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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권 22호](통권 172호)(2009년 7월 14일)
이집트 종교기행
장 기 홍
2003년 11월, 지중해 일대를 여행하던 중 이틀간 이집트를 보았다. 고대이집트를 엿보자는 것이었다. 종교적 유물, 종교적 측면들이 많았으므로 여기에 ‘종교기행’이라 題하였다.
14일(금) 자정 아테네 공항에서 카이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새벽 3시가 되니 희미한 카이로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공항에서 단체로 비자를 받았다.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변소에 갔더니 요금을 받는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일행이 공항을 빠져나갈 때까지 경찰이 줄곧 경호를 하기에 까닭을 물으니 1970년 낫세르 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 내린 계엄령이 아직 계속이라 한다. 메리디엔 호텔(Hotel Meridien Heliopolis)에 들었다.
15(토) 늦게 일어나 정오에 모여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관광을 나섰다.
이집트 아랍공화국
이집트는 AD. 640년경 아랍에게 정복되어 이슬람 국가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관광가이드에게서 듣고 후에 참고한 것을 보태어 아래와 같이 지금의 이집트에 관해 약술한다. 이 나라의 정식 명칭은 ‘이집트 아랍공화국,’ 1400년간의 혼혈과 종교적 감화로 ‘아랍민족’이 되어 있다. 고대이집트의 후예가 누구냐 물으니 구릿빛 피부색의 탐족이 그들이라 한다. 그들의 고유 언어는 콥트어, 콥트란 이집트의 뜻이다. 그들은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여 콥트 기독교인들이 되었다. 지금도 콥트語로 성경을 읽는다 한다.
이 나라 국토는 한반도 면적의 4배나 되지만 사막이 많아 재정이 어렵다. 년 18억불의 산유국이면서도 무역은 적자투성이라 한다. 관광자원이 주요 재원이며 년 8천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국민소득은 2000$이라 하나 실제로는 800$ 정도라 한다.
카이로는 인구 천만의 아프리카 최대의 도시라는데 내가 본 범위에서는 고층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다. 한국산 자동차는 값이 싸서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한다. 카이로는 인구가 급증하고 대기 오염을 줄일 규제가 없어 환경 문제로 UN의 감시대상이 되어 있다 한다. 관광지에는 경호 경찰관들이 흔히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누구나 거지같은 행색이고 실제로 거지가 많다. 일반적으로 시골 인심이지만 인권 개념이 희박하고 아동 노동자들이 많다 한다.
버스로 도시 변두리를 지나갈 때 우리 가이드는 저 무허가 주택들을 보라고 했다. 벽돌과 흙벽돌로 짓고 있는 집들이 보인다. 조금 지어 살다가 돈이 생기면 그 위에 올려짓곤 한단다. 철근이 노출된 건물이 곳곳에 보이는 것은 돈을 더 모아 지어 올리기 위해서라 한다. 상여가 지나가고 남자들이 뒤따르고 있어서 왜 여자는 보이지 않느냐 물으니 여자는 울기 때문에 제외된다 한다.
이슬람교 신도가 90%를 점하는, 모스크가 많은 이 나라는 금요일이 주말이기 때문에 토요일이면 월요일 기분이 난다 한다. 코란에는 一夫四妻까지 허락되어 있다. 아내를 맞을 때 드는 돈 액수는 이혼녀는 死別 과부보다 싸다 한다. 코란에는 사람 몸의 수치스런 부분은 남자는 배꼽에서 무릎까지지만 여자는 눈을 제외한 전부라 한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면 명예살인이라 하여 가문의 명예를 위해 죽여도 죄가 가볍다 한다. 이슬람교는 死後에 빈자는 알라에게 가지만 부자는 자선을 해야 비로소 알라 앞에 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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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부자는 자선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서라도 예사로 자선을 받는다 한다. 자선(慈善)을 권유하는 좋은 교리이다.
카이로 중심가(舊街). 고대이집트 말기에 이집트를 다스렸던 로마는 지금의 카이로 구가(舊街, Old Cairo)에 성을 쌓고 ‘바빌론’이라 불렀다. 그 성채는 아랍 침공 때 파괴되고 지금은 흔적 밖에 없다 한다.
일행은 한 고색창연한 유대인 교회당(시나고그)을 방문했다. BC. 350년경 선지자 예레미아가 설교했다는 강단이 있었다. 어린 예수는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왔었는데 만일 예수 가족이 옛 카이로에 피난 왔었다면 예수는 마리아 등에 업힌 채 이 회당에 나왔을 것이다.
차창 밖에 콥트기독교인들 공동묘지가 보인다. 콥트교회는 초기 기독교의 한 갈래인데 지금도 예배 때는 이집트語의 최종단계의 언어인 콥트어를 사용한다 한다. 콥트어는 로마와 비잔틴 치하(治下)의 이집트 토속어로서, 이집트의 콥트인 기독교 신도들의 주요 기록수단이 되어왔다. 콥트어는 고대이집트 말기에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이 쓰던 말이다.
멤피스와 사카라
15일(토)오후. 우리를 태운 버스가 카이로 남쪽 20km에 있는 옛 멤피스의 터전을 향해 가는 동안 우리 가이드는 지금 한 달간이 라마단 기간임을 강조했다. 버스 구하기가 힘든 까닭은 신도들이 단체로 대절을 하여 성지순례를 가기 때문이라 한다. 이 금식기간은 21일(금)에야 끝이 나니 그 동안은 혹시 식당의 음식이 간이 맞지 않더라도 양해해달라고 했다. 금식에 철저하여 요리사가 음식 맛을 볼 수 없다는 것.
우리 버스의 운전기사는 승객들을 기다리게 해둔 상태에서 ‘5분간만 기도시간을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금식시간이 끝나는 오후 5시가 되자 우선 얼른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또 금식 후라 식사가 급하니 승객들더러 기다려 달라 한다. 가이드는 우리가 당신 식사시간 동안 기다렸으니 식사시간 만큼의 임금을 제하고 주겠다고 했다가 남의 종교를 방해한다고 항변을 들었다. 기도에 열심인 그들은 이마가 땅에 자주 부딪혀 굳은살이 다 생긴다.
BC. 3천년경 상(上)이집트의 한 부족장이던 메네스는 상 하 이집트를 통일하여 최초의 파라오가 되었다. 그는 통일 이집트의 수도를 멤피스에 정했다. 그런 경위에 관한 지식은 BC. 450년경 (당시는 이집트가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이곳을 찾았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해 전해졌다. 그는 당시 이집트의 사제들로부터 들은 대로 기록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기 백년쯤 전이다.
사제들이 최초의 파라오 메네스에 관해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메네스는 본래 상 이집트의 한 부족장이었다. 그가 하 이집트를 점령하자 통일이집트의 수도는 하 이집트에 세워야 통치에 편리하겠다고 생각하고 하 이집트의 부족장들과 백성들을 모아놓고 수도 자리를 정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나일강을 막아 강 유로를 바꾸고, 강바닥이던 자리에 수도를 건설하였으니 그것이 멤피스이다. 강의 유로는 신의 소관이라 알았던 백성들은 메네스를 신의 아들로 인정했다. 멤피스는 수천 년간 이집트 최대의 도시였지만 로마의 통치하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쇠퇴하여 지금은 카이로 교외에 폐허로 남아 있다. 본래 강바닥이던 데에 흙으로 지은 도시였기 때문에 복원하려고 땅을 파면 지하수가 솟아 발굴이 어렵다고 한다.
메네스 이하 9명의 파라오들이 소위 제1왕조를 이룬다. 제2왕조까지는 멤피스를 수도로 했다. (그 후로도 멤피스는 늘 주요도시였다.) 멤피스에 인접한 사카라에 초기 파라오들의 무덤들이 있었으나 흙벽돌로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보존이 극히 나쁘고 발굴이 거의 불가능이라는 것.
관광버스가 나일강을 건너 멤피스에 이르자 가이드는 신축한 작은 집들을 가리키며 ‘저것들은 정부가 도굴꾼들 후손을 위해 지은 주택단지’라 했다. 대대로 도굴꾼들이 사는 묵은 마을이 보인다. 정부는 도굴꾼 후손들을 새 주택단지로 이주시키려 하나 새 집에서 조금 살다가는 팔아버리고 묵은 마을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문명을 ‘나일강의 선물’이라 했다. 바람은 북에서 남으로 불어 돛을 올리면 강물을 거슬러 갈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세를 사후에 투영하여 죽어서도 배를 타고 저 세상으로 간다고 생각하여 가끔 무덤에는 모조품 배가 유물로 들어 있다 한다.
나일강변의 낮은 농경지 곧 산 사람들의 터전은 西쪽 丘陵지인 墓域과 구별된다. 마침내 우리 버스는 사카라’(Saqqara)에 다다랐다. 죽음의 신 Sokkar에 이름이 유래한다는 사카라는 지금은 옛 墓域에 불과하다.
마침내 이집트 最古의 피라미드인 조세르(Zoser)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 가까이 왔다. 그는 제3왕조의 첫 파라오요 古王朝의 개조(開祖)이다. 그의 피라미드는 최초의 石材 피라미드이며 사상 최초의 거대 유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제2왕조 마지막 파라오는 무자(無子)하여 맏딸 니메테프가 그녀 아들을 파라오로 앉혔으니 그가 조세르(Zoser, BC. 2700년경)왕이다.
이 피라미드의 건축가는 명재상(宰相) 임호테프였다. 그는 천문학자, 건축가, 의사였으며 사후에 신으로 모셔졌다. 그는 흙으로 만든 무덤이 튼튼치 못함을 알고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기로 했다. 한 변(邊)이 100 m 이상의 네모꼴 마스타바를 맨 아래 두었는데 이것이 왕의 무덤이다. 그 위에 6 계단이 더 있어 높이 60 m의 피라미드가 되었다.
무덤에 들어가 보니 장제전(葬祭殿), 신전, 주랑(柱廊) 등이 있었고, 무덤 벽면에는 엄청난 陽刻細工(relief)이 남아 있다. 이집트 초기의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는 무덤의 주인공 조세르왕과 건축가의 이름(임호테프)을 기록하고 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건축가라 한다. 인류 최초의 거대 건조물이요 최초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 비슷한 무덤은 세계 각지에 있지만 진짜 피라미드는 이집트에 있다. 사후에 미이라를 만드는 풍속도 곳곳에 있지만 미이라라 하면 고대이집트가 으뜸이다. 피라미드와 미이라는 사람의 영생 신앙의 소산으로 그 믿음이 가장 현실에서 풍성했던 곳은 이집트였다. 영생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소망이 가장 생활화되었던 곳이 이집트였다. 그 믿음을 그대로 살던 고대이집트인들이었다. 가장 노골적인 불사의 신앙을 우리는 이집트에서 구경할 수 있다. 사막에서는 우연히 미이라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이 단서가 되어 그들은 인공적으로 미이라를 만드는 기술을 발달시켰다. 지금은 레닌, 모택동, 김일성 등 미이라로 보존하기가 극히 어렵지만 고대이집트인들은 그 기술에 있어 최첨단이었다.
우리 일행은 머지않은 곳에 있는, 조세르왕보다 훨씬 후대의, 제5왕조 우나스(Unas)왕의 피라미드와 제6왕조 티티(Titi)왕의 피라미드도 구경했다. 내부의 보존이 잘 되어 있어 관광코스에 들어있었다. 티티왕의 피라미드는 그 내부에서 히에로글리프(상형문자)로 쓰인 비문과 피라미드文書가 발견되어 유명하다. 티티왕의 무덤 천정에는 별들의 문양이 있다. 저승의 행로를 밝혀 주던 별이다.
관광지 가게마다 이집트 특산식물인 파피루스 위에 이집트 벽화를 그린 그림들을 팔고 있다. 옛날 알렉산드리아가 화재로 그 도서관이 불탔을 때 파피루스가 귀해져서 유럽에로의 금수조치가 내리자 그때부터 유럽에는 양피지가 발달했다고 한다.
사카라 묘역의 신전은 지금은 폐허가 되었고 그 입구의 ‘멤피스의 스핑크스’만이 훼손된 채 서 있다. 이는 19王朝의 람세스 2세像이다(BC 1200년대). 이와 같이 람세스 2세는 곳곳에 기념비를 남기고 있다. 태양신의 보호를 상징하는 가발을 썼고 왕권을 상징하는 턱수염을 길렀다. 이 스핑크스는 그의 사후 건립되었으므로 死者임을 의미하는 굽은 수염을 가졌다! (살았을 때 세운 像은 곧은 수염.) 지금은 얼굴이 훼손된 상태인데,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금하는 까닭에 힘써 파괴했다 한다.
나일강변 서쪽은 사막인데다 언덕이 있기 때문에 묘지로 적합하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해가 지는 서쪽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곤충 소똥구리를 생명과 부활의 상징으로 보았다. 소똥구리는 똥 덩이를 동에서 서로 굴려간다고 생각했고 그 속에 부활의 씨가 들었다고 생각했다.
술과 담배
강 병 조
필자는 담배를 못 배운 것과 술에 약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친구들은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 당시 담배 살 돈도 없었고, 담배를 피우면 계속 돈이 들어갈 것 같아서 처음부터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므로 피워서는 안 된다고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술도 약해서 조금만 마셔도 취하고, 좀 더 마시면 필름이 끊기고 해서 많이 마시지 못했다. 나이가 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술이 약한 것이 천만 다행이다.
알코올의존 환자가 많이 입원한 배성병원에서 알코올 환자를 치료하면서, 나도 술을 많이 마시고 있다면 여기 입원한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나 생각을 하여 보면, 술을 잘 못먹는 것이 그래도 의사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 같다.
오늘도 알코올 환자 집단 치료를 하면서 느낀 것은, 술을 적당하게 마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스스로 몸이 망가질 때 까지 마신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권유, 스트레스 받을 때 술로 해결, 외로움도 술로 해결.... 등등 술 마시는 이유도 많았다. 이와 같은 문제를 술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환자들의 문제이다.
운동이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의 하나이나, 운동하고 나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다가 발동이 걸려 필름이 끊긴다. 적당한 선에서 그만 마신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술을 자주 마시면 내성이 생겨서 적당히 마시면 먹은 둥 마는 둥이 된다. 그러므로 술기운이 돌 때까지 마시다 보면 과하게 마시게 된다.
가까운 친척이 폐암이 의심이 되어 조직검사까지 했으나,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볼 때 몹시 속이 상했다. 몇 번 담배 끊으라고 주의를 주었으나 신경질을 내었다. 더 이상은 담배 끊으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아침 일찍 병원에 출근할 때 보면, 젊은 치료사 아저씨들이 병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 자기들도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잘 되지 않은 듯하다.
배성병원 같은 정신과 전문병원의 입원 환자 절반 정도가 지금은 알코올 환자들이다. 그러나 멀지 않아 담배 중독(니코친 중독) 환자들이 많이 입원할 것이다. 정신병원에서 담배중독 전문 클리닉은 있는 곳이 많다. 우리 병원에서도 멀지 않아 설치할 예정이다.
필자의 환자 중 술과 담배 그리고 커피까지 모조리 다 끊은 환자 한 명이 있다. 이 환자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최고의 학과를 졸업한 수재였다. 운이 없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나 의지력은 대단한 사람이다. 공부 잘 했던 사람이 의지력이 강하고, 의사 시키는 대로 잘 따라서 병의 예후가 좋다. 그래서 좋은 예후 요소에 "공부 잘한 사람"이라는 요소를 첨가해야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얼마 전 정신분열병 환자의 보호자가 필자에게 부탁의 말씀을 하였다. 자기 아들이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도 밤으로 꼭 막걸리를 먹는다는 것이다. 이튿날 늦게 일어나고 생활의 리듬이 다 깨어진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인 자기는 여러 번 술 먹지 말라고 부탁을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이 "술 먹으면 다시는 나한테 치료 받으러 올 수 없다. 절대로 술 먹지 말라"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이 보호자도 꼼꼼하고 강박적인 성격의 소유자임을 필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고 환자에게 그 말을 하였다. 아직 결과는 모르겠다. 환자가 의사의 말대로만 따라 준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게만 되면 병 치료하기가 아주 쉽고 예후도 좋을 것이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것은 마약 중독과 같은 중독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의사의 말을 따르지 못할 것임을 필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은 자기의 쾌락과의 싸움이다. 건전한 쾌락을 만들어서 술과 담배 중독에서 벗어나야겠는데, 이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운동 중독, 영어 중독, 영화 중독, 바둑 중독, 음악 중독, 독서 중독, 그림 중독, 여행 중독, TV 다큐멘터리 중독 등등 건전한 중독에 빠지면 얼마나 좋겠나. 건전한 쾌락을 만들자. 건전한 중독에 빠지자. 그래서 여생을 건강하고 즐겁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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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지 시 항 : 2009년 7월 모임
3木 모임 -- 2009년 7월 16일 (목) 7 시
장소: 경북대학교병원 606병동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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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습관과 중독은 어떻게 다를까요...?
습관과 중독의 공통점은 어떤 행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물질에 있어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듯이 정신적인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독은 쾌락과 관계가 있고 습관은 쾌락을 포함한 모든 행위와 관계가 있다. 그래서 중독은 습관의 부분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독이라고 하면 잘못된(악한) 쾌락행위의 지속을 뜻하는데, 위의 글을 쓴 강병조 교수는 건전한 쾌락에 빠지는 것도 중독(中毒)에 포함시켰다. 이 사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건전한 쾌락도 독(毒)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쉬운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깊은 논리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