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천국 미국은 왜 세계 최고의 강한 나라가 되었을까?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독립전쟁으로 건국한다.
그 지점에서 교묘한 일이 벌어진다. 잉글랜드 은행 창설에 개입했던 모건家는 서서히 미국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이미 모건은 유럽 금융을 장악한 후였다. 모건의 4 형제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의 금융을 장악하였다.
모건家의 금융조직을 오트피낭스라고 한다.
오트피낭스는 유럽 각국의 식민지 건설과 1, 2 차 세계 대전에서 자금 줄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식민지 건설에 절대적이었던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의 건설 자금이었다.
미국은 남북 전쟁으로 또 한 번 혼란기에 빠진다.
전쟁에서 모건은 3.5 달러 중고 총을 고쳐서 무려 22 달러를 받아서 폭리를 취한다.
모건은 월스트리트를 장악했다.
뿐만아니라, 철강왕 카네기와 석유왕 록펠러의 자금 줄이었다.
남북 전쟁은 미국 북부의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 이면에는 모건이 있었다.
1,2 차 세계 대전은 미국 자본주의를 다시 한번 비약적으로 발전 시켰다.
산업도시들이 가득 찬 미국의 북부는 군수품 생산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은 최고의 호황기를 누린다.
영화, 예술, 향락 등의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0여 년의 호황은 오래 가지못했다.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난 것이다!
세계 제조업의 42 프로를 차지하던 미국은 거대한 호황기에 무지막지한 상품 공급과 은행 대출과 주식의 광란에 빠지고 만 것이다.
대공황을 구한 것은 수정 자본주의 경제학자 케인즈와 뉴딜 정책의 루즈벨트 대통령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테네시강을 막는 댐들이었고 대표적인 곳이 바로 후버댐이었다.
후버댐으로 라스베가스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은, 세계 2 차 대전이었다.
1차 대전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은 미국의 산업을 또 한 번 부흥시켰다.
대공황을 전후로 하여 알카포네는 금주법을 이용하여 거액을 벌었고, 작가 피츠레랄드는 ‘위대한 게츠비’를 저술하였다.
위대한 게츠비는 그 후 두 번이나 영화화 되었고 ,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대공황 시대의 농민의 아픔을 그린,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역시 그 시절의 작품이었다.
유럽음악과 흑인 음악이 합쳐진 재즈 역시 라디오의 보급과 함께 전 국민의 음악이 되었다.
전 세계 수천 곳이 넘는 미군 기지는 청년들의 실업률을 하락 시키고, 미국의 군수 산업을 발전 시키면서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다.
여전히 오트피낭스는 블랙머니와 국제적인 경제 기구를 통해서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다.
라스베가스의 영광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