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은 ‘쉬운 시험’의 기조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교육부의 업무보고에서 밝힌 쉬운 영어 방침이 반영됐고 쉬운 영어 때문에 풍선효과가 걱정되는 국어 수학 역시 “작년보다 어렵지 않게”라는 평가원 입장으로 보아 전반적인 쉬운 수능 기조는 유지될 전망입니다. 교육당국의 입장에서는 선행학습금지법의 맥락에서 쉬운 수능기조를 택했지만 수험생들 입장은 어떨까요.
수능이 쉬워진다면 수험생 입장에서 마냥 좋은 일만 있을까요. 준비할 때 보면 부담이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좋아 보이지만 막상 지원하는 상황이 되면 괴로워지는 일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상위권 입장에서는 만점자 1% 원칙도 없어진 상황에서 실력보다 다른 변수가 승부를 가름하는, 쉽지 않은 게임이 예상됩니다. 변별력이 떨어지는 시험은 학력을 반영하기보다 실수나 당일 컨디션에 따라 점수가 좌우되는 일이 벌어지기 쉽습니다. 지원상황 역시 마찬가집니다. 상위권부터 시작된 혼전이 중하위권으로 내려오면서 눈덩이처럼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정시가 조금 더 늘어났고 서울대 정시 역시 수능 100%인 상황을 감안하면 상위권부터 올해 정시 지원전략 마련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돌아보면 수능이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94학년 도입돼 대입의 골간으로 자리잡아온 수능은 매년 쉬웠다가 어려웠다가를 반복하며 ‘물수능’ ‘불수능’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수험생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94년 도입 첫 해 두 차례 시험이 모두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연 2회 수능은 한 번 해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95~96학년에는 수능, 내신, 본고사, 논술을 전부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학습부담이 엄청난 입시였습니다.
97학년에는 수능이 200점 만점에서 400점 만점으로 바뀌었습니다. 97학년 수험생들은 좌절했습니다. 너무 어려워 200점 만점 모의고사 점수와 비슷한 수준의 성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비난여론이 빗발쳤고 다음해 98학년 수능은 너무 쉽게 나오면서 ‘불수능 다음 물수능’이라는 통념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99학년에는 선택한 탐구 과목에 따라 유불리에 따라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렸고 2000년 초반에는 아예 짝수해는 ‘불수능’, 홀수해는 ‘물수능’이라는 웃지못할 공식까지 나왔습니다. 2001학년 수능은 너무 쉬워 수능 만점자도 당시 최고 학부였던 서울대 법대에 못 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수능은 수시비중이 확대되면서 최저등급으로 영향력이 축소되고 EBS 연계 70%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쉬운 시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쉬워진다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요. 가장 가까운 2014학년 수능만 해도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선택형이라는 입시환경으로 아예 기존 입시 데이터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깜깜이 지원’을 해야 하는 곤욕을 치른 바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수험생 입장에서는 결코 간단치 않아 보입니다. 수능의 윤곽이 나왔을 뿐 대입의 세부사항은 아직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밝힌 교육당국의 대입개편안에 따라 대학들은 전형계획을 내놓았지만 아직 구체적 요강을 확정한 상황은 아닙니다. 올해 입시는 2017학년까지 바뀌어가는 과도기라는 점에서 더욱 혼선이 예상됩니다. 기존 흐름과 새 방향이 혼재하기 때문이지요. 올해 수험생들은 간소화의 방향성이 무색할 만큼 복잡하고 예외 많은 전형들을 공부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정책이 바뀔 때는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비난여론이 급등하면 다음해 혹은 다음 정권에 바꾸면 그만이고 결과적으로 희생양은 늘 수험생인 상황은 문제있는 게 아닐까요. 비난이나 인기를 의식하는 정책의 개편이 결과적으로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 교육수요자들을 괴롭히게 되는 악순환. 이제는 끊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교육당국이 수요자들을 존중한다면 정책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비난여론을 등에 업고 정책을 바꾸기보다 백년대계의 혜안으로 비난여론에 맞서는 용기. 시행상의 문제가 있더라도 바꾸기보다 보완하는 신중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베리타스알파>