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헐버트는 미국인 역사학자로써 한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문화와 생활 그리고 역사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일제가 우리를 침략했을 때 이를 호되게 비판한 정의로운 인물입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건국 훈장까지 받았죠.
그러나 이러한 사람마저도 우리나라가 19c에 엄청 비참한 생활을 했었다는 것을 서술하고 있죠. 외국의 침탈 때문에 비참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후진성 때문에 말입니다.
대한제국멸망사에서 나오는 한국인의 습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나친 과소비.
2. 기분억제가 전혀 없다. 사소로운 일에 큰 소리를 치면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으면서 상대방과 죽기 살기로 다툰다. (비록 실제 혈극으로 끝나는 일은 없지만 사소로운 일에 이렇게 다투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3. 거짓말을 잘한다, 그리고 신의가 부족하다.
4. 지나치게 가족중심적이라서 가족중 누가 출세하면 그 사람이 모든 가족에게 호의를 배풀어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5. 쓸데없는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완고하고 고집이 세다
6. 돈이란 쉽게 번 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게으르다는 것에 대한 또다른 표현?
그리고 법과 제도도 빼놓을 수 없죠.
1. 관리들의 부정이 너무 심하다
2. 변호사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
3. 재판은 비논리적이고 순전히 판사의 기분 또는 당사자들의 경제력에 따라 좌우된다.
4. 체계적인 경찰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5. 증거란 따로 없고 기소된 자를 죽도록 고문해서 스스로 하지 않은 일을 자백하게 한다
화폐
1. 서울과 몇몇 중요도시들에선 모든 물건이 현금에 판매되지만 전체 인구에 비례 할 때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2. 한국에서는 대개의 경우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어느 모로 보나 생활을 안일하게 해 주지 못하는 사치품이다.
3. 1882년 일본 공사가 불탔을 때 어느 도망가던 사람이 지폐가 가득한 손가방을 떨어뜨렸는데 어느 한국인이 그것을 가지고 가서 손가방에 있는 돈을 보면서 일본인이 이런 종이를 왜 그리 중요하게 여기는 줄 모르겠다면서 집에 쳐 박아둠. 부산에서 일본인과 거래하던 어느 한 친구가 그것을 보더니 아니 자네~ 이게 도대체 얼마인줄이나 아는가~ 하고 호통을 침.
4. 다시 말해서 화폐에 대한 개념이 매우 원시적이었음.
위생시설
1. 한국인들 집안에는 위생 시설이 어떠한가에 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주 초보적인 위생 상식도 배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부잣집에 가도 상황은 별 다를 바가 없었고, 오물을 치우는 청소부가 있었지만, 그 청소부가 치우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오물을 피해가는 것이 더 현명했다.
2. 우물도 매우 오염되있었다. 오물이나, 빨래를 했던 물, 이런 저런 잡다한 더러운 물질들이 우물에 버려졌고, 그 결과로 어느 한 마을에 콜레라가 번지면 그 이유는 매우 뻔했다.
도로
1. 도로란 실제로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것을 사용하는데에 있는 공유성에 의한 제약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관해 한국인은 헛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2. 서울에 도로 모양이 생긴것은 외국인이 들어오고 난 이후이다
3. 중심도로 마저도 토막과 매점으로 옹색하게 막혀져 있었다
4. 두대의 마차 이상이 지나갈 수 없었다
5. 도로가 온갖 오물과 쓰레기로 도배가 되있었다
6. 어느 한 민족의 생활 수준이 그 운송수단 및 도구에 결정된다면 한국은 제일 원시적인 수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7. 경부선과 경인선 그리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선박회사를 제외하면 조선의 운송기관은 아직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8. 도로의 정비 상태는 자전거도 원활히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9. 보수가 가끔 이루어지기 했는데, 이는 도로가 아예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상황이 됬을때 왕의 어명으로 이루어진게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이에 대한 보수금마저도 3/4를 관리 개인에게 빼았겼다.
위의 모든 사실들은 헐버트가 오랜 세월을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몸소 겪은 것을 기술한 것임으로 의심할 여지는 없을거라 사료되옵니다.
조선의 수준은 여러 모로 떨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 최초의 전동차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 인프라에 기여하는 것보다는 순전히 선전용이었으니 패스..
역사에는 수많은 가변적 이벤트들이 있기는 하지만, 필연적이고 내재적인 요소가 훨씬 결정적입니다. 그것이 바로 국력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것이구요.
도덕적, 문화적, 정신적 가치관을 떠나서 실제적고 감각적인 요소로 따져보았을 때 약탈자와 피해자의 2분법 세계인 제국주의 시대 당시 조선은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흔히 우리는 언제 때까지 전기도 없었고 어쩌고 하는 글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 그럼 그 당시의 일본은? 하고 확인해 보면 걔네들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 1905년까지 동경 근교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 수탈경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던 1910년 이후부터입니다.
위에 한국인의 습성 같은 경우 외국인들에 따라 주장이 달라지는데다 대부분 비유럽권 국가에 가면 하는 소리들이니 넘어가고(실제 유럽의 평민들 생활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ㅡ.ㅡ;;;)법과 제도면에서는 저렇게 폄하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이런 제도를 갖추고도 어떻게 멸망했냐며 한탄하는 학자도 있었습니다 즉 말기에 와서는 좋은 제도마져 제대로 실행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관리가 맘대로 집행하지 못합니다 상부까지 보고(더 할 경우 왕까지)됩니다 그리고 고문의 경우 법적으로 허용되도 매우 제한되있는 편입니다 물론 저때 당시는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가 무너지는 징조가 보인 시기이기 때문에 잘 안 지켜졌지만
위생시설과 관련된 것은 저도 잘 모르기 때문에 패스하지만(청계천에 오물 버려지는 것 때문에 영조때 문제된 일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당시 유럽의 위생시설의 경우 노동자들이 격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도로의 경우 삼남지방의 도로는 문제가 많기는 했어도 북쪽 지방 도로는 좋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저때 가면 이미 도로를 유지할 여력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도로는 만드는 것 보다 그 이후 유지하는게 더 어렵습니다 당시의 토목 기술로는 특히 더합니다)조선 말기에 외국인들이 본 도로가 좋을리가 없죠 ㅡ.ㅡ;;;조선시대 도로에 관해서는 워포그에서 ?하님이 올리신게 있습니다
외국인들의 평가도 위의 내용처럼 부정적인면과 긍정적인면이 같이 상존합니다. 물론 당시 조선이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었던건 사실입니다. 당시로서도 세계최고 수준의 무장을 한 중앙군이 고작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군에게 대패하여 일본군까지 개입하게한 추태를 보인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만 오늘날 구한말에 대한 생각들이 지나치게 외곡되어 있는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뭐 무슨 세계 제일의 빈민국이라도 되는것처럼 잘못알고 있는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실제 그렇게 빈국의 수준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 소득 순위는 지금의 한국과 비교해도 그렇게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단순히 순위만을 본다면.......) 또한 한,일간의 격차도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크지 않았습니다. 뭐 무갈제국같은 나라도 국력과 경제력이 없어서 영국에게 통체로 먹혔겠습니까? 결국 뭔가 전반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겟지요.
조선 말 실제 상황은 저랬겠죠. 하지만,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 있지만, 각종 부패로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었죠. 그래고, 고문이나 형벌도 법적으로 명확히 그 죄에 따라 구분되어 있고, 일정 이상의 죄에 대해서는 상부(형부, 임금)에게 보고, 그 지시를 받도록 하는 등 제도적으로는 괜찮은 편입니다. 뭐 재판에 돈이 개입되는거야 요즘에도 마찬가지인 일이고, 변호사라는 직업도 서양에서도 근대에 생긴 직업이니 조선에는 없는게 당연하죠.
화폐 3의 일화는 일본 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일 지금 남미 돈이 든 가방을 발견한다면, 이게 어느정도 가치인지 모르니 집에 둘수 있고, 그걸 남미 교역상인 친구가 와서 보고 버럭~!!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화폐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조선 돈은 동전이고, 일본 돈은 지폐이니 이게 화폐라는 걸 몰랐을 수도 있고, 아무튼 일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니 돈이 되겠다라는 생각에 집에 보관했을거 같네요. 오히려 경제 관념이 있었지만, 대외 물정에 어두웠다라고 보이네요.
당시가 본격적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우후죽순 뒤섞이고 서로 감춰뒀던 감정들을 완전 개방하던 시기였으니 제대로 안정될 리가 없지요.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양반만 생각하지 말고 인구의 주 구성원이었던 그 아래 계층의 삶을 짐작해 본다면 그리 당황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 계층조차 드라마에서 포장되있었죠. 실제로는 더럽고 천박함이 대부분이었겠죠.
저 사람 하나의 말만 믿으시면 안됩니다. 제가 일전에 조선 말기의 모습을 그린 외국인들의 글을 섭렵한적인 있는데 오래전이라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조선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망하기 전과 그 후로 극명하게 갈립니다. 그 전에는 대체로 칭찬일색인데 그 이후론 제국주의적인 관점에서 조선은 누군가의 지배를 받지 않음면 안되는 낙후된 국가로 묘사됩니다. 똑같은 한민족이고 시대적으로 별차이없는데 평가가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린다면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19세기말, 동북아시아를 여행했던 외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중,일,한 3개국 중에서 사람들의 외모나 문물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가장 낫다는 내용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책과 자료 등이 있는 것이니 과거에 봤던 자료들 중에서 찾아보겠습니다만..... 대체로 한국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칭찬이 많았습니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어떤 서양학자 중에는 조선의 거름문화를 높히 평가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조선의 농민들은 인분을 토지의 영양분으로 이용하는데, 이것은 서양 농촌에서는 결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하지만 이같은 비위생적인 문화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둘러봤던 조선의 산이나 강, 들판 그 어떤 곳에서도 파리 때를 찾아보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인분을 산이나 강에 직접 버리면서 자연적으로 정화되기를 기다리는 게 고작이다. 반면 조선의 농민들은 농지에 인분을 뿌림으로써 농업생산량 증대와 환경보존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었다' -예전에 봤던 한겨레 기사중에서-
즉 누가, 어떤 가치관으로 한 사회를 바라보느냐에 평가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공통된 습성'을 도출해내는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행위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치 우리가 중국애들을 거만하고 게으르고 더럽하는 의미로 짱개라 비하하듯이 말이에요.
19세기에 우리나라와 일본에 왔었던 매켄지라는 사람이 '한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보면 일본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면서 광부들이 파업을 하고 일본에서 가짜 물건을 만들었다고 나오더군요 그 당시 일본도 아직 겉만 어설프게 개화를 했는가봅니다 명치유신이후 변한 시대에 적응을 하지 못한 사무라이 계층이 몰락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첫댓글 일본의 부패와 부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loco43님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자학적 식민사관을 너무 강요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 많이.. 매우.. 후진적이었네요. 이글이 사실이라면.
흔히 우리는 언제 때까지 전기도 없었고 어쩌고 하는 글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 그럼 그 당시의 일본은? 하고 확인해 보면 걔네들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 1905년까지 동경 근교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 수탈경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던 1910년 이후부터입니다.
이글은 대한제국 멸망사에 나온 부분을 간추린건데 여기서 뜬금없이 그당시 일본은 이라면서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한제국멸망사라는 책을 읽어봐야겠군요 그 책이 일본과 상호비교하여 만들어진 책인지.....아니면 숲속벤치님의 뜬금없는 뒷다리 잡기인지...
대한제국멸망시에 상기와 같은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도 별반차이가 없으니 문제될게 없다는 의미라면 쓸데없는 딴지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대한제국 멸망사 꼬~옥 읽어 봐야 겠군요^^
수준이 만만치 않은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겼으니 별 할말은 없는거죠. 자학이네 뭐네 해도..
허허... 제도는 갖춰젔지요. 그걸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였지만요.
그거참....뭐 상당수 알고 있긴하지만 이렇게보니 정말 비참하네요. 관리의부정부패는... 뭐 망국이 다 그렇죠. 말기로가면 왕권도 약해 부정부패가 일어나는거야 일반적인 멸국의 조짐이니
위에 한국인의 습성 같은 경우 외국인들에 따라 주장이 달라지는데다 대부분 비유럽권 국가에 가면 하는 소리들이니 넘어가고(실제 유럽의 평민들 생활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ㅡ.ㅡ;;;)법과 제도면에서는 저렇게 폄하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이런 제도를 갖추고도 어떻게 멸망했냐며 한탄하는 학자도 있었습니다 즉 말기에 와서는 좋은 제도마져 제대로 실행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관리가 맘대로 집행하지 못합니다 상부까지 보고(더 할 경우 왕까지)됩니다 그리고 고문의 경우 법적으로 허용되도 매우 제한되있는 편입니다 물론 저때 당시는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가 무너지는 징조가 보인 시기이기 때문에 잘 안 지켜졌지만
위생시설과 관련된 것은 저도 잘 모르기 때문에 패스하지만(청계천에 오물 버려지는 것 때문에 영조때 문제된 일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당시 유럽의 위생시설의 경우 노동자들이 격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도로의 경우 삼남지방의 도로는 문제가 많기는 했어도 북쪽 지방 도로는 좋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저때 가면 이미 도로를 유지할 여력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도로는 만드는 것 보다 그 이후 유지하는게 더 어렵습니다 당시의 토목 기술로는 특히 더합니다)조선 말기에 외국인들이 본 도로가 좋을리가 없죠 ㅡ.ㅡ;;;조선시대 도로에 관해서는 워포그에서 ?하님이 올리신게 있습니다
외국인들의 평가도 위의 내용처럼 부정적인면과 긍정적인면이 같이 상존합니다. 물론 당시 조선이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었던건 사실입니다. 당시로서도 세계최고 수준의 무장을 한 중앙군이 고작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군에게 대패하여 일본군까지 개입하게한 추태를 보인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만 오늘날 구한말에 대한 생각들이 지나치게 외곡되어 있는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뭐 무슨 세계 제일의 빈민국이라도 되는것처럼 잘못알고 있는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실제 그렇게 빈국의 수준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 소득 순위는 지금의 한국과 비교해도 그렇게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단순히 순위만을 본다면.......) 또한 한,일간의 격차도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크지 않았습니다. 뭐 무갈제국같은 나라도 국력과 경제력이 없어서 영국에게 통체로 먹혔겠습니까? 결국 뭔가 전반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겟지요.
조선 말 실제 상황은 저랬겠죠. 하지만,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 있지만, 각종 부패로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었죠. 그래고, 고문이나 형벌도 법적으로 명확히 그 죄에 따라 구분되어 있고, 일정 이상의 죄에 대해서는 상부(형부, 임금)에게 보고, 그 지시를 받도록 하는 등 제도적으로는 괜찮은 편입니다. 뭐 재판에 돈이 개입되는거야 요즘에도 마찬가지인 일이고, 변호사라는 직업도 서양에서도 근대에 생긴 직업이니 조선에는 없는게 당연하죠.
화폐 3의 일화는 일본 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일 지금 남미 돈이 든 가방을 발견한다면, 이게 어느정도 가치인지 모르니 집에 둘수 있고, 그걸 남미 교역상인 친구가 와서 보고 버럭~!!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화폐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조선 돈은 동전이고, 일본 돈은 지폐이니 이게 화폐라는 걸 몰랐을 수도 있고, 아무튼 일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니 돈이 되겠다라는 생각에 집에 보관했을거 같네요. 오히려 경제 관념이 있었지만, 대외 물정에 어두웠다라고 보이네요.
당시가 본격적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우후죽순 뒤섞이고 서로 감춰뒀던 감정들을 완전 개방하던 시기였으니 제대로 안정될 리가 없지요.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양반만 생각하지 말고 인구의 주 구성원이었던 그 아래 계층의 삶을 짐작해 본다면 그리 당황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 계층조차 드라마에서 포장되있었죠. 실제로는 더럽고 천박함이 대부분이었겠죠.
저 사람 하나의 말만 믿으시면 안됩니다. 제가 일전에 조선 말기의 모습을 그린 외국인들의 글을 섭렵한적인 있는데 오래전이라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조선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망하기 전과 그 후로 극명하게 갈립니다. 그 전에는 대체로 칭찬일색인데 그 이후론 제국주의적인 관점에서 조선은 누군가의 지배를 받지 않음면 안되는 낙후된 국가로 묘사됩니다. 똑같은 한민족이고 시대적으로 별차이없는데 평가가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린다면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19세기말, 동북아시아를 여행했던 외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중,일,한 3개국 중에서 사람들의 외모나 문물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가장 낫다는 내용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책과 자료 등이 있는 것이니 과거에 봤던 자료들 중에서 찾아보겠습니다만..... 대체로 한국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칭찬이 많았습니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어떤 서양학자 중에는 조선의 거름문화를 높히 평가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조선의 농민들은 인분을 토지의 영양분으로 이용하는데, 이것은 서양 농촌에서는 결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하지만 이같은 비위생적인 문화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둘러봤던 조선의 산이나 강, 들판 그 어떤 곳에서도 파리 때를 찾아보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인분을 산이나 강에 직접 버리면서 자연적으로 정화되기를 기다리는 게 고작이다. 반면 조선의 농민들은 농지에 인분을 뿌림으로써 농업생산량 증대와 환경보존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었다' -예전에 봤던 한겨레 기사중에서-
즉 누가, 어떤 가치관으로 한 사회를 바라보느냐에 평가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공통된 습성'을 도출해내는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행위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치 우리가 중국애들을 거만하고 게으르고 더럽하는 의미로 짱개라 비하하듯이 말이에요.
19세기에 우리나라와 일본에 왔었던 매켄지라는 사람이 '한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보면 일본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면서 광부들이 파업을 하고 일본에서 가짜 물건을 만들었다고 나오더군요 그 당시 일본도 아직 겉만 어설프게 개화를 했는가봅니다 명치유신이후 변한 시대에 적응을 하지 못한 사무라이 계층이 몰락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 책에 의병이 한참 설치던 시기의 한국 농촌 체험기도 있었습니다 거기 보면 일본군에게 처참하게 처형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정말 슬픈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특히 러일전쟁을 다룰 때는 일본 정부가 예산이 바닥이 났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들은적도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무슨 이런글을... 좀 어이 없네요. 물론 이걸 믿는건 아니시겠죠?
어쩝니까, 저흰 그 시대에 살지 않았는데.
다소 과장된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틀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로코씨는 왜 이 성실하고 긴 답변들에 대한 댓글이 없남? 결국은 낚시?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느네 나라 보다 반만년이나 버텨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