에서 보았을 때 이미 말로만 듣던
고전을 직접 접하고 그 재미에 쏙 빠지게 했던 영화입니다. 좋은 원작과 좋은 배우에
의하여 좋은 영화로 탄생된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억울하게 백인 재판의 희생양이 되어 버리는 흑인 톰에 대한 내용이 무척 가슴을
아프게 했고, 톰의 희생못지 않게 찡했던 부분은 아버지의 좌절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모습인데, 그 이후에 벌어지는 어떤 뜻밖의 사건과 그 사건을 수습해주는 보안관의
현명한 임기응변으로 인하며 묵었던 갈증이 내려가는 느낌도 듭니다.
세상에는 비상식적인 일과 참 이해하기 아려운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도 따뜻함과 사랑이 늘 묻어나는 희망적인 곳이 바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참 모습이다 라는 주제를 던져주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전개되는 이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는 자상했던 아버지와 보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한 여성의 희망적 메시지같은 영화입니다.
그레고리 펙은 적역을 연기하여 아카데미상을 받았는데 사실 연기의 깊이로만 보면
'술과 장미의 나날'의 잭 레몬이나 '알카트라즈의 조류가'에서의 버트 랭커스터가
더 잘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20년 가까이 연기를 했고 좋은 역할을 많이 맡았음에도
아직 아카데미를 품에 넣지 못한 그레고리 펙에 대한 전관예우도 좀 적용했던 것
같습니다.
인권영화이며 성장영화이며, 가족영화이며, 따뜻한 휴먼드라마인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서 볼 수 있는 명작 고전영화로 남게 되었고,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명작입니다. 재미, 감동, 웃음, 긴장을 모두 불어넣어 주는 영화이며
고전 걸작의 진가는 이런 작품을 통해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로버트 멀리간 감독은 6년뒤에 그레고리 펙과 '레드 문'이라는 영화에서
다시 함께 했는데 그 영화는 너무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ps2 : 1960년대의 눈으로 본 1930년대의 인종차별, 하지만 60년대에도 여전히
남부 지역의 인종차별은 심했고, 21세기가 되어서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거라는 것은 그 시절에는 절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ps3 : 로버트 듀발은 확실히 노안이더군요. 31세에 출연한 영화인데.
ps4 : 하퍼 리 역시 마가렛 미첼이나 에밀리 브론테 처럼 단 한 편의 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작가입니다.
ps5 : 이 영화속의 그레고리 펙의 모습은 만인이 바라는 아버지 상이 아닐까
싶네요.
ps6 : '알라바마에서 생긴일'은 쌩뚱맞은 제목같지만 그냥 우리나라의 개봉제로
의역한 것이고, 사실은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이 오역입니다. Mockingbird는
앵무새가 아닌 '흉내 지빠귀새'로 앵무새와는 완전히 다른 종입니다.
[출처] 앵무새 죽이기/알라바마에서 생긴 일(To Kill a Mockingbird 62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