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강, 이재명의 강
민주, 조국 1심 유죄 선고에 침묵
李대표 스스로 사법 리스크 맞서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1심 유죄 선고 직후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논평을 내지 않고 침묵했다. 당직자들의 흔한 구두 논평조차 없었다. 2019년 당 지도부가 조국 사태에 대해 “온 가족을 멸문 지경까지 몰아붙이고 있다”며 검찰을 비난했던 분위기와는 달랐다. 그러나 법원 결정을 흔쾌히 수긍할 수도 없는 듯했다. 의석 169석의 거대 야당이 간단한 입장 표명도 못 하는 보기 드문 사건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조국 사태의 반전을 시도했다. 공정 가치를 되찾기 위해 ‘조국의 강’을 건너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다. 이재명 대선후보는 대선 기간 중 “민주당이 공정성에 대한 국민 기대를 훼손하고 국민을 아프게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세 차례나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조국 사태가 불러온 역풍은 거셌다.
대선 패배 후 그 약속은 없던 일이 됐다. 조국의 강을 건너기는커녕 운도 떼지 못한 느낌이다. 조국의 강은 말로만 건넜을 뿐이다. 오죽하면 공당이 입도 떼지 못하는 처지가 됐을까. 당내에서 조국 사태는 언급하지 말라는 금기 사항이 된 느낌이다. 각종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는 이 대표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 사태와 이재명 리스크는 겹치는 장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국도 당시 친문 진영의 유력한 대선주자였다. 공직 검증에서 촉발된 검찰 수사만 아니었다면 ‘꽃길’을 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선 재수에 나설 이 대표도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이지만 사법 리스크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강경 지지층이 똘똘 뭉친 팬덤 현상도 마찬가지다. 주축이 친문 성향에서 ‘개딸’ 등 친명계로 바뀌었을 뿐 ‘묻지 마’ 팬덤은 그대로다. 친명 지지 세력은 지금 민주당의 최대주주나 마찬가지다. 조국 수호대를 자처한 친문 지지자들처럼 이 대표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정조준해 문자 폭탄과 항의 전화를 퍼붓는 돌격대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민주공화국에서 숫자가 최고 아닌가”라고 했다. 다수가 뭉친다면 웬만한 의사 결정도 뒤집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4년 전 조국 지지자들은 검찰의 조국 수사에 맞서 “조국은 무죄다”라며 ‘조국 수호’를 외쳤다. 이 대표도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에 맞서 4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었다. 난방비 급등이라는 민생 이슈로 가렸지만 사실상 ‘이재명 수호’ 집회나 다름없었다.
민주공화국은 선거에 의해 반영된 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에 앞서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횡포를 무조건 보장하는 표(票)퓰리즘까지 용인할 순 없을 것이다. 지금이 과거 군사정권에 맞서 판을 뒤집었던 대중항쟁 시대인가. 기득권 거악에 맞서 싸우자는 ‘강자 대 약자’ 프레임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다. 법치주의는 흔들리는 민주공화정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이다.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을 두 쪽으로 갈라놓은 조국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지난 민주당 장외집회에서 이 대표는 “다수의 약자들이 뭉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대표 개인 비리 의혹인데 왜 다수의 약자들이 뭉쳐야 한단 말인가. 지금 민주당을 누가 약자라 볼 수 있나. 대통령 권력은 뺏겼지만 입법권을 쥐락펴락하는 의회 권력의 과반을 차지한 거대 야당 아닌가.
조국의 강 문턱에서 주저앉은 민주당 앞에 이재명의 강이 놓여 있다. 이 대표는 조국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결국 그 강은 누구도 아닌 이 대표가 건너야 한다.
정연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