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귤을 품다'라는 회귤(懷橘) 고사를 배웠다.
後漢 말 어린 육적이 권력자 원술의 집에 갔더니 귤이 나왔다.
물러나오며 원술에게 인사하는데 품에서 귤이 떨어졌다.
아이가 말했다.
"어머니 갖다드리려고요."
감복한 원술은 귤 몇 개를 더 내줬다.
孝心을 이르는 고사였지만, 귤을 구경 못한 그 시절 중학생은 '정말 귀한 고일인 모양이구나' 했다.
춘추시대 안자가 '강남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 된다'고 했다.
사물도 사람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강은 淮水, 지금 화이허(淮河)를 가르킨다.
난징(南京) 북쪽 안후아성을 동서로 흐른다.
회수가 아열대 과일 귤이 자라는 당시 북방한계선이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귤 지뱆지 중에 가장 북쪽이다.
고려시대부터 제주도에서 토종 귤을 진상품으로 키웠다지만 제대로 경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추위에 강한 중국 온주 귤이다.
경작물에 국경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북유럽 교외네 가면 열대식물을 기르는 비닐하우스가 끝도 없이 서 있다.
그 출발점이 '파인애플 난로'라고 한다.
영국 원예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파인애플 맛에 반해 고안한 초기 온실이다.
목조 건물에 난로를 피우고 말똥 거름을 깔아 그 열기로 모종을 키웠다.
이것이 유리 온실로 발전하면서 감귤,월계수, 석류도 재배하게 됐다.
가장 극적으로 퍼진 것이 커피다.
17세기 네델란드는 아프리카 커피나부를 들여와 온실에서 번식시켰다.
그 묘목을 인도와 자바섬에 심어 커피 공급 기지로 키웠다.
프랑스도 단 한 그루를 천신만고 띁에 카리브해 마르니크섬으로 옮겨 재배했다.
1931년 대만에서 커피 경작을 성공시킨 것은 대만을 점령한 일본군이었다.
커피는 야생으로도 번식해 중남미. 서인도제도, 스리랑카까지 퍼져 나갔다.
이름난 경영컨설턴트 김영한이 2년 전 제주도에 자리 잡고 커피공장에 도전하고 있다.
노지부터 온실까지 단계적으로 키워 한국형 커피 '코리아 빈(bean)'을 생산해내겠다고 벼른다.
하긴 30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맛봤던 깆가지 멜론을 이제 제주, 곡성, 천안, 양구에서 재배하는 세상이다.
망고, 파파야, 구아바, 아보카도 같은 열대와 아열대 과일, 채소도 스무 가지 넘게 난다.
따져보면 고추, 감자, 고구마도 각기 카리브해, 남미, 중미 원산이다.
커피라고 넘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영한은 "커피 농사가 미친 짓인지 지켜보라"고 했다.
그 발상부터가 매력적이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