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사람 - 트리니티 2004 축복의 사람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그대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죠 주님 그대를 너무 기뻐하시죠
주의 집에 거하기를 사모하고 주를 항상 찬송하는 그대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죠 주님 그대를 너무 사랑하시죠
그대 섬김은 아름다운 찬송 그대 헌신은 향기로운 기도
그대가 밟는 땅 어디에서라도 주님의 이름 높아질거예요 *2
그대 섬김은 아름다운 찬송 그대 헌신은 향기로운 기도
그대가 밟는 땅 어디에서라도 주님의 이름 높아질거예요
<은총의 땅(언더우드의 기도)>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오 주여,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사람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조정 관리들의 내심도 알 길이 없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싶기도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히 11:1).
이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洋鬼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자신들과 우리 영혼이
하나임을,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
*언더우드
미북장로회 한국선교사. 초대 한국 주재 복음선교사 중 1인.
한국명 원두우(元杜尤). 영국 런던에서 존 언더우드의 4남으로 출생.
1872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한 후 뉴욕대학을 거쳐
1884년에 뉴브론스윅 개혁파신학교를 졸업했다.
신학교재학중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했고 졸업 후
장로교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선교사 준비를 위해 한동한
의학수업을 비롯, 여러 언어와 기술 훈련도 받았다.
인도선교사를 지망했다가 곧 북장로회 한국선교사로
결정되었고 일본을 거쳐 마침내 1885년 4월 5일 최초의
복음선교사로 내한했다.
알렌이 개설한 제중원 의학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쳤고 내한 이듬해인 1886년 고아원을 겸한
학교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곧 경신학교의 시작이다.
이와 함께 본격적인 복음전도에도 나서 1887년 제1차 전도
여행을 하여 송도‧소래‧평양‧의주 등을 돌았고 그 해
한국 최초의 장로교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창설했다.
그 밖에도 한글성경의 개역과 완역을 위해 성경번역위원회를
운영하는 일, 문서선교의 본격적인 전개를 위한 "한국성교서회"
(현 기독교서회)의 창설과 초기 전도문서의 집필과 번역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다했다.
또한 찬송가의 보급을 위해서도 초기 장로교찬송가인
《찬양가》를 번역, 출판하였다. 한편 함께 내한했던 미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연합적인 활동에도 솔선하였고
남장로회 캐나다‧호주 장로교회의 한국선교 활동에
있어서도 크게 협력하였다.
그러나 언더우드의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는 1915년 경신학교
대학부에서 출발시킨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에 있었다.
서울에 기독교대학을 설립하는 일을 지파 선교사들과 본국선
교부가 반대하는 과정에서도 개인적인 노력과 모금활동을
통해 관철시킨 바 있다.
그는 한국선교사이던 호튼(L.Horton)과 결혼하였고
아들 언더우드(H.H.Underwood)를 비롯 그의 후손들도
계속하여 한국선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연희대학 설립에 박차를 가하던 1916년 10월
과로로 별세하였다.
생전에 고종황제로부터 태극훈장을 받았고 1963년
국가 공로 대통령장이 추서된 바 있다.
-크로스맵 기독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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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선시대 그 암울하고 미개한시대에 주님은 저희나라에 빛을 주시었습니다 수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고 어렵고 힘든 저희들을 복된길로 이르게하시어서 밤마다 십자가의 불빛을 주심을 감사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