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아르의 대모험(1부)-6/6-
레온 유리스
골리아르의 대모험(1부)-6/6-
2. 스타지오 로데릭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한 노인이 자신의 주거공간이며 <드래곤 길드>의 사무실이기도한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건물 안의 집기며 방안의 이곳저곳을 정리하며 이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클리어”
그가 주문을 외자 노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검은머리에 마른 체격의 제법 똘똘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 스타지오 로데릭, 그게 본연의 모습이었다.
그가 낮에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학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들통나는 날에는 무시무시한 처분이 떨어지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이 범죄의 완벽성을 자신하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에 받아둔 <드래곤 길드> 가입원서를 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드래곤 길드>모집의 전단을 붙인 것도 채 일주일도 안 되긴 했지만 드래곤을 없애자는 데 관심을 갖는 이는 거의 없는 듯했다.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생각엔 아직 많은 아레코 사람들의 마음엔 두려움이 너무 많았다. 예전의 아레코의 선조들의 당당한 모습은 없는 듯 했다. 그의 사무실로 찾아오는 인간은 없었다. 이틀 전의 두 어린애 빼곤.
‘예쁜 것!’
크레아의 것이었다. 그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날 불의의 봉변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날 이후 그녀가 자신을 사로잡은 것을 부인 할 수 없었다.
올려 붙은 알맞은 크기의 탱탱해 보이는 가슴과 늘씬한 다리, 그리고 빵빵한 엉덩이. 무엇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미모의 여자와 함께 모험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는 혼자 신나 벌써 대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할 밤이란 걸 예감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변형마술은 바투라를 많이 소모시켜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기가 일수였는데. 오늘, 이 싱숭생숭한 기분은 왜일까. 참 야릇한 밤이었다.
‘그 여자애 때문이겠지.’
스타지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청하려고 애썼다.
“아! 그렇지.”
스타지오는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의 은밀한 '보물창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상자는 긴 쪽이 거의 2 베이츠 쯤 되고 높이와 세로가 약 1 베이츠쯤 되는 낡은 상자였다. 하지만 무슨 보물이 들었는지 잘 관리 되어서 여간 매끄럽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레 상자를 내려놓았다.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들어오는 손에는 가죽으로 잘 싸여진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선 집안 구석구석의 문단속을 하고, 창문의 커텐도 잘 내렸다. 아무도 안을 들여다 볼수 없게 하려는 듯 꼼꼼히 챙겼다. 마지막으로 바깥 동정을 다시 한번 살피려는 듯 창틈으로 눈을 움직이며 확인한 다음, 침대 옆 테이블 위만 불빛이 비치도록 조정했다.
그런 다음 테이블위를 치우고 보물 상자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깔았다. 그것은 양탄자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양피지에 가까웠는데, 표면에 기름을 먹인 것 같았다. 양피지를 바르게 펴자 그림이 분명하게 보였다. 네 개의 둥근 원안에 각각 피닉스. 살라만더, 사자, 드래곤이 그려져 있었고, 우루보로스가 그것들을 감싸고 있었다. <마법5원소>의 그림이었다.
다음으로 꺼낸 것은 우유 빛 액체물질이 들어있는 어른 허벅지 굵기의 커다란 유리관이었다. 그는 조심조심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금 전 들고 들어왔던 물건도 함께 올려놓았다.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눈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이윽고 결심한 듯, 자리에 다시 앉은 그는 잠시 테이블의 양 귀퉁이를 잡고 눈을 감았다. <쿤달리니>를 운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을 뜬 그는 유리관의 뚜껑을 열고 하얀 액체를 양피지 위에 조심조심 쏟아 부었다. 액체는 진흙처럼 서서히 밖으로 덩어리를 이루며 쏟아지고 있었다.
포하나의 덩어리 액토프리칼 이었다. 그는 액토프리칼을 반죽하여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상이었다.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가 가진 액토프리칼의 양으로는 겨우 2/5 베이츠 정도에 불과한 크기가 최대였다. 그의 표정은 아쉬웠지만 이내 체념하는 듯 했다.
‘액토프리칼이 더 많았더라면 내 능력으로는 만들 수 없을 지도 몰라. 여기에 만족하자’
팔이며 다리며 몸통이며 머리의 형체를 만들어 가던 그는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그것을 잠시 내려 놓았다.
“크레아는 예쁘고 빵빵한 가슴이 핵심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단 말이야. 흐흐흐”
그는 가죽에 싸여진 물건을 꺼내 들었다. <디지맥스>였다. <상마장> 중 아주 인기가 많은 장비였다. <디지맥스>를 구동시키자 에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크레아와 골리아르였다. 바로 며칠 전 <드래곤길드>에 가입하기위해 들어온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예쁘군!”
스타지오는 그녀의 모습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그들이 연구실로 들어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되풀이 해서 보고 있었다. 물론 스타지오의 눈은 그녀의 가슴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다. 한편 안의 크레아와 골리아르는 계속되는 구동으로 힘들고 지쳤는지 스타지오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가슴을 만들기 위해 액토프리칼 덩어리를 만지작거리는 일과 <디지맥스>를 번갈아 보아야할 순간순간의 짧은 틈에 움직임을 멈추고 쉬기도 했고, 힘들었는지 드러눕기도 했다. 따분함에 서로 톡톡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그 모습은 스타지오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헤헤헤, 귀여운 아가씨. 힘들었나 보군요?”
스타지오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도 침을 흘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디지맥스>를 움켜잡더니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골리아르의 모습을 지워 버렸다.
“이 놈아! 이 스타지오님은 네 녀석이 크레아님과 함께 있는 게 싫으시다. 헤헤헤.”
그 좁은 공간에서 그들이 함께 있는 걸 보니 견디기 어려웠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인데, 그의 눈앞에 버젓이 그러고 있으니 심통도 나고 꼴 보기도 싫었다. 혼자 덜렁 남게 된 그녀는 뽀로통해져서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스타지오가 보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썼다.
‘볼 테면 보라지. 날 혼자 심심하게 내버려두고. 왜 나도 지우시지 그래!’
하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커다란 눈으로 노려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가씨 잠깐만 참아줘!”
그는 혼자 말을 중얼거리며 한손엔 <디지맥스>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인간 형상의 액토프리칼의 위쪽으로, 심장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부분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바투라를 구동시키며 마법구문을 외기 시작했다.
프라바라시 바라프라나 바라포하트!
그러자 두 손이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은 서서히 그의 팔과 어깨를 타고 올라가면서 연결이 되었다. 그 순간 그의 몸이 경직되면서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 순간 그는 사람이기 보다 변환장치였다.
다음 순간 놀랍게도 인간 형상의 액토프리칼 덩어리가 변하기 시작했다. 온 몸이 수 없이 많은 수평층으로 구분되었고, 그것은 파도를 일으키며 꿈틀꿈틀 대고 있었다. 한동안 계속되던 그것은 마치 격정으로 치닫듯 더 빨라지더니 마침내 멈추자, 그곳엔 인간 형상의 액토프리칼 덩어리는 사라지고 작은 크레아가 누워 있었다.
아! 호문클루스.
바로 그것이었다. 대륙에서 금지된 마법이 스타지오의 손끝에서 완성이 된 것이다. 호문클루스 제조의 마법을 통해 작은 크레아가 만들어 진 것이다. <디지맥스>의 에 보이던 그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몸을 감돌던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의 몸도 경직이 풀렸다.
“힘들군!”
얼굴에 땀이 맺혀 있었다. 단순해 보였지만 생각보다 힘든 것 같았다.
그는 누워 있는 크레아의 형상을 찬찬히 보았다. 정말 똑 같았다. 그는 조심스레 두 손바닥 위에 올렸다. 짜릿했다. 마치 실제의 그녀가 닿는 착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마법구문을 외기 시작했다.
프라투라시 투라프라나 투라포하트!
그러자 작은 그녀가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작은 손으로 작고 예쁜 얼굴, 작고 예쁜 눈을 비비고는 기지개를 켰다.
‘아 잘 잤다’ 라는 듯 했다. 작은 그녀는 두리번거리다 자신을 바라보는 스타지오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고 머슥하게 웃기도 했고 손을 흔들기도 했다.
그는 조심스레 그녀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조심스레 그의 손바닥에서 테이블위로 내려선 그녀는 테이블 이쪽저쪽으로 다녀 보기도 했고 <디지맥스>를 만져보기도 하고, 힘껏 밀어 보기도 했다.
스타지오는 거의 테이블 위에 엎드린 듯 팔로 턱을 괴고 거의 입이 귀에 걸린 채 그녀를 내려 보고 있었다.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듣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은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작은 그녀로 눈앞에 앙증맞게 꿈틀거리고 있다는 건 꿈만 같았다.
그녀는 이번엔 스타지오에게 다가왔다. 아지랑이 한들거리듯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팔에 등을 기대기도 하고 발로 툭툭 그의 팔을 차기도 했다. 그러다 인상을 쓰면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듯 코를 틀어쥐고는 그를 노려보더니, 테이블의 건너편 끝 쪽으로 가서 <디지맥스>에 기대앉았다.
“아! 코 바람 때문인가? 입 냄새 때문인가? 푸하하”
그는 얼른 얼굴을 테이블에서 멀리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람 당황하게 만드는 아가씨군요. 푸푸푸”
작은 그녀의 깍쟁이 같은 행동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는 손을 뻗쳐 그녀가 기대고 있는 <디지맥스>를 슬쩍 치워 버렸다.
벌렁하고 그녀가 뒤로 넘어졌다. 아프다는 듯 머리를 만지더니 그녀는 삐친 듯 그를 외면하고 몸을 돌려 앉았다.
“이키 삐쳤군. 푸푸푸!”
그가 살짝 그녀의 어깨를 건드리자 반대편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다른 쪽 어깨를 살짝 건드려 보
았지만 이번에도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타닥 타다탁 타다 타다다닥!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걸어가듯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의 앞쪽으로 왔을 땐 손가락 걸음을 폭이 훨씬 좁아지며 조금조금 살금살금 그녀의 앞쪽으로 향했는데, 그것은 영락없이 ‘제발 용서해주세요’하는 걸음걸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가락 걸음도 외면했다.
그녀의 앞으로 온 손은 잠시 머뭇머뭇하는 거리다 엄지와 검지을 비비며 용서를 빌었다. 마치 그를 대신해 싹싹 비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은 귀엽기도 했다.
“예쁜 꼬마아가씨 내가 잘못 했어 한번만 용서해줘. 이잉”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돌려 외면했지만 조금 전과는 누그러진 것 같았다. 코가 뾰족하게 나오도록 ‘흥’하는 모습은 앙증맞고 사랑스러웠다.
쿠콰광!
갑자기 굉음과 함께 그의 연구실이 흔들렸다. 그는 급히 소리난 곳을 향해 몸을 돌릴 때, 그 굉음은 다시 한 번 울리고 연구실이 또 다시 흔들렸다. 벽 한 쪽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더 철렁 내려앉았다. ‘작은 그녀’를 만든일에 생각이 퍼뜩 미쳤다. 대륙 전체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깨트리는 패악행위라는 이유로 호문클루스의 제조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만약 적발될 경우 <존엄성유지단>에 의해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도려 세운다음 작은 그녀를 가리기 위해 몸으로 막았다.
쿠과쾅!
다시 한 번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벽이 흔들리더니 기우뚱하더니, 마침내 부서져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먼지가 날렸다.
‘설마 호문을 만든게 발각된 것은 아니겠지. <존엄성 유지단> 녀석들 피도 눈물도 없다는 데, 설마 그 녀석들인가.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냐. 벽을 때려 부수다니.’
먼지가 가라앉자 뻥 뚫린 구멍으로 통과해 파편더미 위를 저걱저걱 소리를 내며 대담하게 들어오는 두 개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은 유사인간의 모습이 분명했지만, 한쪽은 훨씬 큰 모습이었는데, 거의 5 베이츠 쯤은 족히 되었다.
“당신들 뭐요?”
그의 목소리는 호문에 대한 생각 때문에 걱정이 배어 있었다.
“여기가 드래곤 길드냐?”
“그, 그렇소. 하지만 무슨 일이요?”
올 것이 온 것인가. 호문 때문에 잡혀가면 몇 년동안 감옥에 갖혀 고생하는 신세가 된다고 하던데. 스타지오는 절망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상대의 말은 그에게 절망에서 구원하는 희망의 손길이었다.
“그렇다면 네가 골리아르냐? 크크크 주제도 모르고 대전사라고 떠들고 다니다는 대전사 나부랭이 말이다. 그것이 너냐?”
“······ ?”
휴우!
상대의 예기치 못한 물음에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호문클루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 사실은 안 순간 분하기 그지없었다.
‘야심한 밤에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골리아르라면 크레아와 함께 있던 그 덩치 말하는 거 아냐? 대전사는 또 뭐야? 그럼 그 녀석을 찾으려고 연구실 벽을 부수었단 말인가? 그럼 나는 한 밤중에 봉변당한 꼴 아닌가. 아니 이것들을 그냥!’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돌연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었다. 두 형체도 뚜렷이 보였다. 앞쪽은 회색 옷에 회색 복면을 한 모습이었는데, 인간 종족 같아 보였고, 뒤쪽은 분명히 골렘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스톤 골렘이 이었다. 하지만 그의 격앙된 분노는 드래곤이라도 막지 못할 듯 했다. 그는 재빨리 바닥의 보물상자에서 아바타릿과 그의 검 크리스를 꺼냈다.
“뭐냐? 어떤 놈들이기에 야밤에 남의 벽은 부수고 난리냐!”
“네가 대전사 골리아르 나부랭이냐?”
상대는 그의 화가나 부르르 떨리기까지 악쓰듯 지러대는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동문서답만 하고 있었다. 말이 안 통하는 것들이었다.
“아니 이것들이! 남의 연구실을 부수고 딴청하고 있네. 너 오늘 죽어봐라! 아바타 골드렘.”
목소리를 높여 외치자 전광석화라고 하던가. 밝은 금빛이 어두운 그의 연구실을 밝히며 스타지오의 왼발 앞쪽에 숫자기둥이 생기고 다음 순간 그것은 인간 형체의 홀로그램로 바뀌더니, 골덴 골렘의 모습을 닮은 아바타 골드렘이 나타났다.
신장은 거의 5 베이츠에 달하는 표준형의 골드렘은 최신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상위 20% 내에 드는 모델이었다.
“골드렘 엑스피 2000 팔로미노라. 크흐흐, 이걸 믿고 큰소리를 친 모양이군.”
“골드렘 저것들을 혼내줘라!”
그의 말과 동시에 골드렘은 회색의 복면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눈 깜박일 틈도 없는 빠르기였다. 하지만 주먹이 닿는 순간 회색 복면인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회색 복면인은 골렘의 뒤편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흐흐흐. 아바타 주제에 나를 공격해······· . 골렘 저 아바타를 없애 버려라!”
그저 묵묵히 있기만 하던 원시적 형태의 돌 골렘이 눈을 부릅뜨고 아바타 골드렘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조금 전 골드렘의 전광석화 같은 주먹에 비하면 느려터진 속도였다. 굼뱅이도 피할 속도였다. 골드렘이 여유있게 뒤로 몸을 젖히는 순간 돌골렘의 주먹도 허탕을 쳤고, 다음 순간 중심을 잃어 앞으로 기우뚱하던 돌골렘이 느닷없이 두발을 강력한 추진력으로 스피어 공격을 해왔다. 돌골렘의 온몸이 골르렘을 향해 덮쳐오는데, 도망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조금 전 주먹은 속임수였군. 저런 너구리같은 놈. 큰일이군!’
“피해라 골드렘!”
하지만 스타지오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골렘의 강력한 스피어 공격에 가슴을 받힌 골드렘은 뒤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돌골렘은 뒤로 날라 가는 골드렘을 같은 속도로 쫒아가며 두어 번 주먹을 휘둘렀다. 그 한번의 공격으로 골드렘은 온통 찌그러지고 말았다. 너무 황당한 패배였다. 스타지오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공들여 키워온 골드렘이 구식 돌골렘의 한번 공격으로 무너지다니.
“으윽!”
그리고 그의 몸에도 충격이 왔다. 아바타와 아바타를 구동하는 자 사이에는 투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골드렘이 맞은 같은 부위에 고통이 전달되었다.
그는 골드렘을 내려 보았다. 찌그러진 채 바닥에 박혀 있었다. 완전히 파괴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변형마법이며, 작은 크레아를 만드는 데 프라나를 너무 많이 써버린 것 같군. 그렇지만 않았어도 저것들을 그냥. 내가 쓸 수 있는 전투마법이래 봐야. 파이어볼과 도망 다니는 마법정도. 그렇다고 크리스를 쓰기에는 바투라는 너무 약하고. 이런 미치겠군. 저것들이 벽을 부수고 들어온 것으로 보아 단단히 작정하고 온 것인데······. 도망가는 수밖에 없는 건가.’
“흐흐흐 애송아! 왜 가만있지 못하고 촐랑대다가 그게 무슨 꼴이냐. 내가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가 골리아르냐?”
“나는 골리아르가 아니다. 내 이름은 스타지오 로데릭이다. 내 생각엔 당신들이 잘못 찾아 온 것 같은데.”
그의 말투엔 짜증이 가득했다.
‘도대체 골리아르 그 놈이 무슨 짓을 했기에 저놈은 말끝마다 골리아르를 찾는 건가. 정말 미치겠군!’
“음..... 그랬군. 내가 봐도 넌 골리아르란 놈에 비해 체구가 좀 작고 마른 편이라고 생각은 했었지. 골리아르는 어디 있느냐?”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냐?”
“그럼 누구한테 묻겠냐. 여기가 <드래곤길드>라고 하지 않았느냐? “
“그렇다. 여긴 <드래곤길드>다. 하지만 그것하고 골리아르가 무슨 상관이냐?”
“너희 드래곤 길드 소속인 골리아르 대전사 나부랭이 놈이 8명이나 되는 우리 형제들의 허리를 두 동강을 냈지. 이래도 <드래곤길드>가 상관없다고 말하겠느냐.”
‘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그 미련해 보이는 녀석이 그런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훗.... . 우연히 그리된 것이겠지.’
이제야 사태가 파악 되었다. 아는 게 힘이라 했던가. 사태가 이해되자 그의 머리는 더 빨리 회전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던 게요.”
그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다. 친절하다고나 할까.
“그렇긴 하지만, 절대로 그 분이 그럴 리가 없소. 그분으로 말하자면, 현 황실에서 특별히 우리 <드래곤 길드>를 위해 파견해 주신 황실 비밀기관 바르텐의 2인자이며, 그분은 로포스 1,2,3 언약을 통해 어떤 종족 누구를 헤쳐도 용서를 받는 로포스 언약에서 인정한 3인 중의 한 사람이요. 바로 그분이 전설의 로포스 판관이요. 또 설령 그 분이 누구를 헤쳤다고 하면 우선 그 상황이 정의롭지 않은 듯 보여도 결국 그 분이 그 숨겨진 진실은 밝힐 때가 되면 모든 종족들은 이해를 하게 되지요. 때문에 만약 당신들이 그 분으로 인해 무슨 변을 당했는데, 그것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면 더 큰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요.
로포스 판관의 일이라면 드래곤의 아가리에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전 대륙의 초신마법사와 초신전사들은 물론이고 어둠에서 움츠리고 있는 드래곤 물론이며 대륙의 모든 와이번들의 이빨이 당신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덤빌 것이라는 걸 당신도 잘 알 것이요. 그리고 듣기로는 그분에게 도움 받은 수많은 몬스터들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요. 몬스터의 종인 언데드들은 당신이 살아있거나 죽은 후에라도 당신의 영혼에 참담과 우울과 슬픔과 불쾌와 극심한 두통과 악몽으로 인한 수면장애와 좌절감이 당신을 괴롭힐 것이요.
그러니 그 분과 관계된 일이라면 당장 여기를 떠나는데 좋을 것이다. 연구실이 부서진 것은 말하지 않겠소이다. 나도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니, 약간의 수리비만 놓고 간다면 이 일은 없는 일로 해주겠소이다.
그분과 함께 있다보니 이런 일이 간혹 일어나는 일이라 나도 많은 이해심이 생겼소이다. 내가 이제껏 격은 모든 결과는 그분이 잘못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을 아시오?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그분은 함부로 누굴 헤칠 분이 아니오.
대륙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현재 그분의 힘을 1 드래곤 파워로 생각할 정도요. 드래곤과 싸워 자웅을 가릴 수 있는 유일한 유사인간임을 잊지 말기 바라오.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면 당신의 상관들 중 아주 높은 분들에게 물어 보시오. 그러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요. 그리고 어쩌면 이번 일은 당신의 최고위층과 함께 추진하는 비밀작전일지도 모르오. 그러니 당신의 실수로 비밀작전이 망치기라도 한다면 당신의 과오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내가 특별히 당신에게 한가지 말해 줄게 있는데, 골리아르님과 원수지지마시오.
골리아르님의 등에 걸린 <기가소드>는 단순한 <기가소드>가 아닐라 대륙최고의 소드메이커인 도르크 백작 가문의 작품이오. 도르크 백작의 혼이 깃들여진 살아있는 검이라는 이야기가 있소이다. 한번 휘두르면 1000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며 또 한번 휘두르면 <기가소드>에서 번개가 나와 하늘도 태울 수 있소. 이것은 내가 직접 본 것이요. 그러니 꼭 알려주시오. 골리아르님과 시시비비를 가리려거든 적어도 만 명은 있어야 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다시 한번 말해두지만, 당신의 상관, 동료, 부하들에게 잘 말해 두시오. 만약 어디서건 골리아르님을 만나거든 단지 머리를 깊이 조아려 대륙의 평화보존에 힘쓰시는 그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라고. 내 이야기는 여기 까지요. 내 말을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당신의 자유요. 후환이 두렵지 않다면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스타지오는 말을 마치자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편한 미소와 함께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린 것은 도박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길이 없었다. 이 방법이 안되면 그가 선택할 유일한 방법은 도망치는 방법뿐이었다.
벽을 허물고 들어오는 담대한 놈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느낀 상대의 정체. 그것은 하이트롤이 확실했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량되고 학습되었다고는 하나 하이트롤이라 하더라도 지능수준, 적어도 잔머리 수준에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하이트롤이라면 신분은 아주 높을 수는 없었다.
이제껏 한번도 정상적인 길을 밟지 않은 스타지오의 성장 환경 속에서 주어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섞어 무시무시한 영웅 이야기 하나쯤을 만들어 내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벽을 부수고 쳐들어온 자에게 거짓말과 진실한 말을 구분하여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자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자책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바보가 확실할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그는 아바타릿을 통해 골드렘과의 연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만약의 경우도 대비해야 했다.
“음······ .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여기 온 것은 골리아르를 없애러 온 것이다. 내가 죽는 건 그 다음 문제다. 나는 형제들의 복수를 하러왔고. 실패하든 성공하던 최선을 다해 나의 일을 할뿐이다. 그게 나의 임무니까. 그리고 애송이 너를 보면서 또 하나의 생각을 했지. 넌 정말 싸가지가 없다. 그래서 덤으로 네 놈 목도 가지고 가겠다. 그가 어디 있느냐? 빨리 말해라. 그러면 고통 없이 죽여주겠다.”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하이트롤은 오로지 하나밖에
모르는 단순한 것들이었다.
“골렘! 저놈 입만 그냥 두고 다 찢어버려라!”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 무식한 놈 내가 그렇게 잘 알아듣게 설명했는데, 아이고 머리야.’
그는 번개처럼 돌아서며 돌골렘을 향해 파이어볼을 날렸다. 그의 마법수준에서 최고의 파괴력을 싫어 넣었다. 워낙 전투마법에 재주가 없었던 그의 수준이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발 빠른 선제공격이었고, 파이어볼의 목표지점이 돌골렘의 발목이었다는 것은 효과가 있었다. 졸지에 파이어볼을 맞은 돌골렘은 뒤로 과당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돌골렘은 다시 일어서더니 다가오며 강력한 주먹으로 스타지오의 몸통을 공격했다. 정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골렘과 마주하니 숨쉴 구멍도 없는 것 같았다. 주먹의 크기가 거의 스타지오의 머리만 했다.
쿠광!
순간 골드렘이 그를 대신해 그 주먹을 정면으로 부딪쳤다. 가까스로 그는 위기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설 수 있었지만 골드렘은 다시 구석에 처박혔다.
그도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통증은 그의 안타까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정도는 자신도 피할 수 있었는데. 현재의 자신의 처지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지만 아직 도망 다닐 능력은 충분했었는데.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온몸이 찌그러진 채 참담히 누워 있는 골드렘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저 녀석은 내가 또 일어나서 싸우라 하면 싸울 테지. 후후후.’
스타지오는 기분이 더러웠다. 비록 생명체가 아니라도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던가. 누군가로부터 우연히 상처 입는 그날에도, 비가 너무 와서 슬픈 날에도, 주체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잠 못 든 수많은 밤에도 골드렘은 곁에 있지 않았던가.
어느 순간에는 그 영혼도 없이 가엽고 덩치만 큰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 골드렘이 생명체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있는 힘을 끌어 모았다. 골드렘도 살려야 한다 여기서 죽을 순 없었다.
‘이젠 내가 골드렘을 지켜야 한다. 힘내자.’
“아바타 돌아오라”
그는 골드렛을 아바타릿으로 거두어 들였다.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길 수는 없지만 절대 지지는 않을 자신이 있는 방법이 있었다.
“너희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 도저히 안 되겠군. 나의 아바타가 골드렘뿐인 줄 아느냐! 하하하.”
“아바타 플래티렘 엠피2000!”
이번엔 그 앞의 양쪽으로 두 개의 아바타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플래티렘 엠피 2000 이다. 싸구려 돌골렘의 주먹 따위는 강화된 방어기능으로 끄덕 없지. 하하하. 한번 시험해 볼 텐가?”
회색 복면인도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아바타 사용자들은 여러 개의 아바타릿을 사용하기를 꺼려했다. 프라나를 분산시켜 아바타 힘이 약하게 하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아바타를 가져봐야 결국에 자신의 바투라와 최적으로 연동해 최고의 초고의 힘을 내는 아바타만을 선택해 구동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하나의 아바타를 사용하는 것은 아바타 마법의 정리된 규칙이었다.
하나의 아바타를 키우는 일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두 개의 아바타만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는 이미 그 사용자가 상당한 아바타 마법의 경지에 오른 경우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세 개의 아바타를 구동할 수 있는 놈이며, 골렘 아바타를 사용하는 자가 플래티렘 엠피 2000을 구동했다면 아바타 마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돌골렘이 두개의 플래티렘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회색 복면인은 칼을 뽑아 들었다. 자신도 나서야할 때라고 느꼈다.
“골렘 없애라!”
회색 복면인과 돌골렘은 각각 자신의 앞에 있는 플래티렘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플래티램의 능력은 막강했다. 그들의 공격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정말 빨랐다. 칼끝이나 주먹이 거의 몸체에 닿았다고 느낀 순간 귀신처럼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플래티렘은 악랄하게도 자신의 눈만 파고 들었는데, 회색 복면인은 몇 번의 위험한 순간을 겨우 넘겼다. 그런 상황은 계속되었다.
계속된 그들 사이의 공박으로 스타지오의 연구실이 온통 부서지고 있었다. 회색복면인은 싸움으로 지쳐갈 무렵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스타지오가 전혀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팔을 허리에 올린 채 계속 히죽히죽 웃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플래티렘의 속도는 말할 수 없이 빨랐지만, 골렘과 싸우는 것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자신과 마주친 플래티렘의 속도라면 분명 골렘도 상처를 많이 입었을 텐데, 마치 그것은 속도를 맞춰주는 것 같았다.
‘이것은 혹시?’
“골렘 멈춰라!”
그리고 그 자신도 싸움을 멈추고 가만있었다.
“이런 속았군!”
그와 돌골렘이 움직이지 않자, 플래티렘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짐짓 움직이자 그것도 따라 물러섰고, 몸을 뒤로 젖히자 그것이 자신을 공격해 들어왔다. 그것은 훈련용 일루젼이었다.
“이런 생쥐 같은 놈! 그럼 저 모습도 가짜겠군.”
그가 손으로 선번을 만들어 여전히 히죽대는 스타지오에게 발사했다.
치지직!
역시 일루젼이었다. 스타지오가 선번을 맞고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이미 멀리 달아났을 애송이를 생각하며 혀를 찼다.
“완전히 당했군. 쩝. 하지만 우린 골리아르란 녀석에게 원한이 있지. 저 녀석은 아니다. 골리아르란 녀석은 <드래곤 길드>니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거다. 우리도 돌아가자.”
그는 벽을 빠져 나서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은 바닥에서 꿈틀대는 뭔가를 발견했다.
“아니 이것은?”
-6/6-끝-
왕국마법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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