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93]남원 대장장이가 만든 칼, 칼, 칼
지난 일요일 아침, KBS1 <황금연못>을 보는데, 남원의 대장장이 변재선 장인과 그의 사위가 화제의 인물로 출연했다. 이들은 지난 3월 11-15일 재밌게 시청한 <인간극장-대장장이 재선씨의 후계수업> 5부작의 주인공들이어서 낯이 익었다. 어제 점심, 친구와 남원의 ‘현추어탕’(쵝오!)에서 맛있게 추어탕을 한 그릇씩 먹고, 바로 인근에 <변사또 대장간> 가게가 있어 들렀다. 남편과 사위는 주천면 공장에서 칼을 만들고, 그의 아내는 그곳에서 칼을 파는 장면을 방송에서 여러 번 봤기 때문에 반가웠다. 칼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장인인 남편만큼 충만했다. 비싼 식도는 8만원까지 한단다. 보기에도 튼실하게 생겼다. 들으니, 예전부터 남원의 ‘변(卞)씨 칼’이 남원 목기와 함께 유명했단다. 아예 칼마다 끝부분에 ‘卞’이라고 새겨놓아 품질보증의 ‘명도(名刀)’임을 드러내고 있다. 부엌칼과 왜낫 한 자루를 산 후, 내친 김에 공장으로 견학을 가고자 향했다. 50대 초반의 사위가 반갑게 맞이해 이것저것 설명을 한다. 농경사회에서는 대장간과 대장장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나, 갈수록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게 안타깝다. 허나, 젊은 사위는 남원에 아직도 대장간이 5군데 있고, 내 고향 오수에도 농기구만을 주문생산하는 장인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나마 먹고 살 정도로 영업이 된다니 다행이다.
공장은 서예가 친구가 사는 문화마을 도로변에 있어 친구집을 오가며 여러 번 스쳤지만, 그곳에 차를 세운 것은 처음. 대장장이 변재선 장인이 64년째 이 일을 고집스럽게 해오고 있다한다. 올해 여든 둘, 백전노장이다. 기간제 공무원을 하던 사위가 7년 전 가업을 잇겠다며 뛰어들었는데, 공정의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하려는 무뚝뚝한 장인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 '머퉁'(야단)을 맞는 장면이 다큐에도 여러 번 나와 우리를 웃게 했다. 사위가 혼자 만든, 종이가 조각조각 베어나가는 칼을 보고도 “아직 나는 못따라온다”며 98점을 주는 매력없는(?) 장인의 웃음에도 왜 사위가 기특하지 않겠는가. “방송에도 나왔으니 아버님이 좀 나아지실 줄 알았는데 똑같다”는 사위의 말에 우리는 웃었다. 칼 한 자루 제대로 만드는 데 모두 15단계를 걸친 만큼 어렵다고 했다. 처음 배울 때 이렇게 손재주가 없는 줄 알았으면 뛰어들지 않았을 거라며, 스승과 제자로 7년을 배웠는데도 실력은 한 달정도밖에 안되는 것같다며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내 고향 임실 오수에도 20년 전쯤까지 ‘백동연죽’을 만드는 인간문화재가 있었다. 연죽(煙竹)은 전통 담뱃대를 일컫는데, 허리가 꼽추처럼 굽은 추경열씨가 만든 연죽은 보기만 해도 예술이었다고 한다. 그 아드님이 전수자가 돼 4대째 내려온 가업을 이었는데, 병환으로 일찍 별세해 맥이 완전히 끊겼다는 소식이 안타까웠다. 갓이든, 연죽이든, 낙화장이든, 전통적인 방식으로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여러 부문의 장인(匠人)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왜 그렇게 반갑고 고마운 걸까. ‘우리 것이 조은 거시여’ 새삼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이런 장인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생활고를 겪기까지 하는 이들에게 정부차원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바로 이웃마을(오수면 한암마을)에도 목공예 인간문화재 심사를 앞두고 있는 장인이 있다. 그는 전남 백양사에 ‘5백나한’을 납품했다고 한다. 연꽃 위에 자리한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형상을 깎는 장면을 보면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라지는 게 어디 한둘이던가. 인간문화재(장인)들이 세상을 뜨고나면 그 맥이 끊기고 말 전통문화가 어디 한둘이던가. 전통을 고수하고 전승하고 승계하는 작업들이 그만큼 고귀하고 소중한 일이거늘. 젊은 제자가 스승의 전문기술을 고대로 이어받고, 더욱 창조적인 작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이 땅의 장인으로 우뚝 서기를 비는 마음 가득이다.
*부기: <춘향전>에 나오는 탐관오리의 전형 ‘변사또’의 변씨가 卞이냐, 邊이냐를 놓고, 변씨들은 서로 ‘우리 변씨가 아니다’고 한다는데,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변씨가 만든 칼을 파는 광화루원 앞 가게 이름은 '변사도 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