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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16.17장, 신비주의
윌리엄 제임스, 김재영 옮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한길사, 2022. 16,17장. 신비주의 (461~516)
#형언불능성 #순이지적 #일시성 #수동성 #종교적경험 #수용성 #우주적의식
16,17강에서는 그 유명한, 신비적 경험에 대한 제임스의 4가지 특징 분석이 제시된다. 그는 일관되게 종교를 어떤 본질이나 절대적 실재, 혹은 그에 대한 속성이나 존재 논증 등으로 설명하지 않고, 종교적 경험의 특징들을 분석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신비주의는 그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이면서도 명징하게 ‘종교적’인 것이다. 그는 ‘신비적 의식상태’가 다른 것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살피면서 네가지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형언 불능성Ineffability으로, 신비적 상태는 어떤 지적인 상태보다는 감정적 상태에 가깝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그 경험은 다른사람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없으며, 그 자신에게조차도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둘째는 순이지적 특성Noetic quality으로, 형언불능성에도 불구하고 신비적 경험은 어떤 분명한 앎을 주는 것 같다. 경험을 한 사람들은 단순히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일시적인 감정의 동요를 겪은 것에 그치지 않고, 신이나 진리, 세상의 질서 등,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보고한다. 그것은 지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진리의 깊이를 통찰하게 되는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감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지식을 가지는 것 같다. 프리스가 Ahndung(예감)개념으로 그 선험적 보편타당성을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신비체험의 이러한 특징에서 비롯된다.
셋째는 일시성Transiency이다. 사례 분석에 따르면 신비적 경험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다만 이 특징은 일부 불교 종파에서 항시 지속되는 깨달음의 상태(급격한 감정의 동요가 동반되지 않는, 말하자면 둘째 특징이 극대화된 상태)가 제시되면서 반드시 모든 신비체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닐 수 있게 되었다. 즉, 제임스의 4분류에 더해 오늘날은 보다 세밀한 의식 상태의 분류가 필요해졌다.
마지막 넷째는 수동성Passivity이다. 모든 제도 종교에서는 신비적 의식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나름의 수행체계를 가지고 있고, 같은 종교 내에서도 다양한 갈래의 수행이 제시된다. 그러나 수행이 반드시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전혀 수행 없이 경험이 일어나기도 한다. 신비적 경험은 체험자의 의지에 달려있지않고, 인격신을 비롯한 ‘초월적 실재’에 달려있는 것 같다. 이는 체험자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체험자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어떤 상위의 힘, 자기 의지의 통제를 벗어나는 어떤 영향력에 완전히 놓여있다고 느끼며, 그것이 체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여긴다.
여기서 논쟁에 열려있는 주제 두 가지가 불거지는데, 첫째는 이러한 특징을 가지는 신비적 의식상태가 중독성 물질이나 약물, 술 등을 통해서도 일어나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한 종류의 트리거를 통해 촉발된 의식상태가 전통적인 제도 종교의 맥락 안에서 일어난 신비적 의식상태와 비교했을 때 크게 상이한 내용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신비’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과 더불어 ‘종교’의 권위가 도전받는다. 약물로 인해 발생하는 특수한 의식상태마저 종교적이라면, 도대체 종교적인 것이란 무엇이 되는가? 물론 여기에는 경험 그 자체의 특징뿐만 아니라 그것에 수반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까지 총체적으로 고려되어야만 제임스의 본래 연구의 취지를 제대로 읽는 것일 테다.
둘째는 마지막 특성으로 제시된 ‘수동성’개념의 이해에 관한 것이다. 이 단어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체험 주체를 고려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체험자는, 비록 그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종교 체험을 위해 일상적 욕구를 제어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수행’을 하고, 특정 종교의 신조를 믿고 따르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그러한 체험을 병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수동성 개념에는 체험자가 그 체험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포함되어 있다. 수용성이 없는 종교 경험은 성립될 수가 없다.
장의 나머지 내용은 신비적 체험에 대한 다양한 보고로 이루어져 있고, 네가지 일반적인 특징을 기초로 해서 구체적 사례의 내용들에서도 또 몇가지 특징들이 추려진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일자’, ‘하나’, ‘조화’, ‘연합’등의 단어들로 특징지어지는, 나와 세계와의 통합이다. 제임스는 정신과 의사 버크Bucke의 말을 빌려 이것을 ‘우주적 의식’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앞서 약물 신비주의의 논의에서 잠깐 논의된, 이러한 체험의 유익함에 대한 것이다. 제임스는 이 책의 가장 처음부터 종교를 그 기원이 아닌 ‘열매’의 차원에서 살피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신비체험을 포함한 종교적 체험은 체험자의 삶을 변화시킨다. 즉, 삶에 유익한 열매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하나’, ‘조화’, ‘질서’로 인식한 타인과 세계를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약물 신비주의는 여전히 논쟁에 열려있다. 의학적 사고로 보면 종교 체험의 의식상태는 일종의 최면이나 질병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의식에 대한 지식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의 열매가 어떠한지를 물어야 한다.
제임스는 장의 마지막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결정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신비적 의식을 믿을 만한 것으로 권장할 수 있는가? 그는 계속 살펴온 방법대로, 체험자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대답한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는 분명한 것이며, 권위 있는 것이고, 따라서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권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