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화 과일
한 학기를 마무리 짓는 정기고사다. 오전에 고사 감독을 하고 학생들이 하교한 오후는 자유로운 시간을 맞았다. 학생들은 나흘간 시험에 시달리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교사는 좀 느긋하다. 그렇지만 평가는 한 순간도 마음 놓을 일이 아니다. 고사원안 출제와 수행평가 채점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어느 직종도 마찬가지만 교직도 세태 변화를 따라가려니 숨이 찰 지경이다.
담임들은 학교 바깥에서 점심을 들면서 밀린 업무를 협의하는 시간을 가지는 듯했다. 나는 담임에서 비켜 서 있는지라 곧장 집으로 가 점심을 들었다. 점심 식후 배낭을 메고 등산화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남산교회를 지나 퇴촌삼거리로 향했다. 그쪽은 올봄 근무지가 바뀌기 전엔 아침저녁 출퇴근길로 매일 같이 걸어 다녔다. 사림민원센터에서 주택가를 지나 사격장 방향으로 올라갔다.
평일 낮 시간대라 소목고개로 오르는 산행객은 드물었다. 여름 장마철이니 인적은 끊겼다시피 했다. 나는 쉬엄쉬엄 걸어 숲속 나들이 길 이정표에서 약수터 방향으로 올랐다. 약수터에서 샘물을 한 바가지 떠 마셨다. 나는 산에 들면 신토불이만이 아니라 신수불이도 실천한다. 제 땅에 샘솟는 물을 그 땅 에 사는 사람이 마심은 당연한 이치리라. 물까지 물 건너온 삼다수를 찾을 필요 없다.
약수터에서 소목고개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고개 쉼터 의자에 앉아 땀을 식혔다. 지난 봄 쑥을 캐느라고 들린 이후 다시 오른 소목고개였다. 정병산이나 봉림산으로 오를 생각은 없었다. 나는 집을 나설 때부터 정해둔 행선지가 따로 있었다. 그곳은 산이 아닌 밭둑이었다. 소목마을을 지나 육군종합정비창 곁 어디쯤이다. 고개에서 산길을 얼마간 걸어 소나무 숲을 지나니 소목마을이었다.
남해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남산마을 앞으로 갔다. 그곳에는 삼 년 전 예전 근무지서 정년을 맞은 최 박사가 블루베리 농사를 지었다. 이분은 이학박사 학위를 가져서가 아니라 현직 시절 때 고난도 수학문제에 막힘이 없었다. 이제는 초야에 묻혀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업농부가 되다시피 했다. 농사에도 박사였다. 수령이 오래된 단감과수원을 수년에 걸쳐 블루베리 농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랜만에 만난 최 박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최 박사는 밀짚모자를 쓴 농사꾼으로 변신해 있었다. 컨테이너박스 살림공간에서 수박을 꺼내와 같이 먹었다. 그러고 보니 현직에 있을 때는 제 스스로 커피를 즐겨 타 들었던 최 박사다. 최 박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블루베리 농사로 수익을 제법 보았다고 했다. 땅은 정직해서 주인이 정성을 쏟은 만큼 정당한 보상을 되돌려주었다.
최 박사의 농원은 그의 고향 남산마을과 가까웠다. 선친 생시는 단감농원인데 근래 수익이 나은 블루베리로 바꾸었다. 다른 과수도 마찬가지겠지만 블루베리 농사는 특유의 영농기술이 따른다고 했다. 최 박사는 진주 농업기술진흥원으로 가 재배 기술을 전수 받아오기도 했단다. 블루베리는 아직 우리나라에 많이 퍼지지 않은 신종 과수라 생육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힘이 드는 듯했다.
내가 최 박사 농원을 찾아감은 요즘 블루베리가 항산화 식품으로 알려져 주목 받는 과일로 뜨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이맘때도 나는 최 박사 농원에서 블루베리를 사 간 적 있다. 최 박사는 안면 있는 사이라고 블루베리를 시세보다 싸게 팔고 덤으로 더 안겨주어 고마웠다.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로 나는 현지 농원에서 블루베리를 싸게 살 수 있었다. 할인매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정도였다.
항산화 식품에는 토마토가 있었던가. 국화 가꾸기가 그러하듯 토마토도 촉성재배나 억제재배가 가능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블루베리는 제철만 먹을 수 있지 저온이나 냉동을 시켜도 여름을 넘기기는 무리지 싶다. 최 박사는 내가 금을 치룬 그 이상으로 블루베리를 담아 놓았다. 그러고도 나보고 열매를 따는 체험을 해보라고 바구니를 안겨주었다. 나는 차마 그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했다. 16.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