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아무튼, 주말
[아무튼, 주말] 아래서 위를 올려다본다는 것[아무튼, 줌마]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입력 2021.07.03 03:00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점심시간에 가끔 청계천을 걷습니다. 코로나에 갱년기가 겹쳐 ‘확찐자’가 된 바람에 하루 만 보를 목표로 걷기 시작한 게 아주 최근입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그마저도 청계천에 홀딱 반해서 걷습니다. 물길에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백로, 황조롱이 같은 새들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난한 연인들이 도시락 까먹으며 데이트하는 모습, 60대 여인들이 소녀처럼 냇가에 발 담그고 재잘대는 모습, 징검다리 아슬아슬 건너는 어린 딸을 카메라에 담으려 엉거주춤 서 있는 아빠의 모습에 미소를 짓습니다.
도로에서 청계천을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천변에서 도로 쪽을 올려다보는 풍경이 뭣보다 새롭더군요. 대로(大路)로 걸을 땐 보이지 않던 도시의 속살을 훔쳐보는 느낌이랄까요.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면서도 전태일기념관의 독특한 외벽을 처음 보았습니다. 최첨단 빌딩들 사이로 ‘알마니 신사복 단체복’과 각종 와이셔츠를 맞춰주는 영세업체들, 커튼·혼수를 맞춰주는 직물 가게와 마네킹 상점, 아주 오래된 공구상들이 골동품처럼 박혀 있는 풍경이 신기해 폰카를 찰칵찰칵 눌러댔지요.
후지와라 신야가 떠올랐습니다. ‘인도방랑’의 저자이자 일본 청년들의 구루(스승)로 존경받는 그는 인터뷰할 때 “한 길로, 같은 길로만 다니지 말라. 기자라면 더더욱”이라고 충고했었지요. 출근할 때 버스를 탔다면 퇴근할 땐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을 탈 때도 한쪽만 고집하지 말고 반대편 창가에도 서보라고 하더군요.
어떤 여자 회사원 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도로 공사로 8년을 한결같이 다니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우회했더니 동백꽃이 주단처럼 깔려 있더랍니다. 그 풍경에 오래전 포기했던 꿈을 되살려낸 여자는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유학을 떠나지요. 신야 또한 대학에 진학하기 전 학비를 벌기 위해 기차역 앞에서 구두닦이를 했던 시간이 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래에서 위를, 밑바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고 깨우쳤던 것이 그를 여행철학자의 길로 인도하지요.
저희 부서 막내인 신지인 기자의 영등포 여인숙 르포를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세상은 권력자들의 내로남불 부동산 투기로 떠들썩한데, 아무리 일해도 집은커녕 눈앞의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급한 이들은 “집값이 똥값이 돼도 내 몸 하나 누일 방 한 칸 구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절망합니다.
새로운 지도자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세상을 좌우로 두루두루 살피고 보듬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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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오병
2021.07.03 11:33:52
그렇습니다.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나저나 앳되었던 김기자가 벌써 아들 군대도 보내고 갱년기라니 세월이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항상 맛갈진 글솜씨를 보여주는 김기자의 글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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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열
2021.07.03 12:32:42
박오병 님의 댓글을 읽고 저는 '김 부장님의 요즘'에 대한 또다른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빠른 세월에 의한 갱년기 여성이란 부정적 의미보단 그만큼 성숙한 삶, 임영웅의 노래처럼 늙는 것이 아니라 농익은 홍씨의 향기가 먼저 생각납니다. 특히 그 연륜에 목판인쇄처럼 새겨져있는 기사, 비평, 수상 등의 행간 하나 문맥 하나 하나의 숨을 함께 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모두를 엮어 값진 한 '편'이 되기 위해선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멉니다. 김 부장님의 번개처럼 번득이는 감성이, 회칼같은 이성이, 사서삼경같은 지성이 계속 독자들의 에너지, 국민들의 활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바 큽니다. '킹팅'남매의 누님이신 김 부장님! 다음 주말에도 뵙겠습니다. 7월의 신록 몽땅몽땅 김 부장님의 것이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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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형
2021.07.03 15:49:11
어벙인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서민들 고통을 즐기는 소시오패스를 절대 다시 뽑으면 안된다 40%개돼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