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노트
1990년대 젊은이의 감수성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뮤지션, 커트 코베인
“몇 년에 걸쳐 펑크록 101코스로부터 파생된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만드는 것에 대해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대 뒤에 있고 쇼를 알리는 표시로 객석의 불이 꺼지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성이 들리기 시작해도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 없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무대를 사랑하고 관객들이 바치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가 정말 존경스럽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여러분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 속이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공정하지 못하다.”
--커트 코베인
밴드 너바나(Nirvana)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송라이터였던 커트 코베인은 1990년대의 펑크, 얼터너티브록 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다. 1967년 시애틀에서 태어나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음악은 친구이자 돌파구이며 소통의 매개체였다. 1987년, 커트 코베인은 베이시스트인 크리스트 노보셀릭과 드러머 채드 채닝과 함께 밴드 너바나를 결성했고 시애틀에서 주로 공연을 했다. 1991년 레이블 ‘게펜(Geffen)’에서 새로운 드러머 데이브 그롤과 함께 녹음한 그들의 앨범 ‘네버마인드(Nevermind)’는 1990년대 젊은이의 감수성을 송두리째 바쳐버리게 하는 기념비적인 앨범이었다. 그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시애틀에서 활동하고 있던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은 그들의 성공 전례를 딛고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투어일정과 겉잡을 수 없는 인기는 오히려 커트 코베인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고, 즐길 수 없고 흥분되지 않는 공연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던 그는 약물에 자신을 의존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1994년, 4월 그는 자신의 집 온실에서 끝내 엽총에 머리를 겨누었고 홀(Hole)의 멤버인 부인 커트니 러브와 딸 프랜시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구스 반 산트 감독과의 인터뷰
1. <라스트 데이즈>는 당신의 개인적인 성취와 명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들과 같은 시절, 같은 경험을 했다. 내가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를 만들 때까지 나란 존재는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영화는 나에게 진정한 영화 만들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게 해주었다. 너바나 역시 비슷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넘버원 밴드가 되었다. 그 당시 시애틀에서 같이 음악을 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그들이 그저 지역의 스타로 남아줬으면 하는 소박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언론은 그들을 찬양하고, 그는 아주 커다란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모두는 아무도 살 수 없을 만큼 크고 비싼 집에서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생활이 결코 그가 꿈꿨던 것처럼 멋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바보 같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냥 그 집에 앉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이 그를 향해 소리치고 싸인을 해달라고 졸라대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할까. <라스트 데이즈>를 쓸 때,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집, 그리고 집 창문에 붙어 소리 질러대는 사람들, 또 그 집을 둘러싼 공기는 어떤 것일까. 나는 그런 느낌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2.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의 죽음은 헌터 톰슨이나 엘리엇 스미스의 자살 같은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94년 4월에 커트 코베인이 죽기 전인 1993년 10월 난 이미 친구인 리버 피닉스의 죽음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 가까운 친구, 정말 좋은 친구를 볼 수 없다는 것, 그 상실감은 다시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충격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주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리버 피닉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을 것이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 역시 리버가 죽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나 또한 죽음은 그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3. 마지막 장면에서 블레이크의 영혼이 그의 몸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듯한 영상을 찍은 의도와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영혼이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화면에서 그의 정신이 육체를 빠져나오듯, 나는 그가 어딘가를 부유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마이클은 사다리를 올라가는 장면을 찍자고 제안했는데, 그는 그것이 일종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 이 영화는 블레이크의 모든 경험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외형적인 것 뿐 아니라 그의 내면까지를 통틀어서...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정말 자신들이 원하던 위치에 올라섰을 때, 그리고 정말 원하던 것을 성취했을 때 느끼는 허탈감, 실망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무리 유명해져도, 돈이 많아져도,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그런 실망감, 분노, 그리고 우울함, 그런 것들은 그들의 유명세로 인해 치르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쉽게, 뭐가 고민이야? 잘 돌아가고 있잖아 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들은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5.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에 관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전기를 담은 영화는 아니다. 커트 코베인과 영화 속 블레이크 사이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표현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으며, 둘 중 누가 주체인가?
우리는 많은 것을 상상에 의존했다. 우리 역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에 관한 이야기들 외에 다른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았다. 작업을 하는 동안 포틀랜드의 누군가를 통해서 커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나는 그저 블레이크라는 존재를 만들었고 그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 지에 관한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씨네21 리뷰
1994년 4월8일, 커트 코베인이 죽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아직도 해석이 분분하지만 유서로 알려진 편지에는 “서서히 소멸되는 것보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05년작 <라스트 데이즈>는 유서를 쓰고 마침내 죽은 모습으로 발견된 커트 코베인의 죽기 전 며칠을 그린 영화다. 전기영화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라스트 데이즈>는 설명에 인색하고 묘사에 너그럽기 때문이다. 이미 그러했던 구스 반 산트의 전작 <엘리펀트>는 어쩌면 <라스트 데이즈>를 위한 예행연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라스트 데이즈>의 시작은 숲을 방황하는 한 남자에게서다. 극도로 외로워 보이는 이 남자, 블레이크(마이클 피트)는 성공한 뮤지션이다. 숲속의 거대한 저택은 부유함에서 오는 안락함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공허를 느끼게 한다. 그를 찾는 사람들이 끝없이 전화를 하거나 저택의 문을 두들기고, 집 안에는 그의 친구들이 있지만 그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그리고 얼마 뒤, 온실에서 블레이크는 시체로 발견된다.
실제 사건에 기초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사건의 해석에는 관심이 없는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는, 실제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에는 관심없이 마치 완전한 상상 속의 시간을 그려내는 듯하다. 설명에 인색한 그의 영화는 사건을 알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완전할 수 없다. <라스트 데이즈>는 감독과 커트 코베인(블레이크)과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며칠을 ‘이해하고’ 싶은 관객 사이의 비밀스런 소통과도 같다. 블레이크의 느린 움직임과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숨막힐 듯한 갑갑함을 낳고, 그를 둘러싼 모든 소리는 과장된 볼륨으로 울려퍼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를 되뇌는 것처럼 때로 이미 진행되었던 시간은 때로 앞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재생되지만 어디에도 답은 없고 외로움은 깊어진다. 자살이건, 타살이건, 이런 마음에는 죽음이 차라리 나은 대답이 되어줄 것 같은 심상이 펼쳐진다. 날마다 구체적이고 가혹한 질문을 하는,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그를 찾았지만, 그는 답을 내놓지 못했고, 기타를 안고 자주 아팠다. 고통은 그렇게 끝났다. 추론밖에 가능하지 않을 한 인간의 최후의 순간을 되살리는 데 그 이상의 부연설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구스 반 산트는 잘 알고 있다. 글 이다혜 2006-04-25
구스 반 산트 제작, 감독, 각본, 편집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