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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6일
제10대 대통령 선거 실시
1979제10대 대통령 선거가
1979년 오늘 치러 졌다.
대한민국의 제10대 대통령 선거는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선거에 의한 제10대 대통령 선거로 최규하가 당선되었다
▶2008년 그리스에 전국적인 폭동 발생
▶2000년 팔만대장경 CD롬 봉정식
고려대장경 전산화 입력본과 이를 담은
CD-ROM.
한문으로 된 불교 경전 1514종을 8만여장의 경판에 담은 고려대장경이 700년 만에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1993년 시작한 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완료, 2000년 12월 6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고려대장경 전산화본 봉정식’ 을 가졌다.
연구소는 지난 7년간 해인사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디지털화, 15장의 CD롬에 담는 작업을 해왔으며 이날 봉정식은 CD롬을 부처님께 바치는 의식이었다. 고려대장경 CD롬의 가장 큰 특징은 약 3만2000종에 이르는 이체자(異體字)를 모두 원형대로 담은 점이다. 목판본인 고려대장경에는 ‘뚫을착’ 의 자형이 65종에 이르는 등 이체자가 수없이 발견된다. 연구소는 고려대장경을 원형대로 되살린다는 취지에서 이를 모두 그대로 수록했다. 또 정자(正字)와 이체자를 대비한 ‘고려대장경이체자전’ 을 만들어 이용자들이 편리하도록 했다.
또 다른 특징은 한자 하나마다 그 글자가 포함된 부분을 모두 찾아 볼 수 있는 ‘일자색인(一字索引)’ 이다. 사용자들은 한자의 음이나 부수-획수를 이용하여 관심있는 글자가 들어있는 구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98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선거,
우고 차베스 당선
▶1998년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 사망
세자르 [César : Cesar Baldaccini, 1921.1.1~1998.12.6]
1998년 12월 6일,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Cesar Baldaccini, 1921년 1월 1일 출생)가 노환으로 향년 77세로 죽었다. 세자르 발다니는 1950년대 이후 프랑스 예술계를 풍미한 누보 레알리즘의 거장으로 주로 금속성 재료를 이용하여 조각 작품을 했다. 산업사회가 배출한 쓰레기 조각들을 압축 또는 팽창시킨 일명 ‘스크랩 아트’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세자르 발다치니는 1921년 1월 1일에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이탈리아계 포도주 저장용 통을 만들던 제조공이었다. 마르세유 미술학교(Ecole des Beaux-Arts, Marseilles, 1935년 ~ 1939년 재학)와 파리 미술 학교(Ecole des Beaux-Arts in Paris, 1943년 ~ 1948년 재학)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1947년부터 금속을 이용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점차 철사 ·철근 ·볼트 ·스프링 ·쇳조각 등 산업화 부산물인 금속 폐품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1965년부터는 폴리우레탄 등 플라스틱 계통의 재료를 이용한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50년대에 고철 용접 작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54년 파리의 Galerie Lucien Durand에서 첫번째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이 시기에 세자르 발다치니는 녹슨 나사와 깡통, 금속 조각 등을 이용하여 곤충과 동물 조각을 창작했다. 1960년대에 파리 전시회에서 충돌한 자동차 3대를 압축해서 쌓은 작품을 발표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누보 레알리즘의 대표주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세자르 발다치니는 도색된 금속을 압축하여 만든 입체 덩어리를 조각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세자르는 부패와 황폐의 공포를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고철을 현대사회의 진정한 채석장으로 규정하고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등 다양한 고철들을 용접하거나 압축하는 방법으로 현대사회의 단면을 표현했고, 이러한 그의 창작 태도는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돼왔다.
세자르 발다치니는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전시했던 《520 t》을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작품은 작품명 그대로 무게가 520톤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으로 자동차 수백대를 압축한 작품이다. 당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프랑스관 커미셔너인 카트린느 밀레는 "세자르의 전형적 창작 기법인 고철 압축 방식을 이용한 최대 규모의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임영방 당시 국립 현대미술관장도 언론과 인터뷰에서 《520 t》을 "세계적인 조각가 세자르의 예술세계가 완벽하게 표출된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얘기했다. 그의 작품 중 대표작인 《엄지손가락》도 현재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1998년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 개막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 개막 행사 모습
▶1997년 국어의 표준발음에 대한 연구
업적을 남긴 국어학자 남광우 별세
▶1995년 불국사,석굴암,팔만대장경,
종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기념법회’에서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가운데)등
참석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1995년 자민당, `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
▶1995년 저명한 칼럼니스트 레스턴 타계
▶1994년 북한 대표단, 사상 처음으로 북
-미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해 워싱턴 방문
▶1989년 필리핀 비상사태 선포
▶1987년 박종팔 WBA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 획득
▶1983년 코스타리카 북한과 단교
▶1983년 버마 아웅산 테러범 기소
▶1982년 정부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마련
▶1979년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0대
대통령에 최규하 선출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0대 대통령에 최규하(崔 圭 夏) 선출
제10대 대통령 임기 1979년 10월 26일(권한대행 취임일)
1979년 12월 6일(정식취임일) ~ 1980년 8월 16일
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군 원주면 봉산 리 에서 출생
~2006년 10월 2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망
국무총리를 차례로 거쳐 대통령이 된 첫번째 사람이었다.
1919년 강원도 출생.
호는 현석(玄石).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1937년 4월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41년 3월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 대동학원에 입학, 1943년 졸업했다.
1945년 8·15해방 후 서울사범대학에서 조교수로 교편을 잡았다가 1946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공무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농림부 양정과장이 되었으며, 그해 외무부 통상국장이 됨으로써 외교관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주일대표부 총영사, 외무부차관, 외무부대사, 외무부장관 등을 지내다가 1976년 3월 13일 국회의 동의를 거쳐 국무총리가 되었다.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자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최규하 과도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어 제10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세력이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휘하 부대 병력을 동원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한 '12.12사태'가 일어났으며, 1980년 8월 16일 최규하는 대통령에 당선된 지 8개월여 만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1981~88년 제5공화국 헌법 제66조 2항에 의거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1991년부터 1993년까지는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의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2006년 10월 22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71년 국가비상사태 선언
박정희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선언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중국의 유엔가입을 계기로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남침준비에 광분하는 북한의 행동을 주시한 결과, 한국의 안보가 위태로운 시점에 처했다는 것이 선포의 이유였다.
이날 오전 9시 30분 청와대에서 긴급국무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 연석회의를 주재, 정부의 시책은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안보상 취약점이 될 일체의 사회불안을 용납하지 않으며, 언론은 무책임한 안보논의를 삼가며, 모든 국민은 안보상 실무수행에 자진 실시해야 하며, 안보위주의 새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 국민이 향유하고 있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공화당은 비상사태 선언에 법적 근거를 부여하기 위해 12월 21일 긴급 당무회의와 의원총회를 개최, 비상사태하에서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비상권한을 부여하는 전문 12조와 부칙으로 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마련해 12월 27일 국회에 제출, 가결했다.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알리는 호외를 받아들고 긴장에 싸여있는
시민들 모습
▶1969년 문공부장관,
사이비언론정비 언명
▶1962년 소련 폭격기, 쿠바 철수 완료
▶1962년 미국, 마리너2호 금성통과
▶1961년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작가 프란츠 파농 사망
▶1960년 모스크바에서 8개국 공산당
대표자 회담. 평화공존정책 재확인
▶1957년 일-소 통상조약에 조인
▶1956년 멜버른올림픽 복싱 밴텀급
결승전, 송순천 베렌트에 3-2 판정승
▶1955년 미-영-불-소,
오스트리아연방공화국 승인
▶1949년 한국, 만국우편조약 가입
▶1949년 첫 징병검사 실시
▶1948년 유엔총회, 정치위원회
한국대표초청안을 가결
▶1945년 군정청, 일본인의 공
-사유재산을 접수
▶1945년 윤치호 자결
▶1941년 맨해튼 프로젝트 승인
- 맨해튼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 오펜하이머와 최초의 원자폭탄 폭발 장면
▶1938년 독일-프랑스 불가침조약 체결
▶1938년 스위스 화학자 뮐러 DDT 발명
▶1926년 안광천 등 조선공산당
재조직(ML당)
▶1926년 미국, 유성영화 제작에 성공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 선포
▶1917년 핀란드, 러시아로부터 독립
1914년 네페르티티 흉상 발견
석회석에 채색토를 입힌 약 50cm 높이의 흉상으로 왼쪽 눈동자가 미완성 상태로 남겨진 작품이지만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다. 네페르티티 흉상은 1912년 페루 텔 엘 아마르나에서 이집트 유적 발굴 중이던 독일 고고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에 의해 발견, 독일로 밀반출된 대표적 밀반출 이집트 문화재다. 현재 독일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네페르티티(BC 1370~1330)는 일신교 신앙을 최초로 도입한 제18왕조 파라오 아케나톤(아멘호텝 4세)의 아내이자, 투탕카멘의 양어머니로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에 살았던 왕비 중 최고의 미녀로 알려졌다.
이집트는 2009년을 기점으로 수년동안 과거 영국 식민지 시대에 약탈당해 서유럽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옛유물들을 회수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어 관련 국가와 갈등관계에 놓여 있는데, 네페트르티티 흉상 또한 반환요구 대상 문화재 중 하나다.
▶1912년 을지로에 전차운행 개시
▶1908년 의병 6600여명 양주에 집결,
13도 의병장에 이인영
▶1892년 독일 전기공학자 베르너
폰 지멘스 사망
독일 전기공학자 베르너 폰 지멘스 (Ernst Werner von Siemens) 독일 베를린 에서 사망(1816년 12월 13일 독일 Gehrden Lenthe 에서 출생~ ) 독일의 발명가 또는 물리학자이다. 1841년 금과 은의 전기도금 법을 발명하였으며, 열대 나무의 진을 말린 물질인 구타페르카의 절연성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거죽을 싼 전선을 만들었다. 이 전선을 응용하여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사이에 독일 최초의 전선을 설치 하였다. 1847년 동생과 함께 지멘스 A G를 창립 하여 전신·전동 기계 등을 발명 제작하였다. 그는 베를린에 처음으로 전기 철도를 만드는 등 독일의 공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공업가로 칭송받았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김옥균 등 일본으로 망명
1877년 오늘,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창간
Washington Post. 미국의 신문. 워싱턴 D.C.에서 발간되는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과 함께 미국의 3대 일간지이다. 약칭 WP, WaPo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The Post"라고 부른다.
1877년 워싱턴 D.C.에서 스틸슨 허친슨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워싱턴 포스트 설립자 스틸슨 허친슨 [wikipedia]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1933년에 파산하였고 경매를 통해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세계은행 초대 총재인 유진 메이어가 인수하였다.
유대인 금융 자본가인 유진 메이어가 파산한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며 3대 일간지로 성장시킨다. [musavat]
이후 유진 메이어의 경영 아래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3대 일간지로 발돋음하게 된다. 라이벌인 뉴욕 타임스 펜타곤 페이퍼 보도 제제로 인해 멈췄던 후속보도를 앞장서서 하며 사건이 재조명되었다.
이후 워싱턴 포스트의 대표기자로 알려진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다각도로 취재와 보도를 하여 신문의 권위를 드높였다.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트려 신분의 권위를 높인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post]
정통 일간지답게 정치, 경제, 국제, 예술 등에 대해서 폭넓게 다루는 편이지만, 워싱턴 D.C.에서 설립되고 발간되는 신문답게 미국 정치 기사 위주이다. 2013년 8월에 아마존닷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인수하였다.
뉴욕 타임스와 투톱을 이루는 진보성향의 매체이다. 2008년과 2012년 미국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였고 2016년에는 거의 대 놓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대선 외에도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뉴욕 타임스와 비슷하게 보수적인 칼럼니스트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아니, 사실 뉴욕 타임스보다 더 많은 보수 의견이 섞여있어 좌우 양쪽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런 보수적인 칼럼니스트들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비판하는 칼럼을 쓰고는 한다.
워싱턴 포스트가 1877년 12월 6일, 워싱턴 D.C에서 설립되었다.
▶1866년 대원군, 경복궁 중건위해
당백전 주조
▶1779년 프랑스 화가 샤르댕 사망
▶1775년 영국 작가 오스틴 탄생
https://youtu.be/HJ_KPNj4j-g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