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경계산행 제1구간(건천지 - 비내고개 10㎞+2)
아침 8시에 경산 시청에서 모인 경산시 산행을 사랑하는 회원들이 경산과 대구의 경계인 욱수동 옥산동의 경계인 건천지(강치못)를 향하여 출발 한다.
건천지옆 대구시지 노인전문병원 건너 식당 마당에서 산행을 위한 몸 풀기를 하고 응지(鷹地)를 향하여 출발 한다, 시지노인 병원이 자꾸만 뒤돌아 보인다. 시지(時至)라는 용어 이다 시지는 옛 고산면(孤山面)소가 있던 면소제지 동내 이다. 동내 이름이 고산 일부지역의 대명사가 된 것은 노변, 욱수, 신매, 매호동을 택지로 개발 할 때 사용한 시지 지구라는 신조어 였는데 그것을 욱수동에 있는 병원을 시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니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학교 이름도 동내 이름과 일치 하지 않는 학교도 이 지역에 몇 개가 있다, 정리 하고픈 욕구가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신 부산 고속도로 밑을 지나 좁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서 생각한다, 일제 때 욱수천 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아 산 밑을 뚫어 건천지에 물을 저장 하고, 다시 밑으로 내려 보내 중산지에 물까지 저수 할 수 있게 그 당시는 완전 사람의 힘으로만 암반을 뚫었을 것인데 우리 선조들의 노고를 생각하여 본다.
잘 조성된 묘지가 나온다, 아 - 하 - 이곳은 바로아래 덕원 중고등학교 창립자의 묘지로구나, 한 평생을 교육에 보낸 분의 영면(永眠)을 생각 한다. 이곳에서 덕원학교를 명문으로 만들데 까지 의 노고에 고마움을 보내 드립니다.
아직 시기적으로 나무의 새싹은 나오지 않았으나, 일찍이 핀 노오란 생강나무의 꽃이 보이기 시작 한다, 산에는 생강나무, 들에는 산수유의 노란 꽃이 봄을 급하게 알리고 있다. 드디어 숨이 찰 즈음 중간 능선에 올라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욱수골과 망월지가 보이며, 시지 지구 가 한눈에 시원하게 보인다, 망월지 위의 봉우리는 망월봉 이다, 망월봉 아래 산책 많이 하는 계곡은 망월골(마골)이고 그 건너 바위산은 망월산성, 자산산성이 있는 자양산이다. 그런데 이산을 요사이 지도에는 안산이라 하고 있다 안산이라 함은 풍수적으로 앞에 있는 편안한 산을 안산이라는 용어로 사용 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름을 전해 옴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 합니다. 장산지 옛 고서에 보면 봉암이란 마을은 있고 욱수란 마을 이름은 기록에 없습니다. 봉암골이란 용어가 먼저 생겼다고 추정이 되는데 욱수천이란 이름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신매는 원례이름이 신계(新溪)에서 신매(新梅)로 바꿘 것인데 그러면 강이름도 신매천이라 옳지 않을까?
숨을 물아 쉬며 첫 정상에 정자가 있는 곳에 올라와 한숨 돌이며 물 한 모금 마시고 첫 휴식이 되었다. 북쪽으론 팔공산 능선과 초례봉, 환성산, 낙타봉의 쌍봉이 한눈에 들어오며 금호강 건너오면 옛 성(城)이 있어(봉화대)가 있든 산이라고 성산(城山) 즉 성동(성 아래 동네) 뒷산이며 고산(孤山)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한 외로울 고(孤) 자의 고산이 이 들 가운데 고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북동쪽 산 밑에는 옛 제일합성자리가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을 서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시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자산산성의 자양산과 망월봉 이 한눈에 비교가 된다, 자산성이 망월봉보다 입지조건이 군사기지로는 빠지나 성을 쌓기에 좋아 선택 되지 않았나 추정이 됩니다, 망월봉은 완만한 봉우리고 자양산은 남쪽을 제외한 삼면의 봉우리가 급경사면의 암벽으로 자연적인 성의 역할을 할 모형을 갖추고 있으므로 남쪽만 성으로 쌓으면 다른 쪽은 천연의 요새가 되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박응서 의병장, 옥실의 초계정씨 형제 정변함, 변호, 종제변문 세 사람이 이 산성에서 의병 활동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성암산 으로 이어진 남으로 향한 능선 길로 나아간다, 우측은 대구광역시 구역이고 좌측은 경산시구역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산행이 경산시경계산행을 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오늘은 우리의 산행이 2016년도 첫1구간산행 하는 시산제 하는 날이다. 2개의 안부(鞍部)지나 30여분 만에 성암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 오는 능선길에 가침박달 나무가 자라고 있으나 이 나무를 보존 하여 가꾸어 주면 좋으련만 그 값어치를 알아주지를 못함이 아쉽네요, 시산제 제수용품을 운반한 회원이 먼저 도착 하여 땀을 식히고 있었다, 올 한해의 무사 산행과 각 가정의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정성을 천지신명께 부탁드리고 간단한 음복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성암산 정상석에는 2000년도 시청에서 세운 명문내용에 대덕지맥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것을 비슬지맥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과 성암산 정산동쪽 10여미터 밑에 성암굴(범굴)에 임진왜란때 경산 향교의 오성인의 위폐를 숨겨 놓아 전란의 피해를 보지 않고 무사하여 성스런성(聖)자가 붙여 성암산이 되었습니다. 또 옥산동이 이산아래에 있는데 성암산쪽으로 옥이많이 있어 옥산이라는 지명이 탄생하였으며 옥산(玉山)은 옛 경산의 다른 이름 이였으며 옥산전씨(全氏)의 관향으로 쓰는 그 옥산입니다. 즉 경산(慶山)전씨의 관향(貫鄕)인 것입니다.
음복과 휴식후 다시 서쪽으로 꺽어 산행이 시작 된다, 바로 안부에 내려서는 곳이 지양지에서 올라오는 계곡길이고 그를 지나 다시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우리는 서쪽으로 가야 하나 남쪽으로 난 능선길이 있다, 끝까지 가면 구일동이 나오고 조금 가서 내려서면 초계정씨의 집성촌 옥곡동이 나오는 계곡 즉 삼의사가 나온다, 우측 북쪽으로 가면 수성구청에서 관리하는 샘물도 있다. 능선길을 계속하여 편안히 솔숲 길을 걸어 힐링 하며 아무생각 없이 멍하게 한참을 걸어가도 됩니다. 구일에서 올라오고, 토골(박씨제실)가는 안부 가 나올 때 까지는 그냥 자연을 즐기면서 한번쯤 걸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양쪽 솔숲사이로 방화용 길을 내어 놓아 즉 대구와 경산 사이 서로 불이 나도 넘어 오지 못하게 단절시킬 목적으로 방화용 산길이 솔숲사이로 나서 너무 편안한 길이 탄생 한 것입니다. 이 좋은 길을 산악 오토바이가 가끔 분위기를 그려 칠 경우도 있습니다. 산악 오토바이가 이 길을 특히 경사가 심한 곳을 훼손시켜놓으면 산사태를 방지 할 려고 복구 할 때면 많은 경비가 날것이 뻔 한데 왜 막지 못할까, 이 안부를 지나 급한 경사를 올라서면 금성산 능선길이 좌측에 나오는데 이 금성산 역시 옛산성이 있다, 자양산성 보다 많은 유물이 나오는 고 지도에 나오는 오래된 산성이다, 산 아랫 동내에서는 정상이 큰 바위산 이므로 시루봉 이라고도 부른다. 금성산 남쪽의 동내는 산전(山田)동 즉 맥반석 포도로 유명한 산전(뫼전)이다, 손씨와 최씨가 많이 거주하며 요사이는 봄 미나리도 키우고 있다. 산길을 계속 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맥반석 고개이다, 그 지점을 살펴 보아라 산길에 보이는 돌들이 모두 맥반석으로 풍화가 되어 작은 구멍이 쑹쑹뚫려 있다, 맥반석 고개에서 좌회전 하면 산전으로 바로 내려가는 산길이며 우리는 우회전 한다, 10여 미터못가서 좌측에 보면 잣나무가 한 줄로 쭉 서 있다, 바로 그곳을 속으로 들어가 보면 경산 지역의 세 명의 임난 의병장 최문병, 최대기(응담)과 한사람인 박응서 장군의 묘가 있다, 본인과 아들 삼형제를 모두 전사하여 멸문의 위기를 맞은 휼륭한 우리고장의 호국정신이 잠들어 있다, 나라가 풍전등화에 놓인 것을 보고만 있지 못하고 자기 재산과 모든 능력을 발휘한 창의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현실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계곡이 봉암골 까지 이어지는 계곡의 이름이 토골인데 언제부턴가 박씨제실 이라고 호칭 하는데 이 부근의산이 바로 박장군의 후손인 밀양박씨 선산입니다. 그래서 갓지기가 살고 있던 집이 있었는데 그것이 시대 흐름에 따라 재기 보관용 창고 건물로 변신 한 것인데 재실이 아닙니다. 재실은 시지동에 솔일재(率一齋)가 따로 있습니다. 원 이름인 토골을 찾아 줍시다. 경산이 청도에서 남성현을 넘어선 왜군이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라 즉 임난때는 금곡과 연화봉을 지나 동학산 금성산 자양산이 모두 전투한 장소인 것입니다.
옷깃을 가다듬고 다시 산행을 합니다. 다시 30여분 산행 하다보면 다시 삼거리 광산 고개가 나온다, 우회전 하면 범물동 용지봉 혹은 욱수정, 대덕산과 망월봉으로 가는 길이고 바로 서편 산 아래는 가창면 상원동이고 남쪽 산길로 가면은 병풍산을 지나 비내고개로 가는 시경계길 입니다, 이 광산 고개는 가창면 달성광산으로 경산 쪽에서 가는 산길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산 계곡 에는 물과 산나물이 있어 생활용품을 구 할 수 있으나 산 능선에는 메말라 별로 구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지명이 없어도 불편 하지 않았으나 현대에 와서는 산 봉우리와 능선의 갈림길의 이름이 없으니까, 산행 할 때 기준점이 없어 후대에 와서 봉우리와 갈림길의 이름이 많이들 탄생하고 있다, 바로 광산고개와 맥반석고개가 그 이름 들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경산 시경계산행협의회의 11년 그간의 행적을 회원들에게 얘기를 들려주고, 회원 상호간의 자기소개 시간도 가졌습니다. 편안한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병풍봉의 급경사면에 도전 하였다, 힘든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길도 있으나, 아무도 쉬운 길을 선택 하지 않고 점심 먹고 배부를 때 힘든 급경사면을 오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최고의 회원들입니다, 등산이란 힘 듬을 이겨 낸 후의 성취욕을 만끽 할 줄 아는 미련한 쾌감을 즐길 줄 아는, 즉 피할 수 없이 하여야 할 일이라면 고통도 즐길 줄 아는 배짱 있는 아름다운 산 꾼입니다. 한 고비를 넘기면 편안한 내림길과 평편한 길이 나오고 산행은 인생의 행로와 비교될 만큼 재미나는 인생의 길입니다. 드디어 기대한 비내고개를 만났습니다. 달성군에서 안내 표시도 해 놓았네요, 경산 장에서 소몰이꾼이 가재골을 지나 대구장으로 몰고 가던 옛길입니다. 그 길을 소도둑놈들도 이용하였답니다. 경산서 소 잊었을 때 얼른 이 고개에서 기다리면 소도둑이 소 몰고 늦게 올라오는 도둑도 잡기도 하였다는 그 고개입니다. 임도 따라 산전 동내 까지 내려가다 보기 힘 더는 노루귀 사진도 찍고, 미나리 밭에 가서 삽겹살도 구워 봄 향기 가득한 미나리로 하산주를 재미나게 맛있게 먹기도 한 좋은 산행 이였다.
산전리는 맥반석 지대로 토질이 우수 하여 미나리 뿐 아니라 포도맛도 특별하여 인기를 유지하고 있고 맥반석 토질로 조선 때는 궁중용 도자기분청자기 도요지도 있었다.
오늘 산행도 5시 전에 모두 끝냈다, 우리 산행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경계산행으로 나의 고향을 사랑 하는 마음과 내 고장의 문화와 유래를 더 깊이 알고 싶은 지역 사랑 마음으로 시작한 순수한 마음의 모임이므로, 11년 이상 계속 지속되는 경계산행 모임은 전국에서 유일한 특별한 모임입니다. 경산을 사랑 하는 마음 임 이라고 감히 자랑하고 싶다.
첫댓글 경산산문사 기재된 내용이지만 참으로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