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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을 했다. 온라인 기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새벽이 두려웠다. 발제를 안해도 되는 아침이 더럭 겁났다. 그 공허함을 채우려고 백두대간 종주를 한겨울에 시작하게 됐다. 얼마나 이어질지, 어떤 장면으로 채워질지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로 33년 6개월이 마침표를 찍는 날(2023년 12월 31일) 함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첫째날(12월 31일) 치밭목까지 먼 여정
남부터미널에서 오전 7시 30분 버스를 타고 함양터미널에 도착해 대원사 가는 버스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원사가 어디냐고, 주소를 대달라고 했다. 곡절 끝에 원지라는 곳에 가면 된다는 것을 상호 납득하고 15분쯤 뒤 출발하는 원지 가는 버스를 타고 내리니, 금방이라도 버스가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아 표도 끊지 않고 후다닥 올라탔다.
이렇게 대원사 계곡 들머리에 내리니 벌써 오후 1시, 계곡길을 바삐 올라 대원사 앞 현석 이호신 화가(간혹 안부를 주고받는다)의 작품을 얼핏 감상하고 휴림이란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시켜 먹고 소주 두 병을 생수병에 담았다.
유평마을 앞 산행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 것이 어렴풋 2시 15분쯤이었다. 상당히 힘들고 지겨운 구간이다. 여름이야 상록으로 빛나는 구간인데 겨울 대원사 계곡은 영 아니다. 눈이 많이 쌓이지는 않았으며, 누르튀튀한 수풀 색이 영 아니다. 사람도 너무 없다. 무제치기 폭포를 지날 때쯤 5시인데 이 때부터 눈이 본격적으로 쌓여 있었다. 하지만 아이젠을 할 만큼은 아니었고, 사위가 어두워지니 초조해진다.
아무리 애써 올라도 대피소 화장실 불빛이 보이지 않다가 일순 보인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대피소 들어갔더니 공단 직원이 흠칫 놀라는 눈치다. 이 시간에 올라오다니 고생하셨네요.
저녁을 생략했다. 워낙 점심에 먹은 산채비빔밥 양이 장난 아니었다.
둘쨋날(1월 1일) 장엄한 천왕봉 일출
잠자리 최악이다. 30명이 다닥다닥 붙어 자는 공간에서 웬 코를 고는 인간이 온 산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정말 저 인간, 코 수술을 받고 산에 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노루잠을 잤다.
오전 3시 일어나 아침을 들었다. 4시 15분쯤 출발했다. 역시나 적설이 대단했다. 여름에 오를 때보다 한 시간쯤 더 걸렸다. 눈을 헤쳐 올라야 했고, 짐도 여름보다 월등히 많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써리봉 정상에서 헤드랜턴을 껐다. 보름달이 휘청한데 눈 쌓인 중봉과 천왕봉이 자태를 드러낸다. 신혼부부인 듯한 이들에게 라이트를 끄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의아해 하다가 경탄한다.
천왕봉 바로 아래를 기신기신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사람이 두어 쌍 있다. 아 끝났나, 절망할 즈음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새까맣다. 아 이렇게 난리법석이라 내려간 것이구나, 깨달았다. 내가 도착한 지 5분도 안돼 일출이 시작됐다. 모두 입을 모아 역대급이라고 탄성을 내지른다. 워낙 빽빽이 서 있어서 내가 떠나려고 뒤척이다 옆의 아줌마가 균형을 잃고, 연쇄반응을 일으킬 뻔했다. 나보고 막 뭐라고 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아까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던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사실 일출보다 우리가 걸어왔던 중봉과 써리봉 설경과 일출이 뻗친 붉은 빛 대조가 훨씬 대단한 장관이었다.
하여튼 사진 찍겠다며 길을 막고 선 이들을 슬쩍 밀치면서 내려왔다. 하산 길은 오히려 적절한 눈이 쌓여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장터목에 내려오니 아침 9시였다. 세석에 도착하니 오전 11시였다. 영화루(서울 서촌에 있는 중국집) 짜장을 데워 먹었다. 냉동상태를 유지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면발 맛이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잔반을 처리하고 오는데 아까 천왕봉 내려오는 길에 꽈당 넘어진 젊은이가 어느 쪽으로 가면 벽소령이냐고 물어왔다. 알려주고 짐 챙겨 떠났는데 그 젊은이가 영신봉 즈음에서 절뚝거리면 걸어간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고 말 건넨 뒤 에너지바를 긴급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건넸다. 그리고 한두 시간, 나혼자 엄청 고민했다. 촛대봉 영신봉 경치는 여름의 찬란한 그것보다 감흥이 덜했다. 바람이 전혀 없어 복받은 날이었다.
오후 3시 15분 벽소령 산장에 닿았다. 원래 연하천 예약을 했는데 벽소령에서 두 시간을 더 가야 하는 거리니 체력 소모가 적지 않을 것 같고, 세 번째 숙박 예정지인 노고단 산장까지의 거리를 따져도 딱 절반이 벽소령이었다. 해서 벽소령으로 예약을 변경하고 이곳에서 2시간쯤 드러누워 빈둥거렸다.
식사를 준비하려고 5시 15분쯤 취사장으로 향하는데 그 약한 젊은이와 딱 마주쳤다. 내가 걱정했노라고 말하자 자기도 죽을 뻔했단다.
그런데 이 친구, MZ 세대라 그런 것일까, 캠핑에서나 쓰는 바람 넣어 뽀글거리는 매트를 가져왔다. 잠자다 뒤척이면 온갖 소음을 내는 침구인데 그걸 대피소에서 쓰겠다고 가져온 것이다. 5명이 한 공간에서 자는데 그이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낸다. 내 옆 경상도 아재는 끌끌 혀를 찬다. 뭐라고 하면 한바탕 소란이 빚어질 것이 뻔하니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이날은 코 고는 이는 없었으나 이 친구의 침구가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친구는 너무 몸이 좋지 않은지 저녁도 거르는 눈치였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친구 대피소에 들어오자마자 껌을 씹어댄다. 우적우적, 아 이녀석 그런 애구나, 내가 동정하거나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친구였다.
셋째날(1월 2일) 이틀 연속 장엄한 일출 구경
3시간, 2시간, 3시간쯤으로 나눠 잠을 잤다. 평소보다 기록적으로 많은 취침시간이지만 정신은 오히려 멍했다. 오전 5시 40분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6시 40분쯤 출발했다. 이틀 연속 일출 구경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형제봉 위에서 장엄한 일출을 봤다. 오히려 천왕봉 일출보다 운무에 갇힌 황금빛 일렁임이 눈부셨다.
오전 9시 연하천 산장에 들러 오랜만에 세수하고 물도 채워 정비해 길을 떠났다. 화개재 오르는 쪽 계단길도 여름과 달리 힘겨웠다.
11시 화개재에서 짜장을 먹었다. 사실 시장끼는 없었는데 짐을 덜기 위해 먹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매끼니 그랬다. 목에 음식을 쑤셔넣는다는 느낌으로, 안 그러면 체력이 떨어져 종주를 계속할 수가 없으니 절박함의 발로로 먹어댔다.
늘 그렇듯 화개재는 지리의 어떤 곳보다 따듯하다. 그래도 식사 준비하고 먹느라 30분을 가만 있었더니 한기가 스며들었다. 겉옷을 입고 다시 출발, 삼도봉과 노루목과 임걸령, 돼지령 거쳐 노고단 고개까지는 대체로 쉬웠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역시나 화개재에서 삼도봉 오르는 계단, 마지막으로 올랐을 때 두 번쯤 쉬웠던 것 같은데 이날은 무려 여섯 차례쯤 쉬었던 것 같다. 적설 산행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가 그동안 온라인 기사 작성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써 체력적으로 몹시 떨어진 것 아닌가 생각됐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노루목과 임걸령 사이에서였다. 이어폰으로 명연주명음반을 들으며 피아노 선율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반갑습니다, 경상도 액센트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더니 세 남성이 스치듯 웃으며 나를 지나간다. 두 발자국 뒤 70대 중반은 돼 보이는 아저씨가 절뚝거리며 이 행렬을 놓치면 죽을지 모른다는 느낌으로 따라잡고 있었다. 그런데 행색이, 산꾼들이 아니다. 짐은 거의 개나리봇짐 수준이다. 그런데 무척 빠르다. 내가 워낙 배낭이 무겁다 해도 6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인데 저 4명은 나를 앞지르더니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들의 움직임에는 산꾼다움이 없다. 그렇다. 그제야 천왕봉 아래 능선 자락에서 일출을 구경할까 싶어 접근하는 이들을 제지하던 노란 어깨띠 아저씨 인상착의가 이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고용한 샛길 단속반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또 어떤 다른 임무를 띠고 어디론가 출동하는 것이었다. 식사를 대피소에서 해결하니 짐이 무거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워낙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니 산꾼들처럼 두터운 복장보다 방풍만 잘 되는 가벼운 복장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자꾸 이들의 행렬과 움직임이 무슨 무성영화의 슬랩스틱 장면처럼 상당히 웃픈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내 가까운 미래인가 싶기도 하고. 잘 조직된 아주 작은 분대 같았던 그 할배들, 쉬 잊히지 않을 것같다.
하여튼 전날과 거의 똑같이 3시 20분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는데 굉장히 반가운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음료수 자판기였다. 마일드커피 1000원. 마침 500원짜리 동전 둘이 있어 마셨다. 며칠 만에 맛보는 커피맛이었다. 마침 생상스 3번 오르간을 듣는데 집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날씨를 보고 만복대까지 오른 다음 올라가겠다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노고단 대피소는 내가 마지막으로 묵었을 때와 완전 달라져 있었다. 바깥에 컨테이너 박스에 책상과 의자가 일체화된 테이블이 4개쯤 만들어져 있었다. 그게 다인가 했는데 대피소 출입구 바로 옆에 서서 조리하고 서서 먹어야 하는 취사장이 따로 있었다. 난방도 돼 따듯했다. 아무래도 숙박객은 이곳에서, 그냥 통과하는 이들은 앞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같았다.
대피소는 개별적으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아주 돋보였다. 그런데 그 격리라는 것이 기대와 달리 소음에는 무방비였다. 옆 사람 뒤척이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또 한 가지 자신의 방 불을 켜고 끌 수 있었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전체 소등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걸 확인하지는 못했다.
한 시간쯤 뒹굴거리다 남원 날씨를 검색해보니 오전 강수 확률 60%로 나왔다. 산에는 눈이 내릴 것이 분명했다.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입맛이 떨어져 뭘 먹어도 맛있지가 않았다. 해서 포기하고 구례 택시 기사 가운데 친절하기로 이름난 정진우(010-8640-5470) 기사에게 전화했다. 6시까지 성삼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서둘러 짐 챙기고 취사장에 놔뒀던 물건 챙기려 했더니 오지랖 넓은 아저씨가 그런다. 시암재까지만 택시가 올라올텐데. 엥, 그러면 내가 2.2KM 콘크리트길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는 얘기인가. 멘붕이 왔다.
내려오면서 만복대를 보니 저기를 사람이 어떻게 올라가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이 각도에서 보면 만복대의 오르막 각도가 장난 아니게 가파르게 보인다. 만복대를 올라보면 실제로는 상당히 느긋하게 오르는 곳인데 내려가면서 보는 풍광은 사뭇 위압적이었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내려갔더니 5시 40분에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암재가 뻔히 보인다. 멀리 정진우 기사 택시가 올라오는 것이 빤히 보였는데 솔찮이 먼 거리가 생각했는데 정말 6시가 조금 안돼 정확히 택시가 도착했다.
정진우 기사 말인즉, 일반 택시는 여전히 성삼재까지 오르지 못하고 정진우 기사처럼 특별히 허락받은 택시들(차종도 사륜구동이어야 하고)만 자신들이 출입금지 시설을 열었다 닫았다고 왕래한다고 했다. 정말 길은 대단히 위험했다. 정진우 기사는 운전 솜씨도 좋았고, 5분마다 한 번씩 간간이 질문 던지고 묻지 않아도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이를테면 산행 전문 기사분이었다.
천은사 입구부터 정령치까지 일반 차는 겨울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따라서 노고단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구례터미널 앞에 가서 정진우 기사와 같은 택시를 이용해 5만원 내고 올라가는 방법 뿐이다. 구례에서는 오후 7시 50분 남부터미널행이 막차인데 천안논산고속도로의 이안휴게소에서 15분을 쉬고도 남부터미널에 11시 조금 안돼 떨궈줬다. 겨울 적설기 산행을 노고단 기점이나 종점으로 삼는다면 참고될 만한 정보다.
첫 종주에서 느낀 점
자 이번 종주는 대원사 계곡부터 정령치 부근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일단 성삼재에서 마쳤다. 다시 구례 내려가 택시 타고 성삼재 올라 만복대를 해야 할지, 아니면 여러 번 갔던 곳이니까 빼고 정령치에서 백두대간 종주 길을 택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날씨도 변수다.
이번에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실책들이 적지 않았다. 우선 짐을 최소화하는 데 실패했다. 대피소 난방이 워낙 잘돼 있어 침낭 같은 것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즉석식품을 매끼 먹으면서 종주를 이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타이트한 운행계획을 짜야 산장을 예약했다가 취소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체력적인 단련, 마음의 근육을 단단히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종주의 3대 적(불안 요소)은 잠자리, 먹거리, 외로움이었다. 도대체 앞서 백두대간 종주를 했던 이들은 이 어려움 셋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조언도 듣고 해야겠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퇴직 기념 지리 종주라...부럽기도 하고 약간 쓸쓸하기도 하네요... 글 중간중간 익숙한 이름들이 보여 반갑기도 했고요. 겨울에 나홀로 산행은 비추입니디만...알형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시원치 않아 보여 약간 걱정스럽기도 했고요...백두대간 하실 때 한 번쯤 응원산행을 할 수 있을끼...생각해 봤지만 사실, 자신은 없습니다. 댓글이 어수선해질 만큼 질정없이 읽었습니다 .부러움, 쓸쓸함, 걱정, 소망 등등....(명반의 타레가를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